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긴축에 대한 시장의 불안이 여전하다. 영국 감세안과 영국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BOE)의 시장 개입은 긴급 자산매입 종료로 촌극으로 끝났다. 최근 발표된 9월 미국소비자물가지수(CPI)는 둔화 추세를 확인했지만, 속도는 기대보다 느렸다. 특히 근원 물가가 예상보다 높게 발표되면서 에너지와 식료품을 제외한 서비스 등에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확인됐다. 각종 선행지표 내 가격변수나 주택 임대료 하락, 주택매매 중간값 하락 등 수요 하방 압력도 증가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CPI에 반영되지 못한 상태다. 물가가 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자 미 연준의 긴축 움직임은 멈출 기미가 없다.
감세 정책에 따른 금융 시장 대혼란으로 지도력을 상실해 취임 44일 만에 물러난 리즈 트러스 영국 전 총리.
▶제2의 ‘아서 번스’로 남기 싫은 제롬 파월
미 연준의 긴축 목표는 공급과 마찬가지로 수요를 억제(파괴)하면서 인플레이션을 2%대로 내리겠다는 것이다. 헤드라인 물가가 떨어지더라도 근원 물가에서 서비스 등 수요 측 압력이 뚜렷하게 둔화하지 않는 한, 연준의 강한 매파적 자세는 바뀔 가능성이 적다. 여기에 9월 미시간대 소비자태도지수에 포함된 기대인플레이션은 다시 상승세로 전환했다. 한 달의 수치로 기대인플레이션이 추세적으로 변화했다고 볼 순 없으나, 11월 FOMC 회의를 앞둔 시점에서 CPI 예상치 상회와 기대인플레이션 상승 전환은 연준이 매파적 기조를 강화할 수 있는 빌미가 된다. 시장의 불안은 11월까지 연장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각국에서 경기 침체 우려를 제기하고 있지만 미 연준의 매파적 행보에는 ‘아서 번스 효과’에서 찾을 수 있다. 최근 많이 회자하는 인물 중 하나인 아서 번스(Arthur Frank Burns)는 1970년대 미국 연준의장을 지내며 그릇된 통화정책을 시행해 그레이트 인플레이션을 유발했다는 혹평을 듣는다. 1970년대 지속해서 물가가 높았던 것은 아니다. 당시 일시적으로 물가가 낮아지는 때도 있었지만 이러한 시기에 아서 번스는 높아진 실업률을 이유로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시행하며 경기를 부양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확대된 유동성은 재차 물가에 묻어나며 인플레이션을 재발시켰다. 그는 “공급 측면 인플레이션은 통화정책으로 조절할 수 없다”는 말을 남기며 통화정책을 느슨하게 가져갔다. 이에 따라 물가는 잡힐 만하면 오르고 잡힐 만하면 오르기를 반복했다. 이러한 선례에 따라 제롬 파월 연준의장은 좀처럼 물가에 대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CPI가 전년 같은 달 대비 기준으로 정점에서 내려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근원 CPI 증가율이 재반등한다는 이유로 고강도 긴축을 이어갈 뜻을 피력하고 있다.
최근 11월 FOMC에서 100bp 인상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다. 다만 정책의 신뢰성 차원에서 100bp보다는 75bp 인상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중론이다. 연준은 지난 9월 FOMC에서 점도표를 대폭 수정하며 시장의 급격한 조정을 일으킨 바 있다. 점도표대로 기준금리를 결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나, 지금 시장은 점도표가 주는 선제적 알림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어서 연준은 이를 무시하기 힘들 것이란 주장이다.
김지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계속 변하는 연준의 태도와 영국 정부의 촌극 이후 금융 시장의 최대 불안이 중앙은행(정책당국)으로 떠올랐기 때문에, 향후 정책의 원활함을 위해 신뢰성을 훼손하는 행동을 굳이 할 유인은 적다”라며 “CPI가 예상치를 상회했지만, 둔화 기조를 유지하면서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은 것도 연준이 무리할 필요가 없는 이유이며 상황(물가)은 변하므로, 필요하다면 유연한 인상 폭 조절은 11월이 아니라 12월에 해도 늦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한국은행 역시 뛰는 물가와 환율을 잡기 위해 결국 7월 이후 석 달 만에 다시 ‘빅스텝(기준금리 0.50%포인트 인상)’을 밟았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는 지난 10월 12일 오전 9시부터 열린 통화정책 방향 회의에서 현재 연 2.50%인 기준금리를 3.00%로 0.50%포인트 인상했다. 3%대 기준금리는 2012년 10월 이후 10년 만에 처음이고, 4·5·7·8월에 이은 다섯 차례 연속 인상도 한은 역사상 역대 최초 기록이다. 빅스텝의 근거는 환율과 연준 FOMC의 매파적 변화라면 11월도 같은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은 큰 상황이다.
김 연구원은 “한 달 반 만에 환율이 빠르게 안정되거나, FOMC의 기조가 선회하거나, 경기 침체가 급작스레 진행되지 않는다면 빅스텝의 이유는 얼마든지 있다”라며 “11월 50bp 인상 가능성을 타진하고 보수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장기금리·물가 안정, 공매도 축소 확인해야
최근 국내 주식 시장의 분위기는 좋지 않다. 최근 급격히 증가한 공매도도 한몫했다. 최근 코스피200(KOSPI200) 종목들에 대한 공매도 비율(short ratio·전체 거래량 대비 공매도 비율)은 10%를 넘어서며 2019년 5월과 8월, 코로나 쇼크 당시 2020년 2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2019년 5월 공매도 급증 당시 시장은 한 달 뒤에 반등에 나섰지만, 다시 하락해 8월에 저점을 기록했다. 당시 미국 연준은 2018년 12월까지 금리 인상과 양적완화 등 긴축정책을 지속하다가 미중 무역분쟁이 지속되고 경기 둔화, 디플레이션 우려로 2019년 8월 금리 인하로 선회했다. 그해 8월과 9월, 11월 3차례 금리를 내렸지만 당장은 그때와 비슷한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공매도 급증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현재 시장이 하락 쪽으로 상당히 쏠려 있다는 점이다. 강송철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과거 공매도 급증 1~3개월 뒤 코스피 지수는 높은 확률로 반등했다”라며 “금리 상승 완화와 함께 연말, 연초 주식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개별 종목 측면에선 공매도 누적이 많은 종목의 일시적 주가 반등이 있을 수 있지만 추세적인 반등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문”이라고 분석했다. 주식 시장의 반등을 위해서는 장기 채권 금리의 안정도 중요한 변수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강 연구원은 “주식의 가장 큰 경쟁자는 장기 채권으로 주가 방향에는 장기 채권 가격의 안정(금리 하락)이 더 중요하다”라며 “과거 미국 10년 국채금리 고점은 기준금리 고점을 2~3개월가량 선행하는 경향을 보인다”라고 말했다.
최근 발표된 9월 CPI를 통해 전문가들의 기준금리 전망은 올라갔지만, 그보다 먼저 장기금리 고점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글로벌 주식 전체로의 자금 유입(펀드플로) 동향을 보면 주가 하락과 함께 유입 자금 규모가 줄었지만, 아직 눈에 띄는 자금 유출이 없는 상황이다. 과거 시장에서 공황(panic)의 발생이나 주식 시장에서의 급격한 자금 유출이 역으로 글로벌 증시에 반등 재료가 됐던 점을 감안하면 아직 관련 신호도 부재한 상황이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종가 및 환율 현황이 표시되고 있는 가운데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당분간 금리 인상과 물가 둔화 여부에 따라 미 연준의 정책적 변화에 시장이 움직일 여지가 큰 상황이다. 결국 통화정책은 물가의 움직임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으므로 투자자들은 관련 지표를 유심히 살펴 대응하는 것이 중요한 상황이다. 강송철 연구원은 이에 대해 “하락 시 코스피 지지선 1950~2050p 수준으로 하락폭 5~10% 내외로 추정하고 있다”라며 “향후 시장은 반등이 아니어도 이전 대비 낙폭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말했다.
강현기 DB금융투자 연구원은 “한동안 주식 시장은 바닥을 다지며 제자리걸음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며 “다만 기간이 흐를수록 물가의 내림세에 더욱 초점이 맞춰질 가능성이 크고 인플레이션을 자극했던 요인들이 시간을 두고 완화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미국 연준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들의 고강도 긴축 의지 역시 달라질 여지가 있다”라고 분석했다. 또한 강 연구원은 “전략적으로는 주식 시장이 흔들릴 때마다 가치주를 사 모으는 것을 추천한다”라며 “환율의 J커브 효과를 고려할 때 저평가된 수출주가 유망해 보이며 향후 주식 시장의 저속 상승 구간에서 일정한 이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