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병과 비만은 전 세계적인 ‘유행병’이라 불릴 정도로 그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이러한 증가는 일부 지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전 세계적인 현상이며, 특히 최근 30여년간 급격한 산업화 및 서구화가 진행된 아시아 지역에서는 서구에 비해 증가세가 현저히 높아 향후 훨씬 심각한 경제적, 사회적 문제를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대한당뇨병학회는 최근 제2형 당뇨병의 위험인자를 가진 고위험군은 만 18세 이상 성인이라면 나이와 관계없이 매년 선별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취지의 진료지침 개정안을 내놨다. 이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당뇨병이 생겨 유병 기간이 길어질수록 합병증 위험이 커진다는 국내외 연구 결과와 함께 제2형 당뇨병의 위험인자인 비만 비율이 급증하면서 20~30대 젊은 당뇨병 환자가 크게 늘었다는 최신 국내 조사 결과를 반영한 것이다. 20~30대에서 BMI 35.0㎏/㎡인 고도비만 환자가 급격히 늘어난 점을 고려해 복부비만(남성의 경우 복부둘레≥90㎝, 여성≥ 85㎝)도 제2형 당뇨병의 주요 위험인자로 추가했다. 당뇨병은 혈액을 통해 공복혈당 또는 당화혈색소 수치를 확인하는 것만으로 선별검사가 가능하다.
당뇨병의 3대 증상으로 불리는 다음·다뇨·설명되지 않는 체중 감소 소견을 보이면서 ▲식사와 관계없이 무작위 측정한 혈당 수치가 200㎎/㎗ 이상 ▲8시간 공복 후 측정한 혈당이 126㎎/㎗ 이상 ▲75g 경구당부하 2시간 후 측정한 혈당이 200㎎/㎗ 이상 ▲당화혈색소 수치가 6.5% 이상 등 4가지 기준 한 가지라도 해당하면 당뇨병으로 진단된다.
당뇨병 전 단계 역시 아직 당뇨병이 아닐 뿐 단기간에 질환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큰 상태다. 일반적으로 매년 당뇨병 전 단계의 8% 정도가 당뇨병으로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학회가 선별검사 시작 나이를 바꾼 당뇨병 진료지침 개정안을 낸 것은 지난 2021년 이후 2년 만이다. 2021년 기준 국내 당뇨병 환자는 600만 명을 넘어섰다. 아직 당뇨병은 아니지만, 공복혈당이 100~125㎎/㎗ 또는 당화혈색소가 5.7~6.4%로 정상 범위를 벗어난 상태인 당뇨병 전 단계 인구는 약 1583만 명에 달했다. 대한민국 국민 중 10명 중 4명이 당뇨병이거나 당뇨병에 걸릴 위험이 큰 단계란 의미다.
고혈압과 함께 한국인의 최대 만성질환인 당뇨병의 관리수준은 저조하다. 학회가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를 토대로 발간한 당뇨병 팩트시트에 따르면 당뇨병이 있는 30세 이상 성인의 65.8%만이 질환을 인지하고 있었다. 당뇨병 치료받는 경우는 10명 중 6명에 그쳤고, 그중 25%만이 당뇨병 환자의 관리 목표로 삼는 당화혈색소 6.5% 미만인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인을 비롯한 동양인은 서양인과 달리 비교적 낮은 BMI에서도 비만 관련 질환 및 당뇨병이 높다. 중증 비만이 아니라도 일찍부터 질환 위험을 인지하고 식단, 운동 등 생활 습관 교정을 통해 당뇨병 예방에 힘써야 한다는 의미다.
한편 복부비만은 대장암과 유방암, 악성 뇌종양 등 암 발생과 관련이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최근 당뇨병 환자의 복부비만 정도와 악성 뇌종양 중 하나인 신경교종 발생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서울아산병원 내분비내과 고은희·조윤경 교수, 숭실대학교 정보통계보험수리학과 한경도 교수팀은 20세 이상 당뇨병 환자 189만 명을 최대 10년간 추적 관찰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복부비만이 심할수록 신경교종 발생률이 높아지는 것을 확인했다고 최근 밝혔다.
특히 심한 복부비만(허리둘레 남성 100㎝, 여성 95㎝ 이상)의 경우 복부비만이 아닌 환자에 비해 신경교종 발생률이 최대 37% 높게 나타났다. 허리둘레가 남성 90㎝ 이상, 여성 85㎝ 이상인 경우를 복부비만이라고 한다.
2019년 기준 우리나라 성인의 복부비만율은 약 24%인데 당뇨병 환자의 경우 약 63%로, 당뇨병 환자의 복부비만율이 약 2.6배 높다. 악성 뇌종양인 신경교종은 대부분 초기에 특별한 증상이 없어 늦게 발견되다보니 2년 생존율이 약 26%일 정도로 치료 결과가 좋지 않다. 따라서 발생 위험 요인을 관리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번 연구 결과로 당뇨병 환자는 복부비만 관리에 더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서울아산병원 내분비내과 고은희 교수팀은 국민건강보험공단 데이터를 활용해 2009년부터 2012년 사이에 건강검진을 받은 당뇨병 환자 189만 명을 대상으로 최대 10년간 추적 관찰한 자료를 분석했다.
먼저 당뇨병 환자 약 189만 명 가운데 2009년부터 2018년 사이에 신경교종이 발생한 환자는 총 1846명이 었다. 연구팀은 당뇨병 환자를 허리둘레에 따라 5㎝ 단위로 1 그룹(남성 80㎝ 미만, 여성 75㎝ 미만)부터 6그룹(남성 100㎝ 이상, 여성 95㎝ 이상)까지 총 6개 그룹으로 나눴다. 당뇨병 환자들의 나이, 성별, 흡연 여부, 비만도 (BMI), 당뇨병 유병 기간, 인슐린 사용 여부 등을 바로잡아 그룹별 신경교종 발생률을 분석한 결과, 1그룹을 기준으로 신경교종 발생률이 ▲2그룹 5% ▲3그룹 18% ▲ 4그룹 28% ▲5그룹 32% ▲6그룹 37% 증가해 허리둘레가 늘어날수록 신경교종 발생률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65세 미만의 젊은 당뇨병 환자의 경우, 65세 이상의 고령 환자보다 복부비만에 의한 신경교종 발생률의 증가 정도가 16% 더 높게 나타났다. 고은희 서울아산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이번 연구는 대규모 당뇨병환자를 대상으로 복부비만과 신경교종 발생 사이의 상관 관계를 밝힌 점에서 의미가 있다”라며 “신경교종의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지방세포가 체내 염증 반응을 유발해 신경교종 발생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보인다. 당뇨병 환자는 복부비만이 생기지 않도록 평소 매일 30분씩 걷는 등 운동을 꾸준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플로스 원(PLoS One, 피인용지수 3.752)’에 최근 게재됐다.
박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