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침공 이후 중동 정세가 한 치 앞도 가늠키 힘든 가운데, 역내 확전 여부가 초미의 관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확전으로 중동 전역이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드는 5차 중동 전쟁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것도 문제지만, 바로 글로벌 경제를 뒤흔들 수 있는 ‘유가 향방’ 때문이다.
이번 중동발 불안에 유가가 급격히 치솟는다면 글로벌 경 제는 사실상 ‘시계제로’에 놓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 그래도 쉽게 잡히지 않는 물가는 더욱 급등하게 되고, 이를 잡기 위한 미국 등 각국의 금리 인상 기조는 더 세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각국 경제 상황은 숨 쉬기 힘들 정도로 옥죄는 분위기에 놓이게 되고, 실물 경제에 미치는 충격은 예상외로 클 수 있다.
특히 이번 중동전쟁은 오일쇼크 수준의 유가 급등을 야기할 수 있어 전 세계의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하마스의 기습공격 이후 이스라엘은 그들의 근거지인 가자지구를 싹 쓸어버리겠다며 지상전을 준비하고 있다. 가자지구로 직접 들어가 하마스를 박멸해버리겠다는 것이다. 비무장의 자국민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지상군 투입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이스라엘은 절대 물러설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하마스를 섬멸하기 전까지 후퇴는 없다”고 천명했다.
하지만 이 같은 이스라엘의 태도는 중동 전역을 또 다른 위기로 몰고 가고 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진격에 반대하는 이란 등 인근 아랍국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중동 전체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아랍이 내세우는 명분은 무고한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마스의 공격 이후 이스라엘과 반이스라엘 진영의 충돌은 시간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이란을 포함해, 시리아 등 이스라엘과 적대적인 국가들은 이스라엘이 지상전을 감행한다면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고 천명한 상태다.
이스라엘과 상극인 중동 시아파의 맹주인 이란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지상전 투입을 강행한다면 “확전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연일 경고장을 날리고 있다. 이번 하마스의 기습 배경에 이란이 배후에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만큼, 이란의 이 같은 경고가 단순 위협은 아니다.
실제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는 “우리는 가자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응답해야 하며,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고,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이란 외무장관은 자국 국영 프레스TV 인터뷰에서 “시오니스트(유대민족주의) 정권이 가자지구에서 어떤 행동도 취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항전선은 이스라엘과 미국에 맞선 지역 국가들과 세력을 이란이 지칭하는 말로, 이란은 하마스는 물론, 레바논 무장단체인 헤즈볼라와 하마스 등을 지원해왔다.
이미 레바논의 무장단체인 헤즈볼라의 경우 하마스와 동조해 이스라엘과 또 다른 대치전선을 만든 상태다.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에는 현재 소규모 무력 공방이 이어지고 있는데, 이스라엘이 지상전 투입을 감행한다면 더 큰 화력 공방으로 곧바로 이어질 태세다.
이에 이스라엘의 우방인 미국의 발걸음도 바빠졌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직접 이스라엘을 찾아 힘을 실어주는가 하면, 대규모 긴급 안보 지원에 나섰다. 군사적 측면 지원은 이미 나선 상태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직후 제럴드 포드호 항모 전단을 이스라엘 근해로 출동시켰고,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항모 전단도 추가로 보냈다. 약 2000명의 미군 파병도 준비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중동발 위기가 점점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한 가지 주목할 점은 하마스발 이스라엘과 중동 진영의 충돌 양상이 1차 오일쇼크 직전의 상황과 흡사하다는 점이다. 유가 불안과 관련해 이를 눈여겨봐야 하는 것은 1차 오일쇼크를 일으킨 원인이 이스라엘과 이라크·시리아가 맞붙은 4차 중동전쟁이었기 때문이다.
4차 중동전쟁은 1973년 10월 6일 이집트와 시리아가 유대교 명절인 10월 6일 속죄의 날(욤 키푸르)에 각각 지상군 30만 여명과 6만 여명을 동원해 이스라엘을 공격하면서 촉발됐다. 공교롭게도 ‘알 아크사의 홍수’로 명명된 이번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작전도 바로 이 명절 다음 날에 맞춰 단행됐다. 이와 관련해 <포린폴리시>는 “하마스가 1973년 이집트와 시리아의 이스라엘 공격을 모방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하마스 공격이 1973년 이집트, 시리아의 행보와 유사한 것은 전술적 접근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 공격 직후 50년 전처럼 열세를 면치 못했는데, 이는 예기치 못한 하마스의 공격 전술 때문이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이 자랑하는 ‘아이언 돔’ 등 첨단 방어 시스템을 실질적 공세 전에 무력화했고,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침투를 알아채지 못했다. 하마스는 디지털로 움직이는 방어시스템을 비디지털 전략으로 무참히 뚫어버렸다. 1973년 4차 중동전쟁 당시도 이스라엘은 개전 초기 이집트와 시리아의 예상외의 과감하고도 신속한 공격에 열세에 놓이며 마지노선을 내줬다.
<포린폴리시>에 따르면 당시 이집트는 수에즈 운하의 동쪽 강둑에 교두보를 마련한다는 전략 아래 자신들이 공격을 감행할 경우 예상되는 이스라엘의 강력한 맞대응을 무력화하기 위해 전쟁 발발 직후 대전차 미사일, 보병, 지대공 미사일 등 과감한 물량 투하 작전을 육상과 공중에서 동시에 전개했다. 이에 이스라엘은 우위의 군사력에도 불구하고 개전 초기 열세를 면치 못했다.
이번 유가 불안의 키를 쥐고 있는 이란은 그 당시 지금과 같지 않았다. 1차 오일쇼크 때 아랍권의 석유 수출 금지 조치에 동참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친미 성향의 국가였다. 하지만 이란은 1979년 이슬람혁명으로 집권한 호메이니의 등장 이후 반미국가로 바뀌었고, 2차 오일쇼크를 일으킨 직접 원인을 제공했다. 혁명 직후 이란은 석유 수출 금지 조치를 단행했고 2차 오일쇼크로 이어졌다.
군사적 상황과 함께 경제 여건도 비슷하다. 1차 오일쇼크 직전 세계 경기는 지금처럼 고공행진하는 물가에 시름하고 있었고, 미국은 이를 잡기 위해 금리 인상도 계속 단행했다. 1차 오일쇼크 직전인 1972년 5.5% 수준이었던 금리는 1973년 8월 11%까지 올랐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1차 오일쇼크는 물가에 더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영국과 일본의 경우 1차 오일쇼크 기간 동안 20% 이상의 살인적인 물가상승률을 기록했다.
현 경제 상황이 이때와 흡사한 모습이다. 코로나19 이후 풀린 유동성이 물가를 자극한 이후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이를 잡기 위해 미국 연방준비제도위원회는 계속 금리를 올리고 있고, 연쇄 파장을 일으키며 각국의 경제 흐름을 옥죄고 있다. 이번 중동 충돌 전 금리 인상 기조가 누그러질 수 있다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하마스의 도발로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어버렸다.
물론 이 같은 유사점만 가지고 이번에도 ‘오일쇼크가 일어날 수 있다’고 예단하는 것은 섣부른 것이 맞다. 특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 원유 생산지가 아니어서 두 국가의 전쟁은 국제 경제에 큰 변수는 되지 않는다.
다만 상황이 유가를 자극할 가능성이 높은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이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이스라엘은 하마스 박멸을 위해 ‘장기전’도 불사할 태세인데, 이렇게 되면 이란이 직접 참여하지 않더라도 중동발 정세 불안은 계속되고 유가는 요동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엔 긴 전쟁이 될 것이고 대가도 클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다시 오일쇼크가 온다면 유가는 어디까지 치솟을까. 경제 분석기관들과 전문가들은 현 유가가 150달러까지 급등할 수 있다고 내다본다. 산유국인 이란이 세계 원유 수송량의 20%가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경우를 상정해서다. 호르무즈 해협은 페르시아만 주요 산유국의 석유 수출길로 이란이 여기를 틀어막으면 친서방 국가들의 석유 수출길이 막히게 된다. 이란은 서방과의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협 카드를 꺼내 든다.
블룸버그통신 산하 경제연구소 블룸버그이코노믹스는 “이란 참전이 현실화하면 국제 유가는 현재보다 배럴당 64달러 오른 150달러 선을 넘어설 수 있다”고 전망했다. 우리 국제금융센터도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다면 통상적인 전쟁 프리미엄 20달러를 크게 웃돌면서 (유가가) 최고 150달러까지 급등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유가 150달러 예상은 중동 불안이 불거지기 전에도 ‘에너지 슈퍼 사이클’ 등을 이유로 예측된 바 있다. 전쟁이란 최악의 시나리오가 이를 더 앞당길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유가 150달러가 현실화되면 세계 경제는 하향 곡선을 그릴 수밖에 없다. 1차 오일쇼크의 파장은 간단치 않았다. 중동 산유국들의 석유 수출 금지 조치가 단행된 후 유가는 불과 두 달 만에 3배나 뛰었다. 2차 쇼크 때에는 1978년 12월부터 1980년 10월까지 약 2년 동안 3배 정도 뛰었다. 이 충격에 전 세계 경제는 급전직하로 추락했다. 미국 뉴욕증시는 1차 오일쇼크 발발 직후 630포인트대였던 지수가 두 달 만에 500포인트대로 추락했다. 이후에도 계속 하락세를 이어가 이듬해인 1974년 9월 30일 300포인트 중반대를 기록하며 반 토막 수준까지 폭락했다. 세계 경제는 긴 암흑기에 들어갔고 우리 경제도 마찬가지였다. 1차 오일쇼크 당시 석유 자체가 부족해 대한민국의 거리가 암흑으로 변할 정도였다. 1997년 외환위기(IMF)보다 더 엄혹한 시절이었다고 회자된다. 과거보다 더 밀접하게 얽혀 있는 현 글로벌 경제 상황을 감안할 때 3차 오일쇼크가 일어난다면 그 충격은 더 셀 것이 분명하다.
‘닥터둠’으로 불리는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유가 상승이 스태그플레이션 충격을 촉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 유가가 150달러까지 올라가면 물가는 살인적으로 치솟을 수 있다. 각국의 큰 고민거리인 물가를 잡는 일은 더욱 어려워진다. 물가를 잡기 위해 각국 중앙은행들은 기준금리를 계속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고, 이는 부채를 가지고 있는 기업과 가계의 부담을 가중시킨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벌어진 전 세계적인 부동산 가격 상승 추세에 빚투로 집을 산 이들은 더욱 고통의 늪에 빠질 확률이 높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각 경제 주체는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고, 기업은 물건을 제때 팔지 못하니 실적을 제대로 내지 못하게 된다. 자연히 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블룸버그이코노믹스는 “유가가 급등하면 세계 경제성장률은 전망치보다 1%포인트 하락해 1조달러(약 1356조원)가량 감소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내년 세계 물가상승률은 기준보다 1.2%포인트 오른 6.7%에 달할 수 있다는 것이 블룸버그의 전망이다. 국제통화기금(IMF)도 10월 경제전망 업데이트에서 내년도 전 세계 경제성장률을 3%에서 2.9%로 하향 조정했다. IMF는 특히 “세계 경제에 스태그플레이션이 닥치면 세계 주요 은행 자산의 3분의 1이 위험에 처하게 된다”고 경고했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최고경영자는 “우크라이나 전쟁에다 이스라엘 공격 사태까지 더해지며 세계는 현재 아마도 최근 수십 년 새 가장 위험한 시기에 놓여 있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오일쇼크 우려를 줄이기 위해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원유 수출에 대한 제재를 해제하며 글로벌 석유 공급길을 추가로 열었지만 유가 급등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문수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