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로의 패러다임 전환기를 맞은 자동차 분야는 여전히 인기가 높았다. 지난 3월 31일부터 4월 9일까지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3 서울모빌리티쇼’의 총 관람객이 51만여 명에 달했다는 게 이를 증명한다. 1995년에 시작돼 2년에 한 번씩 매 홀수 해에 개최되는 서울모빌리티쇼는 국내에서 유일한 국제 모빌리티쇼다.
올해는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서비스 등 총 3가지 부문에 2021년 대비 약 60% 이상 늘어난 전 세계 12개국, 163개 기업과 기관이 참가했다. 팬데믹 기간과 비교하면 전시 규모도 2배, 관람객도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12개(현대차, 기아, 제네시스, 르노코리아, KG모빌리티, 메르세데스-벤츠, BMW, 미니, 차봇모터스(이네오스), 알파모터, 테슬라, 포르셰) 완성차 브랜드가 참여해 8개 모델의 월드 프리미어와 4개 모델의 아시아 프리미어, 9개 모델의 코리아 프리미어 등 21개 신차와 10개의 콘셉트카를 전시했고, 로보틱스, UAM(Urban Air Mobility·도심항공이동수단), PAV(Personal Air Vehicle·개인용 비행체) 등 미래 모빌리티 트렌드를 경험할 수 있는 뉴모빌리티 분야도 시선을 끌었다.
이전 전시회와 비교해 늘어난 브랜드와 관람객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선 “아직은 아쉽다”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인지도가 높은 한국GM, 아우디, 지프를 비롯해 토요타, 렉서스, 혼다 등 일본 브랜드의 불참을 염두에 둔 말이다. 수입차업계의 한 관계자는 “팬데믹 이전이던 2019 서울모터쇼가 킨텍스 1, 2 전시장을 모두 사용한 걸 감안하면 실질적인 규모도 작다”라고 전했다. 2023 서울모빌리티쇼에서 확인한 4가지 트렌드를 공개한다.
‘취향을 사랑하는 미니에서 찾은 미래(MINI Future and Beyond)’를 주제로 ‘미니 일렉트릭 레솔루트 에디션’과 미니 컨버터블 출시 30주년을 기념하는 ‘미니 컨버터블 씨사이드 에디션’, 고성능 브랜드 ‘JCW’ 모델 등 총 6종을 전시한 ‘미니’는 아시아 최초로 ‘미니 비전 어바너트’를 공개했다. 공간을 중심으로 모빌리티를 재해석한 미니밴 형식의 순수전기 콘셉트카다.
이 차는 느긋함, 여행, 분위기 등 세 가지 상황에 따라 차량 내·외부가 변화하며 최적의 공간과 환경을 제공한다. 구체적으로 느긋함의 순간엔 시트가 다양한 자세를 취할 수 있게 설계됐고, 실내 중앙의 원형 디스플레이를 테이블 램프로 활용해 업무 환경을 조성하도록 배려했다. 여행 시에는 자율주행 상황을 고려해 이동 경로나 핫한 명소 등 정보를 제공하고, 분위기와 관련해선 측면 도어와 앞 유리가 개방돼 차량 외부와 내부의 경계를 걷어냈다. 그러니까 단순한 교통수단이던 자동차가 운전자의 라이프스타일을 지원하는 비스포크 스타일로 바뀐 셈이다.
‘기아’가 선보인 순수전기 대형 SUV ‘EV9’의 실내공간도 남다르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기반으로 3열까지 바닥이 고른 플랫 플로어를 구현했고, 특히 2열 좌석을 앞뒤로 전환할 수 있는 스위블형으로 배치해 3열과 마주보며 회의나 식사가 가능하다. 2열, 3열 좌석을 접으면 차박도 거뜬하다.
국내 최초로 공개된 ‘현대모비스’의 목적기반차량(PBV) ‘엠비전 TO’와 ‘엠비전 HI’도 관람객들의 관심을 끌었다. 엠비전 TO는 전동화 기반 자율주행 콘셉트카로 e-코너 시스템과 자율주행 센서, 커뮤니케이션 라이팅 등의 신기술이 융합된 차다. 좌우 바퀴가 90°로 회전하는 크랩 주행, 제자리 360° 회전 등이 가능하다. 레저와 휴식 목적에 맞게 개발된 엠비전 HI의 내부에는 자유롭게 위치와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의자와 시선 인식 기술이 탑재된 대형 디스플레이가 설치됐다. 시선을 돌리고 손을 움직이는 동작만으로 영화 감상이나 인터넷 쇼핑 등 원하는 콘텐츠를 편하게 감상할 수 있다.
올 3월에 국내 공식 론칭한 ‘이네오스(INEOS)’의 첫 SUV ‘그레나디어(Grenadier)’도 허투루 넘길 수 없는 실내공간을 갖추고 있다. 사다리꼴 프레임 위에 차체를 올린 이 정통 오프로더는 전장이 4896㎜, 전폭 1930㎜, 전고가 2036㎜나 되는데, 지상고가 264㎜에 달해 더 크고 높아 보인다. 무심히 철판을 접어놓은 것 같은 외관엔 간단한 공구를 걸어둘 수 있는 플라스틱 몰딩이 있고, 지붕 모서리엔 물건을 적재할 때 루프랙 역할을 하는 타이다운 레일을 적용했다. 캠핑 시 타프를 연결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3:7 비율로 열리는 트렁크와 튼튼한 사다리도 이 차의 용도를 가늠케 한다. 무엇보다 군용 트럭을 연상케 하는 실내공간은 언뜻 봐도 활용도가 꽤 매력적이다.
이것은 개인가 로봇인가. 전시회장에서 개 모양의 4족 보행 로봇 ‘더 비전 60’을 마주한 한 어린이가 가던 길을 멈추고 한참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미국의 ‘고스트로보틱스테크놀로지’가 출품한 로봇 개다. 이미 익숙한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스팟’처럼 종종걸음으로 걷거나 꼬리를 살랑거린다. 사람처럼 생긴 로봇도 있다. 테슬라가 국내 최초로 공개한 ‘테슬라봇’(프로젝트명 옵티머스) 모형이다. 모빌리티쇼 현장을 깜짝 방문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꼼꼼히 살펴본 후 로봇 기술에 관심을 나타냈다는 후문이다.
‘현대차그룹’의 ‘로보틱스랩’은 전기차 자동충전로봇과 배송로봇을 공개했다. 전기차를 충전할 때 로봇이 초고속 충전기를 자동차 충전구에 연결하는 모습은 SF 영화의 한 장면을 구현한 듯 생경했다. 4개의 PnD(플러그 앤드 드라이브) 모듈이 장착된 배송로봇은 모든 방향으로 자유롭게 이동하며 자율 이동을 구현했다.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존에서도 다양한 로봇이 눈에 들어왔다. ‘드라이브텍’이 물류로봇을, ‘로아스’는 산업용과 서비스용 로봇 솔루션을 선보였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모빌리티 산업의 미래 중 하나는 로보틱스”라며 “전기차로 전환되고 있는 자동차 분야가 현재 최첨단기술의 집약체라면 가까운 미래에 로봇이 이를 대체하며 물류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자동차 업계에는 인공지능(AI) 챗봇 ‘챗GPT’ 열풍에 제너럴모터스(GM)가 가세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GM이 챗GPT를 자사 차량에 적용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는 것. GM은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음성 명령에 응답할 수 있는 차량 내 비서 서비스와 챗GPT를 연동하는 기술을 적용할 계획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AI로 운전자에게 차량 사용법을 전하거나 매일의 하루 일정을 알려주는 등의 작업을 수행하는 방식이다.
2023 서울모빌리티쇼 현장에서도 AI를 기반으로 한 모빌리티의 진화가 시선을 모았다. SK텔레콤이 선보인 자동차 전용 AI 플랫폼 ‘누구 오토(NUGU auto)’는 음성만으로 차량의 기능을 제어하는 서비스다. 원하는 목적지를 말하면 자동으로 내비게이션이 작동해 길 찾기가 이뤄지고 스트리밍 음악 재생, 실내 온도나 문자메시지 송수신 등이 음성 명령으로 간단히 조작됐다.
이제는 모빌리티의 한 축이 된 UAM도 인기 관람 목록 중 하나였다. SKT의 실감형 UAM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한 관람객들은 대형 로봇팔에 탑승해 UAM 운항 체험, 연계 교통편 예약 등 도시를 날아 이동하는 교통수단이 먼 미래가 아님을 체감했다.
2023 서울모빌리티쇼의 또 다른 주인공은 첨단기술로 무장한 스타트업이었다. 전시회 기간 중 모빌리티 산업 혁신기업과 기술을 선정한 서울모빌리티어워드에서 에스오에스랩의 ‘고정형 3차원 라이다’가 대상을, 오토노머스에이투지의 ‘a2z 로보 셔틀’이 모빌리티 하드웨어 부문 최우수상, 위밋모빌리티의 ‘루티(ROOUTY)’가 모빌리티 소프트웨어 부문 최우수상, 베스텔라랩의 ‘제로크루징-스마트시티 및 자율주행차용 V2I 내비게이션 시스템’이 모빌리티 테크 부문 최우수상에 이름을 올렸다.
강남훈 서울모빌리티쇼조직위원장은 “기술이 가져다줄 미래 모빌리티 핵심은 ‘연결성’이며, 서로 다른 형태의 모빌리티 기술을 매개체로 서로를 이어가면서 이동성의 혁명을 만들어갈 것”이라며 “서울모빌리티어워드는 미래 모빌리티 산업 발전을 위한 기술혁신을 촉진하고 서로 경쟁하고 교류하면서 영감을 주고받는 플랫폼 역할을 수행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우수기업 선정은 업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이 혁신성과 기술성, 상품성, 발전성 등 4개 영역을 종합 평가해 결정됐다.
대상을 차지한 에스오에스랩의 ‘고정형 3차원 라이다’는 전방 장애물 감지와 측후방 환경 모니터링에 적합하며, 작은 크기와 가벼운 무게로 다양한 위치에 설치가 용이하다. 기계식 부품이 없는 구조로 내구성이 뛰어나며 양산에 최적화된 설계기술을 기반으로 제조원가를 절감할 수 있고, 소형화 및 경량화까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김정 카이스트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는 “1세대 회전방식 라이다와 비교해 신뢰성과 디자인성이 가미된 차세대 라이다 기술로 무엇보다 가격 경쟁력이 있는 양산형 제품이라는 점이 인상적”이라며 “이러한 독보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에스오에스랩은 2019년 ‘전 세계 4대 라이다 제조업체’에 선정됐고, 2021년에는 CES 혁신상을 수상했다”라고 심사평을 전했다.
정지성 에스오에스랩 대표는 “에스오에스랩의 라이다를 차량 루프 위가 아닌 헤드램프에 적용하면 아름다운 디자인의 자율주행차를 만날 수 있다”라며 “이번 수상을 계기로 한국 국가대표 회사라는 각오로 글로벌 자율주행 및 라이다 시장에서도 금메달을 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안재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