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젬픽, 위고비, 마운자로와 같은 GLP-1 비만 치료제가 미국 시장에 상용화되며 다양한 산업에 충격파가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아직 초기시장에 불과하지만 여러 산업에 잠재적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미국 투자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최근 투자자 보고서를 통해 “비만 치료제가 다운스트림 산업에 미칠 영향은 아직 명확하지 않지만 이미 일부 산업은 이익을 얻고 다른 산업에는 더 높은 위험을 안겨줌으로써 장기적으로 소비자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비만 치료제가 인기를 끌며 가장 긴장감이 감도는 업계는 식품과 외식 분야다. 지난 10월 5일 월마트는 오젬픽이나 위고비와 같은 GLP-1 약품을 복용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고객에 비해 식품 구매량과 칼로리가 감소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발표로 오레오, 리츠 크래커 등 인기 스낵 제조업체인 몬델리즈인터내셔널(Mondelez International)의 주가는 이틀 동안 7.7% 하락했다. 허쉬(Hershey Co.)와 펩시(PepsiCo)의 주가도 부진을 면치 못했다.
글로벌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도 최근 올여름 300명의 비만 약물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음료와 주류 소비를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는 보고서를 내 화제가 됐다. 설문 결과 65%는 설탕이 함유된 탄산음료를 줄였고 62%는 주류 소비를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약 4분의 1의 응답자는 술을 끊었고, 거의 20%가 당이 첨가된 음료를 끊은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는 2035년까지 미국 성인의 약 7%인 약 2400만 명이 비만 치료제를 사용하게 될 것으로 내다보고 미국 전체 칼로리 소비가 1.3% 감소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러한 결과 패스트푸드에는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지만 신선한 과일과 채소의 판매는 매우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모건스탠리는 “이런 비만 치료제는 식욕을 감소시켜 하루 칼로리 섭취량을 20~30% 줄일 수 있다”며 초콜릿 업체 허쉬, 제과업체 몬델리즈인터내셔널 등이 상품군을 재편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게 될 것”이라 전망했다.
미즈호증권의 애널리스트인 댄 돌브는 미국의 외식 산업도 타격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댄은 이 약물이 2025년까지 미국 레스토랑 산업에 250억달러의 손실을 줄 수 있다고 예측했다. 이에 따라 레스토랑 장비 판매, 식품 도매 유통업체로부터의 구매가 줄어들어 일자리와 파생된 배송 사업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관련 업체들도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식료품과 스낵, 냉동 포장 식품을 판매하는 콘아그라브랜즈의 숀 코널리 최고 경영자는 투자자 미팅을 통해 “만일 비만 치료제의 영향으로 소비자의 칼로리 소비가 줄면 새로운 건강보조 식품을 개발하거나 상품의 패키지 크기를 변경할 준비를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시리얼로 유명한 켈로그 또한 제약회사가 사람들의 식습관에 미치는 영향을 주시하고 있으며, 충격을 줄이기 위한 연구와 필요한 모든 조처를 할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비만 치료제로 수혜를 입을 업종으로 전문가들은 신약 제조업체, 의류, 피트니스, 항공 산업을 주목하고 있다. 먼저 비만 치료제를 개발한 노보노디스크와 일라이릴리는 지난 1년간 주가가 약 90% 급등한 바 있다. 특히 노보노디스크의 시가총액은 유럽 시장의 맹주인 루이 비통 등 명품 브랜드를 보유한 LVMH를 턱밑까지 추격하고 있다. JP모건에 따르면 비만 치료제 시장은 장기적으로 1000억달러 규모가 될 수 있으며 2030년까지 노보노디스크와 일라이릴리가 각각 연간 500억달러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상했다. 이외에 JP모건은 캐털란트, 써모피셔사이언티픽과 같은 공급업체와 매케손, 센코라와 같은 유통업체도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약을 통해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람들이 늘어날 때 의류 소비가 증가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BofA의 애널리스트 로렌 허치슨은 “비만 치료약이 옷장 교체 주기를 촉진할 수 있어 업계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또한 그녀는 “룰루레몬(Lululemon)이나 데커스(Deckers)와 같은 운동복 브랜드가 수혜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신약이 운동과 병행할 때 특히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난 만큼 피트니스 시장과 고급 운동복 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란 분석이다.
다소 황당(?)하지만 체중 감량 약물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산업 중 하나로 항공 분야를 꼽는 전문가도 있다. 지난 9월 금융사 제프리스(Jefferies)는 “승객들이 날씬해진다는 것은 기내에 탑승하는 전체 중량이 적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연료 소모량이 적다는 점에서 수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내용의 투자자 메모를 발행했다. 항공연료는 항공사 전체 비용의 약 25%를 차지하는데 일례로 유나이티드항공(United Airlines)이 평균 승객이 10파운드(약 4.5㎏)를 감량한다고 가정하면 연간 8000만달러를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지난 10월 12일 3분기 실적 발표에서 델타항공의 CEO인 에드 바스티안은 이러한 질문에 답하면서 “비만 치료제가 연료 전망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한편 전문가들은 비만 치료제 성공으로 의료기기 업체, 패스트푸드 체인점 및 정크푸드 기업, 맥주 및 담배 기업 등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 예상한다. 특히 비만과 관련된 만성 질환에 대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가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모건스탠리의 레스토랑 분석가 브라이언 하버는 “식당은 음식뿐만 아니라 편리함·경험을 함께 파는 곳이며, 많은 체인점이 소비자 취향을 반영해 진화하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마켓워치는 초기 데이터에 따르면 GLP-1 약물을 복용하는 환자들은 수면 무호흡 관련 문제를 덜 겪기에 CPAP 기계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관련 업종인 인스파이어메디컬시스템스와 레즈메드의 주가는 올여름 40% 이상 폭락하기도 했다.
비만 수술 로봇을 만드는 인튜이티브서지컬은 “비만약에 관한 관심 증가로 비만 수술 로봇 성장세가 둔화했다”라고 했다.
이렇듯 비만과 연관된 질병 분야인 수면무호흡 치료 의료기기, 무릎 인공관절 수술기기 업체 등도 위험군으로 분류된다. 비만 인구가 줄어들면 비만이 원인이 돼 발생하는 다양한 질병도 줄어들고, 이에 따라 해당 업체들이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외에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는 다이어트 업계다. 에어로빅 비디오부터 체중 관리용 스마트폰 앱 등 다이어트 산업은 운동과 식단 관리를 중심으로 성장해왔다. 하지만 비만약의 인기가 치솟으며 전통적인 다이어트 업계가 생존의 갈림길에 서게 된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1963년 설립된 미국 최대 체중 관리 업체 ‘웨이트워처스’다. 웨이트워처스는 창립 이래 수십 년간 “살을 빼는 방법은 올바른 식습관과 규칙적인 운동뿐”이라고 강조해왔다. 1990년대 중반 펜플루라민과 펜터민을 결합한 이른바 펜-펜(fen-phen)이라는 다이어트 처방이 개발됐을 때도 경쟁사들과 달리 열풍에 동참하지 않고 기존 사업 기조를 이어갔다. 1997년 FDA가 “이 약물이 심장 판막에 손상을 일으킨다”라며 시장에서 퇴출하면서 오히려 최종 승자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서비스 이용자 수가 급감하자 웨이트워처스는 회원들이 함께 모여 다이어트 경험을 공유하던 오프라인 지점 수천 개를 폐쇄했다. 오히려 지난봄에는 GLP-1 약물을 처방하는 원격 의료 업체 시퀀스를 인수하기도 했다. 비만 치료제와의 공생을 선택한 것이다.
체중 감량 스타트업 ‘눔’도 지난 5월 비만 치료제 처방을 제공하는 새 서비스를 출시했다. 눔의 의학 책임자인 린다 아네가와 박사는 “우리는 항상 과학을 따라왔고 의학계가 비만을 질병으로 보기 시작한 이상 동참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게으른 것”이라고 했다.
마켓워치는 “GLP-1 약물의 영향이 장기적으로 다양한 산업 전반에 걸쳐 크게 나타날 수 있다”면서도 “이러한 변화는 하루 아침에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매체는 “아직 건강보험 회사도 해당 의약품을 광범위하게 보장하고 있지 않다”라고 덧붙였다.
[박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