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자동차 업계에서 뜨거운 감자는 단연 중국산 전기차다. 지난해 ‘중국산 테슬라’ 광풍이 불었던 것에 이어 올해엔 BYD 승용 전기차의 한국 출시까지 앞두면서다. 여기에 최근 샤오미가 내놓은 4000만원대 ‘짝퉁 타이칸’ SU7까지 등장해 세계인의 이목을 끌었다.
내수 시장에서만 존재감을 보여온 중국산 전기차가 국경을 넘기 시작하면서 비단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 중국이 만든 자동차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처음으로 한국에 출시된 5000만원대 중국 상하이 공장 제조 테슬라 스포츠유틸리티차(SUV) 모델Y 후륜구동(RWD) 모델은 단적으로 중국산 자동차에 대한 소비자의 심리적 장벽이 사라졌다는 점을 보여준다.
테슬라는 물론 미국 기업이지만 모델Y RWD는 중국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번 사례는 중국에서 만들어진 테슬라 전기차가 처음으로 한국에서 판매된 것이라 큰 주목을 받았다. 초기 우려와 달리 테슬라라는 높은 브랜드 충성도를 기반으로 이 차는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오히려 미국산 테슬라 모델Y보다 품질이 좋다는 전문가들 의견까지 나온 상황이다. 실제로 일부 외국 자동차 전문 유튜버들은 중국산 모델Y와 미국산 모델Y의 품질을 직접 비교하는 영상을 통해 중국산의 품질 문제에 대한 오해를 불식하기도 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올해 3월까지 판매한 테슬라 모델Y는 2만 대에 육박한다. 지난해 5월 이전 판매량에 중국산이 아닌 미국산 모델Y가 포함됐다는 점을 고려해도 놀라운 판매량이다.
테슬라 모델Y의 한국 시장 내 인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테슬라 모델Y는 올해 1분기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수입차로도 꼽힌다.
앞서 올해 환경부는 전기차 보조금 지원 기준을 변경한 바 있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평균 단가가 높아 구매자들에겐 정부와 지자체에서 제공하는 지원금이 상당히 중요하다. 이번 지원 기준 변경을 통해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탑재한 테슬라코리아 모델Y에 대한 정부 보조금이 크게 줄었지만 이에 대응해 회사가 판매 가격을 낮추면서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 테슬라코리아는 중국에서 생산한 전기차 모델3 하이랜드까지 내놓으면서 최근 역성장하는 수입차 시장에서 의미 있는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 시장에서 ‘전기차 혹한기’가 불어닥치며 테슬라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한국 시장에선 선전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국내에서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관심 바통’을 이어가는 건 중국 전기차 기업인 BYD다. 이미 세계 시장에서 지난 4분기 단일 판매량으로 테슬라를 꺾고 세계 1위 전기차 판매 기업에 등극한 BYD가 드디어 한국 시장에 승용 전기차를 내놓겠다는 계획이 알려지면서다.
BYD코리아는 2016년 한국에 진출해 전기 지게차나 전기 트럭과 같은 상용차만을 판매해왔다. 올해엔 본격 대중 고객을 상대로 승용 전기차를 출시하겠다는 것이다. 업계에선 국내에 전기 중형급 세단과 SUV를 포함해 최소 3종 이상의 승용차를 출시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한국 시장 판매 성공 여부에 따라 더 다양한 차종이 국내에 들어올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상용차와 달리 대중 소비자 대상의 승용차는 판매량이 수만 대(수입차 기준)에 이르는 큰 시장이라 의미가 크다. 현재 BYD코리아는 수입차 업계 영업·마케팅·법무 등 관련 전문 인력들을 공격적으로 대거 채용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BYD 한국 지사 인력 수십 명이 전기 트럭을 판매했던 과거와 달리, 대중을 상대로 한 승용차를 판매하기 위해선 수백 명 수준의 대규모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판매거점, 사후관리(AS) 등 상당한 투자가 수반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BYD코리아는 국내에서 온·오프라인 거점을 망라하는 적극적인 판매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점쳐진다.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이번엔 BYD가 작정하고 한국 시장 진출을 준비 중이다. 만약 BYD가 보조금을 포함해 2000만원대 합리적인 전기차를 선보였을 때 과연 소비자가 어떻게 반응할지 관심이 쏠린다”라면서 “미국 기업이 만든 중국산 테슬라와 달리 ‘중국 기업이 만든 중국 제조 전기차’는 차원이 좀 다른 이야기”라고 말했다.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인기 바통을 이어가는 건 샤오미다. 샤오미가 최초로 전기차 SU7을 내놓으면서다. SU7는 중국의 거대 IT 전자 기업인 샤오미가 전기차를 만들었다는 자체로 큰 주목을 받았다.
중국 현지 매체 보도를 종합하면 지난 3월 온라인에서 주문받으면서 출시된 샤오미 SU7은 약 30분 만에 5만 대가 팔릴 정도로 열풍이 불었다.
SU7 표준 모델은 1회 충전으로 최대 700㎞를 주행할 수 있다. 전기차 충전 시 소비자의 불편함이 큰 상황에서 SU7은 단 15분 충전으로 350㎞를 달릴 수 있다는 점도 강조한다. 이 차의 최고속도는 210㎞/h,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가속하는 데 걸리는 시간(제로백)은 5.28초다.
레이쥔 샤오미 최고경영자(CEO)는 당시 “SU7은 테슬라 모델3보다 3만위안(약 570만원) 저렴하다”라고 강조했다.
한국 소비자 사이에서 샤오미가 선보인 전기차 SU7 국내 진출에 대한 문의도 빗발치고 있다. 샤오미 전기차 직구에 대한 관심까지 생길 정도다.
당장 샤오미 전기차까지 한국에 공식적으로 들어올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그만큼 한국 소비자 사이에서도 중국산 자동차에 대한 심리적 진입 장벽이 크게 낮아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4000만원대에 누릴 수 있는 타이칸’이라면 한번 고민해볼 만하다는 점이다.
물론 중국 기업이 넘어야 할 산도 여전히 높다. 현대차·기아라는 자국 브랜드가 국내 점유율을 70% 이상 차지하는 한국 자동차 시장을 돌파해야 하는 데다 ‘중국산 제품’에 대한 한국 소비자의 고정관념과 심리적 장벽까지 무너뜨려야 한다는 점이다. 까다로운 국내 전기차 정부인증 등도 상당한 허들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중국산 전기차의 국내 진출을 가장 예의 주시하는 것은 현대차·기아를 비롯한 완성차 업계다. 특히 중국산 전기차와 직접적으로 경쟁해야 하는 대중 브랜드로선 당장 직접적인 위기가 될 수 있다.
지난해 테슬라 모델Y가 처음 출시했을 당시 판매량이 급속도로 늘어나며 국내 전기차 보조금을 휩쓸어간 전례로 보아 ‘가성비’ 높은 외산 전기차가 한국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특히 세계 시장에서 눈에 띄는 성장을 보이는 BYD의 승용 모델이 한국 시장에 출시됐을 때의 ‘임팩트’는 기존 것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최근 전기차 시장 침체기에 중국산 전기차까지 밀려들기 시작하면서 국내 시장에서 주요 완성차 기업들은 중저가형 전기차를 더욱 적극적으로 선보이면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가격을 낮추고 스펙을 높이는 등 상품성 확보에 노력하는 모양새다.
현대차는 최근 주행거리를 늘렸음에도 가격을 동결한 아이오닉5 전기차를 출시했다. 전기차 가격의 30~40%를 차지하는 배터리 용량을 더 늘리면서도 출고 가격을 유지해 이를 사실상 ‘가격 인하’라고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전기차 성장 둔화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현대차의 의지라는 해석이다. 현대차는 아울러 경차인 캐스퍼 일렉트릭(EV) 출시도 앞두고 있다. 현대차는 큰 기대를 모으고 있는 3열 전기 SUV인 아이오닉9(가칭)도 출시 준비를 하고 있다.
기아는 더 적극적이다. 기아는 가격대를 더 합리적으로 설정한 EV3 등 보급형 전기차를 선보일 계획이다. 기아는 한국·북미·유럽 등 주요 시장에서는 EV3를 시작으로 EV2, EV4, EV5 등 대중화 6종을 투입하겠다는 공격적인 계획을 내놓았다. 전기차 풀 제품군(라인업)을 갖추고 글로벌 생산 거점도 8곳으로 마련해 2026년 전기차 연간 100만 대 판매 시대를 열겠다는 것이다. 최근 기아 하이브리드 차종을 확대하겠다는 새로운 계획을 추가하긴 했지만 중장기로 전동화 전환을 지속 추진하겠다는 계획엔 변화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KG모빌리티 첫 전기차 토레스 EVX도 ‘가성비 전기차’로 꼽히는 인기차다.
이 밖에 볼보코리아 등 수입차 업계에서도 가격대를 낮춘 전기차를 앞다퉈 선보이며 시장 침체를 극복하겠다는 계획이다.
수많은 완성차 제조사가 가격 경쟁력을 높이며 앞으로 다가올 ‘중국산 전기차 대중화’ 시대에 대비하고 있지만 경쟁이 본격화되면 출혈 경쟁 등 격전이 펼쳐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수익성을 낮추고서라도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기 위해 앞다퉈 가격을 더 내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전기차 충전 인프라 스트럭처 등도 수반돼야 할 점이다.
버스, 트럭 등 국내 상용차 시장에서 이미 중국 전기차의 한국 내 점유율은 50%를 넘겼다. 성능 차별화는 크지 않은 대신 전기 버스 1대당 중국 버스가 국산 대비 30% 가까이 저렴한 결과다.
국내 상용차 시장에서 보여준 중국산 전기차의 시장 점령이 승용차 시장에서도 벌어질 가능성에 많은 이가 우려하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전기차 기업이 미국을 제외한 유럽, 중동, 동남아를 장악한 데 이어 한국 시장까지 노리고 있다”라면서 “현대차, 기아를 비롯한 국내 주요 완성차 기업들이 상당히 긴장해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중국산 자동차 수입액은 5556억원으로 지난해보다 무려 378%나 급증했다.
같은 기간 독일, 일본, 미국 등 국가의 자동차 수입액은 두 자릿수 이상 하락했다. 상용차가 대부분을 차지한 자동차 수입 통계 수치이지만, 중국산 자동차의 한국 공습이 심상치 않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박철완 서정대 스마트자동차학과 교수는 “지난해 4000만원대(보조금 포함)로 출시된 중국산 테슬라는 한국 전기차 시장에 ‘세컨드 웨이브’라고 불릴 만큼 큰 영향을 줬다”라면서 “앞으로도 한국 시장에서 중국산 전기차의 행보를 예의 주시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박소라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5호 (2024년 6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