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당뇨) 치료제가 차세대 먹거리로 주목받으면서, 업계에선 향후 당뇨·비만 치료제가 항암제 다음으로 규모가 큰 시장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지난해 24억달러(약 3조원)였던 비만 치료제 시장은 2030년 540억달러(약 7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의약품 전문 시장분석기관 이밸류에이트가 최근 발표한 2028년 글로벌 10대 의약품과 전문의약품 매출 상위 10대 제약사를 살펴보면, 당뇨 및 비만 치료제가 항암제에 이어 많은 매출을 일으킬 의약품으로 꼽힌다. 노보노디스크의 오젬픽, 일라이릴리의 마운자로가 각각 3위와 4위를 차지하며, 이들 제약사는 GSK와 BMS를 제치고 새롭게 10대 제약사에 이름을 올릴 것으로 전망됐다.
글로벌 당뇨 치료제 시장에서 노보노디스크의 시장 점유율은 2021년 상반기 30%에서 지난해 상반기 31%, 올해 상반기 33%로 지속 증가 추세다. 특히 글로벌 GLP-1 시장에서의 시장 점유율은 54%에 달한다. 또한 글로벌 비만 치료제 시장은 지난해 3조9195억원에서 올해 8조1120억원으로 1년 새 108% 급증했다. 지난해 기준 글로벌 비만 환자는 7억6400만 명에 달하고, 글로벌 비만 치료제 시장에서 노보노디스크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5월 84%에서 올해 5월 92%로 크게 확대됐다.
노보노디스크는 올해 상반기 156억달러의 매출을 올리며 전년 대비 30% 증가한 매출을 기록했다. 특히 당뇨 치료제 오젬픽과 리벨서스, 비만 치료제 삭센다, 위고비가 매출 성장을 이끌었다.
당뇨 및 비만 치료제 매출은 19조300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7% 증가했으며, 전체 매출의 91%를 차지했다. 당뇨와 비만이 각각 24%, 157% 성장했다. 점유율도 상당하다. 상반기 기준 전 세계 당뇨 및 비만 시장에서 노보노디스크의 점유율은 당뇨 33%, 비만 92%다.
미국에서 비만 치료제가 품귀 현상이 빚어질 정도로 인기를 끌면서, 다국적 제약사들은 후속 개량형 제품 개발에 열을 올리는 중이다.
앞서 당뇨병 치료제의 전통강자인 미국의 일라이릴리가 대표적이다. 일라이릴리는 미국에서 이미 당뇨병 치료제로 팔리고 있는 ‘마운자로’에 대해 비만 치료제 판매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 제약업계에서는 마운자로를 위고비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본다.
코로나 백신 이후 이렇다 할 실적이 없었던 화이자도 다이어트약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화이자는 올 초 먹는 비만 치료제 ‘다누글리프론’의 임상 2상 결과를 발표했다. 이 약을 복용한 당뇨병 환자 411명은 16주 후 평균 4.5kg이 감소했다. 주사제인 위고비, 오젬픽과 달리 알약 형태이기 때문에 복용이 간편하다.
노보노디스크는 이에 맞서 GLP-1 주사제인 세마글루타이드(제품명: 위고비)를 1일 1회 경구용으로 개발해 글로벌 임상 3상을 마쳤다. 지난 5월 노보노디스크는 위고비 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를 1일 1회 경구 복용하는 방식으로 임상 3a상을 진행한 결과 15~17% 체중이 감소했다는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노보노디스크는 연내 미국과 유럽에서 허가승인을 신청할 계획이다. 일반적인 심사 기간을 고려할 때 내년 3분기 정도에 결론이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이 밖에 독일의 베링거인겔하임과 질랜드파마는 음식을 먹으면 위와 소장에서 분비되는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에 작용하는 비만 치료제인 ‘수보두타이드’ 임상 2상 결과를 공개하기도 했다. 임상결과 고용량(4.8㎎)을 투여한 55명은 46주 후 체중이 19%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대조군은 체중이 2% 줄었다. 80kg인 환자의 경우 46주가량 주사를 맞자, 체중이 64.8㎏까지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GLP-1을 보완하거나, 넘어서는 새로운 기전을 찾으려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 바이오벤처인 아드바테라퓨틱스(Aardvark Therapeutics)는 GLP-1이 아니라 입맛을 억제하는 호르몬을 유발하는 수용체를 표적으로 하는 신약을 개발 중이다.
더는 도태될 수 없는 국내 개발사들 역시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대형 전통 제약사는 물론, 바이오벤처 간 협업까지 전 세계 보건산업 화두로 떠오른 비만 공략을 위해 잰걸음을 내는 중이다. 권해순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국산 비만 치료제들은 전반적으로 비교적 초기 개발 단계”라며 “높아진 진입장벽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국내 비만 치료제 개발사 중 가장 앞선 곳은 한미약품이다. 독자 플랫폼 기술인 ‘랩스커버리’가 적용된 ‘에페글레나타이드’가 대표 품목이다. 그동안 대사 질환 치료제로 개발해왔지만 지난 7월 비만 치료제로 적응증을 변경해 출시하기 위해 국내 3상 임상시험계획(IND)을 신청했다. 위고비와 같은 일주일에 한 번 투여하는 주사 제형으로 동일한 기전의 GLP-1 아고니스트의 당뇨 임상을 통해 체중 감소 효과 경쟁력을 확인했다. 또한 GLP-1에 더해 체내 에너지 대사량을 증가시키는 글루카곤(GCG)의 이중작용제 ‘에피노페그듀타이드’를 MSD(미국 머크)에 기술 수출해 현재 임상 2b상을 진행하고 있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GLP-1 타깃을 중심으로 독자 플랫폼 기술 랩스커버리를 적용해 1주 또는 2주 제형으로 개발이 가능한지 국내 임상을 통해 확인할 것”이라며 “평택 플랜트에서 자체 생산으로 가동률을 높이는 동시에 경제성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동아에스티는 미국 신약개발 자회사 뉴로보 파마슈티컬스와 ‘DA-1726’을 개발 중이다. GLP-1은 물론 글루카곤(GCG) 수용체에 동시 작용하는 이중 기전의 치료제다. 지난 6월 미국당뇨학회(ADA)에서 비교군과 유사한 음식 섭취량에도 보다 우수한 체중 감소 효과를 확인한 전임상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효과적인 체중 감소는 물론, 혈당 조절까지 기대 중인 상태다. 연내 임상 1상 IND를 제출하고, 내년 하반기 결과를 확인하는 것이 목표다.
LG화학도 유전성 비만 치료제 신약 후보물질인 ‘LB54640’의 글로벌 2상을 올해 연말부터 이어갈 예정이다. 위고비나 마운자로와 달리 포만감 신호를 전달하는 MC4R(멜라노코르틴4 수용체) 단백질처럼 작용해 식욕을 억제하는 게 특징이다. LG는 2025년 말 임상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LG화학 관계자는 “소아기부터 치료를 시작하는 비중이 커 경구용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한양행은 ‘GDF-15 수용체’ 기반의 비만 신약 후보 물질인 ‘YH34160’을 개발 중이다. 기존 비만 치료제가 인슐린 분비를 증가시키는 GLP-1이 주성분인 것과 달리 YH34160은 뇌에 존재하는 GDF-15수용체에 결합해 식욕을 억제함으로써 체중 감량을 유도하는 기전이다.
비교적 높은 진입장벽을 협업을 통해 넘으려는 움직임도 있다. 국내 1상 승인을 받은 일동제약(신약 후보 물질 ‘ID110521156’)은 주사 제형의 불편을 개선하기 위해 패치 형태로 개발하려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일동제약 관계자는 “아직 경구용 GLP-1 치료제는 거의 개발돼 있지 않기 때문에 충분히 시장성이 있다고 본다”며 “특히 비만과 같은 만성 질환은 항암제나 기타 중증 질환에 비해 비교적 약을 쉽게 변경할 수 있어 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대원제약은 마이크로니들 개발 기업인 라파스와 함께 패치 형태의 ‘붙이는 위고비’를 개발하고 있다. 마이크로니들은 머리카락 3분의 1 두께의 얇은 미세침으로, 주사의 고통을 덜어주면서도 피하까지 약물을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대원제약이 개발 중인 ‘DW-1022’는 패치에 촘촘히 박힌 마이크로니들을 통해 위고비를 전달한다. 8월 식약처에 1상 IND 신청을 마쳤다. 이르면 올해 말부터 환자 모집을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약품도 현재 당뇨 신약 후보 물질 ‘HDNO-1605’를 이용해 경구용 약품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회사 측에 따르면 체내 인슐린 분비를 조절해 저혈당 부작용이 없는 경구용 제2형 당뇨병 치료제 신약으로, 유럽(독일)에서 임상 1상이 완료됐으며, 임상 2상은 FDA 승인을 받은 상태다. 국내 임상은 현재 진행 중이다.
삭센다, 위고비 등 글로벌 비만 치료제의 흥행 돌풍에 국내 제약사들이 비만약 시장에 연이어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이미 글로벌 신약들이 상당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지만 향후에도 시장 성장성은 충분하다는 판단에서다. 이 같은 세계적인 분위기에 한국에서도 관심도가 높아졌지만, 위고비의 한국 출시 일정은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노보노디스크제약은 지난 4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사용 시기에 따라 용량을 0.25~2.4mg으로 구분한 위고비 제품 5종의 품목허가를 획득, 판매를 위한 행정절차를 마쳤다. 업계에서는 애초 내년 상반기 정도에 위고비 국내 출시가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으나, 최근 국제적인 수요 증가와 공급 상황을 고려했을 때 내년 출시도 어려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위고비는 2021년 6월 미국에서 세계 최초로 출시된 이후 올해 들어서야 덴마크·노르웨이(1월), 독일(7월), 영국(9월)에서 판매를 시작하는 등 지금까지 미국과 유럽 5개국에서만 출시됐다. 노보노디스크는 위고비가 상대적으로 장기 투약이 필요한 만큼 안정적 공급이 확보된 이후 출시 국가를 확대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보노디스크 제약 관계자도 “제한적인 공급 환경에서, 노보노디스크는 환자들이 안정적으로 치료 환경을 유지할 수 있도록 치료제에 대한 접근성을 보장하는 데 최우선으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운자로는 미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시판 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제2형 당뇨병 치료제로만 사용할 수 있다. 미국에서 먼저 올해 안에 FDA로부터 비만 치료제 허가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위고비가 아직 출시되지 않은 가운데 국내 시장에서는 삭센다가 비만 치료제 시장을 이끌고 있다. 삭센다는 올해 국내에서 상반기 396억원 판매돼 1년 전보다 53.3% 증가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19세 이상 남성 비만 유병률은 2011년 35.1%에서 10년 후인 2021년 46.3%로 증가했다.
한편 한국의 성인 비만 기준은 체질량지수(BMI)를 기준으로 25~29kg/m²를 1단계 비만, 30~34.9kg/m²를 2단계 비만, 35kg/m²를 3단계 비만으로 정의하고 있는데, 삭센다는 초기 BMI가 30kg/m² 이상인 비만 환자에 대해 투여하도록 권고되고 있지만, 이에 해당하지 않는 이들도 비교적 쉽게 약을 처방받을 수 있다.
[김병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