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KPMG는 2020년 71억달러(약 10조1672억원)에 불과했던 자율주행차 시장이 오는 2035년 1조1204억달러(약 1604조4128억원) 규모로 급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내로라하는 완성차 기업과 글로벌 IT 기업이 이미 일찌감치 자율주행차 개발에 뛰어든 이유다. 국내에선 현대차그룹이 레벨3 상용화에 고삐를 죄고 있는 상황. 자율주행차에 대한 글로벌 공룡 기업들의 관심은 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된 ‘CES 2023’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올 CES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자율주행차를 중심으로 내세운 모빌리티였다. 개막 이틀 전 미국의 엔비디아와 대만의 폭스콘이 자율주행 전기차 공동개발을 선언했고, 같은 날 LG전자도 글로벌 자동차 부품 기업인 마그나와 자율주행 기술 개발을 위한 합작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독일의 세계 최대 자동차 부품 회사인 보쉬는 4단계 자율주행에 쓰일 라이다를 전시했고, IT 기업인 소니와 완성차 업체인 혼다는 3단계 자율주행 시스템을 선보였다.
그런가 하면 그동안 자동차 중심이었던 자율주행의 수단이 중장비나 농기계, 보트로까지 범위를 넓히기도 했다. 농기계의 테슬라, 줄여서 ‘농슬라’란 애칭으로 불리는 존디어의 존 메이 CEO는 CES 2023 기조연설에서 “우리가 생산하는 자율주행 트랙터는 지금 당장 시판되는 제품”이라며 미래가 아닌 현재 사용할 수 있는 자율주행 제품이란 점을 강조했다. 존디어는 올해 인공지능(AI)과 에지컴퓨팅까지 트랙터에 추가하며 전 세계에 자신들의 양산 제품을 각인시켰다. 존디어가 공개한 ‘이그잭트샷(Exact Shot)’ 기능은 트랙터가 정확하게 씨앗을 심고 살충제 살포를 최소화할 수 있는 기능이다. 비료 사용량도 60%나 줄일 수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자율주행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농기계의 지능화와 전기화까지 한 단계 진보했다”라고 평가했다.
세계 최대 중장비 업체인 캐터필러가 만든 100t짜리 자율주행 트럭도 등장했다. 이 차의 운전석에는 사람이 없다. 광산이나 공사 현장에서 굴착기가 흙, 바위 등을 실어주면 알아서 목적지까지 실어 나른다. 존디어 트랙터처럼 24시간 가동할 수 있어 효율성도 높다. 캐터필러의 자율주행 트럭은 이미 전 세계 광산과 공사 현장을 누비고 있다. 캐터필러에 따르면 3개 대륙 24곳 현장에서 560대 이상 자율주행 트럭이 단 한 번도 사고를 내지 않고 작업을 수행 중이다. 자율주행 트렌드는 바다로도 옮겨갔다. 정기선 HD현대 사장은 ‘오션 라이프’라는 비전을 공개하며 자회사인 아비커스의 자율주행 레저용 보트(뉴보트)를 소개했다. 아비커스에 따르면 뉴보트는 세계 최초로 항구 간 자율운항이 가능한 솔루션을 적용하고 있다.
그럼 자동차 부문의 자율주행 시스템은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른 걸까. 일반적으로 자율주행기술은 기술의 난이도와 운전자의 책임 정도에 따라 5단계(Level)로 나뉘는데, 자율주행 보조 장치가 없는 ‘레벨0’에선 모든 게 운전자의 몫이다. 본격적으로 관련 기술이 적용되는 ‘레벨1’은 특정 기능의 자동화 단계다. 차선 이탈 방지, 긴급 제동, 크루즈 컨트롤 등 기능이 있어 안전 운전에 도움이 된다. ‘레벨2’는 기존 자율주행 기술들이 통합돼 기능한다. 차선과 간격 유지, 방향 제어, 가속, 감속 등 자율주행 시스템이 통제할 수 있지만 운전자가 주변을 관찰하며 적극적으로 운전해야 한다.
‘레벨3’는 조건부 자율주행 단계다. 운전자의 조작 없이도 도심에서 신호를 인식해 자동으로 차량을 제어하고 고속도로에선 일정 구간의 교통 흐름을 고려해 자동으로 차선을 변경해 끼어들기가 가능하다. 고도 자동화 단계인 ‘레벨4’에선 악천후와 같은 특별한 조건에서만 운전자가 개입하고 대부분의 도로에선 자율주행이 가능하다. 무인 자율주행이 가능한 5단계는 완전자율주행 단계다. 운전자의 개입 없이 차량이 스스로 목적지까지 운행하고 주차까지 가능하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레벨3를 상용화한 브랜드는 메르세데스-벤츠와 혼다 정도. 일본의 혼다는 2021년 3월 준대형 세단 ‘레전드’에 레벨3 기능을 탑재했다. 레전드가 취득한 레벨3 인증은 일본 국토교통성이 마련한 자율주행 형식이다. 고속도로 주행이나 시속 50㎞ 이하로 일반도로에서 주행할 때 같은 특정 조건에서만 자율주행 시스템이 운전자 대신 차량을 제어할 수 있다. 벤츠는 2021년 말 레벨3 수준의 자율주행 기술 승인 규정(UN-R157)을 충족하는 대형 세단 ‘S클래스’를 출시했다. UN-R157은 유엔 유럽경제위원회가 제정한 자동차 관련 국제 기준이다. S클래스에 탑재된 자율주행기술인 ‘드라이브 파일럿(Drive-Pilot)’은 고속도로의 특정 구간과 시속 60㎞ 이하 도로운행 시 작동한다.
드라이브 파일럿 시스템은 지난해 5월부터 독일에서 출시되는 신형 S클래스와 EQS에 선택사양으로 제공되고 있다. 올 초 미국 네바다주에서도 이용 승인을 획득했고, 현재 캘리포니아주에서도 승인 획득 절차를 밟고 있다. 벤츠는 올 하반기부터 네바다주에서 이 기능이 탑재된 2024년형 S-클래스와 EQS를 판매할 계획이다. 현재 미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차량 중 가장 앞선 자율주행 시스템으로 평가받고 있는 건 테슬라의 ‘오토파일럿’ 기능이다. 하지만 오토파일럿은 GM의 ‘슈퍼크루즈’, 포드의 ‘블루크루즈’와 함께 레벨2로 분류돼 있다.
올 상반기엔 현대차가 선보일 제네시스 ‘G90’에도 레벨3 기술이 적용된다. ‘하이웨이 드라이빙 파일럿(HDP)’ 기능이 그 주인공이다. HDP는 스티어링휠에서 손을 떼고도 시속 80㎞ 범위에서 자율주행이 가능하다. 현대차그룹은 G90를 시작으로 현대차와 기아의 신차에도 HDP의 탑재를 확대할 계획이다. 그런가 하면 CES 2023 현장에선 “제한된 구간에서 레벨4 수준의 자율주행이 2025년을 기점으로 양산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빠르면 올 상반기에 현대차그룹이 카카오모빌리티와 선보이는 택시 호출 서비스 ‘로보라이드’가 실제로 레벨4 수준의 자율주행 서비스다. 물론 양산이 아닌 시범 서비스에 속한다.
김광수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자율주행차 관련 보고서를 통해 “단순히 기술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자율주행기술은 이동수단으로서의 무인이동체(Unmanned Vehicle·자율주행 차, 항공기, 선박 등)뿐만 아니라 국방, 농업, 보안, 수색, 공장(Fab Automation) 등 여러 분야에 적용되고 있다”며 “오히려 안전에 대한 민감도와 각종 규제(사고책임 및 보험적용 등) 때문에 자동차의 완전자율주행차(레벨5) 시대보다 타 산업 및 로봇과 같은 제품에서의 자율주행 기술 확산 속도가 더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고 전망했다.
안재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