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금리가 하락하면서 국내 부동산 투자시장도 활발히 움직인다. 국내외 기관 투자자들이 블라인드펀드, 리츠(부동산위탁관리회사) 형태로 투자했던 오피스 물건들이 시장에 다수 쏟아지며 새 주인 찾기에 나섰다. 오피스 평가가치가 높은 서울 업무 핵심권역인 강남(GBD), 도심(CBD), 여의도(YBD)와 경기도 분당(BBD)을 중심으로 시장이 돌아가고 있다.
그중에서도 광화문, 을지로, 서울역 일대를 포괄하는 도심권역의 오피스 물건들이 주목을 받는다. 조(兆) 단위 물건들이 여럿 나옴과 동시에 중대·중소형 사이즈 오피스들도 매각 작업이 진행 중이다. 최근엔 K-뷰티 활황으로 막대한 현금을 움켜쥔 CJ올리브영이 7년여간 KB자산운용이 운용해왔던 KDB생명타워를 6000억원 중후반대에 인수했다. CJ올리브영은 현재 KDB생명타워의 약 50%를 임차하고 있고, 향후 글로벌 진출의 교두보로써 이 건물을 사옥으로 쓰기 위해 사들인 것이다.
다만 현재 시장에 나와 있는 오피스 매물들이 다 소화될지 의문 부호가 찍힌다. 부동산 시장으로의 자금 흐름이 여전히 경색돼 있고, 인수자 입장에서 높아진 몸값이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가격 부담이 적거나 우량 임차인이 있는 물건들 위주로 거래되는 현상이 나타나기에 부동산 투자업계 관계자들은 도심권역 오피스 시장 흐름에 주목하고 있다.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올 6월 기준 도심권역에 나온 오피스 매물들은 총 7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된다. 매각가치가 1조원 안팎으로 기대되는 매물만 3개로 서울스퀘어, 시그니쳐타워, G1 오피스 등이다. 서울역 맞은편에 위치한 서울스퀘어는 1977년 준공된 랜드마크급 오피스다. 지하 2층~지상 23층, 연면적 13만 2806㎡ 규모다. 대우그룹 본사로 사용되다가 그룹이 해체된 이후 다양한 기업들이 서울스퀘어에 임차해 있다. 서울역과 가까워 교통 접근성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울스퀘어는 일본계 ARA자산운용이 ‘에이알에이코리아 전문투자형 사모부동산투자신탁 제1호’ 펀드로 운용 중이다. 내년 2월 말 펀드 만기가 도래해 선제적으로 서울스퀘어를 매각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올 하반기 중 국내외 원매자들을 대상으로 매각 입찰을 진행해 새 주인을 맞이할 계획이다.
시그니쳐타워는 서울 을지로 한복판에 위치한 대형 오피스다. 부동산 대체투자 운용사인 이지스자산운용이 펀드로 운용 중인 자산으로 현재 금호석유화학그룹이 본사 사옥으로 쓰고 있다. 2011년 준공된 오피스로 지하 5층~지상 17층, 2개 동으로 구성돼 있고 연면적 9만 9991㎡ 규모다. 이지스자산운용은 2017년 신한자산운용(옛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에서 약 7200억원에 시그니쳐타워를 인수했다. 당시 블라인드 펀드 자금을 활용해 매입했는데 국민연금공단, 경찰공제회, SK디앤디 등이 주요 투자자로 참여했다. 7월 중 매각 입찰을 진행하며 매각 주관은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펌인 컬리어스코리아가 맡는다.
G1 오피스는 공평동 15·16지구 도시정비형 재개발 사업 일환으로 건설 중인 곳이다. 준공 전 선매각이 추진되는 것으로 내년 4월 준공 예정이다. 지하 8층~지상 25층, 2개동으로 구성되고, 연면적 14만3431㎡ 규모로 조성될 계획이다. 사업 시행을 위해 설립된 ‘공평십오십육프로젝트금융회사(공평15·16PFV)’가 이곳을 보유하고 있으며 랜스퍼트AMC, 비얄프로퍼티, 메리츠금융그룹 등이 공평15·16PFV의 지분을 갖고 있다.
1조원 오피스 매물들 외 중대형·중소형 오피스들도 매각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서울역, 을지로, 광화문을 포함해 10여 개의 오피스들이 시장에 나와 있는데 ▲을지트윈타워 ▲남산소월타워 ▲오렌지센터 ▲KT&G 을지로타워 ▲동대문 두산타워 ▲센터포인트 광화문 ▲씨티센터타워 ▲하나손해보험 본사 사옥 ▲현대엘리베이터 사옥 ▲알파빌딩 ▲KB국민카드 사옥 등이다.
이 중 현재 매각 우선협상대상자가 정해진 곳은 동대문 두산타워, 센터 포인트 광화문, 씨티센터타워 등이다. 올초 마스턴투자운용은 마스턴전문투자형사모부동산투자신탁 제 98호로 보유 중인 두산타워의 매각 입찰을 진행해 한국투자증권, 이지스자산운용, 키움투자자산운용이 인수 도전장을 내밀었다. 마스턴투자운용은 그중 한국투자증권을 우선 협상대상자로 결정했다. 현재 9000억원 안팎에서 거래가 진행 중으로 알려진다. 두산타워는 채권단 관리에 들어간 두산그룹이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2020년 마스턴투자운용에 매각한 오피스·쇼핑몰 복합시설이다. 지하 7층~지상 34층, 연면적 12만 2630㎡ 규모의 초대형 자산으로 1998년 완공된 이후 서울 동대문 패션의 중심지가 됐다.
센터포인트 광화문은 현재 교보 AIM자산운용이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센터포인트 광화문은 코람코자산신탁이 코크렙제36호위탁관리 부동산투자회사를 통해 보유한 광화문 인근 우량 오피스다. 김앤장법률 사무소, 현대해상, 생명보험협회 등의 우량 임차인을 확보하고 있다는게 특징이며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3호선 경복궁역 사이에 있어 교통 접근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연면적 3만 8946㎡ 규모로 이뤄져 있으며 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5길 31에 소재한다. 교보AIM자산운용이 제시한 인수가액은 3.3㎡당 3600만원 수준으로 연면적 환산 시 4000억원 초중반대다. 과거 코람코자산신탁은 2016년 마스턴투자운용으로부터 센터포인트 광화문을 약 3200억원에 인수했다.
다른 오피스들도 원매자 찾기에 나서고 있다. 매각 측은 매각 주관사를 선정해 마케팅 작업을 돌입하는 한편 입찰일을 정하고 있다. 매각가가 6000억원 후반대로 거론되는 남산 소월타워는 글로벌 사모펀드 운용사 KKR(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이 인수 2년여 만에 매각 작업을 진행 중이다. KKR은 국내 우량 오피스를 투자하는 외국계 큰손 투자자로 남산소월타워를 포함해 그간 남산스퀘어, 더케이트윈타워, 센터필드 등을 자산 포트폴리오로 갖추고 있었다.
남산소월타워가 위치한 서울역 일대는 서울역 북부역세권 개발사업, 양동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 등이 추진되고 있어 향후 평가가치가 올라갈 것이라 예상해 선제적으로 매각을 추진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남산소월타워는 SK텔레콤 계열사인 SK브로드밴드가 본사 사옥으로 사용하고 있는 곳으로 과거 SK남산그린빌딩으로 불렸다.
서울역과 시청역 사이에 위치한 오렌지센터는 최근 매각 주관사로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펌인 에비슨영코리아,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코리아를 선정해 본격적인 마케팅 작업에 돌입했다. 2022년부터 이마트가 이 오피스를 본사 사옥으로 쓰고 있다. 지하 6층~지상 19층, 연면적 3만4172㎡ 규모로 최근 서울역 오피스 시세를 고려하면 오렌지센터의 매각가는 총 3000억원을 웃돌 것으로 업계는 추정한다. 현 주인인 NH아문디자산운용이 2020년 총 2000억원 중반대에 인수한 이후 펀드 만기가 도래해 매각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국내 기업들도 현금 확보를 위해 도심권역 오피스 매각에 나서고 있다. 지금까지 보유했던 사옥이나 과거 인수했던 부동산 자산의 평가가치가 올라 매각차익을 노리고 시장에 매물을 쏟아내고 있다. 현대그룹은 서울시 종로구 연지동에 위치한 본사 사옥에 대한 매각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회계법인 삼정KPMG가 매각 자문을 맡았다. 현대그룹은 세일앤리스백(매각 후 재임대) 방식으로 이 오피스를 매각할 방침으로, 매각 후에도 현대엘리베이터 등을 포함한 주요 계열사들이 계속 임차할 예정이다. 현대그룹 본사 사옥은 동관과 서관으로 구성돼 있으며 3000억원 수준의 거래가가 예상된다.
매도자들의 기대와 다르게 시장에선 7조원에 육박하는 매물들이 모두 거래가 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1조원이 넘는 매물들의 경우 현 시장 상황에서 인수자금을 마련하기가 어렵고, 매각 측의 눈높이가 여전히 높은 점 때문이다. 1조원 중반대의 매각가가 거론되던 광화문 ‘서울파이낸스센터’의 경우 지난해 입찰을 진행했지만 예상보다 너무 낮은 입찰가에 결국 매각이 철회됐다. 서울파이낸스센터는 외국계 큰손인 싱가포르투자청(GIC)이 2000년 한국 시장에 진출하면서 인수한 오피스 자산이다. 외환위기 직후였던 당시 GIC는 이 오피스를 3500억원에 사들였는데 25년이 지난 지금 광화문인근 시세가 상승해왔던 것을 고려해 매각을 진행했다. KT&G가 매각을 추진 중인 을지로타워의 경우도 지난 4월 매각 입찰을 진행했지만 원매자들이 제시한 가격이 기대에 못미쳐 매각 우선협상대상자 결정이 늦어졌다.
향후 도심권역의 오피스 공급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점도 시장의 우려를 키우는 요인 중 하나다. 을지로3가, 세운구역을 중심으로 대규모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신축 오피스가 들어서면 그만큼 구축 오피스들에 대한 임차 수요가 떨어져 투자수익률이 예상보다 적게 나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상업용 부동산 솔루션 업체인 젠스타메이트에 따르면 2025년부터 2029년 까지 약 183만 2000㎡(55만4100평) 규모의 신규 오피스가 공급될 예정이다. 준공 예정시점 기준으로 2026년 2건, 2027년 2건, 2028년 4건, 2029년 6건의 재개발 사업이 마무리될 예정이다.
도심권역 오피스 공실률도 소폭 상승하는 흐름을 보였다. 지난 1분기 도심권역 오피스 공실률은 전분기 대비 0.9%포인트(p) 상승한 4.2%를 기록했다. 대형 오피스 프로젝트107이 공급된 영향이다. 이외에도 재개발을 앞둔 메트로타워의 임차사 들이 서울스퀘어, 서울시티타워 등으로 이전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IB업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전통적으로 선호하는 강남권역 오피스를 제외하면 나머지 권역 오피스들은 매각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대규모 공급이 예정돼 있는 광화문, 을지로 인근 도심권역은 공실 우려가 있는 만큼 원매자를 쉽게 찾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근 국민연금공단, 우정사업본부 등 국내 주요 기관투자자들이 부동산 투자를 위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지만 대형 매물을 소화하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이에 국내외 투자사들은 오피스 매물을 잡기 위해 SI(전략적투자자)로 우량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발벗고 나서고 있다. 지난해 11월 LB자산운용은 KB국민카드 IT서비스그룹 사옥인 크리스탈 스퀘어 오피스 인수를 위해 SI로 리드코프를 유치했다. 리드코프는 신라젠의 최대주주인 엠투엔의 금융 계열사다. 시그니쳐타워 인수전은 현 임차인인 금호석유화학그룹을 SI로 유치하고자 하는 투자사들의 치열한 물밑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홍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