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시장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MZ세대들을 중심으로 소위 조각투자라 불리는 미술품 공동구매가 최근 몇 년간 주요 재테크 수단으로 급부상했다. 지난해부터 글로벌 긴축기조와 함께 자산시장 부진에 미술경매의 인기도 한풀 꺾인 상황이지만 미술품 ‘조각투자’는 꾸준한 성장세를 기록해왔다. 예술경영지원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미술품 분할 소유권(조각 투자) 시장 규모는 총 545억원, 하반기는 그보다 많은 900억원가량이다. 이제까지 각 기업의 플랫폼 혹은 투자자에 의존하던 구조의 투자가 올해부터는 제도권에 편입되면서 시장이 더욱 활성화될 전망이다.
지난해 증권선물위원회는 아트테크(Art-Tech)기업 테사 등 5개 한우·미술품 조각투자업체를 두고 투자계약증권에 해당한다며 증권성을 인정했다. 조각투자로 칭해지는 증권의 성격은 투자계약증권과 신탁수익증권으로 분류한다. 투자계약증권은 미술품, 한우 등 자산을 기초로 삼은 공동사업에 투자하고, 사업 결과에 따른 손익을 귀속받는 권리다. 증권성 판정을 받은 조각투자는 투자계약증권으로 취급되며, 현행법상 발행만 가능하다.
▲테사(이하 플랫폼명 테사) ▲스탁키퍼(뱅카우) ▲서울옥션블루(소투) ▲투게더아트(아트투게더) ▲열매컴퍼니(아트앤가이드) 등 5개 업체들에 대해서는 투자자 보호장치 마련 차원에서 유통시장 폐쇄 등의 사업 재편이 있어야 이를 허용한다는 입장이었다. 특히 미술품 같은 경우 내재가치나 시세를 파악하기 어렵고, 정보 비대칭성이 커 투자자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금융감독원은 이들이 활용할 투자계약증권신고서 서식을 새롭게 개정한 바 있다. 해당 서식에는 투자결정 시 유의사항, 발행인의 공모 첨부서류, 발행 후 공시체계, 반기감사보고서, 투자계약에 따른 공동사업 참여자 간 법률관계, 기초자산 정보 등을 포함해야 한다. 또한 투자자가 상품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발행인이 발행 주요사항 요약표와 관련 FAQ(자주 묻는 질문)를 작성해야 한다. 김형준 테사 대표는 “그림에 STO(토큰증권 발행)를 적용하게 되면 증권신고서 안의 가격 평가 등이 모두 투자 설명서에 명시될 것”이라며 “이러한 투명한 공시를 통해 미술품 거래가 기존보다 훨씬 더 투명해질 것이며 미술의 대중화와 시장 발전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업계에서는 이르면 9월 1호 투자계약증권이 발행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1호라는 상징성을 무시할 수 없어 업계 간 속도경쟁을 할 가능성이 크다”라며 “아트테크업체들이 여러 증권사들과 협업하고 있는 만큼 증권사들의 눈치싸움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테사와 아트투게더 등 복수의 업체들은 투자자 보호조항이 더해진 새로운 투자계약증권 신고서를 금융당국에 제출했다. 미술품중개업체 투게더아트는 지난 8월 11일 금융감독원에 투자계약증권 증권신고서를 제출했다. 해당 상품이 금융당국 심사를 통과할 경우 이르면 9월 초 시장에 출시될 예정이다. 투게더아트는 투자자로부터 7억9000만원을 조달해 미국 작가 스탠리 휘트니의 회화 ‘스테이송 61(Stay Song 61)’을 취득·관리한 뒤 해당 기초자산을 최대 10년 이내 처분해 투자자에게 청산 손익을 지급할 예정이다. 테사 역시 지난 7월 12일 금융당국으로부터 제재조치 면제 결정을 받은 후 투자계약증권 증권신고서 ‘제 1호 수리’를 목표로 사업을 추진 중이다. 다만 최초 발행인 만큼 관련 업계는 물론 감독당국도 실제 발행까지 얼마나 시일이 소요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한 조각투자업계 관계자는 “처음으로 제출하는 서식이니만큼 꼼꼼히 준비할 필요가 있다”라며 “의무제출 서류 중 반기감사보고서가 있어 일정상 8월 중 제출하지 못하는 곳도 많을 것”이라고 답했다.
조각투자가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자 국내 양대 미술경매업체인 서울옥션, 케이옥션도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다. 서울옥션은 자회사 서울옥션블루가 운영하는 미술품 공동구매 플랫폼 ‘소투’를 통해 신흥 조각투자 전쟁에 참전한다. 케이옥션의 경우 자회사 ‘아트폼스’를 통해 토큰 증권 플랫폼 ‘아트 애그리게이터(aggregator)’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또한 케이옥션은 지난 3월 미술품 조각투자 전문회사인 ‘투게더아트’의 지분 44.07%를 확보해 최대주주의 지위를 확보하기도 했다.
그 밖에 다른 미술품 조각투자업체들 역시 변화에 발맞춰 은행·증권사와의 협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미술품 공동 구매사인 ‘아트앤가이드’는 키움증권, 미래에셋증권, 신한증권, SK증권 등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했고, 또 다른 미술품 조각투자사인 ‘테사’ 역시 “다수의 증권사와 상품 개발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STO 등 새로운 가상자산의 활용이 아트테크와 접목되며 미술시장의 미래에 큰 변화가 점쳐진다. STO는 부동산이나 미술품 등 실물자산과 연동된 블록체인 기반의 디지털자산이다. 지난 3월 금융위원회는 STO와 같은 토큰 형태의 증권 발행 및 유통을 허용하는 골자의 ‘STO 가이드라인(토큰증권 발행·유통 규율체계 정비방안)’을 공개한 바 있다.
지난 7월 열린 공청회에서 금융당국은 증권 발행인도 분산원장 기술을 활용해 증권을 등록할 수 있는 ‘발행인 계좌관리기관’을 신설키로 했다. 여기에는 자기자본 등 몇 가지 요건이 달려 있어, 현재로서는 증권사가 주로 계좌관리기관을 맡을 가능성이 높다.
이에 국내 아트테크업체들은 국내 주요 증권사들과 STO 생태계 조성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미술품 같은 경우 만기가 짧고 유통에 큰 부담이 없어 2차 시장을 형성할 필요성이 크지 않아 발행 중심으로 사업이 진행될 것”이라며 “부동산과 같은 규모가 큰 자산에 비해 딜의 다양성도 보장될 수 있어 관심이 높다”고 설명했다.
증권업계의 STO시장에 대한 높은 관심은 시장의 성장성 때문이다. 보스턴컨설팅그룹에 따르면 글로벌 STO시장은 2030년까지 16조1000억달러(약 2경1385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는 370조원대로 예상된다. 미국의 주요 STO 플랫폼 중 하나인 INX의 경우 올해 2분기 중개 수수료 등으로 거둬들인 총 수익이 160만달러로 전년동기 대비 16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유하고 있는 고객 자금도 같은 기간 6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STO시장은 비단 자산의 토큰화뿐 아니라 스타트업 자금 조달 창구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다. 초기 투자자는 비상장기업 주식을 기업공개 등이 이뤄질 때까지 매각할 수 없으므로 수익 실현에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반면 스타트업의 지분을 토큰화하는 방식으로 추가 자금 조달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블록체인 개발사 캐스퍼랩스, 서비스형소프트웨어(SaaS)업체 트룩발 등이 최근 STO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데 성공했다.
증권업계는 미술 분야 STO시장 선점을 위해 다양한 서비스와 플랫폼을 출시하려 노력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NH투자증권은 조각투자 사업자를 지원하는 서비스를 출시했고, 키움증권은 계좌 연동 서비스를 도입했다.
먼저 NH투자증권은 투게더아트와 전략적 제휴(MOU)를 맺고 장기적으로 협업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투게더아트는 NH증권 주도로 설립된 협의체인 ‘STO 비전그룹’에도 참여했다. 조각투자 사업자 지원을 위한 ‘투자계약증권 All-in-one 서비스’를 출시했다. 조각투자 사업자를 위한 투자계약증권 발행부터 투자, 청산 단계까지 전 과정을 지원하는 서비스다. 최초 사업화 및 상품 구성 단계에서는 투자계약증권을 활용한 상품의 구조화, 증권신고서 작성에 대한 전반적인 자문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후에는 다른 조각투자 사업자와의 협업을 통해, 미술품 외 다양한 기초자산으로 서비스를 확장할 계획이다. 키움증권은 테사와 협업해 계좌 연동 서비스를 도입했다. 서비스 도입으로 테사 플랫폼 이용자는 간편하게 조각투자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향후 미술품 투자계약증권 1호 상품이 출시되면 미리 입금된 예치금을 통해 빠른 청약 신청이 가능하다. 기존 키움증권 이용자는 테사 앱 다운로드 후 회원가입 과정을 거치면 보유 계좌 연결을 통해 바로 계좌를 사용할 수 있다.
토큰증권시장 규모는 올해 하반기를 기점으로 더욱 커질 전망이다. 신석영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원은 “국내 토큰증권 시가총액이 2030년 367조원에 달할 것”이라며 “일반 증권 대비 30% 이상 낮은 비용으로 발행이 가능해 다양한 상품과 가치에 대한 투자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