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세월호 참사로 인해서 소중한 생명을 잃게 된 우리 이웃 특히 젊은 영혼들의 명복을 빌고 심심한 애도의 마음을 표하고자 한다.
세월호 참사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우리의 안전불감증이 얼마나 심각한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리더가 윤리의식과 전문성을 갖추지 못하면 결국 우리 모두 파괴될 수 있다는 뼈아픈 교훈을 얻었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의 리더십을 뿌리부터 흔드는 커다란 시련과 위기를 가져다주었고, 우리 사회의 리더들이 대형 사고나 자연재해 또는 군사충돌과 같은 위기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반성하게 만들었다.
우리의 안전 불감증은 지난 반세기 동안 빠른 경제적 성장과 정치적 민주화를 이루면서 우리 모두에게 체화된, 그러나 일그러진 가치관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우리 사회의 지도층부터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모두 안전보다는 성장을, 생명보다는 돈의 가치를 더 중시해 왔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배고픈 시절에 성장을 위해서 개인과 사회의 안전을 경시하거나 방치할 수밖에 없었던 절박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계 1등 제품을 만들고 선진국 대열의 문턱에 와 있는 대한민국으로서, 이제는 개인과 사회의 안전이 희생되는 경우에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와 비용이 성장이라는 가치 이상으로 커졌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사실은 이제까지 ‘안전을 위한 규제’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규제를 지키지 않아도 별다른 제재가 없었고 따라서 규제를 지킬 별다른 인센티브가 없었을 뿐이다. 규제위반에 대한 민형사 제재를 강화한다면 기업들이 안전을 위한 규제를 준수할 것이고, 회사 내 법무팀(compliance team)도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따라서 규제가 필요하다면 그 규제를 엄격히 집행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맡기는 것이 더 효율적인 시장경제 체제에서는 복잡하고 다양한 경제적 규제를 폐지하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인 경우도 있다. 경제적 규제와 달리 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위해서 강화해야 할 규제들은 따로 구별해서 입법과 집행이 이뤄져야 한다.
리더의 윤리의식 결여는 전체를 파멸시킬 수도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의 리더들이 갖춰야 할 윤리의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잘 보여줬다. 운항중인 선박의 선장부터 정부조직의 기관장과 기업의 대표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서 윤리의식이 무너질 때, 그 조직 전체가 파국을 맞이하게 된다.
세월호는 운항 실수로 인해 기울기 시작한 후에도 침몰하기 직전까지 140분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상당한 규모의 인명구조가 충분히 가능했다. 그럼에도 선장과 승무원들은 최소한의 윤리의식도 다 버리고 학생들에게 “선실에서 대기하라”는 안내방송만 한 후 자신만 먼저 배를 버리고 탈출했다. 리더의 윤리의식 결여는 선박에 승선한 승객들의 희생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를 파멸시킬 수도 있다.
예컨대 임진왜란이 발생하기 수년 전부터 왜군의 침입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대비할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선조는 군의 전열을 정비해 국민을 보호하기는커녕 자신만 먼저 도성을 떠나 한반도가 왜군에 의해서 초토화되고 수많은 백성이 목숨을 잃게 만들었다.
리더의 윤리의식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윤리규범(Code of Ethics)을 준수할 수 있도록 제도적 차원의 규제로 강제될 필요가 있다. 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위해서 선박운항을 관리하고 감독해야 할 공무원이 연줄과 인연 또는 부정한 거래로 그 소명을 망각한다면 대형사고의 발생은 이미 예정된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원전마피아 또는 금융마피아처럼 이번 세월호 참사도 해피아의 윤리의식 결여가 초래한 사고라고 지적된다. 이해관계의 충돌과 전관예우의 가능성을 사전에 배제하기 위해서 감독기관에 근무하던 공무원이 일정기간 동안 그 감독을 받는 조직이나 기업에서 재취업할 수 없도록 엄격히 규제할 필요가 있다. 정부부처들이 경쟁적으로 산하기관을 만드는 주된 이유 중 하나가 소속 공무원이 퇴직 후 재취업할 기관을 미리 마련하는 것이란 비아냥까지 받고 있을 정도다.
따라서 이번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공무원 재직 시 뿐만 아니라 퇴직 후에도 준수해야 할 합리적이고도 상세한 윤리규범이 확립되어야 할 것이다.
현 공무원 임용제도로는 조직의 전문성 부재
세월호 참사는 리더의 전문성과 적극적인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해줬다. 세월호는 가라앉고 있는데 안전재난을 책임지고 있는 해양경찰과 안전행정부 그리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경험과 전문성 부족으로 일사불란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초기 대응에 실패해 대형 사고를 키운 것이라고 지적되고 있다.
이번 기회에 국가안전처를 신설해서 전문직 공무원들이 효율적으로 재난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새로운 부처를 만든다고 하더라고 현재의 공무원 임용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는 한 그 조직의 전문성과 적극적인 자세가 갑자기 새롭게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전문 인력을 공무원으로 임용해서 정부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상식 수준의 획일적인 지식평가인 행정고시에 합격하기만 하면 평생 철밥통을 보장받는 현재의 공무원 임용제도는 21세기 선진국 대한민국 정부의 생산성을 만들어내기 어렵다.한편 사법고시와 외무고시는 없어지고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전문성을 갖춘 법조인과 외교관을 양성해내기 시작했다. 행정부의 공무원 임용방식도 대폭 개선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조선 말기에도 관료제의 폐단이 조선이 패망한 주요 원인의 하나로 지목되기도 한다. 조선 초기 과거제는 우수한 관리를 선발해서 비교적 공정한 관료제가 조선왕조를 발전시키는 데 커다란 기여를 했지만, 후기로 가면서 과거시험은 ‘권력의 카르텔’에 발을 내딛는 관문으로 변질됐고, 그러한 과거제는 개혁을 싫어하고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부패한 관료사회의 등용문이라는 비난을 피할 길이 없었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대한민국의 리더십은 심각한 위기를 맞았고, 대형 사고나 전쟁과 같은 위기상황에서 리더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깊은 성찰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선박이든 기업이든 정부부처든 대통령이든 이제는 전문성과 윤리의식으로 새롭게 리더십을 갖추고, 급변하는 환경에 효율적이고 창의적으로 대응하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 피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정상조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원장]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5호(2014년 06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