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 들어서 원전 산업 육성에 대한 의지를 천명하고 있는 가운데, 소형모듈원자로(SMR)가 차세대 먹거리로 부상하고 있다. SMR는 에너지 위기가 부상할 때마다 그 효용성이 떠올랐지만 현실화의 벽에 부딪혀 매번 좌절돼 왔다. 하지만 최근 각국이 SMR 개발에 열을 올리면서 머지않은 시간에 상용화에 대한 기대감이 큰 상황이다. 지구 온난화 위기 문제의 해법으로 탄소중립 정책에 대한 각국의 지지가 큰 것도 친환경 에너지원인 SMR 개발에 힘이 쏠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제원자력기구에 따르면 미국·영국·프랑스·중국·일본 등 전 세계에서 70여 종 이상의 SMR 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 대열에서 뒤처지지 않는다. 1997년 첫 개발을 시작한 후 2012년 세계 최초로 표준설계인가를 받을 정도로 기술력이 있다.
향후 시장 규모도 천문학적이다. 추정 기관마다 수치가 다르긴 하지만, 영국 국립 원자력연구소의 경우 2035년까지 SMR 시장이 약 620조원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 국립연구소인 아이다호국립연구소는 2050년 신규 원전의 50%가 SMR로 건설될 것으로 예상한다.
SMR는 원자로 부품을 공장에서 모듈로 생산해 현장에서 쉽게 조립할 수 있도록 설계한 전기출력 300㎿ 이하의 원자로를 말한다. 대형 원전을 지을 때는 일일이 설계를 해야 하지만 SMR는 공장에서 모듈화를 현장으로 전달되니 건설이 보다 용이해진다. 자연스레 건설비용도 줄어든다. 대형 원전의 경우 5조~10조원, SMR는 1조~3조원이 든다.
건설기간이 짧다는 장점도 있다. 대형 원전 공사 시간 4~5년 대비 절반 수준이다. 원전 설치 지역도 대형 원전보다 폭이 더 넓다. 발전용수가 적게 들어 해안이 아닌 내륙에도 건설이 가능하다. 안정성도 대형 원전보다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조립식으로 설치됐기 때문에 유사시 방사능 유출을 소형 원자로 내부에서 막기가 용이하다.
현재 정부는 이 시장에서 한 발 앞서나가기 위해서 기존 SMART 소형 원자로를 개선한 혁신형 SMR 개발에 본격 돌입한 상태다.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 기술개발로 명명된 이 사업은 2023년부터 2028년까지 총 3992억원의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다.
2025년까지 i-SMR 표준설계를 마치고 2028년엔 이에 대한 인·허가를 마친다는 계획도 세워졌다. 2030년 수출이란 목표도 가지고 있다. i-SMR 사업단은 올 1월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의 세부구조 설계안을 공개했는데, SMR는170㎿ 노심을 가진 일체형 원자로 4개로 구성된다. 전체 680㎿ 규모로 600㎿급 화력발전소를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일체형 원자로란 원자로 계통의 핵심 기기인 증기발생기, 펌프, 가압기 원자로 노심을 일체화해 하나의 압력용기에 넣은 것을 말한다.
i-SMR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노심 안정성 강화를 위해 도입될 무붕산 운전이란 신기술이다. 원자로 냉각수에 붕산을 사용하지 않으면 기기의 내구성이 증가되고 방사성 폐기물 발생량이 감소돼 노심의 안정성이 커진다. 무한 냉각 시스템도 도입된다. 사고 발생 시 전력 공급이나 인위적인 조작 없이 원자로 및 사용후 핵연료의 저장수소를 무한 기간 냉각케 한다.
내장형 CEDM을 사용해 제어봉 이탈 사고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방침이다. 기존 제어봉의 역할을 대체할 중성자 흡수체와 핵연료를 일체화한 혁신핵연료도 활용할 예정이다. 원자로는 30㎝ 이상의 철제형 격납용기로 밀폐된다. 현재 가동되고 있는 원전의 여덟 배 수준의 고압을 견딜 수 있다. 원자로 위에 들어서는 발전소는 민간항공기의 충돌에도 견딜 수 있게 지어진다. 방사성 물질의 외부 유출을 막기 위해 5중 방벽을 갖출 예정이다. 김한곤 i-SMR 사업단장은 관련 설명회에서 “(혁신형 SMR의)사고 위험은 10억 년에 한 번 정도에 불과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세계적 기업들의 행보도 빠르다. 특히 미국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미국 뉴스케일파워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로부터 자사가 개발 중인 77㎿e급 소형 모듈식 원자로에 대한 설계를 인증받고, 발전소 건립 공사를 추진 중이며 경수로형으로 개발되고 있다. 미국의 엑스에너지사(X-Energy)는 고온가스 기반의 4세대 SMR를 개발 중이다. 모듈 하나당 80㎿e의 용량으로 4개의 모듈이 합쳐진 320㎿e급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USNC사는 5㎿e급 초소형 원자로를 개발하고 있다.
영국의 롤스로이스사도 SMR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기존 가압경수로와 유사한 설계방식의 470㎿e급 SMR를 개발하고 있다. 중국은 자체 SMR인 ACP-100의 실증을 마치고 지난 2021년 건설에 착수했다. 하이난성 창장에 들어설 이 SMR는 2026년 상업운전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는 세계 최초로 SMR 기반의 해상 부유식 원전을 운영 중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겪은 일본도 SMR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2030년 실용화를 거쳐 2040년 양산체제를 갖춘다는 구상이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만한 것은 각 기업이 만들고 있는 SMR의 유형이 다 다르다는 것이다. 이는 이 시장을 선점한 곳이 없기 때문인데, 주류 기술이 없단 얘기다. SMR를 만드는 방식은 노형에 쓰이는 냉각재에 따라 크게 경수로와 비경수로로 나뉜다. 경수로는 가압경수와 비등경수로, 비경수로는 소듐냉각고속로·납냉각고속로·융용염로·고온가스로 등으로 다시 구분된다.
한국원자력연구원에 따르면 경수로 방식은 검증된 기술이며, 핵연료의 안정적이고 경제적인 공급망 확보가 가능하다. 핵연료, 증기발생기, 원자로냉각재펌프 등 요소기술의 높은 완성도도 장점이다. 경수로 방식은 사용 후 핵연료 관리 문제가 있다.
액체소듐을 냉각재로 사용하고 고속중성자에 의한 핵분열을 이용하는 소듐내각고속로는 물에 비해 열전도도가 매우 높고 열전도 성능이 우수해 노심을 효율적으로 냉각하는 것이 가능하다. 금속과의 양립성이 우수해 구조재와 기기들의 부식 문제도 없다. 다만 소듐과 물의 반응을 방지하기 위한 대처 설계와 제반 설비가 필요하다.
고체의 염을 고온으로 녹인 용융염을 냉각재로 사용하는 원자로인 용융염로는 수소가 발생하지 않아 폭발 우려가 없다. 대기압에서 운전되므로 두꺼운 원자로 용기나 커다란 격납용기가 필요 없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배출도 최소화된다. 구조가 단순해 건설 단가도 낮다. 다만 전 세계적으로 용융염로의 운전 경험이 없어 기술적 완성도가 낮다는 단점이 있다. 고온가스로는 후쿠시마 사고와 같은 경우에서도 자연현상만으로 원자로가 냉각돼 안전성이 높다.
우리 기업들도 바쁘게 뛰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가 뉴스케일파워와 협약을 맺고 SMR 위탁 생산을 할 예정이다. GS에너지와 삼성물산도 각각 뉴스케일파워와 SMR 관련 협약을 맺었다. SK와 SK이노베이션은 테라파워에 지분투자를 했으며 HD현대와 삼성중공업은 해상 SMR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문수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