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활력 위축… 중위소득 비중 58% 역대 최저
소주성·부동산 가격 폭등에 계층 이동 힘들어져 / 김병수 기자
‘42.2%’
매경LUXMEN이 잡코리아와 함께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귀하는 중산층입니까?’라는 질문에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대답한 비율이다. 온라인 조사임을 감안한 수치라도 40%대라는 점은 의미가 적지 않다. 실제 주변에서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급감세다. 1980년대 말, 1990년대 갤럽 등 각종 조사에서 70%를 넘던 수치는 최근 50%를 넘지 못하고 있다. 말 그대로 한국의 중산층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실제 수치로도 나타난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중위소득 50~150% 가구 비중이 지난해보다 1.9%포인트 낮아진 58.3%로 떨어졌다. ‘중위소득 50% 이상 150% 미만’ 비중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대표적인 중산층 지표 중 하나다. 최근 정부가 5분위 소득 분배 지표를 들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해소되고 있다는 주장과는 정반대의 결과다.
중산층이 줄어들면 계층 간 갈등이 심해지고 내수기반이 약화돼, 경제에도 부정적 파급효과를 가져온다. 소비가 위축되고 그로 인해 기업 매출과 일자리가 줄어드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도 있다. 정확한 원인진단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의미다.
소득양극화와 부동산 가격 폭등 등이 실질 혹은 체감 중산층이 줄어드는 이유로 지목된다. 국내 중위소득(50%) 근로자가 한 달에 214만원 벌 때, 0.1%에 해당하는 최상위 근로소득자는 매달 평균 6739만원씩 벌었다. 무려 31.4배다. 또한 상위 0.1% 1만 8000명의 소득은 하위 17% 324만 명의 근로소득과 맞먹는다(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자료). 상위층의 범위를 넓혀도 마찬가지다. 근로소득 상위 10%가 총 급여 기준 전체 근로소득 633조6117억원의 32%에 해당하는 202조9708억원을 번 반면, 하위 10%의 근로소득은 전체 근로소득의 0.7%에 불과했다.
집값 상승은 중산층 위기의 체감도를 높인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상위 40~60%인 3분위 연소득자가 상위 40~60%에 속하는 서울 주택을 구입하기 위한 연소득 대비 주택 가격 비율(PIR)은 지난해 2분기 8.6에서 올해 2분기 9.3으로 0.7포인트 상승했다. 중위 소득자가 중위 가격 주택을 구입하기 위한 부담이 일 년 새 더욱 커진 것이다. 차상위인 4분위 소득자가 가격 상위 20~40%에 속하는 주택을 구입하기 위한 PIR도 같은 기간 9.1에서 10.3으로 1.2포인트 높아졌다.
물론 중산층 감소는 세계적으로 공통적인 현상이다. OECD는 지난 4월 ‘압박받는 중산층’(Under Pressure: The Squeezed Middle Class) 보고서에서 중산층(해당국가 중간 소득의 75∼200%인 가구)과 이들의 구매력이 약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1980년대 중반 64%였던 OECD 회원국 중산층 비율은 점차 내려가 2010년대 중반 61%까지 떨어졌다. 베이비붐 세대(1943∼1964년생)의 68.4%가 중산층이지만, 그다음 세대인 X세대(1965∼1982년생)는 63.7%, 현재 20∼30대인 밀레니얼 세대(1983∼2002년생)는 60.3%에 불과했다.
고숙련 직업 비중이 20년 전 3분의 1에서 절반으로 커지는 등 중산층 진입이 예전보다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특히 소득 증가세보다 훨씬 가파른 집값 상승세가 중산층의 삶을 위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30년 새 주거비용이 2배 이상이 됐으나 소득은 33% 늘어나는 데 그쳤다. OECD는 “탄탄한 중산층은 경제·정치적 안정성을 높이는 사회의 필수동력”이라면서 “중산층의 위기에 대한 각국의 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점점 많은 사람에게 중산층은 꿈일 뿐”이라며 “민주주의 사회와 경제성장률의 기반이 과거만큼 안정적이지 못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소득 격차 자체보다는 ‘노력하면 모두 중산층’이라는 꿈이 사라진 게 더 문제라고 지적한다. 아무 직장에서 일을 시작해도 집을 사고 차도 사면서 사다리를 조금씩 올라 중산층이 될 기회가 생겼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출발점이 다를 경우 상위소득 구간에 오르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성인남녀 1229명 설문조사
월소득 500만원대·30평대 주택 소유해야 중산층 / 박지훈 기자
‘14억원 vs 2301만원’
국내 상위 0.1%의 평균소득과 중위소득의 격차다. 중위소득이란 전체 소득신고자를 소득 순으로 줄 세웠을 때 정확히 중간에 있는 사람의 소득이다. 둘의 차이는 약 64배다.
국세청의 2017 귀속연도 통합소득 천분위 자료를 분석한 이 수치는 고소득층과 중산층의 격차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중산층이 사라지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 2분기 중위소득 50~150% 가구 비중은 지난해 60.2%에서 1.9%포인트 떨어진 58.3%를 기록했다.
이는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에 따르면 중산층 비중은 최근 5년간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2015년 67.9%를 차지한 중산층 비중은 2016년 66.2%, 2017년 63.8%, 2018년 60.2%에 이어 2019년 58.3%로 4년 연속 하락세다. 특히 문재인 정권이 출범한 2017년부터 낙폭이 크다. 고소득층으로 오르기 위한 사다리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당신은 중산층이신가요?”
아니오! 57.8%
매경LUXMEN은 잡코리아를 통해 지난 10월 2~16일 약 2주간 성인남녀 1229명을 대상으로 중산층 체감현황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당신은 중산층이신가요?’라는 질문으로 시작한 첫 질문에 응답자 57.8%는 ‘아니오’라고 답했다. 스스로를 중산층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절반을 훌쩍 넘는 셈이다. 아니오라 답한 응답자들 가운데 91.1%는 자신이 저소득층에 속한다고 답했다.
설문에 따르면 수치상으로 월 소득기준 정부가 고시한 중위소득을 웃도는 응답자 비율이 과반을 넘어섬에도 자신을 저소득층에 속한다고 여기는 비중이 더 높게 나타난 것이다. 다음 질문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중산층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82.2%(복수 응답)가 ‘여유로운 생활과 삶의 질’이라 답했고, ‘상당한 수준의 소득과 자산’(67.9%)이 뒤를 이었다. 이외에 ‘평균 이상의 교육수준’이 36.9%, ‘사회적 기여수준과 시민의식’이 20.9%, ‘사회적 지위와 명예’는 9.8%를 차지했다.
단순 소득수준 외에 자산수준, 여유로운 생활과 삶의 질, 사회적 기여와 시민의식, 교육수준 등 다양한 요소가 중산층의 요건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올해 처음 소득 3만달러를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먹고사는 문제와 양극화 심화 등이 공식 중산층과 체감 중산층의 괴리가 커지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중산층 월 500만원 이상 벌어
300만원 이상 생활비로 쓸 수 있어야
한편 국민들이 생각하는 소득구간별 기준이 되는 월 수입액을 물었다. 그 결과 중산층의 이상적인 월 소득액수는 500만~600만원(30.5%) 구간이 가장 높은 응답률을 기록했다. 뒤를 이어 400만원대(21.8%), 300만원대(20.5%)가 뒤를 이었다.
고소득층의 기준으로는 월 1000만원 이상(32.9%) 비중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고, 저소득층의 기준으로는 200만원 미만(48%)이 가장 높은 선택을 받았다.
삶의 질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생활비의 경우, 국민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국내 중산층의 적정한 월 생활비 규모로는 300만~400만원 구간이 30.7%로 가장 높은 응답을 받았고 200만~300만원(26.3%), 400만~500만원(21%)순이었고 500만원 이상이라는 응답도 13.5%나 됐다.
▶총자산 5억~10억원
30평대 아파트 소유해야
국내 적정한 중산층의 보유자산으로는 5억~10억원 구간이 가장 높은 응답을 받았다. 거주주택에 관해서는 3억~5억원대(38.6%), 5억~10억원 미만(36.3%)이 근소한 선택을 받았고, 이상적인 거주주택 규모로는 30평대(99~132㎡)(59.6%)가 가장 높은 응답을 받았다. 다음으로는 40~50평대(132~165㎡)(23.3%)가 뒤를 이었다.
▶회당 10만원 월 4회 외식
해외여행은 연 2번 갈 수 있어야
응답자들이 생각하는 중산층의 월 외식 수는 4회(35%)가 가장 높은 응답을 받았고 7회 이상(18.6%), 3회(13.7%), 5회(12%)순이었다. 한 회당 외식비용으로는 5만~10만원(32.8%), 10만~15만원(29%)이 높은 응답을 받았다. 한편 이상적인 연간 해외여행 횟수로는 연 2회가 39.8%로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다. 이외에 연 1회가 29%, 연 3회가 16.5%로 뒤를 이었다.
▶은퇴자금 3억~5억원, 기본소득실험·고용증진 정책 필요해
응답자들이 생각하는 중산층의 이상적인 은퇴자금 규모로는 3억~5억원이 38.8%로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다. 이외에 1억~3억원(24%), 5억~7억원(22.6%), 7억원 이상(12.9%)이 뒤를 이었다.
마지막으로 ‘국내에 중산층 비중이 줄어드는 현상을 막기 위해 필요한 정책이 무엇인가?(복수 응답)’라는 질문에는 기본소득정책(64.1%)과 고용증진(61.9%)이 가장 높은 선택을 받았다. 이외에 기업 활성화(49.1%)와 확장적 복지정책(43.4%)순 이었다.
중산층 몰락은 전 세계적 트렌드?
▶소득 상승 추월하는 집값 상승률
중산층 몰락은 전 세계적 현상일까? OECD는 전 세계 중산층이 얇아지고 있으며 집값 상승과 더딘 임금 상승세로 고충을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OECD가 지난 4월 발표한 ‘압박받는 중산층’(UnderPressure: TheSqueezedMiddleClass) 보고서에 따르면 중산층 가구수는 줄어들고 이들의 구매력이 전반적으로 약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보고서에 따르면 1980년대 중반 64%였던 OECD 회원국 중산층 비율은 점차 내려가 2010년대 중반 61%까지 떨어졌다. 베이비붐 세대(1943∼1964년생)의 68.4%가 중산층이지만, 그다음 세대인 X세대(1965∼1982년생)는 63.7%, 현재 20∼30대인 밀레니얼 세대(1983∼2002년생)는 60.3%에 불과했다. 중산층에서 고숙련 직업 비중이 20년 전 3분의 1에서 절반으로 커지는 등 중산층 진입이 예전보다 어려워졌기 때문이다.이를 부추긴 것은 소득 증가세보다 훨씬 가파른 집값 상승세라는 진단이다. 이러한 추월곡선이 중산층의 삶을 위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지난 30년 새 주거비용이 2배 이상이 됐으나 소득은 33% 늘어나는 데 그쳤다.
▶한국 부채부담 OECD 국가 중 12위 평균 웃돌아
오늘날 주거비용은 중산층 가처분 소득의 3분의 1가량으로, 1990년대 중반 4분의 1에서 크게 늘었으며 중산층 5분의 1 이상이 소득보다 지출이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이외에 중산층 가구의 40%가 예기치 못한 비용이나 소득 급감을 흡수할 수 없을 정도로 재정적으로 취약하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OECD 회원국 중산층 8가구 가운데 1가구꼴로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이 3을 넘는 과도한 채무를 지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한편 한국에서 과도한 부채 부담을 진 중산층의 비중은 15.5%로 OECD 회원국 중 12번째로 커 전체 회원국 평균(13.1%)을 웃돌았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소득 증가세 둔화는 더 심해져 지난 10년간 중산층의 실질 소득은 연간 0.3% 증가하는 데 그쳤다.소득구간별로 소득 증가세에 격차도 컸다. 지난 30년간 소득 중위 가구의 실질가처분소득 증가 폭은 상위 10% 가구와 비교해 3분의 2 수준에 불과했다. OECD는 탄탄한 중산층은 경제·정치적 안정성을 높이는 사회의 필수동력이라면서 중산층의 위기에 대한 각국의 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점점 많은 사람에게 중산층은 꿈일 뿐”이라며 “민주주의 사회와 경제성장률의 기반이 과거만큼 안정적이지 못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