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엿 먹어라?” 원래는 기쁨을 부르는 음식, 우리 풍속에 담긴 엿의 의미
입력 : 2019.10.10 10:30:37
수정 : 2019.10.10 10:31:15
“엿 먹어라!”라는 말은 우리말에서는 욕이다. 요즘은 엿 먹으라고 말로만 그치는 정도가 아니라 행동으로도 보여준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택배로 엿을 배달한다. 엿 먹어라, 엿장수 맘대로 등등, 엿의 이미지는 이렇게 부정적인데 우리는 한편으로 진짜 사랑하는 사람, 제일 소중한 사람에게도 필사적으로 엿을 먹인다. 대표적인 것이 합격 엿이다. 예전부터 우리는 가족이나 친지, 친구 중에 수험생이 있으면 엿을 선물했다. 엿 먹고 합격하라는 의미다.
엿 먹으라는 말이 왜 욕이 됐는지는 모르지만 수험생에게 엿을 선물하는 이유는 다 알고 있다. 엿이 끈끈하니까 엿처럼 시험에 찰싹 붙으라는 뜻이다. 그렇기에 시험에 합격하거나 불합격했다는 말도 엿과 관련해서 설명한다. 시험에 “붙었다”, “떨어졌다”라는 표현을 국립국어연구원에서 펴낸 한국문화기초용어사전에서는 엿의 성질을 합격에 비유한 것에서 유래했다고 어원을 밝히고 있다. 그러니 엿이 끈끈하기 때문에 엿의 접착력처럼 잘 붙으라는 의미에서 합격 선물이 됐다고 사람들이 믿게 됐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이유가 과연 진짜일까? 끈끈해서 잘 붙는다는 단세포적이고 일차원적인 이유 말고 또 다른 뜻은 없을까? 엿의 끈끈한 접착력 때문에 엿 먹으면 시험에 붙을 수 있고, 그래서 엿이 합격 선물이 됐다는 논리가 미신적이고 어설픈 부분이 없지 않기에 과학적인 해석을 덧붙이기도 한다.
시험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뇌가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해야 하는데 엿을 먹으면 혈액 속의 혈당이 높아져 두뇌회전이 빨라지기 때문에 속된 말로 머리가 잘 돌아가게 되니 시험 잘 보라는 뜻에서 수험생에게 엿을 먹이게 됐다는 것이다. 그럴 듯하지만 합격 엿이 꽤 오래된 풍속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런 심오한 생리학적이며 생화학적인 분석을 바탕으로 엿을 먹었을 것 같지는 않다. 분명 또 다른 이유도 있을 것 같은데,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면 수험생의 합격을 기원하며 음식으로 응원하는 것은 우리만의 풍속은 아니다. 일본과 중국에도 비슷한 풍속이 있다.
일본도 우리처럼 엿이나 모치라고 하는 찹쌀떡을 선물하지만 돈가스를 먹기도 한다. 이유는 돈가스의 이름 때문인데 이긴다는 뜻의 승(勝)자를 일본어로 발음하면 가츠(かつ)로 일본식 돈가츠의 ‘가츠’와 같다. 때문에 시험지와 싸워 이겨 합격하라는 뜻에서 돈가스를 먹게 됐다고 한다. 중국 수험생이 대입시험 가오카오(高考)를 앞두고 많이 먹는 음식은 찰밥을 나뭇잎에 싼 쫑즈라는 이름의 장원떡이다. 원래 단오절에 춘추시대 충신이며 시인이었던 굴원을 기리며 먹는 음식이지만 대학입학시험을 앞두고 굴원에게 자녀의 합격을 기도하면서 먹는다고 한다. 또 다른 풀이로는 찹쌀떡을 뜻하는 쫑(粽)의 발음이 명중, 합격이라는 의미의 가운데 중(中)자와 발음이 같아 합격 음식이 됐다고 풀이하기도 한다. 나라를 떠나 수험생의 간절한 소망이 이렇게 음식에 반영되어 있는데, 단순히 미신적 믿음에라도 기대고 싶은 불안심리, 혹은 말장난을 통해서라도 합격을 비는 기대심리가 전부일까? 시험을 앞두고 먹는 엿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지금도 일부 남아있는 예전 풍속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경사로운 날, 특별한 날에는 반드시 엿을 장만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결혼한 딸이 처음 시집으로 들어갈 때 친정어머니가 정성껏 음식을 장만해 함께 들려 보낸다. 이를 이바지 음식이라고 하는데 지방마다 그리고 집안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여기에 엿을 넣어 보내는 경우가 많다. 이바지 음식에 왜 엿을 넣는 것일까?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로는 엿 먹고 시집 식구 입이 달라붙어 새색시에게 시집살이 못하게 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하지만 한참 비뚤어진 소리다. 친정어머니가 시댁으로 들어가는 첫날, 딸에게 그런 선전포고와 같은 의미의 이바지 음식을 들려 보냈을 까닭이 없다. 합격 엿과 마찬가지로 이바지 음식으로 엿을 보내는 또 다른 의미가 있을지 모른다. 역시 지역과 집안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결혼식을 끝내고 폐백을 드릴 때도 폐백 상에 엿 고임을 놓는다. 보통 폐백 상에는 대추와 밤을 쌓아놓는데 자손을 빨리 많이 낳으라는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엿 고임은 어떤 의미일까? 이바지 음식에 엿을 넣는 것처럼 신혼부부가 엿처럼 찰싹 달라붙어 금슬 좋게 백년해로하라는 의미라고 풀이하는데, 또한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본다. 사실 이바지 음식이나 폐백상의 엿처럼 결혼과 관련해 엿을 장만하는 풍속 역시 합격 엿처럼 비단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에는 지금도 결혼식에 엿, 중국식으로는 사탕을 먹는 풍속이 남아 있다. 중국의 신랑 신부들은 결혼식이 끝나면 쟁반에 엿을 담아 하객들에게 돌리며 인사를 한다. 하객들과 결혼의 기쁨을 함께 나눈다는 의미에서 ‘희탕(喜糖)’이라고 하는데 즐거움을 나누는 엿이라는 뜻이다. 물론 지금은 간편하게 엿 대신 사탕을 쟁반에 담아서 돌린다.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거의 사라진 풍속이지만 예전에는 정월 초하루 설날이나 대보름에 엿이나 조청을 고았다. 이렇게 만든 엿을 직접 먹기도 하고 아니면 강정을 비롯해 갖가지 한과를 만들어 차례 상에 놓고 나누어 먹었는데, 설날 먹는 엿은 복(福)엿이라고 해서 그냥 먹는 것이 아니라 소원을 빌면서 먹었다. 복엿을 먹으면 살림이 엿가락처럼 늘어나 부자가 된다고 믿었고 정초나 정월 대보름에 엿을 먹으면 일 년 내내 음식을 달게 먹을 수 있다며 건강을 소원하며 먹었다. 이렇게 우리나라, 나아가 동양에서는 결혼식 폐백이나 이바지 음식처럼 경삿날과 정월 초하루 설날과 대보름의 명절처럼 특별한 날에 엿을 장만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며 합격 엿과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그 의미를 엿이라는 음식과 이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엿이 기쁨을 부르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다소 어려운 글자지만 엿을 뜻하는 한자에서 그 의미를 읽을 수 있다. 엿을 한자로는 ‘이(飴)’라고 쓴다. 요즘은 ‘당(糖)’이라는 글자를 더 많이 쓰지만 이와 당의 차이는 이는 조청처럼 액체 상태, 당은 사탕처럼 딱딱하게 굳은 상태의 엿을 의미하는 차이가 있다.
한자 뜻풀이로 돌아가 이(飴)라는 글자를 풀어보면 먹을 식(食)변에 기쁠 태(台)자로 이뤄져 있다. 태(台)는 세모처럼 생긴 글자인 사(厶)자 아래에 입 구(口)로 이뤄진 글자다. 그러니까 입(口)이 저절로 벌어져 방실거리며(厶) 기뻐한다는 뜻이다.
한나라 때 한자 사전인 <설문해자>에는 태(台)를 기쁘다는 뜻의 이(怡)자와 열(悅)자와 같은 의미라고 해석했으니 보통 즐거운 것이 아니라 희열을 느낄 정도로 좋다는 뜻이다. 그러니 먹어서(食) 입을 방긋거리며 웃으며 희열을 느낄 정도로 좋은(台) 음식이 바로 엿(飴)이라는 것이다.
도대체 왜 엿을 보고 입이 저절로 벌어질 정도로 좋은 음식이라고 하는 것일까? 지금은 엿이 특별할 것도 없고 한때는 오히려 설탕과 사탕에 밀리면서 불량식품 취급을 받았던 적도 있지만, 그래서 엿 먹으라는 말이 욕이 되는 신세로 전락했지만 옛날 엿은 달랐다.
<설문해자>라는 사전이 나온 2000년 전 무렵을 기준으로 보면 왜 엿을 보고 기쁨을 부르는 음식이라고 했는지를 알 수 있다.
지금은 엿을 감자나 고구마, 옥수수 같은 잡곡과 전분으로 만들지만 2000년 전 쯤에는 엿을 쌀과 같은 귀한 곡식으로 만들었다. 엿을 만드는 과정은 곡식에다 엿기름을 넣어 삭히면 엿물이 나오는데 이 엿물을 졸이면 묽은 조청이 된다. 이 조청을 또 졸이고 졸이면 어두운 색의 강엿이 되는데 이 강엿을 계속 치대야 비로소 흰 엿이 된다. 엿이라는 음식이 지금은 별 것 아니지만 먼 옛날 기준으로 보면 귀한 쌀의 에센스만 뽑아서 굳혀 놓은 식품이니 먹으면 저절로 입이 벌어질 정도로 기쁜 음식인 것이다. 그러니 결혼 잔치에 엿을 장만하는 이유, 이바지 음식에 엿을 넣은 이유는 혼인의 기쁨을 함께 나눈다는 의미이고 새해 첫날 엿을 먹는 까닭도 일 년 내내 즐거운 일이 생기고 복 많이 받으라는 뜻이다.
옛날 과거보러 가는 선비에게, 또 현재 시험 보는 수험생에게 엿을 선물하는 이유 역시 입이 저절로 벌어질 정도로 기쁜 일이 생기라는 뜻이니 바꿔 말해 장원급제하고 시험에 합격하라는 덕담의 의미다. 끈끈해서 붙으라는 것 이상의 깊은 속뜻이 담겨 있다. 엿이 기쁨을 부르는 음식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