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들일 수 없는 이별이었다. 7년의 사랑이 오해 하나로 허무하게 무너져버리다니. 자신은 결코 미술품을 훔친 도둑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믿어주지 않았다. 그녀의 사랑을 되돌릴 수 없었다. 절망한 남자의 발아래로 센강이 흐른다. 그렇게 그들의 사랑도 흘러가버렸다. 흔한 이별의 순간이 아니다. 센강이 새롭게 부활하는 엄청난 순간이었다. 실연당한 남자,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다. 그가 연인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과 헤어진 후, 센강을 건너며 쓴 시가 “미라보 다리 아래 센강은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흐른다”로 시작하는 유명한 시 ‘미라보 다리(Le pont Mirabeau)’다. 기욤과 마리를 연결시켜 준 사람이 바로 거장 파블로 피카소이고, 도난당한 미술품은 (놀라지 마시라) 루브르의 보물 ‘모나리자’다. 이쯤 되면 정말 화려한 라인업이라 부르기 충분하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1911년 8월 21일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던 다빈치의 작품 ‘모나리자’가 감쪽같이 사라진다. 경찰은 한 신문사에 전달된 제보에 자신이 모나리자를 훔쳤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이름이 아폴리네르가 쓴 소설의 주인공이라는 점 때문에 기욤과 그의 주변 인물 피카소를 용의자로 지목한다. 기욤과 피카소는 1주일간 조사를 받고 혐의가 없어 석방되지만, 피카소는 조사과정에서 기욤을 알지 못한다고 거짓 자백을 해 둘 사이는 멀어지게 된다. 기욤과 연인 마리도 이 사건으로 헤어지고 만다. 진범은 2년 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체포되고, 모나리자도 다시 루브르로 돌아오며 사건은 마무리된다.
모나리자가 돌아오기까지 2년 동안 지속된 언론의 관심은 모나리자를 세기의 미술품으로 만드는 토대가 된다. 모나리자는 현재 20조원의 경제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실연의 아픔을 노래한 ‘미라보 다리’가 실린 기욤의 시집 <알코올>도 말 그대로 초대박을 치고 이 시로 인해, 센강은 전 세계인의 마음속에 강렬한 인상으로 남게 된다. 세계 각지에서 연인들이 찾아와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그런 상징적인 장소로 자리잡은 것이다. 하나의 절도 사건이 센강과 파리를 세계인들의 마음속에 신앙처럼 각인시켰다.
하지만, 센강에는 낭만만이 흐르는 건 아니다. 미라보 다리 아래는 원래의 자연으로 되돌아가려는 파리지앵들의 노력이 아울러 흐르고 있다. 시인 기욤이 이별을 슬퍼하던 때, 센강의 수질은 사실 시의 감상이 확 깨질 정도로 최악이었다. 1889년 6월 16일자 피가로(Le Figaro)에 따르면, 당시 한 해 센강에서 개 2021마리, 고양이 977마리, 돼지 66마리의 사체와, 3066㎏ 이상의 육류 부산물이 수거됐다고 한다. 작가 에밀 고티에는 “우주에서 가장 정화된 종족이 죄의식 없이 마시는 사체가 떠다니는 더러운 물”이라고 센강을 묘사하기에 이른다.
센강을 깨끗하게 되돌리기 위한 그들의 목표는 단순하고 명확했다. 수영을 할 수 있는 센강. 1783년 루이 16세가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센강에서의 수영을 금지하기도 했는데, 센강에서의 수영은 파리지앵들에게는 숙명과도 같은 일상의 작은 사치다. 1900년 제2회 파리 올림픽 당시 센강에서 수영대회가 열리기도 했지만, 피부병, 요로감염 등의 증가와 배설물 및 사체에서 나오는 박테리아균에 대한 과학적 인식이 높아지며 1923년 센강에서의 수영은 전면 금지되고 만다. 센강의 수질을 개선하기 위해 처음 시도된 것은 하수도 시설의 보강이었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이 마리우스를 안고 도망치는 공간으로 유명한 파리의 하수도는 19세기 600여㎞에서 현재 총 2300㎞까지 확장됐다. 파리의 도로 전체 총합이 1100㎞라고 하니, 지상의 2배에 이르는 거대한 지하도시라 할 만하다. 이 하수도를 통해 모인 하수는 파리 서북쪽 아쉐흐에 위치한 종말처리장에서 정화 후 센강에 다시 방류되는데, 센강을 오가는 많은 선박에서 배출하는 오수, 주변 지류의 오염, 강우 시 하수 유입 등으로 수질은 여전히 개선을 요하고 있다.
프랑스 22대 대통령 자크 시라크가 파리시장으로 재직하던 1990년부터 도시 생태학(E‘ cologie urbaine)적 관점에서 센강 수질 개선이 논의되기 시작한다. 특히, 2024년 파리 하계올림픽을 계기로 센강에서 수영을 다시 가능케 하려는 파리지앵들의 각오는 사뭇 비장하다. 현 이달고 파리시장은 10억유로(약 1조4000여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수영장 20개 규모의 거대한 배수저장공간을 설치하는 내용을 담은 ‘센강에서의 수영을’ 프로젝트를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다. 지난 6월 유럽연합의 수영가능 수질관리(Gestion de la qualite‘ des eaux de baignade et abrogeant la directive 76/160/CEE)에서 센강은 수영가능등급을 받아, 파리지앵들을 고무시켰다. 하지만 올림픽에서 수영 가능한 수질에는 여전히 미흡하다는 조사보고서가 지난 8월 7일 발표되면서 아쉬움을 주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파리지앵들이 결코 포기하고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수질 개선을 위한 도시생태학적 접근이라는 건, 단순하게 기반 시설을 설치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도시를 살아가는 시민들이 수질을 개선하기 위해 삶의 방식을 함께 개선해 나가는 것을 말한다. 한순간 이별의 감정을 세계인의 감상으로 발전시킨 것처럼, 자연을 일상속에서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우리의 목표가 돼야 한다는 점을 ‘센강에서의 수영’을 통해, 파리지앵들이 세계인들의 마음속에 각인시켜주리라 믿는다. 우리에게도 기욤 아폴리네르에 버금가는 시인이 있다. 고려시대 시인 정지상. 그는 한시 ‘송인’에서 “대동강물이 마르겠는가, 해마다 이별의 눈물 더하는데(大同江水何時盡 別淚年年添綠波)”라는 천재적인 감상을 기욤보다 900여 년 앞서 남긴 바 있다. “푸른 물결에 더하는(添綠波)”이란 문구가 인상적이다. 요즘 표현으로 힙(hip)하다. 기후변화, 지구온난화에 대응하는 노력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에 적합한 말이다. 세계인의 감성이 모여 센강이 기억되는 것처럼, 원래 그대로의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인류의 노력이 마르지 않고 한데 모여 기억될 수 있도록 첨록파(添綠波)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