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이 ‘서울의 부’를 상징한 지 그리 오래지 않다. 100대 기업 가운데 본사를 강남·서초에 둔 것은 19%뿐이다. 반면 강북인 종로·중구에는 47%를 차지한다. 지난 8월 8일 ‘물폭탄’으로 강남 일대가 침수되고 인명과 재산상의 큰 피해가 있었다. 언론과 정치권은 우수처리의 미흡인 인재(人災)라고 탓한다. 그러나 땅의 한계, 즉 ‘풍수 탓’도 없지 않다. 세 가지 시선으로 강남땅을 풀어보고자 한다.
첫째, 부자가 사는 곳과 부자가 될 터가 다르다.
둘째, 재벌 창업자에서 3·4세로 내려갈수록 풍수관이 달라진다.
셋째, 미래 100년 강남 번창에 비보풍수가 필요하다.
▶강남땅은 조선 왕실의 떼무덤 터
관악산 지맥이 북상하면서 우면산을 만든다. 산에는 얼굴(面)과 등(背)이 있다. 관악산과 우면산의 얼굴(面)은 과천과 양재 일대이다. 얼굴 쪽에 더 평탄하고 완만한 산세로 넓은 터를 만들어준다. 과천정부청사와 주택단지가 그쪽에 들어선 이유이다. 반면 산의 등(背)은 가파르고 협소하다. 우면산 등을 주산으로 서초구·강남구·동작구가 들어섰다. 임야·무덤·전답 터로 적절하다. 조선 개국 후 이곳에 효령대군묘(서초구 방배동), 양녕대군묘(동작구 상도동), 임영대군 후손 집성촌(서초구 반포동), 광평대군묘(강남구 수서동)가 들어선다. 동작구 상도동에서 강남구 수서동까지 왕족 무덤 ‘벨트’가 길게 형성되었다.
▶물난리를 겪었던 삼성동 선정릉
강남이 역사에 등장하게 된 것은 삼성동에 성종·중종의 무덤이 들어서면서이다. 1495년 성종이 죽자 왕릉 후보지들이 논의되는데, 그 가운데 현재 자리가 낙점된다. 원래 이곳은 광평대군 무덤 터였다. 조정에서 광평대군 무덤을 수서 쪽으로 이장시키고 성종을 그 자리에 안장한다. 당시 왕실에서는 이 자리가 길지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성종의 어머니로서 당시 생존해 있던 인수대비는 2가지 이유를 근거로 반대한다. 첫째, 광평대군이 이곳에 안장된 뒤 자손들이 병들거나 요사한 경우가 많았다. 둘째, 그 주변에 종친들의 무덤이 많아 그것들을 이장하려면 왕실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그런데 이 자리를 추천한 이는 영의정 윤필상이었다. 그는 다른 후보지들보다는 이곳이 훨씬 좋은 길지인데, 다만 무덤의 좌향이 잘못돼 광평대군 후손들에게 불행이 생겼다는 논리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한다. 인수대비의 불길한 예언은 맞아떨어졌다. 성종이 이곳에 안장된 뒤, 그 아들 연산군의 패륜·중종반정 등 조선의 불안이 시작된다. 중종의 계비 문정왕후 생존 당시 일이다.
원래 중종 무덤은 경기도 고양시 원당동 희릉에 첫째 계비 장경왕후와 함께 묻혀 있었다. 그런데 중종 승하 18년 후인 1562인 둘째 계비 문정왕후는 ‘형님 격’인 장경왕후만 남겨두고 중종 무덤을 성종이 묻힌 선릉 옆으로 이장한다. 문정왕후는 자신이 죽으면 중종 무덤 옆에 묻힐 욕심이었다. 그러나 그곳은 폭우가 내릴 때마다 탄천 물이 역류하여 정자각까지 물이 찼다. 지금의 강남 물난리는 그때부터 있었던 일이다.
할 수 없이 문정왕후는 자신의 무덤을 이곳에 정하지 못하고 태릉에 정한다. 불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일본군들이 선정릉을 도굴하여 부장품을 가져가고 시신은 없애버렸다. 그러한 까닭에 조선왕릉 가운데 이곳만 유골이 없는 빈 무덤들이 되었다. 1960년대 서울시가 강남 일대를 개발한 것은 토지를 쉽게 수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리멸렬(支離滅裂)의 지세
물론 선정릉이 있는 곳과 강남역은 고개 하나를 두어 물길이 다르다. 그러나 일대는 산도 높지 않고 물도 깊지 않은 데다 지맥이 난맥상을 보이는 땅이다. 문자 그대로 지리멸렬(支離滅裂)하는 지세이다. ‘支離滅裂’이란 산줄기가 이리저리 흩어져 갈피를 잡을 수 없음을 말한다. 그러한 지맥들이 공교롭게도 강남역 부근에서 서로 모인다. 그 지맥 사이로 흐르는 물들도 강남역 부근으로 모여든다. 이른바 합수처(合水處)이다. 합수처에서는 그 빠져나가는 물구멍[水口]이 분명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복개되어 물길이 어디인지 모른다. 물구멍[水口]이 좁으면 물난리는 필연이다.
▶재벌 3·4세들이 선호하는 땅?
창업자들은 전통세대로서 터 잡기, 즉 풍수에 민감했다. 창업자의 아들, 즉 2세들도 창업자 아버지의 어깨너머로 그러한 문화를 익혔기에 풍수를 존중하는 편이다. 반면 3·4세로 넘어가면 창업자의 문화를 알지 못한다. 미국 등 외국 유학으로 서구 ‘합리주의’에 훈습된 세대이다. 그들은 옛터보다 ‘물 좋은’ 강남을 선호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서초동 본사 시대’일 것이다. 2008년 삼성이 이곳에 서초사옥 3동을 짓고 주요 계열사들이 입주할 때, “삼성의 서초동 시대”라고 언론이 보도하였다. 덩달아 풍수사들도 ‘모든 물이 모여드는 취면수(聚面水)의 길지’라고 하였다. 이후 삼성은 이곳의 3동 빌딩 가운데 하나를 매각하고 주요 계열사를 다른 곳으로 이전하였다.
▶100년 미래 번창을 위한 강남 비보풍수
어떻게 미래 100년 강남 번창을 이어갈 수 있을까? 비보(裨補)풍수는 간단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강남역 부근에 모이는 물들을 옛 물길 복원을 통해 반포천으로 빠져나가게 한다. 그 반대쪽(테헤란로)도 옛 물길 복원을 통해 탄천쪽으로 빠져나가게 한다. 문화·관광·상업의 길지가 되려면 ‘물을 의존하여 터를 잡고, 물을 의존하여 거리를 조성해야 한다(依水而立, 依水建街).’ 복개된 물길을 확장·복원하여 아름다운 강남 수변(水邊)도시를 만든다. 더 좋은 방법은 이 두 물길을 관통시켜 하나의 작은 운하를 만드는 것이다(강남산수도 참고). ‘중국의 강남’에 버금가는 ‘한국의 강남’이 된다. 부자가 사는 땅이 아닌 부자가 되는 강남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