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보지 않으며 지낸 지 5년이 된다. 5년을 기억하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장례식이 있던 날 어떤 문화강좌에서 강의를 마치고 돌아오며 이제부터 TV는 보지 않겠다는 결심 아닌 결심을 했기 때문이다. 그 5년 동안 거의 유일하게 빼놓지 않고 본 프로그램이 딱 하나 있었다. 탤런트 최불암 씨가 먹거리를 찾아가고 안내를 하는 한 방송사의 <한국인의 밥상>이라는 프로그램이다. 더러는 과장이나 계도적인 내레이션이 깔리는 껄끄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이 프로그램만한 완성도와 진정성이 있는 방송을 한국 TV에서 본 기억이 없다.
입에 넣자마자 ‘우와’ 하고 탄성이나 내지르는 다른 프로그램과는 그만큼 다르다. 진행자 최불암은 이 프로그램에서 음식에 대해 결코 탄성을 지르지 않는다. 천천히 씹고 고개를 끄덕이고 ‘아하 이 맛이군요’ 하는 맛의 가치를 그 표정으로 담아낸다.
이 프로그램의 또 하나 좋은 점은 먹을거리와 함께 거기 주름살이 뒤엉킨 우리네 삶을 씨줄과 날줄로 엮는다는 것이다. ‘하이구, 저걸 하며 평생을 살았단 말인가’ 그런 생각이 드는 일터와 물고기와 산나물이 나오지만 그래도 그 먹을거리가 자식들 다 키우고 공부시켜 줬으니 고맙기만 하다고 말하는 노인의 주름살을 보고 있노라면… 그 하찮아 보이는 먹을거리가 다만 먹을거리에 머물지 않고 우리네 삶을 키우고 살찌워 왔구나, 하는 감동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하나의 의문이 떠나지 않는다. <한국인의 밥상>을 보고 있자면 밥도 있고 온갖 제철 먹거리도 있는데 그걸 만드는 부엌이 없다. 한마디로 잘라 말하자면, TV프로그램 <한국인의 밥상>에는 부엌이 없다. 밥은 있는데 밥을 만드는 공간이 없다.
마당 귀퉁이에 솥을 걸고 마냥 끓여대고 데쳐대고 고아대고, 마루 한쪽에 식자재를 널어놓고 그냥 씻어대고 썰어대고 채를 쳐댄다. 도대체 음식을 만드는 공간으로서의 부엌도 주방도 안 보인다. 한국을 잘 모르는 어느 외국인이 이 프로를 보았다가는 한국인은 날이면 날마다 야외파티를 하는 줄 알까 싶다. 아니, 밥 세 끼가 마냥 피크닉이다. 그것도 야외는 아닌데 집안도 아닌, 집안은 집안인데 방 안은 아닌 이상야릇한 공간에서 먹고 마시며 정찬을 즐기는 민족으로 볼까 민망스럽기까지 하다.
물론 이런 연유에는 촬영상의 문제가 있다는 점을 모르진 않는다. 게다가 이 프로그램에서는 마을 사람이나 이웃이 모여 함께 만들고 함께 먹을 때가 많기는 하다. 그러나 마루에 앉아 먹을거리를 다듬어 손질하고 마당 한구석에 솥을 걸고 음식을 끓여대는 모습은 아무래도 ‘이건 아닌데…’싶은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 텔레비전 프로그램 안에서의 일만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일본 체류를 결정하고 “몇 년 도쿄에 가서 살다 오겠습니다”라며 인사를 드리러 찾아갔을 때 언론인이자 선배 소설가이신 최일남 선생은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자네 일본에서 한국식당엘 갈 때 금강산이니 백두산이니 하는 곳에는 절대 가지 말고 한라산이나 설악산 식당 같은 곳엘 가. 공연히 간첩으로 몰리지 말고.”
백두산 식당은 북한과 가까운 조총련 사람들이 운영하는 식당이니까 얼씬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였는데도 그렇게 으스스했다. 백두산 식당도 갔고 고구려 식당도 갔지만 다행스럽게 간첩으로 몰리지 않고 4년의 도쿄 생활이 끝나기는 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낮 시간에 한국음식점을 찾아가면 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이 있었다. 어쩌자는 것인지 식당 앞의 도로가 주방으로 변해 버리는 것이 아닌가. 모든 식자재를 길에 나앉아서 다듬는다. 김치라도 담그는 날이면 어김없이 길거리에 나와 푸성귀를 다듬고 커다란 플라스틱 함지박을 내다놓고 배추를 씻어댔다. <한국인의 밥상>에 부엌이 등장하지 않는 그 까닭의 원형을 나는 일본의 한국식당에서 만났던 셈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인터넷을 뒤져서야 겨우 이름을 알게 된 ‘놈’이 있다. 한국인들에게 그토록 사랑받는 주방용품의 하나인 ‘휴대용 가스레인지’가 그놈이다. 나는 그걸 뭐라고 부르는지 그 이름을 아직까지 모르고 살았다. 워낙 뜨거운 음식, 국물 있는 음식을 좋아하는 데다 성질마저 급하다 보니 한국인은 즉석에서 끓여 먹어야 직성이 풀린다. 그건 탓할 것도 비하할 것도 없는, 이 땅에 내리는 비와 바람 속에서 몇 만 년을 살아 내려온 민족의 식습관일 뿐이다.
그렇기에 따스한 음식을 먹기 위해 신선로라는 고상한 식문화를 길러낸 우리들이다. 그러나 이 휴대용 가스레인지라는 놈은 어떻게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우선 그 모양새부터가 식탁 위에 올라올 물건이 아니다. 게다가 위험하기까지 하다. 그런데도 야외도 아닌 실내에서, 그것도 식탁 위에서 그 흉물스럽기 짝이 없는 휴대용 가스레인지라는 놈을 켜고는 끓여대고 삶아대고 졸여댄다. 말하면 무엇하랴. 유럽 여행에서 알프스를 오르다가 길가에서 차를 세워놓고 이놈을 켜서 밥을 해 먹지 않나 라면을 끓이지 않나 별짓 다하는 가족여행기를 읽은 적도 있으니.
아, 그리고 가위가 있다. 한국인의 주방기구 가운데 실로 참을 수 없는 흉물의 하나인 그 빌어먹을 놈의 가위 말이다. 그것이 주방기구로서의 형태와 디자인을 갖췄다면 모르겠다. 우리네 식당에서 쓰이는 가위는 그게 아니다. 바느질할 때 쓰는 가위와 아무것도 다르지 않다. 디자인이라도 좀 조리도구와 비슷하게 만들어서 썼으면 좋으련만… 아 그냥 마구잡이로 무심하다.
가위로 썰어대는 것도 고기만이 아니다. 냉면 가닥까지도 그 가위로 잘라댄다. 한걸음 더 나아가 잔혹하기까지 한 낙지요리도 있다. 산 낙지를 끓어오르는 양념과 야채 국물 속에 집어넣었다가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꿈틀대는 그놈을 썰어대는 데 이르면 나는 용서가 되지 않는다. 주방에서 만들어 내오면 누가 뭐라고 하는가. 그게 다 산 낙지를 바로바로 요리해서 내놓는다는 식당의 자만 그리고 그걸 내 눈으로 보지 않고는 싱싱한 산 낙지인지 믿지 못하겠다는 손님의 불신이 손을 잡고 만들어낸 또 다른 지옥도라는 생각을 하자면, 입맛이 쓰디쓰다.
산 원숭이의 대갈통을 부셔서 골도 파먹는 게 인간들이라지만, 죽어가는 생물을 들여다보며 그 마지막 생명의 꿈틀거리며 몸부림치던 잔영이 남아 있는 눈으로 그 음식을 먹어야 하는 내 식욕이 서글프다. 오 낙지여. 네가 비명을 질러대지 않도록 창조하신 신에게 나는 늘 감사하고 또 감사함을 너는 아느냐.
왜 <한국인의 밥상>에는 부엌이 없는 것일까. 나의 이 풀 길 없는 의문부호는 끝이 보이지 않게 소실점을 이룬다. 이것도 민족성이란 말인가. 가게 앞에서 푸성귀를 다듬는 도쿄의 한국식당, 폭발물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목숨 걸고 식탁에 올려놓는 우리네 식당… 이 모든 것들이 <한국인의 밥상>에 부엌이 없는 것과 맥락이 닿아 있는 것은 아닐까. 마당에 솥을 걸고 끓여서라도 맛만 좋으면 된다. 그것이 음식이다. 그러나 포크와 나이프가 살상도구가 아닌 아담한 형태를 갖추면서 서구인의 식탁에 자리 잡았듯이 우리의 식탁용 가위만이라도 기능과 디자인을 갖추고 식탁에 올라올 때는 언제일 것인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7호(2014년 08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