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우의 명품 와인 이야기] 교황 클레멘스 5세가 만들고 배용준이 사랑한 와인 ‘샤토뇌프 뒤 파프’
입력 : 2019.10.01 10:41:57
수정 : 2019.10.01 10:43:44
신화 속의 주인공들이 영웅으로 인정받기 위해 몇 가지 시험을 거쳐야 하는 것처럼, 와인도 최고급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성장과정을 거치며 몇 가지 자격을 터득해야 한다. 최고급 와인의 가장 중요한 미덕은 바로 ‘맛’이다. 와인이 맛이 없다면, 마케팅을 통해 일시적인 유행을 탈 수는 있어도 오랫동안 사랑받지 못한다. 와인의 맛은 상대적인 것으로, 시대에 따라 유행하는 맛이 다르다. 가령, 200년 전에는 레드 와인에 물을 타 희석하여 먹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지금은 진하고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와인들이 인기 있다. 처음부터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와인이 있는가 하면, 오랫동안의 혁신과 투자로 늦어서야 인기를 얻게 되는 와인들도 있다. 대체로 오랫동안 사랑받는 와인들은 꾸준한 자기 변화로 대중들의 사랑을 유지한다. 2019년에 만들어지는 샤토 마고는 10년 전 혹은 200년 전의 샤토 마고와 비교하면, 양조방식과 맛이 지금과 조금의 차이가 있다. 최고급 와인이 갖추어야 할 두 번째 덕목은 독특함이다. 다른 와인들과 확실하게 비교되는 특별함이 필요하다. 특히 새롭게 태어난 와인들은 자신을 인정받기 위해서 독특함이 필요한데, 아이덴티티는 종종 유명인사의 도움을 통해 만들어질 수도 있다. 엘리자베스 2세의 와인으로 유명세를 탄 ‘비온디 산티나’, 헤밍웨이의 ‘샤토 마고’, 나폴레옹의 ‘쥬브레 샹베르탕’, 루이 15세와 ‘샤토 라피트 로칠드’ 등 세계 최고의 와인들은 유명인사와 관련한 이야기를 한두 개씩은 가지고 있다.
세계적인 고급 와인 중 하나인 ‘샤토뇌프 뒤 파프(Chateauneuf du Pape)’는 프랑스 남동부, 우리에게는 재즈 축제로 더 알려진 아비뇽(Avignon) 인근에서 생산되는 와인의 이름이다. 보르도, 부르고뉴와 함께 프랑스의 3대 고급 와인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약 300여 개의 서로 다른 와이너리에서 샤토뇌프 뒤 파프 와인을 만드는데, 스타일의 차이는 있으나 대개 매력적인 향신료의 느낌이 나며,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는 와인을 만든다. 샤토뇌프 뒤 파프는 어쩌면 세계 최초로 유명인사와 관련된 와인이 아닌가 짐작이 된다. 샤토뇌프 뒤 파프는 3명의 유명인사와 연결된다. 가장 최근에 연결된 첫 번째 유명인은 우리나라의 배우 배용준 씨이다. 2015년 그의 결혼식에 샤토뇌프 뒤 파프의 주요 생산자 중 하나인 클로 생 장(Clos Saint Jean)의 와인이 서브되었다. 물론 그해의 샤토뇌프 뒤 파프 와인은 없어서 팔지 못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샤토뇌프 뒤 파프를 사랑한 두 번째 유명인은 우리나라에도 방문한 적이 있는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Robert Parker)이다. 보르도 와인에 대한 로버트 파커의 평가는 미쉐린 가이드의 레스토랑 평가만큼이나 신뢰도와 영향력이 높다. 그는 비록 보르도 와인으로 명성을 얻었으나, 본인이 가장 사랑한 와인은 샤토뇌프 뒤 파프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다. 보르도 와인은 매우 공식적인 자리에서 와인 상표를 가리고 시음을 했던 반면에, 그가 샤토뇌프 뒤 파프를 시음할 때는 그 생산자들을 동반하여 상표를 가리지 않은 상태로 시음을 하였으니 그가 얼마나 샤토뇌프 뒤 파프 와인과 그 생산자들을 사랑했는지 알 수 있다.
샤토뇌프 뒤 파프와 연결된 가장 오래된 유명인은 아비뇽의 유수로 유명한 교황 클레멘스 5세이다. 샤토뇌프 뒤 파프의 포도밭은 오래전 클레멘스 5세의 지시에 의해 처음 조성되었다. 샤토뇌프 뒤 파프는 ‘교황의 새로운 성’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로, 이미 와인의 이름에 교황의 흔적이 담겨 있다.
1304년 교황 베네딕트 11세가 서거한 이후 약 1년간 교황이 없는 공백기가 있었다. 이 기간 동안 이탈리아계 추기경들과 프랑스계 추기경들은 심하게 갈등하였고, 새로운 교황을 뽑아야 하는 콘클라베 역시 두 세력의 추기경들이 정확히 양분하고 있어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보르도의 대주교였던 헤이몽 베르트랑 드 고는 이탈리아인도 아니고 추기경도 아니었기 때문에 가장 중립적이라는 명분으로 새로운 교황으로 선출될 수 있었다. 하지만 클레멘스 5세는 이탈리아 반도의 혼란한 상황 때문에 끝내 로마로 들어가지 못하였고, 아를 왕국의 영토이자 교황청의 세력권에 있던 아비뇽에 머물며 그 기능을 수행하여야 했다. 이후 7명의 교황이 약 70년간 아비뇽에 머물게 된다. 프랑스의 귀족이었던 클레멘스 5세와 그의 후임자들이 아비뇽에서 통치하기에는 크게 2가지 부족한 점이 있었다. 당시 아비뇽의 치안은 몹시 좋지 않아서, 혼란 상태였던 이탈리아 반도보다 조금 나은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그로 인해 교황청의 실무자들은 외적으로부터 교황청을 방어하기 위해 견고한 요새와 같은 아비뇽 교황청을 완성하게 된다. 두 번째로는 와인을 몹시 좋아했던 교황들의 식탁에 올릴 안정적인 와인의 공급원이 필요하였다. 보르도 출신이자 부르고뉴 애호가였던 클레멘스 5세는 아쉽게도 생전에 아비뇽에서 만들어진 와인을 마실 기회가 없었다. 두 번째 아비뇽 교황인 요한 12세 때부터 본격적으로 아비뇽 인근의 와인이 생산되게 되었고, 이때부터 샤토뇌프 뒤 파프의 와인은 ‘교황의 와인’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샤토뇌프 뒤 파프의 천재적인 와인 생산자들 중에서도 샤토 드 보카스텔은 가장 널리 알려진 포도원이이다. 그 이유는 오마주 자크 페랑(Hommage Jacque Perrin)과 같은 최고급 와인을 생산하면서도 동시에 코트 뒤 론(Cotes du Rhone) 같은 대중적인 와인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원래 코트 뒤 론은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와인으로, 낮은 품질의 대량생산 제품으로 알려진 와인이었다. 하지만 샤토 드 보카스텔에서는 가성비가 좋은 ‘프리미엄 코트 뒤 론’이라는 포지셔닝을 통해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냈다. 주머니는 가볍지만, 교황의 와인이 몹시 궁금한 애호가들한테는 빼놓을 수 없는 와인이다.
샤토 드 보카스텔은 다른 지역의 포도원과 구별되는 뚜렷한 특징을 가진 토양을 가지고 있다. 바로 갈레 훌레(Gallet Roulet)라고 불리는 거대한 자갈로 이루어진 포도밭이다. 이 거대한 돌들은 낮에 열기를 밤까지 유지하는 역할을 하는데, 한여름에는 너무 뜨거워서 농부들도 포도밭에 들어가지 못할 정도이다. 또한 샤토뇌프 뒤 파프의 최고급 와인 생산자들은 원래 그러나슈(Grenache)라는 포도 품종을 주로 사용하지만, 샤토 드 보카스텔은 무르베드르(Mourvedre)라는 포도를 많이 블렌딩하는 것도 특징이다. 무르베드르는 원래 매력적인 포도이지만, 늦게 포도가 익는 단점이 있다. 여름에 건조하고 겨울에 비가 많이 오는 유럽의 기후에서는 장마가 오기 전에 과일을 수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늦게 익는 무르베드르는 아무래도 재배하기 까다로운 포도이다. 하지만 샤토 드 보카스텔은 이웃이 꺼리는 무르베드르 품종을 자신의 독특한 아이덴티티로 살려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