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친구’라는 말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중국어로 ‘펑유(朋友)’라는 말은 한국어의 ‘친구’나 영어의 프렌드(Friend)라는 말이 뜻하는 관계보다 훨씬 더 가깝고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의미한다. 일찍이 명나라 말기에 중국에 왔었던 마테오리치가 자신의 첫 한문 저서로 서양의 친구 관계를 소개하는 <교우론(交友論)>을 택한 것은 중국에서 친구 관계가 무척 중요하면서도 서양과는 다른 문화적 지평 위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어떤 중국 사람이 함께 있는 한국 사람을 가리켜 “이 사람은 나의 오랜 친구(라오펑유:老朋友)”라고 말했다면 그 말을 대단히 의미 있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 표현은 두 사람 사이가 어떤 부탁이나 이야기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을 정도로, 몹시 친밀한 상태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선언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런데 나는 영광스럽게도 나를 ‘라오펑유’라고 불러주는 중국 친구가 몇 사람 있다.
나를 ‘라오펑유’라고 부르는 중국친구들과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자주 만났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이야기만큼이나 많은 술을 마셨다. 그래서 그들이 나를 ‘친구’라고 부르기 시작했을 때 나는 서로에 대한 신뢰는 함께 마신 술의 양에 비례한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할 수 있었다. 나와 그들이 만나 식사를 하며 술을 마실 때 우리가 술을 얼마나 좋아하는 사람들이냐 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나의 중국친구들은 자주 “술은 지기를 만나 마시면 천 잔으로도 모자라고, 말은 마음이 맞지 않으면 반마디도 많은 법이다(酒逢知己千杯少 話不投機半句多)”라는 중국 속담을 인용하면서 좋은 술을 열심히 권하는 것으로 나에 대한 반가움을 표시했고, 나는 맛있게 열심히 마셔주는 것으로 그들의 마음에 응답하고자 했다.
중국에서 술은 ‘알코올이지만 늘 알코올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이었다. 술은 상대방에 대한 마음이고 정성이고 태도였다. 어느 때부터인가 상대방에게 술을 권할 때 그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몇 마디 말을 반드시 준비하는 중국친구들의 습관에 익숙해지게 되자 나 역시 나에게 술을 가르쳐준 김현 선생의 말을 적당히 편집해서 그들의 호의에 답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술은 물이 아니라 불이어서 마신 사람의 가슴을 덥히고, 가슴에서 나오는 말을 덥히고, 그 말은 상대방을 따듯하게 감쌉니다. 그래서 당신들과 술을 마시는 자리는 즐겁고 행복한 자리입니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편안한 마음으로 중국친구들에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나는 애주가가 아니었지만, 그런 연유로 처음부터 회피하거나 아예 마시지 않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이처럼 중국에서 끈끈한 관계를 창출하고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술이었다. 그것이 가족관계이건, 친구관계이건, 사제관계이건, 상하관계이건 다정하고 화목한 관계라는 사실을 함께 확인하며 즐거워하는 데에 꼭 필요한 게 술이었다. 술의 그러한 기능 때문에 나는 때로는 건강상태가 좋지 않을 때 많은 술을 마셨다가 고생을 자초했고, 때로는 뻗쳐오르는 술기운에 못 이겨 무책임한 말을 남발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그렇지만 돌이켜보면 몸 사리지 않고 그들과 함께 마신 술의 양이 그들로 하여금 나를 ‘라오펑유’라고 부르게 만들어 준 것만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중국 명주
처음 접한 싼 술이 선입견 만들어
중국술에 대한 내 또래 한국사람들의 첫 기억은 아마도 학교 근처의 중국집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다. 조숙한 사람들의 경우 고등학교 시절에, 보통 사람들의 경우 대학시절에 허름한 중국집에서 짬뽕 국물을 안주삼아 마신 싸구려 배갈(白干儿)이 중국술에 대한 첫 기억을 구성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내 또래 한국사람들에게 배갈은 청소년기에서 성년기로 넘어가던 시절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자 향수이다. 또 배갈은 한때의 방종했던 시절, 감상적이고 자유분방했던 ‘젊은 날의 초상’에 대한 그리움이자 부끄러움이다.
중국을 처음 찾았을 때 중국술에 대한 나의 지식은 싸구려 배갈을 중국술의 전부로 아는 청소년기의 상태에서 발전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중국의 술이 도수와 향기와 제조방법에 따라 그 종류가 얼마나 다양한지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나는 중국을 찾았다.
중국에는 무려 4500여 종에 달하는 술이 있으며, 그중에서 명주로 꼽히는 술로는 마오타이주(茅臺酒), 펀주(汾酒), 우량예(五糧液),시펑주(西鳳酒), 주예칭주(竹葉靑酒), 양허다이취(洋河大曲),루주트취(蘆酒特曲), 젠난춘주(劍南春酒), 구징궁주(古井貢酒),둥주(董酒) 등이 있다는 사실을 당시의 나는 전혀 몰랐었다. 나의 이 같은 상태는 350여 년 전의 젊은 박지원(朴趾源)과 유사했다. 그래서였는지 박지원이 중국술에 대해 무지해서 용감할 수 있었던 것처럼 나 역시 무지해서 용감할 수 있었다.
중국술의 도수에 무지했던 박지원은 중국인들이 조그만 잔으로 홀짝거리며 바이주(白酒)를 마시는 것을 보고 속으로 비웃으며 대국사람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생각으로 호기롭게 대접을 내밀었다. 그리하여 중국인들의 경탄 속에 한 대접의 바이주를 단숨에 마신 그는 뒤늦게 예사로운 술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도망치듯 술집을 빠져나와 숙소에 와서 쓰러졌기 때문에 더 이상의 실수를 예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중국술의 도수에 무지했던 나는 박지원처럼 재빨리 숙소로 도망쳐야 했음에도 도망치지 않았다. 그 대신 “선생님은 결혼했느냐”고 묻는 순수한 중국청년에게 “멀쩡한 노총각 앞길 망치지 말라”는 농담을 늘어놓았으며, 초등학교 교사로 있는 친척 색시가 참하다면서 한번 만나보겠느냐는 말에도 몇 시간 후에 일어날 곤혹스런 사건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뻗치는 술기운으로 “좋지요”라고 말해버렸던 것이다. 다음날 아침 술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로 누워 있는 나에게 신랑감 얼굴을 보기 위해 그 색시의 온 가족이 왔다는 중국청년의 전화를 받고서야 나는 참담한 마음으로 전날 밤 내가 얼마나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는지를 제대로 실감할 수 있었다.
펀주
인문적 매혹에 끌리는 술들
나는 이처럼 중국에서 술 때문에 크고 작은 실수를 저질렀지만 그럼에도 술 마시는 일을 그만두지 않았다. 그것은 중국술이 가진 인문적 매혹 때문이었다. 시인 고은이 “시와 술이 혼연일체가 된 것이 도잠(陶潛), 이백(李白), 두보(杜甫) 같은 중국 고대 서정의 광활한 세계였다”라고 말한 것처럼, 그리고 중국의 사자성어에 술을 빌어 시를 짓고(차주부시:借酒賦詩) 술을 빌어 회포를 풀고(차주서회:借酒抒懷) 술을 빌어 근심을 없애고(차주소수:借酒消愁) 술로써 흥을 돋우며 (이주조흥:以酒助興) 술로써 멀리 가는 사람을 배웅한다(이주장행:以酒壯行)는 말이 있는 것처럼 중국의 술에는 너무나 넓고 깊은 인문적 역사가 담겨 있는 까닭이다.
우리에게 주선(酒仙)으로 알려진 이백은 「달빛 아래서 혼자 술을 마시다(월하독작:月下獨酌)」란 유명한 시에서 자신이 술을 좋아하는 이유를 “하늘이 술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술별이 하늘에 없었을 것이고(天若不愛酒 酒星不在天) 땅이 술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땅에는 마땅히 술샘이 없었으리라(地若不愛酒 地應無酒泉)”라는 말로 설명했었다. 그러면서 자신은 결코 “멀쩡하게 깨어 있는 사람으로 전해지지 않겠다(勿爲醒者傳)”는 자세를 보여주었다. 그의 이 같은 시를 읽을 때면 나는 언제나 부끄러웠다. 이유와 목적을 찾아 술을 마시는 내 자신이 부끄러웠고, 이해관계에 얽매여 주머니의 돈을 세고 있는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예의와 염치와 인간관계를 떠올리면서 늘 제대로 한번 취해보지도 못한 채 좀팽이처럼 살고 있는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중국술이 나에게 주는 이런 인문적 반성과 술잔을 앞에 놓은 중국 친구들의 몸에 배어 있는 역사적 예의와 좋은 중국술에 녹아 있는 심오한 향과 맛 때문에 나는 중국에서 술 마시는 일을 그만두지 않았다.
안휘성 마안산시에 있는 이태백의 무덤
중국 4대 명주, 8대 명주는
이런 나에게 중국술을 좋아하는 시인 황동규 선생은 여든이 가까운 나이에도 이 세상에 자신이 모르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자세로 자주 중국술의 종류에 대해, 향에 대해, 4대 명주와 8대 명주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중국에서 4대 명주, 8대 명주 등의 말이 나오게 된 사정을 잠시 설명해 보면 이렇다. 중국술의 품질을 논하는 ‘제1차 전국평주회’가 베이징에서 열린 것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 후 3년이 지난 1952년이었다. 이 시기에 중국의 주류 생산은 국가 전매국의 관리를 받고 있기는 했지만 실제 생산은 대부분 개인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었다. 따라서 1차 평가는 체계적으로 술을 분류하고 추천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시장의 평판과 흐름에 따라 이루어졌으며 ‘우량예’처럼 생산중단으로 평가대상이 되지 못한 술도 많았다. 어쨌건 이때 8대 명주의 선정이 이루어졌는데 그 중 바이주에 속하는 마오타이주, 펀주, 루줘다이취주, 시풍주를 사람들은 이후 4대 명주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8대 명주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은 1963년 베이징에서 열린 ‘제2차 전국평주회’인데 이때 명주로 선정된 8개의 바이주가 우량예, 구징궁주, 루주트취, 취안싱다이취주(全興大曲酒), 마오타이주, 시풍주, 펀주, 둥주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여러 맛있는 중국술 중에서 나는 특별히 펀주를 좋아한다. 그 이유는 중국술의 농향(濃香), 침향(沈香), 청향(淸香) 등의 여러 향기 중 청향이 비교적 나와 잘 맞는 까닭이기도 하고 펀주가 가진 1500년 이상의 오랜 역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쓰촨(四川)과 궤이저우(貴州)에서 생산되는 우량예, 쉐이징팡(水井坊), 마오타이주 등은 그 명성에도 불구하고 술이 지닌 인문적 역사에서 펀주와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이 사실은 이를테면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 두목(杜牧)이 「청명(淸明)」이란 시에서, “술집이 어디냐고 물으니, 목동이 멀리 행화촌(杏花村)을 가리킨다”라고 쓰고 있는 데에서 잘 알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행화촌’이 바로 펀주의 주산지인 것이다. 펀주 다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중국술은 쟝쑤(江蘇)성에서 생산되는 ‘멍즈란(夢之藍)’인데 그 이유는 이 술의 맛도 맛이지만 이름이 너무 멋있어서이다. 파란 병에 담겨 있는 ‘꿈 속의 남색’이란 술을 마주하면 왠지 술을 마시는 이유가 저절로 생기는 듯한 기분이 든다. 술을 마시는 사람은 마땅히 꿈꾸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을 이 술은 이름에서부터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