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싱(Earthing) 효과에 매료된 이들의 맨발 걷기 열풍이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접지’란 뜻의 어싱 효과를 믿는 이들은 맨발이 땅과 만나면 몸 안의 면역력이 높아지고, 이로 인해 각종 체내 질병을 치유하는 능력이 증대된다고 본다. 맨발로 걸으면 몸에 염증을 일으키는 활성산소를 중화할 수 있어 이 같은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인데, 실제 맨발 걷기를 통해 암 등 치유하기 힘든 병을 고친 이들이 적지 않아 최근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기존 걷기 명소들은 물론 각종 지자체들까지 여기에 편승해 맨발 걷기에 편한 길을 추가하거나 새로 만들고 있다. 맨발 걷기에 가장 인기가 좋은 황톳길은 전국 어느 곳을 가든지 쉽게 만날 수 있을 정도다.
매경럭스멘이 전국 맨발 걷기 명소를 추려봤다.
전국 맨발 걷기 명소 중 가장 이름난 곳이 대전 계족산 황톳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계족산은 주능선에서 뻗어 내려간 산의 가지들이 닭발과 비슷하게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계족산에 황톳길이 생긴 것은 향토기업인 맥키스컴퍼니의 조웅래 회장 덕분이다. 조 회장이 우연히 이곳에서 맨발 걷기를 경험한 후, 2006년 직접 산의 임도를 활용해 황톳길을 만들었다.
총 길이 14.5㎞의 황톳길은 장동산림욕장 입구에서 시작한다. 총 3~4시간이 걸리며, 도중에 발을 씻을 수 있는 세족장도 있다. 경사가 완만해 맨발로 걷기에 무리가 없다.
계족산 황토는 매년 조 회장이 새로 깐다.
황톳길을 걷다가 만나는 계족산성도 둘러보면 좋다. 맨발로는 갈 수 없지만 산성 정상에서 바라보는 전경이 일품이다. 삼국시대의 성벽으로 길이 1200m, 높이 7m 규모로 축성됐다. 이 산성은 애초 백제가 쌓은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조사 결과 신라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밝혀졌다. 성을 쌓는 방법이 충북 보은의 신라 삼년산성과 같은 방식이었으며, 성 안에서는 6세기 중·후반의 신라시대 토기들도 출토됐다. 이는 계족산성에서 나온 토기들 중 연대기적으로 가장 오래된 것이다. 성내 건물터에는 고려시대 기와편과 조선시대 자기편이 발견돼 산성이 조선시대까지 사용됐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3대 전나무숲길 중 한 곳인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숲길은 전통의 걷기 명소다. 오대산 월정사의 일주문부터 금강교까지 약 1㎞ 남짓한 이 숲길에는 사시사철 걷기를 통해 ‘힐링’을 하려는 이들이 모여든다.
전나무 1700여 그루가 빼곡히 있는 숲길에 들어서는 순간 피톤치드가 온몸을 감싼다. 길 옆으로 나 있는 오대천은 음이온을 내뿜는다. 자연이 주는 천연의 이 보물들을 온몸으로 만끽하노라면 심신이 절로 맑아진다. 아쉬운 점은 길이가 다소 짧다는 점이다. 왕복으로 채 1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월정사를 품고 있는 오대산은 문수보살의 성산(聖山)이다. 산 전체가 불교 성지로, 이는 남한에서는 오대산이 유일하다. 신라 선덕여왕 12년에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됐다. 사찰 내 있는 팔각구층석탑에는 부처님 사리가 모셔져 있으며, 국보로 지정됐다.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숲길은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맨발 걷기 초보자라면 아무래도 평지가 부담이 없다. 경사진 곳을 걷다가 만나는 돌조각이나 나무뿌리가 주는 고통이 꽤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담양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은 매력적이다.
이국적 풍광에 원래 걷기 명소로 유명한 곳이지만, 최근 맨발 걷기 열풍에 재조명되고 있다. 메타세쿼이아가 양쪽으로 늘어선 길이 2.1㎞, 폭 2m 규모의 흙길은 느림의 미학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메타세쿼이아를 옆에 두고 천천히 걸으면 마치 또 다른 공간으로 넘어가는 길을 걷는 듯한 착각이 든다. 메타세쿼이아 길도 최근 일부 구간을 걷기 트렌드에 맞게 황톳길로 조성했다.
맨발로 걷기에는 다소 부담스럽지만 메타세쿼이아와 이어지는 관방제림길도 담양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관방제림은 조선 인조 26년에 홍수로 해마다인근의 가옥이 피해를 당하자 당시 부사를 지낸 성이성이 제방을 쌓고 이를 보존하기 위해 나무를 심은 숲길이다. 성이성은 춘향전에 나오는 이몽룡의 실제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다. 담양천변을 따라 약 2㎞ 거리에 푸조나무, 팽나무, 개서어나무 등 다양한 수종의 아름드리나무들이 가득하다.
맨발 걷기 장소로 ‘갯벌’도 각광을 받고 있다. 갯벌은 전통의 맨발 걷기 장소지만, 발이 푹푹 깊이 빠지는 탓에 걷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 그렇다고 아쉬워 마시라. 걷기 친화적인 갯벌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맨발 걷기 갯벌로 이름난 대표적인 곳이 무안 황토갯벌이다. 무안 갯벌이 황토갯벌로 불리는 이유는 갯벌에 황토의 유익한 성분인 게르마늄 등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이는 무안 전체 면적의 70% 이상이 황토인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황토가 풍부한 지형 덕에 비가 오면 황토 퇴적물이 씻겨 계속 갯벌로 흘러들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무안 갯벌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 5대 갯벌 중 하나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2001년 전국 최초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됐으며, 2008년 람사르 습지 등록, 2008년 6월5일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됐다. 무안갯벌의 면적은 42㎢로 검은 비단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무안 갯벌을 제대로 즐기려면 무안황토갯벌랜드로 가는 것이 좋다.
맨발 걷기를 위해 시간상 먼 곳까지 가기 힘들다면, 자기가 사는 지역 주위를 둘러봐도 좋다. 전국적으로 맨발 걷기 길 조성 열풍이 불고 있고, 여기에는 수도권도 예외가 아니다.
서울에서는 대모산과 양재천 황톳길이 접근하기 쉬운 곳들이다. 서울 둘레길 4코스에 속하는 이곳은 전 구간(18.3㎞)을 맨발로 걸을 수 없지만,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도 황톳길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대모산은 해발 293m 높이로 등산 초보자라도 부담 없이 오를 수 있는 산이다. 산 모양이 할머니 같다고 해서 할미산으로 불리다가 조선 3대 왕인 태종과 원경왕후의 능이 자리잡으면서 대모산으로 불리게 됐다. 대모산 맨발 걷기 코스는 마사토로 이뤄진 길과 황톳길이 혼재돼 있다. 최근 맨발 걷기 열풍에 주말이면 꽤 혼잡도가 높다. 맨발걷기국민운동본부(맨발운동본부)가 매주 토요일 관련 프로그램을 연다.
성남시는 ‘100세 건강 황톳길 6선’이란 테마로 추진된 시내 황톳길 6곳 조성 사업을 9월 끝냈다.
구미교 일원의 탄천 황톳길(329m)을 포함해 대원공원(400m), 수진공원(520m), 율동공원(740m), 중앙공원(520m), 위례공원(520m) 등에 황톳길이 조성됐다. 각 황톳길마다 세족장과 건조기기인 에어건, 신발 보관함 등을 마련해 맨발 걷기의 편의성을 높였다.
수원시는 지자체 명물인 광교호수공원 힐스테이트광교아파트 뒤편에 450m 길이의 황톳길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개장했다. 반도체 특구로 떠오른 용인시는 기흥구 법화산에 맨발 걷기 산책로를 만들었고, 하남시도 풍산근린3호공원에 황토 산책길을 조성했다.
지방에서는 철강의 도시 포항이 눈에 띈다. 지자체 중에서도 ‘맨발 걷기’에 진심인 곳이기 때문이다. 2020년부터 맨발로 걷기에 좋은 길인 ‘맨발로 30선’을 선정하는 등 도시 전체를 맨발 걷기에 친화적으로 만들고 있다.
포항의 맨발 걷기 장소들의 특징은 대부분 도심과 가깝다는 점이다. 이는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멀리 가지 않더라도 쉽게 맨발 걷기가 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만 도심에 있어서 길이가 그렇게 길지는 않다.
송도솔밭, 해도 도시숲, 인덕산 자연마당, 흥해 북천수, 흥해 용한리 해변, 형산강 둔치, 조박지 둘레길 등이 30선에 포함된 곳들이다. 포항 여행 계획이 있다면 맨발로라는 표지판을 눈여겨보도록 하자. 이곳들을 가리키고 있다.
[문수인 기자 · 사진 각 지자체/한국관광공사/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