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이천시 마장면에 해발 394m의 설봉산이 있다. 이천시를 수호한다는 진산(鎭山)이다. 이 설봉산 등산로 입구에서 15분 정도 산을 타면 중턱쯤에 나란히 서 있는 세 개의 바위를 만나게 된다. 이름하여 삼형제바위. 마치 정육면체 상체와 직육면체 하체를 붙여놓은 것 같은 네모꼴 기둥 바위. 이 바위엔 예부터 내려오는 효성 지극한 삼형제의 슬픈 전설이 스며있다.
가난한 집에 우애가 깊은 삼형제가 노모를 모시고 살았다. 어느 날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간 삼형제가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걱정이 된 어머니가 아들을 찾으러 산으로 갔는데 그 사이에 집에 들어온 삼형제. 어머니가 없어진 걸 알고는 이제 삼형제가 다시 어머니를 찾아 나섰다. 그러다가 절벽 아래서 호랑이에게 쫓기고 있는 어머니를 발견한다. 절체절명의 순간.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삼형제는 함께 절벽에서 뛰어내려 호랑이를 덮치려고 했으나 그 순간 바위로 변해버렸다는 얘기. 설봉산 삼형제바위에 얽힌 전설이다. 이천 9경 중세 번째로 꼽는 3경이다.
2003년 이 설봉산 자락에 치킨대학이 세워진다. 정규 대학이 아니라 ‘제너시스 BBQ’라는 치킨 프랜차이즈를 창업한 윤홍근 회장이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치킨을 개발하고 이를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 가맹점주들을 교육하기 위해 만든 시설. 대학이란 이름을 붙이긴 했지만 윤 회장 입장에서는 기업의 두뇌와 심장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풍수지리학자인 김두규 교수가 윤 회장에게 이천에 명당이 하나 있다며 추천했다. 윤 회장은 3년 전인 2000년 경기도 광주에 세운 치킨대학을 여기로 옮긴다. 김 교수는 전라북도 순창 출신이고 윤 회장은 전라남도 순천 출신. 서로 잘 아는 사이였다.
여기는 원래 모 산업교육단체가 연수시설로 쓰던 곳. 김 교수는 이 땅이 풍수상 금계포란형(金鷄抱卵型)이라고 한다. 황금 닭이 알을 품는 모습으로 땅의 기운과 흐름이 외부로 흩어지지 않고 안쪽으로 모이는 구조. 바로 이곳에서 세상에 둘도 없는 효자 윤홍근의 황금올리브치킨 혁명이 일어난다. 삼형제바위 아래 치킨대학을 개설한 그 즈음에.
2002년 11월 지중해 날씨는 마치 한국의 가을과 같았다. 그리 싸늘하지 않은 아침. 낮에는 새파란 하늘에 눈부시게 내리쬐는 햇빛이 포근하게 몸을 감싼다. 윤홍근 회장은 김태천 부회장(당시 전략기획실장)과 함께 남유럽 출장길에 나섰다.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를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BBQ 치킨의 첫 해외 진출은 중국. 그다음 2호점을 남유럽에 내려고 마음 먹었다. 남유럽 사람들의 입맛이 한국 사람들과 비슷한 데다 닭고기 소비도 많고 기후 조건도 좋아 2호점으로 적합하다는 시장 조사가 나왔다.
첫 기착지는 스페인 마드리드. 여장을 풀고 호텔에서 나온 시간은 오전 11시께. ‘공기가 이렇게 달달할 수가 있구나’ 생각하면서 식당으로 향했다. 사실 윤 회장 일행의 출장 일정은 대부분 식당 방문이다. 하루에 보통 5끼 식사를 한다. 호텔에서의 조찬은 금물. 배를 비워야 한다. 현지 식당을 돌면서 어떻게 음식을 조리하는지 살펴보고 치킨 요리에 참고할 만한 아이디어를 얻는 게 목적이다. 식당을 방문하면 그 식당에서 만드는 대부분의 요리를 주문한다. 그렇게 다섯 번을 도는 건 그야말로 고역이다. 배가 불러 음식이 넘어가질 않는다. 방법은 단하나. 토하고 다시 먹는 수밖에.
마드리드 출장길에 처음 간 식당은 ‘아카시냐’. 현지 교포가 추천해 준 스페인 전통 음식점. 당연히 닭고기도 메뉴에 있었다. 윤 회장은 해외를 가면 늘 가이드에게 식당 추천을 할 때 두 가지 조건을 맞춰 달라고 요구한다. 첫째, 그 지역에서 전통음식을 가장 잘하는 곳. 그리고 둘째, 치킨 요리도 잘하는 곳. 그렇게 해서 간 아카시냐는 스페인어로 작고 아담한 집이란 뜻. 말 그대로 30~40평 규모에 10여 개 테이블이 놓여있고, 등나무로 울타리를 친 듯한 야외 테라스가 멋들어졌다.
“튀김 요리가 나왔습니다. 닭튀김은 아니고 야채튀김이었습니다. 현지 야채인데 이름은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맛이 아주 특이했습니다. 처음 먹는 야채라서가 아니라 처음 맡아보는 튀김 냄새 때문이었습니다. 돈지(돼지기름)나 대두유로 튀기면 제가 금방 알아채죠. 그런데 깔끔하고 역겨운 기름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바로 올리브유였던 것입니다.”
윤 회장은 셰프를 불러 물었다. “어떻게 올리브유로 튀긴다는 생각을 했느냐”라고. 셰프의 대답은 이랬다.
“고급 음식을 만들 때는 가끔 올리브유를 씁니다. 식전빵을 먹을 때나 파스타 같은 요리에는 당연히 올리브유를 쓰지만 튀김에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는 “중요한 손님을 모시게 돼서 한번 재주를 부려봤다”라며 남유럽인 특유의 너스레를 떨면서 “통상 올리브유는 160℃로 튀기는데 고급 야채를 요리할 때는 그 정도 온도까지 올라가지 않아도 된다”다고 설명했다.
“그래, 그거야. 올리브유!”
마드리드 식당에서 맛본 올리브유로 튀긴 야채 요리는 그 후 귀국 때까지 윤 회장의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탈리아와 그리스에 가서도 그의 눈에는 온통 올리브만 보였다. ‘신이 내린 최고의 식품’이라는 올리브. 유럽에서는 식생활 전반에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었다. 샐러드 드레싱을 할 때도, 채소를 구워 먹거나 쪄서 먹을 때도, 해산물 요리에도 듬뿍 넣고…. 그리스 아테네를 방문했을 때는 올리브가 그리스 신화에도 등장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처녀 여신 아테나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아테네를 놓고 한판 승부를 펼칠 때 두 신은 아테네 시민들에게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하는데 그들이 시민들에게 선물한다는 게 아테나는 올리브, 포세이돈은 물이었다. 승리는 아테나의 것. 그 바람에 지금도 그리스는 물 부족으로 고생을 한다나.
올리브는 그만큼 효능이 입증된 음식이다. 천연 항산화 물질이 풍부해 동맥경화, 심혈관 장애에 좋고 토코페롤(비티민E)도 많아 심장병 예방에 뛰어나다는 학술 연구가 다수 있다. 윤 회장이 올리브유에 집요하게 매달린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트랜스지방. 당시 전 세계 식품업계는 트랜스지방에 대한 경계심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을 때였다.
트랜스지방은 액체 상태인 식물성 기름을 고체 상태로 만드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지방의 한 종류로 일종의 불포화지방산이지만 일반적 구조가 포화지방산과 유사해 변형됐다는 의미의 ‘트랜스(trans)’라는 말이 앞에 붙었다. 식품의 저장 기간을 늘리고, 맛과 식감을 좋게하는 건 물론 비용도 절감할 수 있으나 치명적인 약점이 있는데 그게 체내에 나쁜 콜레스테롤(LDL) 수치를 높인다는 것. 주로 패스트푸드에 많이 포함돼 있다. 당시 트랜스지방 논쟁을 불러일으킨 대표적인 식품이 햄버거, 감자튀김이었고 이게 성인병과 비만의 원인이라는 주장이 일었다. 일부 소비자단체는 불매운동까지 벌였다. 비스킷, 쿠키, 팝콘, 도넛, 냉동피자 등에까지 논란은 번졌고 쇼트닝을 사용해 기름으로 튀기는 치킨도 예외일 수가 없었다.
윤 회장은 닭 예찬론자다. 그는 “닭고기는 소고기나 돼지고기보다 4배나 좋다”라고 말한다. 내가 좀 눈을 껌뻑대니 “단백질이 2배 많고, 지방, 칼로리 등이 2분의 1 수준이니 따지고 보면 4배 좋은 것 아니냐”라고 말한다. 윤 회장 주장을 굳이 입증할 것도 없이 닭고기의 효능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많다. 이 문제로 논쟁을 벌일 일은 아니었다. 결국 논지는 우수한 닭고기를 잘 안 먹는 이유가 바로 대두 경화유에서 나오는 트랜스지방 때문이라는 것. 그는 해결책으로 올리브유를 생각한 것이다.
유럽 출장에서 돌아온 윤 회장은 치킨대학 중앙연구소의 박종수 소장(퇴사)과 주상집 부소장(현 소장)을 불렀다. 그리곤 마드리드 식당에서의 식사 이후 가슴 속 내내 품고 있던 얘기를 꺼냈다.
“내 결론은 올리브유야! 튀김 기름을 올리브유로 전면 교체하는 방안을 연구해 보세요.”
주 소장은 당시를 회고하면서 “연구진에선 말이 안 된다고 반대했지만 최고의 맛과 품질을 고수하겠다는 회장님의 업(業)에 대한 원칙과 책임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라면서 “어쨌든 일단 연구에 착수했다”라고 말한다. 반대한 이유는 자명하다. 첫째, 가격 문제. 보통 식물성 기름보다 7배나 비쌌다. 치킨이란 게 서민 음식인데, 그렇게 비싼 기름을 쓰면 가격을 올려야 할 텐데 그게 감당이 될 것이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오너의 판단에 맡기기로 했다.
연구진으로서는 두 번째가 더 난관이었다. 올리브유로 닭을 튀길 수 있느냐는 기술적 문제였다. 야채와 닭은 다르다. 야채는 160℃에도 튀겨지지만 닭은 아니다. 통상 식물성 기름을 사용할 때 닭은 165℃에 튀긴다. 수백 번의 실험을 거쳐 터득한 일종의 공식 같은 것이었다. 이런 이론이다. 거꾸로 소비자가 가장 맛있는 프라이드 치킨을 먹으려면 치킨 속살의 온도(심부온도 또는 품온)가 65℃여야 한다. 점포에서 치킨을 만들어 배달할 때 걸리는 시간을 30분 잡고 배달된 후 평균 10~15분 후에 먹는다고 가정하면 치킨을 165℃에 9분간 튀겨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문제는 올리브유는 이론적으로는 발연점(일정 온도 이상에서 지방이 분해돼 푸른 연기가 나는 지점)이 210℃인데 160℃만 되면 바로 타버리니 튀김유로 쓸 수가 없던 것이었다. 주 소장의 회고.
“165℃로 튀기기 위해서는 최소 180℃ 정도까지는 올려야 하거든요. 그래야 평균 온도를 맞출 수 있는데 최대한 끌어올려도 160℃니 닭을 튀길 수가 없는 겁니다. 일단 최상급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유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점은 확인했습니다. 급을 낮춰 일반 올리브유를 쓰면 더 높은 온도까지 올라가긴 합니다. 그런데 회장님은 엑스트라버진을 고집했습니다. 우리가 ‘그냥 올리브유로 합시다. 올리브유만 하더라도 충분히 건강하고 훌륭하지 않습니까’라고 몇 번이고 건의했지만 회장님은 그건 소비자를 속이는 행위라면서 극구 반대했습니다. 엑스트라버진을 쓰면 비용이 10% 추가됩니다. 기름에만 한 해 600억원이 더 들어간다는 계산이 나왔는데도 회장님은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최종 결론에 이르기까지 내부적으로 치열한 논쟁을 벌였습니다. 아마 30번은 왔다 갔다 했을 겁니다.”
엑스트라버진을 고집한다 해도 올리브유의 발연점이 최소 180℃가 안 되면 논쟁은 무의미한 것이었다. 연구진들은 이 문제로 씨름했지만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그러면서 1년 반 정도의 시간이 흘러갔다. 그 답답한 상황에 해결책의 실마리가 보인 건 정말 우연이었다. 그리고 그건 연구진이 아니라 윤 회장이 찾아냈다.
윤 회장의 회고.
“나는 올리브유를 써야겠고, 연구진은 안 된다고 하니고민이 많아졌습니다. 괜한 짓 한 거 아니냐는 후회도 들고 때론 화도 나곤 했습니다. 매일 올리브유를 머리맡에 놓고 잤거든요. 자고 일어나면 아침 공복에 올리브유 5스푼을 먹고, 양치하고 물 마시는 걸 반복했습니다. 2004년 초였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나 올리브유 병을 보는데 밑이 까맣더라고요. 올리브유 자체가 병에 담으면 좀 검은색을 띠는데 얼른 보면 잘 안보이죠. 그런데 자세히 보니 밑에 찌꺼기 같은 게 남는 겁니다. 위에 기름은 깨끗하고요. 뭘까 하고 흔들어 보면 또 없어지는 거죠. 그게 과육 찌꺼기였습니다. 다음날에도 보니 또 생깁니다. 그래서 혹시 저게 타는 거 아니냐는 의심을 한 거죠. 올리브유도 기름인데 왜 다른 기름과 달리 올리브유만 160℃에 타느냐 이거죠. 그래서 연구진에게 이걸 한번 걸러보자고 한 겁니다.”
올리브유가 타는 문제는 그렇게 해결했다. 윤 회장은 “간절하게 원하는 자가 문제도 해결하고 기회도 잡는다”라면서 “내가 기술은 모르지만 1년 내내 매일 이걸 어떻게 쓸까 고민하다 보니 발견한 것 아니겠느냐”라고 말한다.
실제 올리브유의 침전을 일으키는 원인인 과육은 전혀 나쁜 게 아니다. 올레인산이 포함돼 있어 심혈관 건강에 도움을 주고 항염증 작용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버려선 안 되는 건데 발연점을 낮추는 원인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필터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 생산 수율도 떨어지고 천연 토코페롤 향도 빠져나가 이를 보충하기 위한 추가 비용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연구팀은 이 문제를 해결하자마자 스페인으로 갔다. 목적지는 올리브유로 야채튀김 요리를 했던 바로 그 식당, 아카시냐였다. 이번 출장자는 박 소장과 주 부소장. 그들은 출장비를 탈탈 털어 그 레스토랑서 매끼 식사를 하며 주인의 환심을 샀다. 주인이 호의를 보이자 사정 얘기를 했다. 주 소장의 회고.
“우리가 올리브유로 닭을 튀기려고 하니 식당 부엌을 좀 이용하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물론 영업시간이 끝나면 하겠다고 했고요. 주인은 우리를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올리브유로 닭을 튀겨? 튀겨질지도 모르겠거니와 그렇게 비용을 들여서 만들면 당연히 비싸게 팔아야 할 텐데 그걸 누가 사 먹는다고? 이런 반응이었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한번 해보겠다고 하니 성의를 봐서 승낙해 준 것 같습니다.
이 당시 스토리는 윤 회장이 2006년 직접 쓴 <BBQ, 원칙의 승리>라는 책자에 자세히 서술돼 있다. 참고하면 대강 이렇다.
연구진은 레스토랑이 문 닫는 시간에 부엌에 들어가 다음 날 아침 개장 시간까지 꼬박 밤새 가면서 올리브 치킨을 튀기며 실험에 실험을 거듭했다. 아침이 되면 주방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청소를 마친 뒤 호텔로 돌아가 잠시 눈을 붙였다. 그리고 낮에 다시 일어나 전날 밤 실험에 대한 분석과 연구 결과를 서로 토론하고 내일 할일에 대한 리스트를 작성했다. 그리고 저녁 때 실험할 재료를 사기 위해 장을 보고 다시 실험을 거듭했다. 아침에 출근한 레스토랑 직원들이 연구진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한국 연구진의 열정과 집요함에 감동했는지 나흘째 되는 날 식당 주인이 뜻밖의 제안을 했다.
“당신들 대단하다. 그렇게 열심히 만들었으니 그 치킨은 틀림없이 맛있을 것 같다. 우리 레스토랑에서 손님을 상대로 시식 행사를 해보면 어떨까. 당신들에게도 도움 되지 않겠느냐”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이라고 반가운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올리브유의 본고장인 스페인 사람들의 평가를 들어볼 수 있는 기회인 데다 스페인 시장 진출을 위해 그들의 입맛을 파악하는 데도 필요한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결과는 대박. 고소한 맛이 그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5일간의 스페인 출장의 피로를 한방에 날리는 반응. 올리브치킨이 성공할 것 같은 예감이 드는 순간이었다.
(다음 회차에서 이어집니다.)
[손현덕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