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우리가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40년이 되는 것을 기념하는 날이었다. 행사는 저녁에 시내에 있는 호텔에서 열리지만, 그 전에 예전에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를 둘러보고 싶어 고향 마을로 가던 중이었다. 고향 마을 학교 앞에 다리가 있었다. 그 다리는 우랫말과 양짓말에서 흘러오는 작은 냇물 두 개가 합쳐지는 곳에 놓여 있었다. 그 다리 위에서 한 소년을 만났다.
우리가 어렸을 적엔 그곳에 지금과 같은 넓은 시멘트 다리가 아니라 지금 영월 동강 상류에 놓인 것과 똑같은 모양의 섶다리가 놓여 있었다. 섶다리는 굵은 나무로 다릿발을 세우고 그 위에 얼기설기 나뭇가지를 깐 다음 다시 흙을 덮었다. 다리를 건널 때에도 물 위를 걷는다는 생각보다 그냥 땅으로 난 길을 밟고 지나는 것 같은 생각이 들곤 했다. 장마철에 큰물이 지면 다리 위의 흙이 파이고 때로는 다릿발까지 떠내려가기도 했다.
아마도 4학년이거나 5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그해 큰물이 진 다음 다시 놓은 다리는 이제까지의 섶다리처럼 다리 위를 흙으로 덮지 않고 멀리 강릉비행장에서 얻어 온, 구멍이 뽕뽕 뚫린 철판을 깔았다. 어른들 말로도 비행장 맨땅에 활주로로 깔았던 철판이라고 했다. 난생처음 밟아 본 그 철다리는 신기하긴 했어도 예전 섶다리처럼 편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 철판다리에 구멍이 뽕뽕 뚫렸다고 해서 뽕뽕다리라고 불렀다. 뽕뽕다리 구멍 사이로 신발을 잃었던 건 우리 반 용철이였다. 사흘쯤 비가 내리다가 그친 날이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다리를 건너다 용철이의 고무신이 구멍 사이로 빠졌다.
“어라, 내 신발.”
우리가 그 말을 들었을 때 용철이의 검정 고무신은 이미 다리 아래로 떨어져 종이배처럼 빠르게 물살에 휩싸였다. 비는 이제 더 이상 내리지 않아도 물은 다릿발 중간까지 차올라 빠르게 아래로 흘렀다. 다리 아래로 떨어진 용철이의 신발은 물속에 휘감겨 다시 물 위로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는 용철이와 함께 신발을 따라 멀리 방죽까지 내려갔다. 한번 눈에서 놓친 신발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물 위에 떨어진 고무신도 물살만큼이나 빠르게 아래로 흘러가 버렸을 것이다.
“엉엉엉, 이제 어떻게 하지? 나 집에 가면 혼날 텐데. 산 지도 얼마 안 되는 새 신발인데, 엉엉엉….”
신발을 잃었다고 용철이가 울고, 우는 용철이를 달래다 지쳐 우리까지 따라 울었다. 좀체 자리를 뜨려 하지 않는 용철이를 달래 저녁 늦게 방죽을 따라 올라오던 길, 해 떨어진 대관령에서 밀려오는 노을은 또 왜 그렇게 곱기만 하던지. 신발을 잃은 용철이도 슬프고 우리도 노을 속에 슬펐다.
40년 만에 다시 학교로 가던 길 새로 놓은 시멘트 다리 위에서 옛 생각을 하며 오래도록 다리 밑으로 흐르는 물을 바라보았다. 그때의 뽕뽕다리 철판은 지금 어디에 가 있을까. 아직 그런 철판을 냇물의 다리로는 쓰지 않고 어느 공사장에서 공중다리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을까. 저녁에 행사가 열리는 호텔로 가면 많은 친구들이 올 것이다. 그때 용철이가 잃어버린 고무신은 무사히 바다에 가 닿았을까. 그랬다면 그 고무신은 지금 어느 망망대해를 떠돌까.
그러다 한 소년을 다리 위에서 만났다. 내가 난간을 짚고 다리 아래로 흐르는 물을 바라보자 소년도 다리 난간을 짚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너, 이 동네에 사니?” 내가 소년에게 물었다. 그러나 소년은 대답 대신 빙긋 웃기만 했다.
“왜 웃니?” 그래도 소년은 대답이 없었다. 내가 다리 난간에서 한 손을 떼자 소년도 나를 따라 한 손을 떼었다. 참 이상한 아이였다. 내가 소년을 이상한 아이라고 여기자 그제야 소년이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듯 말했다.
“이상하게 생각할 거 없어. 물 아래를 가만히 바라봐. 그러면 알게 돼.”
나는 아이가 시키는 대로 다시 두 손으로 다리 난간을 짚고 다리 아래로 흐르는 물을 바라보았다.
“그런 채로 눈을 감아 봐. 내가 열을 셀 때까지.”
나는 다시 소년이 하라는 대로 눈을 감았다. 소년이 하나, 둘, 셋…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나도 마음속으로 그것을 따라 세었다. 여덟, 아홉, 열! 그 소리와 함께 눈을 뜨고 아이 쪽을 바라보았다. 분명 옆에서 열을 세는 소리를 들었는데,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갔을까? 나는 혼잣소리처럼 가만히 아이를 불렀다.
“너 어디에 있는 거니?”
“여기….”
잠시 전까지만 해도 내 옆에 나와 똑같은 모습으로 서 있던 아이가 다리 아래 물 위에서 대답했다. 그제야 나는 그 아이가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아, 내 어린 시절의 소년아.”
나는 다리 아래의 아이를 불렀다.
“그동안 너는 어디 있었니?”
“여기. 가난했어도 모든 게 아름다웠던 꽃과 나비의 세상.”
소년이 대답했다.
“그런데 나는 왜 한 번도 너를 보지 못했을까?”
“어른이 된 다음 너는 늘 바빴으니까. 한 번도 어린 시절을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왔으니까.”
“아, 그랬구나, 내가.”
“나는 네가 세상일에 아무리 바빠도 나를 잊지 않길 바라.”
“그래. 이젠 그럴게.”
“이제 그만 가 봐야지. 오늘 우리 인사는 그만하고, 친구들이 기다리는 데로.”
“언제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지?”
“언제나. 네가 힘들고, 또 기쁘고 슬플 때, 이곳에 와서 나를 부르면.”
그렇게 그날 다리 위에서 어린 시절의 나였던 소년을 만났다. 헤어질 때 그 아이가 내게 말했다.
“여기에 나만 있는 게 아니야. 네 친구들도 모두 여기에 있어. 그 친구들 모두 너처럼 여기에 와서 어린 시절의 그리움으로 저마다 자기를 불러 주길 기다리고 있는 거야.”
나는 저녁에 친구들을 만나면 그 말을 전하겠다고 말했다.
“그래, 꼭.”
“꼭.”
그건 나에게만이 아니라 돌아보면 누구에게나 그런 세상이 있을 것이다. 돌아보지 않으면 아무도 만날 수 없는 우리 내 어린 날의 꽃과 나비의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