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년 만에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5월 14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지난해 10월 부산 회담 이후 약 6개월 만이다. 미중은 이번 회담에서 미중 무역전쟁의 ‘휴전모드’를 이어가는 데 뜻을 모았다. 반도체·희토류·관세 등에서 더 이상의 확전을 피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이란 전쟁과 대만 문제를 두고는 미묘한 온도차를 보였다. 미국은 이란 전쟁 종전에 중국이 역할을 하기로 했다고 강조한 반면 중국은 중동 정세를 논의했다며 원론적 입장만 보였다. 또 중국은 자신들의 핵심 이익인 대만 문제에 대해 잘못 처리하면 충돌할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미국은 대만 문제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회담 직후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이번 회담 결과에 대해 “우리는 매우 좋은 회담을 했고, 우리는 그들로부터 몇 가지를 얻어냈다”고 밝혔다. 우선 무역·투자 분야 성과와 관련해 “시 주석이 보잉 항공기 200대를 주문하기로 했다”며 “보잉은 150대를 원했는데 200대를 확보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말 대단한 일이고 많은 일자리를 의미한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산 대두를 중국이 대량 구매하기로 했다고도 전했다. 그는 “중국은 우리 농민들을 위해 (미국산) 대두를 대량으로 수입할 예정이고, 우리 농산물을 많이 구매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부산 회담을 계기로 중국의 미국산 대두 수입이 재개됐는데 그 수입량을 더 늘리기로 했다는 취지다.
또 중국이 미국산 석유를 구매하길 원한다는 점도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가 합의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한 가지는, 중국이 미국산 석유를 구매하길 원한다고 했다는 것”이라며 중국 선박들이 텍사스와 루이지애나, 알래스카로 가기 시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들 지역은 미국의 대표적인 에너지 생산 거점이다.
미국 신용카드사 비자(Visa)의 중국 시장 진출 문제를 건의했다는 점도 소개했다. 이번 방중에 함께한 주요 미국 기업인 중에는 비자의 최고경영자(CEO)도 포함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중국에서 비자를 사용하는 건 어떤가’라고 말했다”라며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들(비자)은 배척당해왔고, 어쩌면 그것이 풀릴지도 모른다”고 했다. 다만 양측에서 발표한 회담 결과에서 미국의 반도체 제재와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 등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이와 관련해 외신들은 올해 초 미국 상무부는 엔비디아의 고성능 인공지능(AI) 반도체인 H200의 대중 수출을 승인했으나, 이후 실제로 중국에 배송된 것은 지금까지 한 건도 없었다고 전했다.
시 주석은 이번 회담 모두발언에서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거론하며 신흥 강국으로서 중국의 부상을 과시했다. 투키 디데스의 함정은 그레이엄 앨리슨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제시한 개념으로 스파르타와 아테네 간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쓴 그리스의 역사가 투키디데스의 이름에서 따온 용어다. 신흥 강대국이 부상하면 기존 강대국이 이를 견제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전쟁이 벌어진다는 이론이다.
시 주석은 이날 회담에서 대만 문제를 잘 처리하지 않으면 양국 관계 전체를 ‘위험한 지경’으로 밀어 넣을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대만 독립과 대만해협의 평화는 물과 불처럼 서로 섞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대만해협의 평화·안정을 수호하는 것은 중·미 양국의 최대공약수”라고도 덧붙였다. 중국은 회담 전 대만 문제, 민주주의와 인권, 발전 경로와 정치 시스템, 중국의 발전 권리 등 4대 레드라인을 발표했다. 시 주석의 대만 발언은 정상회담 도중에 중국 관영 신화통신을 통해 공개됐는데, 이는 그만큼 중국이 대만 문제와 관련한 미국의 입장에 불쾌감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초강대국’ 미국을 향한 불만을 트럼프 대통령의 면전에서 표출한 것은 중국이 미국과 대등한 관계라고 인식하고 있으며,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 물러설 뜻이 없음을 드러내는 장면으로 해석된다.
시 주석은 또 “이것들은 말하자면 역사적 질문이자, 세계의 질문이며, 인민의 질문”이라며 “나와 당신이 대국 지도자로서 함께 써 내려가야 할 시대의 답안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중·미 관계의 안정은 세계에 이로운 일이다. 양측은 협력하면 모두에게 이롭고, 싸우면 모두가 상처를 입는다”고 덧붙였다. 이와 달리 미국 측은 대만 문제와 관련해 어떠한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대신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문제를 두고 중국과 논의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호르무즈 해협 개방 등의 부분에서 시 주석과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점을 부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는 (이란에) 군사 장비를 제공하지 않겠다고 말했다”며 “이는 강력한 발언”이라고 말했다. 이어 “시 주석은 동시에 중국이 그곳에서 석유를 많이 수입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며 “(시 주석은) 호르무즈해협이 개방되길 원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또 “시 주석은 이란이 (해협에서) 통행료를 징수한다는 사실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호르무즈해협 문제에 대해 “시 주석이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기꺼이 돕고 싶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그동안 이란산 원유의 최대 수입국인 중국이 이란 종전 합의와 호르무즈해협 개방에 있어 자국에 유리한 역할을 해달라고 압박해왔다.
그러나 중국은 원론적인 입장만 발표했다. 첫날 회담이 끝난 뒤 관영 신화통신은 “양국 정상이 중동 정세 등 주요 국제 문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보도했다. 그러고는 이튿날인 5월 15일 중국 외교부는 자료를 내고 “미국과 이란이 휴전에 도달하고 협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선 일은 국제 사회의 환영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에는 초호화 미국 기업인 경제사절단이 동행했다. 이들은 미중 정상회담 당일 시 주석과 회담을 가졌다. 회담에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젠슨 황 엔비디아 CEO, 팀 쿡 애플 CEO 등 미국 산업·기술계를 대표하는 거물급 인사 17명이 배석했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이번 방문에 미국 경제계의 뛰어난 대표들을 데려왔다”며 “이들은 모두 중국을 존중하고 중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기업인을 한 명씩 시 주석에게 소개하면서 “(자신이) 그들에게 대중국 협력 확대를 장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이날 시 주석은 “중국 개방의 문은 앞으로 더 크게 열릴 것”이라며 “미국 기업들은 이미 중국 개혁·개방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고 중국은 미국이 호혜 협력을 강화하길 환영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도착하기 전 ‘시 주석에게 중국을 개방해달라고 요구할 것’이라고 밝힌 데 대한 화답 성격으로 풀이된다.
시 주석은 이어 “중·미 경제·무역 관계의 본질은 상호 호혜와 윈윈”이라며 “(양측이) 이견에 직면했을 때 평등한 협상이 유일하게 올바른 선택”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전날 중·미 협상팀이 전반적으로 균형 잡히고 긍정적인 성과를 도출했고 이는 양국 국민과 세계 모두에 좋은 소식”이라고 평가했다.
[송광섭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