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우리가 소비하는 모든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팔고, 사모펀드는 그런 기업을 사고판다. 어느 국가, 어떤 규모의 기업이라도 사모펀드의 시야에서 자유로운 기업은 없다.”
기업 사냥꾼. 벌처(동물 사체를 먹는 독수리·vulture).
흔히 사모펀드(PEF) 운용사를 가리키는 수식어다. 기업가치가 적정 수준보다 낮다고 판단되면 해당 기업을 인수해 향후 비싼 가격에 되파는 사모펀드 전략을 빗댄 표현이다. 그만큼 사모펀드는 대중에게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특히 우리나라는 해외 PEF인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합병(M&A) 과정에서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을 겪은 트라우마를 갖고 있어 사모펀드에 대한 인식이 더더욱 좋지 않다.
단기 수익 극대화를 위해 기업을 망가뜨릴 정도의 강도 높은 비용 절감도 서슴지 않았던 행태 때문에 PEF는 ‘투기자본’ ‘기업사냥꾼’ 정도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도 PEF가 등장하는 사안에는 국내 기업들이 특별히 유의해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반면 주식투자자 수 증가와 함께 개인투자자들의 의식 수준이 상향 평준화하면서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명분으로 내세우는 PEF에 대한 인식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기업 경영과 관련된 주요 의사결정을 소수 지배주주가 좌지우지하는 한국 특유의 의사결정 구조 아래서 PEF가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적대적 M&A를 불사하는 PEF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해결사로 불리기도 한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국내 사모펀드는 2004년 제도가 도입된 이후 급격한 성장세를 기록 중이다. 2023년 말 기준으로 국내 사모펀드 수는 1126개로 약정금액이 136조원에 이른다. 19년 동안 연평균 각각 20.6%, 27.1%에 해당하는 성장률이다.
국내 M&A 거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대 초반 10% 안팎이었는데 2020년 이후론 30~40%까지 확대됐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등 M&A 시장에 큰 영향을 주는 핵심 주체로 떠올랐다는 평가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사모펀드가 투자 회수를 완료한 투자 135건을 분석한 결과 평균 보유기간 3.8년 동안 기업가치가 3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감원이 집계한 약정액을 기준으로 한앤컴퍼니(13조6053억원)·MBK파트너스(11조8413억원)·스틱인베스트먼트(6조4758억원)·IMM프라이빗에쿼티(6조4710억원)·IMM인베스트먼트(5조5879억원) 등이 통상 ‘톱5’로 꼽힌다. 이들은 현재 남양유업(한앤컴퍼니), 오스템임플란트(MBK), SK렌터카·버거킹(어퍼니티), 하나투어(IMM PE) 등을 보유하고 있다. MBK는 최근 영풍과 손을 잡고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 뛰어들며 인수·합병(M&A) 주체로 입지를 다지고 있다.
[김병수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72호 (2024년 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