[팬데믹 大위기] Part Ⅱ Global 뉴욕 | 세계 금융 중심지 월가 대혼란, 확진자 발생에 NYSE 객장 임시 폐쇄 결정
장용승 기자
입력 : 2020.03.30 18:08:12
수정 : 2020.03.30 18:08:35
지난 3월 5일 미국 뉴욕 외신 프레스센터가 마련한 세계적인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간담회 자리. 통상 프레스센터는 뉴욕 맨해튼에서 진행되는 주요 행사를 안내하고, 이에 참석하려면 간단한 사전 등록 절차를 밟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 가지 절차가 추가됐다. 사전 등록을 했지만 코로나19 감염 여부에 대한 체크리스트를 작성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내용은 이랬다. ‘당신은 중국, 한국을 최근 14일 이내 방문한 적이 있는가’, ‘당신은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과 최근 접촉한 적이 있는가’ 등의 내용을 확인하도록 했다. 당시는 코로나19 사태가 중국과 한국에서 가장 심했을 때였다. 만약 위의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하면 간담회 참석이 불가했을 것이다.
그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월 13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정도로 상황은 더욱 악화돼 이제는 월가 주요 금융회사들의 오피스를 방문하거나 미팅을 잡는 것이 사실상 어려워졌다. ‘세계 금융시장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월가에서도 코로나19 확진 사례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월가에 기반을 두고 있는 금융회사들은 비상업무에 돌입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재택근무를 확대하는 등 사태 장기화에 대비하려는 움직임이다. 월가의 금융회사들은 2001년 9·11 테러 사건 당시 도입된 ‘기업 업무지속계획(BCP·Business Continuity Planning)’을 실시하며 비상 대응 체제에 들어갔다. BCP란 재난 발생 시 기업 활동의 연속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한 대응 체계를 지칭한다. 단순한 데이터 백업뿐 아니라 핵심 업무 기능이 그대로 유지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월가의 미국 대형 은행들은 BCP를 실행하면서 정책당국과 긴밀한 소통을 통해 최악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월가 금융회사들은 댈러스, 탬파, 시카고, 피닉스 등에 금융 거래를 위한 백업 장비를 갖추고 있다. 금융회사 단위로 본다면 BCP의 핵심은 본사의 거래 기능이 마비되었을 때 다른 지점이 이를 대신해 주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증권산업·금융시장 협회의 케네스 벤트센 주니어 최고경영자(CEO)는 “9·11 테러 이후 BCP를 마련한 미국 대형 은행들은 2012년 허리케인 샌디 사태 때 이를 실시했고, 그 이후에 이를 업데이트시켰다”며 “현재 미국 대형 금융회사들은 핵심 부서에 대해선 팀을 나눠 순환 근무를 실시하는 등 물리적으로 직원들이 서로 떨어져서 일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BCP의 하나로 재택근무가 이제는 ‘뉴노멀’이 된 분위기다. 이와 관련 월가 ‘터줏대감’인 뉴욕증권거래소(NYSE)는 3월 23일부터 객장(트레이딩 플로어)을 임시 폐쇄하고 모든 매매를 전자거래로 대체하기로 했다.
이는 객장 내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한 데 따른 조치다. 코로나19 확산에 대응해 객장 내 주식중개인을 통한 주문을 중단한다는 것으로, 뉴욕증시의 거래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프라인 객장의 트레이더(중개인)들은 뉴욕증시의 상징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객장 임시 폐쇄 자체가 큰 뉴스거리가 되고 있다. 전산으로 매매 체결 업무를 하더라도 NYSE 객장 비중은 적지 않다. CNBC는 “전자 거래가 되더라도 객장 비중은 매우 중요하다”며 “전체 거래 중 객장 비중이 18%를 차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에 따른 NYSE의 객장 임시 폐쇄와 별개로 시장에서도 휴장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제충격으로 뉴욕증시가 잇따른 폭락 사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뉴스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는 코너 센 ‘뉴리버 인베스트먼트’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미국은 2001년 9·11 테러 직후처럼 일주일이나 그 이상 일시적으로 뉴욕증시를 휴장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은 3월 들어 미국 뉴욕증시가 10% 이상 급락하는 등 1987년 10월 ‘블랙먼데이(-22.6%)’ 이후 최대 폭락세를 보이면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뉴욕증시에선 3월 9일, 12일, 16일, 18일 등 열흘 사이에 서킷브레이커가 무려 4번이나 발동했을 정도로 시장은 극도의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서킷브레이커는 주가 급락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15분간 매매를 중단하는 제도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가 7% 이상 급락하면 발동된다. ‘증시가 개장하는 것이 겁난다’라는 공포가 확산되면서 임시 휴장 필요성 주장이 부상한 것이다.
뉴욕증시의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3월 18일 2만 선이 붕괴됐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도 7000선이 힘없이 무너졌다. 이와 관련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은 3월 17일 주식시장 상황과 관련해 “모든 사람이 열려 있길 희망한다”며 “사람들이 필요로 한다면 (거래) 시간을 단축할 시점에 이를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증시 거래 시간 단축을 검토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한편 코로나19 확진자·사망자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국경통제, 생산시설 중단, 입국 제한 등 소위 ‘글로벌 셧다운’이 나타나면서 월가에서는 미국 경제 리세션(recession·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오는 11월 대선에서 ‘경제성과’를 최대 치적으로 내세워 재선을 노리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마저 리세션 가능성을 언급했을 정도다. 트럼프 대통령은 3월 16일 코로나19 대응 태스크포스 기자회견에서 리세션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그럴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미국 내 코로나19 상황이 언제 끝나겠느냐는 질문에 “보건 당국자들에게 매일 이 질문을 한다. 사람들은 7월, 8월을 얘기한다”고 답했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도 미국 경제 리세션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2분기는 ‘약할(weak)’ 것이지만 그 이후로는 예단하기 어렵다”며 “바이러스가 어떻게 확산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 언급대로 코로나19 사태가 7~8월까지 계속된다면 3분기에도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통상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세를 기록하면 리세션으로 본다. 코로나19 사태가 근본적으로 진정 국면에 들어서기 전까지 이러한 월가의 혼란은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