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최경환 경제부총리 팀은 ‘내수부진’ 타개에 사활(死活)을 걸고 있다. 한국경제가 그동안 수출은 잘해 왔지만 내수가 부진해서 저성장의 늪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너무나 당연한 정책 방향이다. 한국이 당면한 가계부채, 노령화, 청년실업 등을 고려할 때에 성장엔진을 빨리 재가동해야만 경제가 ‘저성장 → 소비침체 → 고용저하→ 임금침체 → 재정악화’ 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절박함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
그렇지만 내수부진의 원인이 정확히 무엇이고 이를 극복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많이 엇갈리는 것 같다. 예를 들어 한국경제를 ‘서서히 데워지는 물 속에 있는 개구리’에 비유해서 큰 반향을 일으켰던 맥킨지 한국보고서를 보자. 맥킨지는 한국경제에서 제조업이 성장을 주도했지만 일자리 창출은 서비스업이 주도했다며 서비스업에 관심을 더 가져야 한다고 ‘권고’한다. 서비스업에서 성장엔진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함께 내세운다.
서비스업에 관심을 더 기울이면 과연 내수부진이 해결될 수 있을까? 필자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동안 서비스업에서 일자리가 많이 창출된 가장 큰 이유는 제조업이 인력을 흡수하지 못하거나 방출됐고 그 인력들이 서비스업 이외는 갈 곳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서비스업이 저부가가치가 되는 것은 그래서 당연하다. 금융, 의료, 컨설팅 등 일부 고부가 서비스업이 있지만 인력을 흡수한 대부분의 서비스업은 식당, 배달업과 같이 진입장벽이 낮은 부문이었다. 여기에서는 실패율도 높다. 지금 돈을 벌고 있어도 다른 사람들이 밀고 들어오면 수익률이 떨어지고 더 나아가서는 폐업해야 하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 여기에서 벌리는 돈으로 내수의 지속적 확대를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오히려 문제의 근원인 제조업에서 해결방안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문제의 발단은 제조업이 국내에서 고부가 부문의 투자를 지속하거나 확장하는 일을 적게 했다는 사실이다. 삼성전자조차 스마트폰 생산을 대거 베트남으로 옮겼다. 한국의 경쟁력 있는 제조업체들이 국내 투자를 늘리지 않는 한 다른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내수부진이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다. 정부가 그동안 수출기업 위주의 정책을 사용했기 때문에 내수가 부진했다는 진단도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이나 학계에서는 정부가 수출기업들을 위해 지나치게 원화약세를 유지했기 때문에 내수가 확대되지 않았다면서 원화가치를 절상해야 한다는 ‘충고’가 종종 나왔다. 정부가 수출 대기업 위주의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내수와 수출의 불균형이 생겼다는 국내에 팽배한 인식과 궤(軌)를 같이 하는 주장이다. 그렇지만 원화를 절상하면 실제로 내수가 늘어날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이웃나라 일본의 경험을 보자. 일본은 그동안 ‘잃어버린 20년’을 겪었다. 저성장의 원인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내수부진이다. 일본의 수출 엔진은 잘 돌아갔지만 국내에서 소비와 투자가 침체했다. 일본의 내수가 부진했던 이유는 버블 붕괴 이후 ‘디레버리징(De-leveraging, 부채축소)’이 진행되면서 기업과 가계가 투자하거나 소비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엔고’를 이겨내기 위해 그마나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을 해외로 많이 돌리기도 했고 고령사회가 급진전되면서 소비 여력이 있던 중년층조차 돈을 쓰는 데 주저했다. 한국도 비슷한 부분이 많다. 일본처럼 버블 붕괴를 겪지는 않았지만 가계부채로 인해 ‘디레버리징’ 압박이 있다. ‘원고(高)’는 없었지만 기업투자가 해외로 많이 나간다. 고령화는 일본보다도 빨리 진행되고 있다.
일본의 경험은 원화절상이 내수 회복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얘기해 준다. 일본은 지난 20여 년 동안 ‘엔고’ 속에서 내수가 부진했다. ‘원고’를 유도해서 수입품 가격이 조금 저렴해진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구매력이 제한되어 있는 상태에서 내수가 늘어나기 어렵다. 기업투자는 일본처럼 더 많이 해외로 나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자칫 환율을 잘못 건드리면 국가경제가 뜻하지 않은 피해를 볼 가능성도 열려 있다. 한국은 과거 ‘원고’가 갑자기 진행되는 과정에서 금융위기를 겪었다. 1990년대 중반 ‘원고’ 이후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의 폭풍을 만났다. 2000년대 중반에도 ‘원고’가 진행되다가 2008년 세계금융위기로 역풍을 만났다. 환율이 급변하면 투기꾼만 돈을 번다.
일본의 경험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아베 정부가 내수부진을 ‘임금 충격(wage surprise)’을 통해 해결하려는 사실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1997년에 일본의 노동자들이 279조엔의 임금소득을 올렸는데 15년이 지난 2012년에는 임금소득이 245조엔으로 떨어졌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15년 동안 약 34조엔의 임금손실을 봤다. 싱가포르, 덴마크, 말레이시아의 국내총생산(GDP)에 버금가는 규모이다. 그래서 아베 정부는 국내투자 확대를 통한 임금상승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베노믹스의 성공 여부는 물론 앞으로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내수부진의 핵심은 제대로 짚은 것 같다. 임금소득이 늘어나야 내수증대를 기대할 수 있고 임금소득이 늘어나려면 기업들이 국내 투자를 늘리고 고용을 확대해야 한다. 한국의 내수부진 타개책도 일본이 지금 노력하는 방향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국내 투자가 늘어나고 임금이 상승해야 내수부진이 해결된다는 것은 어찌 보면 평범한 진리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국내투자 확대를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 같다. 수출기업들을 탓하는 것은 본말을 전도하는 것이다. 기업들은 글로벌 경쟁 속에 놓여 있다. 글로벌하게 사고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다. 그 기업들이 국내에 투자할 수 있도록 끌어들이는 것은 해당 정부의 책임이다. 내국 기업이건 외국 기업이건 국내에서 투자를 하고 투자를 고도화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하고 그에 따라 국내 임금이 올라가도록 해야 한다.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에 처해 있는 것처럼 각국 정부들도 투자와 인력 유치를 위한 글로벌 경쟁에 내몰려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신장섭 싱가포르 국립대학교 경제학 교수]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7호(2014년 08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