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적 리스크(Geopolitical Risk). 국가 간 또는 연합국 간 갈등으로 특정지역에서 고조되는 정치·경제적 위험을 뜻한다. 계량화하기는 어렵지만 요즘 이 수치가 전후(戰後) 최고수준으로 치솟는 분위기다. 이란 호르무즈 해협, 홍콩과 중국 본토, 한국과 일본, 미국과 북한 등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가 한두 곳이 아니다. 심지어 이런 핵폭탄급 갈등이 전 세계 곳곳에서 동시에 불거진 것은 2차 세계대전 후 70여 년 만에 사실상 처음이다. 한 곳만 뇌관을 잘못 건드려도 초대형 전쟁까지 각오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경고음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강대국들이 핵으로 무장한 현대전은 미사일이 펑펑 날아다니는 군사전쟁보다 관세와 환율로 싸우는 경제전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원유수출 등 제재로 이란은 올 경제성장률이 -6%, 물가상승률은 37%로 예상된다고 IMF가 밝혔다. 경제고통이 대규모 인명 살상 못지않다는 얘기다. 하지만 ‘우연과 최악의 조합’은 늘 그림자처럼 다가오는 법. 오스트리아 황태자를 향한 사라예보 총성 한 발이 1차 세계대전으로 비화할지 누가 예상했겠는가. 암울하니 도망가자는 얘기가 아니다.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자는 취지에서 꺼낸 화두다. 예측오차를 벗어나는 ‘블랙스완’을 가장 두려워하는 투자의 세계에선 더욱 그렇다.
지구촌에서 이런 동시다발적 갈등이 터져 나오는 이유가 무엇일까. 첫째, 과거 미국과 소련 같은 절대 강자 또는 이념적 지배국이 사라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군사·경제력에서 미국이 단연 G1이라고 하지만 핵무기는 보유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다. 1940년대 히틀러는 다른 유럽국가들을 다 합쳐도 대적할 만한 군사력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 최빈국급이지만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무장한 북한마저 미국과 맞짱을 뜨자고 엄포를 놓는 세상이다. 자본주의 대 공산주의라는 이념의 진영대결이 끝나자 남은 건 국가 간 생존게임뿐이라는 얘기다.
두 번째가 더 골치 아프다. 외부보다 내부의 적이나 갈등이 더 무섭기 때문이다. 2010년대 중반까지 전 세계를 주름잡았던 이른바 신자유주의는 성장의 이면에 빈부격차라는 사생아를 낳았다. 분배문제는 국가를 가리지 않고 ‘넘버 1 선거이슈’로 떠올랐다. 오로지 집권을 위한 정치논리에 외교동맹이나 공생을 위한 ‘비교우위와 자유무역’ 같은 경제논리는 한참 뒷전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전례를 볼 때 이런 큰 갈등의 끝판은 사실상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전쟁이고, 또 하나는 각국이 먹고사는 문제를 타개하기 위한 기술혁명이다. 전쟁은 솔직히 우리가 어찌할 수 있는 여지도 별로 없으니 터진 다음에 걱정하는 게 나을지 모른다. 후자는 현재진행형인 경제전쟁이 그나마 순탄하게 끝났을 때 기대되는 순기능이다. 보호무역으로 점점 심각해질 저상장이나 원가상승을 타개할 방법은 생산성을 대거 끌어올릴 기술혁명뿐이다. 실제 1990년대 말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전 세계적으로 IT(정보기술)혁명이 일어난 게 결코 우연이 아니다. 닷컴버블이라는 후유증을 낳기도 했지만 ‘1인 1PC’ 시대는 노동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린 게 사실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선 사람손이 가장 적게 갈 분야나 기업을 찾아라’라는 말이 증권가의 금언처럼 떠오르고 있다. 택시기사를 대체할 공유서비스 플랫폼, 최저임금 충격을 줄여줄 로봇 기업, 물류·택배비를 획기적으로 절감할 유통테크 기업 등이 대표적이다. 고령화 시대의 유일한 탈출구인 바이오·헬스케어도 길게 보면 성장할 수밖에 없는 산업이다.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위험자산에 투자하겠다면 이런 미래성장주로 범위를 좁히는 게 현명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운이 없게도 정권 사이클과 세계경제 사이클이 맞지 않는다.”
이런 말이 나올 정도로 국제정세와 정반대로 미래보다 과거에서 답을 찾는 대한민국이 영 불안하다면 해외에서 투자처를 물색하는 게 현명할지 모른다. 이것마저 싫다면 자산의 일정부분은 꼭 현금이나 금으로 바꿔놓고 조용히 때를 기다리는 게 나을 것이다. 뻔한 공자님 말씀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변곡점에서 아는 답을 실천에 옮기느냐, 마느냐가 진짜 재테크 고수를 가리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