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태 기자의 ‘영화와 소설 사이’] 하마구치 류스케 `드라이브 마이 카` vs 무라카미 하루키 `여자 없는 남자들` | 상실의 고통 이후,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다
김유태 기자
입력 : 2022.06.29 17:10:41
수정 : 2022.06.29 17:11:21
일본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1978년생으로, 그의 가장 유명한 영화 <아사코>는 2018년 작품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그의 나이 마흔이었던 2018년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며 하마구치 감독의 이름을 세계에 알렸습니다. 4년이 흘러, 그는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로 올해 3월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국제영화상을 수상합니다. 당시 중계화면으로 본 그의 표정은 극도의 흥분상태였습니다. 주먹을 꽉 움켜쥐고 눈물을 쏟더니 소감을 말하면서도 속도가 너무 빨라 뜻이 잘 전달되지 않을 정도였지요.
아시아의 거장으로 꼽히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는 작년 말 개봉한 뒤 최근까지도 일부 극장에서 상영 중인 걸작입니다. 더 긴 말 필요 없이, 영화 안으로 걸어 들어가 보겠습니다.
▶몽상과 정사의 함수
<드라이브 마이 카>의 주인공은 40대 연극배우 가후쿠입니다. 가후쿠의 아내는 과거 배우였고 지금은 TV 극본을 쓰는 미모의 여성입니다. 그녀의 이름은 오토입니다.
박명이 다가오는 희미한 새벽, 침대 위에서 일어나는 두 사람의 정사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됩니다. 정사를 마치고 나른해진 오토는 침대에 누운 남편 가후쿠에게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몽상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짝사랑하던 남학생의 집에 몰래 들어가 징표를 남기고 나오는 17세 여고생의 얘기입니다. 이것이 오토가 겪은 실화인지는 불분명합니다. 다만 두 사람의 잠자리는 매번 이런 식이었습니다. 격렬한 숨결이 서로의 몸을 지나간 후 의식이 거의 없고 반쯤 가수면 상태에 이른 오토가 떠오르는 이야기를 여과 없이 들려주었고, 가후쿠는 오토의 이야기를 기억해뒀다가 전날 자신의 이야기를 잘 기억하지 못하는 오토에게 전해주는 식이었죠. 몽상과 정사는 두 사람에게 일종의 방정식, 함수와도 같았습니다.
사실 둘에겐 참척의 슬픔이 있었습니다. 오래전 4세 딸아이가 폐렴으로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극심한 상실감에 오토는 배우를 그만뒀습니다. 현실에서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습니다. 서로 변함없이 사랑하는 부부였지만 오토는 가후쿠 몰래 외도를 반복해왔습니다. 게다가 가후쿠는 오토의 비밀을 알면서도 외면해왔습니다. 심장을 쥐어짜는 듯이 극심한 통증이었지만 가후쿠는 아내의 잘못을 묵인합니다. 오토를 정말로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날, 가후쿠가 화를 내볼 겨를도 없이 오토가 지주막하출혈로 사망합니다.
▶타인의 운전석에 앉기
이제 영화는 오토의 사후 2년 뒤로 건너갑니다. 가후쿠는 빨간색 사브(SAAB) 900 차량을 몰고 히로시마현의 한 문화예술센터로 떠납니다. 가후쿠는 센터로부터 연극 연출을 의뢰받은 상태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녹내장이 발견돼 더는 운전을 할 수 없게 된 가후쿠의 차를 20대 여성 미사키가 운전하게 됩니다.
미사키는 가후쿠의 사망한 딸과 출생연도가 같았습니다. 캡을 꾹 눌러쓴 여성 미사키가 가후쿠 차량의 운전석에 묵묵히 앉아 가후쿠를 안내합니다. 연극 무대로 향하는 매일 아침 차량 안에서 가후쿠는 죽은 아내가 생전에 녹음해둔 희곡 <바냐 아저씨>의 카세트테이프 녹음본을 매 순간 들으며 대본을 연습합니다. 가후쿠는 평생 바냐 역을 연기해왔고 온 국민이 그를 바냐 배역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가후쿠는 배역 안에 거주하길 늘 희망합니다. 딸과 아내의 죽음 이후 자신의 것이 아닌 것만 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가후쿠. 그리고 자신의 차량이 아닌 타인을 대리해 운전하는 미사키. 두 사람은 ‘상처 받은 생’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습니다.
딸을 잃었고, 아내의 불륜을 묵인했고, 결국 아내가 먼저 떠나면서 깊은 상처를 전혀 위로받지 못했던 가후쿠는 언제나 자신이 아닌 상태를 갈망합니다. 가후쿠가 무대에서 연기하는 배우도 일종의 가면을 쓰는 행위이죠. 소설엔 이 부분이 자세합니다.
“내가 아닌 것이 되는 게 좋아요?” (미사키)
“다시 원래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걸 안다면.” (가후쿠)
“원래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적은 없어요?” (미사키, 이상 32쪽)
다른 인격이 되어보고, 본래의 자아를 되찾았다가 다시 다른 인격을 여행하는 일은 가후쿠에겐 생존의 조건과 같습니다. 타인의 가면을 쓰는 일은 자신의 민낯을 감추는 행위입니다. 가후쿠는 평생 자신의 슬픔과 분노를 무대에서 숨기며 살았고, 홀로 운전을 하면서도 자신이 가장 오랫동안 연기했던 바냐 아저씨의 대사를 끊임없이 외우고 또 외웁니다. 술에 취한 엄마를 대신해 10대 때부터 운전대를 잡아야 했던 미사키도 자기 삶을 제대로 운행해본 적 없는 불운한 인물입니다. 시간이 흘러 한 차량에 동승한 두 사람은 이제 자기 상처를 향하는 일종의 치유 여정으로 진입합니다.
▶셰에라자드의 불안과 욕망
영화에는 하루키의 소설을 읽어야만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 여럿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오토의 몽상이 대표적입니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드라이브 마이 카>를 기본 축으로 삼지만 하루키의 또 다른 단편 <셰에라자드>에서 빌려온 부분도 상당합니다. 두 단편은 <여자 없는 남자들>에 수록돼있습니다.
셰에라자드는 아랍의 왕 샤리아에게 1000일 동안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수많은 여성들을 위기에서 구해낸 아라비안나이트의 등장인물입니다. 하루키의 소설 〈셰에라자드〉에서도 주인공 하바라는 스스로를 셰에라자드로 칭하는 여성과 잠자리를 갖습니다. 영화 속 오토와 가후쿠의 대화처럼 몽상의 대화를 이어나가면서 말이죠. 셰에라자드는 마치 최면에 걸린 것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이때의 최면은 타인보다는 자기 자신을 겨냥하고 있고, 이 최면은 결국 현실의 망각과 궤를 같이합니다.
‘셰에라자드는 그럴 수 있다. 그 뛰어난 화술의 힘으로 스스로를 홀릴 줄 아는 것이다. 뛰어난 최면술사가 거울을 이용해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것처럼.’ (206쪽)
여러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여기에는 결핍(아이의 죽음) 이후 현실이 아닌 허구를 갈망하려던 오토의 불안이 잠재돼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영화에 나오는 한 수면 아래 동물(칠성장어)처럼 그저 바위에 붙어 흔들리고 있는 마음을 원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겁니다. 자신을 속이기, 그것은 상실을 겪은 자의 죽음충동(라캉)으로 이어집니다.
<여자 없는 남자들>
▶“그리고 저세상에서 얘기해요”
하마구치 감독은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로 2021년 칸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의 천부적인 능력은 바로 안톤 체호프의 희곡 <바냐 아저씨>를 영화로 끌어들인 대목에서 증명됩니다. 영화에서 가후쿠가 연출을 의뢰받은 연극의 외형은 다(多)언어극이었습니다.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등지에서 온 배우들이 각자 자신의 모국어로 참여하는 독특한 연극이지요.
배우들은 상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연극을 이어갑니다. 상대가 발화하는 언어를 이해할 순 없지만 감정은 전달받을 수 있습니다. 배우들의 언어 중에는 들을 순 있지만 말은 하지 못하는 장애인 배우의 수어(手語)도 포함돼 있습니다. 관객은 무대 뒤편에 자막처럼 나오는 여러 언어를 번갈아 보면서 극을 이해하는 구조입니다.
가후쿠는 인물 간에 벌어지는 공허한 언어를 우리가 넘어서길 희망했던 것으로 이해됩니다. 우리는 모두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지만 사실 그 언어들은 빛깔이 없는 무의미한 언어활동일 때가 많습니다. 하마구치 감독이 영화에 삽입한 다언어극은 그런 의미에서 초(超)언어의 가능성을 열어둡니다. 하는 말은 달라도, 상대의 진심이 있다면 언어 없이도 대화가 이어질 수 있다는 함의를 담고 있지요.
가후쿠의 아내 오토의 이름 뜻은 ‘음(音)’이라고 합니다. 가후쿠가 올리는 연극 무대에는 불가해하지만 진심이 통하는 언어가 떠다니고, 가후쿠의 내면을 은유하는 사브 차량에는 이해할 수 있지만 마음이 비어 있던 오토의 목소리가 남았습니다.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언어는 전자일까요, 후자일까요.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의 최고 명장면은 가후쿠와 미사키가 폭설이 내린 산에서 서로의 상처를 울부짖는 장면일 것입니다. 둘은 부둥켜안고 “살아가야 한다”고 서로를 위로하죠.
눈물 한 방울쯤 떨구지 않을 수 없는 이 장면에서, 가후쿠와 미사키는 <바냐 아저씨> 주인공 바냐와 소냐가 됩니다. 소냐가 바냐 아저씨를 위로하는 무대 위의 대사는 여전히 음미할 만한 명문장입니다. “바냐 아저씨, 우리 살아가도록 해요. 길고 긴 낮과 긴긴밤의 연속을 살아가는 거예요. 운명이 가져다주는 시련을 참고 견디며…. 그리고 언젠가 마지막이 오면 얌전히 죽는 거예요. 그리고 저세상에서 얘기해요. 우린 고통 받았다고, 울었다고, 괴로웠다고요.”
[김유태 매일경제 문화스포츠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