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시장의 겨울이 지나가고 있는 것일까.
가상자산 대장주인 비트코인이 연중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달라진 모습을 보이며 시장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비트코인은 2021년 9월 6만9000달러대로 정점을 찍은 후 지난해 11월 초 1만5000달러대까지 추락했지만, 올 연초 심리적 저항선인 2만달러대를 뚫은 후 상승 추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3분기로 접어들어서는 3만달러대 안착을 시도하고 있다.
최근 비트코인의 긍정적 모습에는 블랙록이란 대형 투자 기관의 가상자산 시장 진입 시도,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와의 소송에서 승기를 잡은 리플 등 여러 호재들이 한몫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내년부터 진행될 비트코인 반감기에 대한 기대감이 더해지면서 ‘어게인 불장’ 분위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다.
올해 하반기 비트코인을 둘러싼 움직임 중 가장 관심이 쏠리는 것은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신청과 이에 대한 SEC의 승인 여부다.
블랙록은 신청한 비트코인 ETF가 한 차례 반려됐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SEC의 문을 두드리는 등 비트코인 ETF 시장에 진입하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비트코인 ETF 출시 의지는 시장에 파장을 던지기에 충분했다. 6월 15일 블랙록이 처음으로 SEC에 비트코인 현물 ETF 출시 신청을 했다는 소식에 2만5000달러대에서 머물던 가격은 3만달러대로 직행했다. 블랙록이란 대형 투자기관의 가상자산 진입 시도에 대한 기대감도 잠시, SEC가 반려했다는 소식에 잠시 주춤하긴 했지만 블랙록은 곧바로 ETF 승인을 위한 재신청에 들어갔고, 비트코인은 3만달러대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블랙록의 이 같은 움직임이 간단치 않은 것은 기존 제도권 기관투자자들의 가상자산 시장을 바라보는 시선이 과거에 비해 확연히 달라졌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특히 블랙록은 전통 금융기관 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기관으로, 그동안 비트코인을 필두로 한 가상자산 시장에 대해 회의적 입장을 계속 견지해왔다. 이런 블랙록이 비트코인 현물 ETF 신청을 했단 것 자체만으로도 가상자산 시장에 던지는 시그널은 충분했다. 비트코인을 향한 제도권 금융 시장의 진입이 본격화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블랙록을 따라 그동안 피델리티, 반에크, 인베스코 등 기존 SEC로부터 퇴짜를 맞았던 다른 기관투자자들도 다시 현물 ETF 출시를 위해 문을 두드리는 등 업계 전체가 들썩이는 분위기다.
게다가 블랙록을 비롯한 제도권 금융기관들이 굴리는 투자금은 어마하다. 블랙록만 해도 약 10조달러나 된다. 기관투자자들이 본격적으로 비트코인을 사들이기 시작하면 발행량이 정해져 있는 비트코인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 많다. 이번에 블랙록이 신청한 ETF는 ‘현물’ 전용이다. 즉 출시 ETF를 통해 비트코인을 시장에서 직접 사겠다는 의미다.
여전히 SEC가 현물 비트코인 ETF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지만, ‘허용’은 시간문제라는 분석이다. SEC의 비트코인 미승인 이유는 시세 조종에 대한 우려가 여전하다는 것인데, 블랙록은 ETF 재신청을 하면서 가상화폐 거래소인 코인베이스를 현물 ETF의 감시공유 협정사로 지정했다.
그동안 비트코인에 대한 대표적 회의론자였던 래리 핑크 블랙록 CEO는 최근 바뀐 입장을 공개적으로 내보이고 있다.
그는 폭스 비즈니스 네트워크와 가진 인터뷰에서 “비트코인은 여러 측면에서 디지털화하고 있는 황금”이라며 긍정적 입장을 내보였다. CNBC와의 인터뷰에선 “암호 화폐가 특정 통화를 초월한 국제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도 했다.
여기에 가상자산 시장을 뒤흔드는 다른 소식도 전해졌다. 그동안 리플의 증권성 여부를 두고 리플의 운영재단 리플랩스가 SEC와 벌인 소송전에서, 리플랩스가 승기를 잡았기 때문이다.
뉴욕지방법원은 7월 13일 “리플랩스가 거래소에서 일반 투자자들에게 (리플을) 판매한 것에 대해서는 연방 증권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약식 판결했는데, 사실상 “리플은 증권이 아닌 것”에 무게를 두는 것으로 시장은 받아들였다.
그동안 리플을 포함해 가상자산의 증권성 여부는 시장의 초미의 관심이었다.
SEC는 지난 6월 리플 외에 솔라나, 에이다, 폴리곤 등 다른 주요 가상자산 19종들을 무더기로 미등록 증권으로 분류해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당시 SEC는 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인 바이낸스와 코인베이스를 제소하면서 이들을 미등록 증권으로 간주했고, 이들에 대한 거래지원 중단을 요구한 바 있다.
이 충격에 관련 시장은 크게 요동쳤고, 당일 가상자산 시장은 큰 폭으로 추락했다.
하지만 리플이 승기를 잡음에 따라, SEC로부터 증권으로 분류돼 소송을 당한 다른 가상자산들도 돌파구를 잡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SEC는 이번 판결에 대해 항소를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블랙록의 현물 ETF 출시 움직임만큼 주목할 만한 가상자산 시장의 흐름은 글로벌 상황이다. 그동안 가상자산 시장에 폐쇄적이었던 중국과 일본이 태도 변화를 보이는 등 미국의 가상자산 옥죄기와 다른 흐름들이 뚜렷하게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의 행보가 초미의 관심이다. 암호화폐에 대한 관심이 커지던 초기 중국은 가상자산 시장의 선두주자격이었다. 하지만 2017년 중국 당국은 탈중앙화를 내세운 비트코인 등 민간 암호화폐에 돌연 부정적 태도를 보이며 이들의 발행 및 거래 금지 조치를 단행했고, 2021년에는 비트코인 채굴 금지까지 실시했다.
물론 지금도 중국 당국의 이 같은 기조는 변하지 않고 있지만, 물밑에서는 달라진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아시아 금융 허브인 홍콩을 내세워 가상자산 시장을 다시 활성화 하려는 움직임이 있기 때문이다. 홍콩 당국은 지난해부터 가상자산 규제완화 조치를 검토하는 등 친크립토 흐름을 본격화하고 있다. 올 6월부터는 라이선스 발급을 전제로 거래소 등 기관투자자들의 가상자산 시장 진입이 가능해졌고, 개인들도 홍콩달러 계좌만 있으면 소액 투자를 할 수 있게 됐다.
홍콩의 이 같은 움직임에 글로벌 촉각이 곤두서는 것은 그 배후에 중국 당국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블룸버그는 “홍콩의 가상자산 규제완화 움직임은 홍콩을 크립토 산업의 허브로 만들려는 중국 당국의 테스트 성격이 있다”고 분석했다. 창펑자오 바이낸스 최고경영자도 “홍콩은 가상자산에 매우 개방적인 지역”이라면서 “홍콩이 중국 가상자산 시장 개방의 시험장 역할을 하게 된다면 (이는) 현명한 조치”라고 말했다.
파장은 즉각적이다. 발 빠른 가상자산 사업자들이 홍콩으로 몰려들고 있다. 코인텔레그래프에 따르면 7월 기준 가상자산 사업자 등록을 위해 대기 중인 기업만 150여 개나 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아직 초기 단계인 웹3 관련 기업들이 홍콩에 둥지를 틀려는 흐름인데, 관련 인재들을 끌어들이는 효과도 덩달아 생기고 있다.
중국 당국의 민주화 세력 탄압 이후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던 홍콩이지만, 미래 산업 기업들의 관심이 급증하면서 홍콩이 새로운 분위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중국 가상자산 투자자들의 유동성이 홍콩으로 들어오는 부수적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미 투자은행인 번스타인은 “홍콩의 가상자산 허브화는 관련 자본과 인재를 빨아들이게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일본도 가상자산 업계가 주목하는 신시장이다.
일본 역시 그동안 중국 못지않게 높은 허들의 가상자산 규제정책을 펼쳐왔다. 마운트곡스 사태 등 과거 암호화폐 시장을 뒤흔든 각종 사고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이로 인해 일본은 그동안 암호화폐 관련해 세계 흐름과는 동떨어진 모습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집권하면서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권 출범 후 다음 블록체인 트렌드로 여겨지는 웹3 산업을 국가 주요 어젠다로 설정해 공격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웹3정책추진실을 설치하는가 하면 총리가 직접 웹3 관련 행사에서 기조연설을 하기도 한다. 여기에는 아직 실체가 불명확한 웹3 시장에서 그나마 손에 잡히는 것이 게임과 애니메이션 등 콘텐츠들인데, 자신들이 강점을 가진 이 분야를 적극 활용하면 가상자산 시장에서 뒤처진 시간을 만회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일본이 가상자산 시장에서 활발히 움직이면 역시 글로벌 유동성에 보탬이 될 수 있다. 현재 일본 국민의 2%만이 코인을 보유한 적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중동의 두바이, 아부다비도 빼놓을 수 없다. 아랍국가들 중에서도 친가상자산 행보를 보이는 국가들로, 미 SEC의 무더기 암호화폐 제소 이후 이들 국가를 찾는 가상자산 기업들의 발걸음이 늘고 있다. 두바이는 지난해 가상자산규제법을 공포하는 등 빠르게 관련 법규를 정비했고, 아랍에미리트 내 최대 자유 무역지대인 ‘두바이 복합상품거래소(DMCC)’ 내에 크립토 센터를 운영 중이다. 현재 600개 이상의 가상자산 기업이 입주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부다비는 암호화폐에 친화적인 과세정책을 펴고 있으며, 비트코인 채굴에 적합한 국가로 최근 꼽히기도 했다.
이 같은 외부 변수 이외에도 가상자산 시장 참여자들이 기대하고 있는 중요 이벤트가 있다. 바로 비트코인 반감기다. 반감기는 비트코인 채굴에 따른 보상이 4년마다 절반으로 줄어드는 것을 말하는데, 공급물량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지금까지 비트코인 반감기는 총 3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시세 급등 현상이 나타났다. 직전 반감기는 2020년 5월께로 이후 거의 1년 넘게 비트코인을 포함해 알트코인들은 상승 랠리를 펼쳤다. 현재 다가오는 비트코인 반감기는 내년 2분기로 추정되는데, ‘어게인 2020년’이 될지 시장에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사실 직전 반감기 때 가상자산 시장 급등은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전염병 속에 각국 정부가 돈 풀기에 나선 것이 한몫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세계적으로 풀린 풍부한 유동성이 비트코인을 비롯한 주식, 주택, 자원 등 각종 투자자산에 쏠렸고, 전 지구촌에서 이들 자산들의 이례적 가격 상승세가 일어났다. 때문에 비트코인 반감기였기 때문에 시세 급등 현상이 일어났다고 전적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2020년 당시도 비트코인 반감기의 효과에 대한 ‘설왕설래’가 있었다는 점에서 친가상자산주의자들은 이번에도 역시 ‘랠리’가 일어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한 암호화폐 분석가는 “맹목적 낙관론은 안 되지만 블랙록 ETF 승인, 글로벌 시장의 확대, 다가오는 비트코인 반감기 등을 고려하면 내년 이후 비트코인 가격은 지금보다는 높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장 저변에서도 최근 분위기로 인해 가상자산 시세에 대한 긍정적 기대감이 팽배해 있다.
가상자산 대장주인 비트코인의 목표가 10만달러도 다시 회자되기 시작했다. 제프 켄드릭 스탠더드차타드 가상자산 연구 책임자는 “내년 비트코인 가격은 10만달러를 넘을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가상자산 시장에 충격을 던질 부정적 요인들도 여전하다.
가장 큰 변수는 여전한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다.
지난해 말부터 글로벌 경기침체에 대한 걱정이 있어왔지만 아직 현실화하고 있지는 않은 상황. 그렇다고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전 세계 경제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미국의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공격적 금리인상 기조가 최근 한풀 꺾이긴 했지만, 관건인 고용시장의 과열양상은 여전하다. 미국 내 다수의 경제전문가, 기관들은 발생 시점을 올해가 아닌 내년 초께로 미뤘을 뿐, 경기침체는 필연이라고 내다본다.
경제위기를 진단하는 주요 지표 중 하나인 장단기 국채 금리의 역전현상은 역대 최고치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7월 3일 미 국채 2년물과 10년물 국채금리 스프레드(격차)는 한때 1981년 이후 가장 최고치인 –109.50bp(1bp=0.01%포인트)를 기록했다. 올 3월 미 지역은행 파산에 따른 금융위기 공포가 일었을 당시 기록했던 –108.30bp를 넘겼다.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의 2018년 보고서를 보면 장단기 국채 만기 금리 역전현상은 보통 경기침체 때마다 6~24개월 전에 발생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1955년 이후 역전이 발생했지만 침체가 없었던 경우는 단 1차례에 불과했다.
직전 장단기 국채금리 역전은 2019년 9월께 발생했으며, 글로벌 경제는 2020년 1분기 코로나19 발생과 겹치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글로벌 증시 역시 단기에 큰 타격을 받았으며, 가상자산 시장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도 경기침체에 따른 충격이 현실화되면 가상자산 시장 또한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또 가상자산을 둘러싼 글로벌 이슈인 제도권 편입 문제도 마냥 좋게만 볼 부분은 아니다. 규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투명성을 높이는 취지 자체는 좋지만, 가상자산 시장의 본래 취지인 탈중앙화 관점에서는 거꾸로 가는 행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SEC가 글로벌 가상자산 거래소 중 선두주자인 바이낸스, 코인베이스와 소송전을 벌이는 것도 결국 기존 제도권 금융의 신자산시장 선점을 위한 헤게모니전 성격이 짙다는 시각도 내보인다.
6월 말 국내에서는 불공정 가상자산 거래를 규제하는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