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선 현대인의 삶을 세 단어로 요약한다. 메트로(metro·지하철)-불로(boulot·일)-도도(dodo·잠)이다. 정신없이 출근하고 죽도록 일한 다음 지쳐 잠드는 일, 우리 삶을 이처럼 선명하게 보여주는 표현도 드물다. 출퇴근은 산업혁명의 산물이다. 약 200년 전 기계를 중심으로 많은 사람이 동시에 일해야 할 필요와 함께 나타나서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농업혁명 이후 약 1만 2000년 동안, 인류는 일터와 삶터의 구분 없이 살아갔다. 집 근처에 논밭을 두고 돌보면서 살림을 꾸려갔다. 집 앓이는 우리 마음 깊은 곳에 본능처럼 깃들어 있다. 집 떠나 일하는 것은 영웅에게조차 큰 고통이었다.
집을 떠나 20년 동안 오디세우스는 눈부신 업적을 닦았다. 목마를 계책으로 내서 트로이 왕국을 멸망시키고, 용기를 품고 외눈 거인 키클롭스와 싸워 동료들을 구출했고, 신마저 감탄할 만한 지상낙원에서 아름다운 여신 칼립소의 사랑을 받았다. 칼립소는 날마다 그에게 죽지도 늙지도 않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한마디로, 성공한 삶이었다.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불행했다. 틈만 나면 집 쪽을 바라보면서 “눈물과 탄식과 고통으로 제 마음을 찢었다.” 이것이 우리의 평균 인생 감각이다. 집 떠나서 불후의 영웅이 되기보다 채소밭을 일구며 가족과 함께 작은 기쁨을 누리는 게 낫다는 것이다. 오디세우스는 말한다. “남편과 아내가 한마음 한뜻으로 가정을 보살피고 돌보는 일보다 더 훌륭한 것은 없다.” 지난 200년 동안, 인류에게 출퇴근은 스트레스를 초래하고, 좌절과 분노를 유발하고, 우울과 피로를 가져오는 불행의 여정이었으며, 사무실은 먹고살기 위해 온갖 심리적 고통을 치르면서 불편한 시간을 보내야 하는 불행의 온상이었다. 고스기 쇼타로 일본 와세다대 명예교수는 평소엔 유쾌하고 활기 넘치지만, 회사에만 가면 주의력, 집중력, 결단력 등이 떨어지고 기분이 나빠지면서 한없이 무력해지는 걸 ‘사내 우울’이라고 불렀다. 과중한 업무, 긴 근무 시간, 낮은 급여, 억압적 인간관계 등이 그 원인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 때, 많은 사람이 회사 대신 집에서 일했다. 특히 청년 세대에게 재택근무는 인기였다. 힘든 출퇴근 시간에서 벗어나고, 지루하고 깊이 없는 회의에서 놓여나며, 쓸데없는 눈치 보기에서 해방되고, 짜증을 유발하는 상사의 참견과 감시, 차별과 억압에서 탈출할 좋은 기회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팬데믹 세 해 동안, 재택근무는 우리를 더 행복하게 했을까?
사실, 재택근무는 정확한 용어가 아니다. 미국 인사관리처는 근무 형태를 사무실근무와 원격근무로 나눈다. 원격근무는 정해진 사무실 이외의 장소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걸 말한다. 그 장소는 집일 수도 있고, 카페일 수도 있고, 다른 사무 공간일 수도 있다. 원격근무 중 개인 전자장비를 이용해서 일하는 걸 텔레워크(telework)라고 부른다. 재택근무는 원격근무의 일종이다.
<우리는 출근하지 않는다>(반비)에서 미국 저널리스트 앤 헬렌 피터슨과 찰리 위절은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고 일하는 원격근무의 가능성을 유연성, 기업 문화, 사무실 테크놀로지, 공동체 등 4가지 차원에서 탐구한다. 저자들에 따르면 원격근무는 피할 수 없다. 앞으로 사무 노동자들은 개인 기기를 들고 전통적 사무실 공간과 공유 사무실, 카페, 친구 집 식탁, 집 등을 넘나들면서 하이브리드 형태로 일하게 된다.
원격근무엔 해방적 힘이 있다. 원격근무는 사람들을 더 행복하고 더 건강하게 할 수 있고, 공동체를 더 멋지고 더 훌륭한 곳으로 바꿀 잠재력이 있다. 원격근무를 하면 가사, 육아, 돌봄 노동을 보다 공평히 나눌 기회가 커지고, 사람들이 취미 활동이나 시민사회 활동에 더 열렬히 참여할 가망성이 높아진다. 그러나 원격근무는 그 자체로 사내 우울을 치유하고 인간 소외를 억제하며 공동체를 활성화하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를 설계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원격근무가 인간 행복을 증진하고 사회 진보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려면, 먼저 일을 바라보는 관점부터 변해야 한다. 무엇보다 바람직한 미래의 업무 형태는 지금과 달리 시간을 덜 들이고 일을 더 적게 하는 것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현재의 사무실 근무처럼 일이 영혼을 탈탈 털 때, 사람들은 실제 일하는 대신 주로 일하는 척만 한다. 빈둥대면서 시간 땜질만 하는 것이다.
원격근무가 성공하려면 시간이 아니라 질이 업무 중심에 놓여야 한다. 더 적은 시간, 더 집중해 일하는 게 인간을 창의적으로 만든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이를 위해 일이 유연해져야 한다. 직원들이 가장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는 시간, 즉 선호 시간대에 맞춰 조직을 편제하고, 업무 일정, 근무 시간, 근무 장소 등을 직원 자율로 정하게 해야 한다. 일의 유연성 확보는 미래 업무 혁신의 핵심 과제다.
기업 문화 혁신도 필요하다. 기업들은 흔히 두려움을 못 이기고 원격근무를 하는 직원들을 순간까지 관리하려 한다. 이 때문에 원격근무는 더 자주, 더 길게 온라인에서 회의하고, 시시콜콜한 것까지 일일이 지시하고 실시간 답변을 요구하는 등 강박에 감염되곤 한다. 그러나 직원들이 회사 밖의 삶을 누리는 걸 이해하지 못하면 원격근무는 엉망이 된다. 일과 삶의 균형을 무너뜨리면서 직원들의 자존감과 유대감을 빼앗고, 그들을 불행과 우울로 몰아갈 수 있다.
사무 테크놀로지 활용도 중요하다. 사무 테크놀로지란 사무 공간 배치 같은 물질적 구조화, 슬랙이나 줌 같은 프로그램으로 어떻게 소통할지를 정하는 디지털 구조화 등 업무 환경 조성에 필요한 모든 기술을 말한다. 지금까지 이 기술은 주로 직원들의 업무 시간을 늘리고, 업무를 감시하는 데 집중됐다. 그러나 업무 수행 방식이 바뀌면, 사무 테크놀로지도 달라져야 한다. 원격근무에서 감시와 통제는 단기 생산성은 올릴지 모르나, 장기적으로 볼 때 사생활 침해로 이어지고 회사에 대한 신뢰를 파괴함으로써 창조성을 북돋우는 양질의 기업 문화가 구축될 기회를 빼앗는다.
마지막으로 원격근무는 직원들이 더 많은 멀티태스킹을 해내고, 가정에서 더 많은 역할을 감당하며, 자질구레한 문서에 얽매여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방향으로 설계돼선 안 된다. 그보다 원격근무는 하루 종일 회사에 붙잡혔던 직원들을 해방해 그들이 자신을 돌보고 삶의 의미와 가치를 더 많이 생각하며, 가족이나 이웃과 함께 더 나은 삶을 이룩하는 데 시간을 쓰도록 이끌어야 한다. 이것이 좋은 삶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사무실에서 벗어나는 것이 개인을 기쁘게 하고, 공동체를 행복하게 할 수 없다면 현재보다 더 큰 공허를 부를 뿐이다.
장은수 문학평론가
읽기 중독자. 출판평론가. 서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민음사에서 오랫동안 책을 만들고,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현재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로 주로 읽기와 쓰기, 출판과 미디어에 대한 생각의 도구들을 개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