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이 게임 산업 생산성을 최대 100배 가까이 높일 것이다.”
글로벌 3D 엔진 플랫폼인 유니티의 마크 휘튼(Marc Whitten) 수석부사장의 말이다. 원본 데이터를 학습해 유사하면서도 독창적인 작품을 만드는 생성형 AI가 게임업계 판도를 바꾸고 있다. 주요 게임 회사들은 생성형 AI 기술 개발(R&D)과 함께 서비스 도입에도 속도를 높이고 있다. 예컨대 게이머들과 실시간으로 자연스러운 대화를 하는 챗봇, 사람 얼굴을 다양한 스타일로 변환해주는 3차원(3D) 아바타 등 기술을 접목시켜 게임 몰입도를 키우는 게임체인저로 활용한다는 전략이다.
게임업계 거물로 통하는 휘튼 부사장은 얼마 전 미국 샌프란시스코 유니티 본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생성형 AI가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방식으로 세상을 크게 변화시킬 것”이라면서 “(AI가) 크리에이터와 아티스트가 5배, 10배, 100배 이상의 생산성을 실현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령 그동안 인간과 꼭 닮은 디지털 휴먼을 만드는 데 6명에 달하는 아티스트가 4~5개월 밤낮없이 작업해야 했다면, 생성형 인공지능을 활용할 경우 수분 만에 작업을 끝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게임업계는 AI 기술을 오래전부터 준비해왔고, 이용자들이 직접 느끼는 것보다 더 빠르게 AI를 도입 중이다. 생성형 AI를 활용하면 텍스트, 오디오, 이미지 등 콘텐츠를 새롭게 거의 무제한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하다. 기존 콘텐츠들의 패턴을 학습해 추론 결과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게임사들은 게임 콘텐츠 제작에 AI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사람 얼굴을 다양한 스타일로 변환해주는 3D 아바타 등 기술이 고도화돼 게임 제작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다. 또 게임 캐릭터가 인간과 대화를 나누고, AI와 함께 게임을 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게임업계에선이를 게이머가 게임 속 가상 캐릭터와 실시간 소통하면서 실제 사람들과 함께 게임하듯 협력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서비스로 통칭하면서 ‘AI NPC(Non-Player Character)’라고 부르고 있다.
넷마블, 엔씨소프트, 크래프톤 등 국내 대표 게임사들은 AI 기반의 ‘지능형 게임’ 개발에 한창이다. 지능형 게임은 게임 속 AI 플레이어가 이용자의 패턴을 학습해 지속적인 재미요소를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엔씨소프트는 차기 신작에 접목할 ‘대화형 디지털 휴먼’을 개발하고 있다. 게이머가 게임 속 가상 캐릭터와 실시간 소통하면서 실제 사람들과 함께 게임하듯 협력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서비스다. 엔씨소프트는 AI 분야에서 가장 앞서가는 국내 게임사로평가받는다.
엔씨는 2011년 국내 게임업계 최초로 AI 전담 조직을 세웠고, AI센터, NLP센터, 어플라이드 AI랩 등 삼각 편대 조직을 만들었다. 현재 이 조직들은 일명 ‘NC AI R&D’로 통합돼 운영 중인데, 연구 인력만 300명이 넘는다. 엔씨소프트의 R&D 비용 투자 규모는 2013년 1395억원에서 2022년 4730억원으로 10년 새 3배 이상 뛰었다. 이 기간 연평균 R&D 비용은2802억원에 달한다. 엔씨소프트는 현재 개발 중인 신작 ‘프로젝트M’에 이용자와 상호작용이 가능한 디지털 휴먼을 도입할 것으로 점쳐진다. 크래프톤은 디지털 휴먼인 ‘버추얼 프렌드(Virtual Friend)’를 개발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이용자와 실시간 쌍방향 소통이 가능하고, 게임 내에서 마치 사람을 연상시키는 자연스러운 외형과 동작을 구현하는 것이다. 기술 개발이 완료되고 나면, 본격적으로 게임에 도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넷마블은 현재 강화학습 기반의 AI 플레이어와 AI 음성 명령 기술을 개발 중이다. AI 플레이어는 이용자 성향에 따라 맞춤형으로 게임을 수행할 수 있는 일종의 가상 게이머이고, AI 음성 명령 기술은 음성으로 게임을 제어할 수 있는 지원 서비스를 뜻한다. 또 위메이드는 게임 설정이나 시나리오 초고 작성, 게임 원화 그리기 등에 일부 생성형 AI를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넥슨은 자사 AI 연구소인 ‘인텔리전스랩스’를 통해 AI 게임 중계, AI NPC 서비스를 개발 중이다. AI가 게임 상황을 분석해 실시간 맞춤형으로 중계를 하는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기존에 녹음한 정형화된 패턴의 해설을 게임 중에 보이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AI가 플레이의 장면을 토대로 실시간으로 해설해 게임 몰입감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로 넥슨은 ‘피파온라인4’에 AI 중계 서비스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게임업계에서는 AI 연구를 위한 전문 조직을 운영하는 동시에 신기술 확보를 위한 투자에도 적극적이다. 넷마블과 크래프톤은 각각 AI센터와 딥러닝 본부를 운영하며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생성형 AI 접목을 놓고 글로벌 게임사들의 발걸음도 빨라지고있다. 세계 1위 메타버스 게임 플랫폼 ‘로블록스’는 최근 생성형 AI 기술 시연으로 게임업계를 놀라게 했다. 예컨대 이용자가 게임 속 승용차 3D 모델을 불러온 뒤 입력 창에 ‘빨간색 페인트, 유광 도색’이라고 입력하자, 차량의 외관이 입력한 대로 바뀌고, 코드 창에 ‘H 키를 누르면 헤드라이트를 켬’이라고 영어로 입력하자 AI가 이에 걸맞은 코드를 알아서 작성한다.
이 시연은 AI가 게임을 제작하는 시대를 본격적으로 알린 의미가 있다. 로블록스는 올해 3월 3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세계최대 게임 개발자 축제 ‘GDC(Game Developers Conference·게임 개발자 콘퍼런스) 2023’에서 ‘코드 어시스트’와 ‘머티리얼 제너레이터’라는 이름의 생성형 AI 기반 게임 제작 도구를 공개했다. 코드 어시스트는 챗GPT처럼 원하는 문장을 입력하면 코드를 자동 생성해주는 AI다. 머티리얼 제너레이터는 게임 아이템이나 배경 질감을 보다 사실적으로 만드는 데 AI가 활용된 개발 도구다.
글로벌 게임 엔진 기업 유니티는 생성형 AI를 이용해 게임 개발을 신속하게 하는 제품을 출시했다. 캐릭터 개발 속도를 높이기 위해 표정과 몸짓을 자동화하는 AI 기반 프로그램을 상용화했다는 의미가 있다. 유니티는 “인간과 같은 디지털 휴먼의 표정을 만드는 데 그동안 6명의 아티스트가 4~5개월 동안 작업해야 했다면 AI로는 몇 분만에 가능하다”라며 “크리에이터가 기존 작업 과정에 생성형 AI를 통합할 수 있도록 개방형 AI 에코시스템을 구축하고 있고, 하반기에는 머신러닝(ML)과 AI 기반의 시험 버전 툴도 내놓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를 통해 만들어진 국내 기업 ‘온마인드’의 가상인간 ‘Y’와 ‘T.K’도 공개됐다.
유럽 최대 게임사 중 한 곳인 유비소프트는 생성형 AI로 게임 속 배경이되는 컴퓨터 캐릭터(NPC)들의 소리를 자동으로 만들어주는 ‘고스트라이터’를 개발했다. 그래픽 카드를 만드는 엔비디아는 AI를 이용해 게임 화질을 높이는 기술인 ‘DLSS(DeepLearning Super Sampling)’를 고도화하는 작업에 한창이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1초에 화면이 전환되는 횟수인 ‘프레임 속도’를 AI를 통해 높일 수 있다. 또한 게임 화면 해상도를 높이는 데에도 AI 기술이 활용돼 조만간 획기적인 개선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게임사들 입장에서는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게임 개발에 AI를 도입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가장 큰 이유는 비용(인건비) 문제다. AI를 도입할 수 없는 게임사들은 도태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기획·프로그래밍·아트 제작 전반에 AI를 도입할 경우 게임 제작의 효율성을 높이고,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예컨대 트리플A급 게임 하나를 제작하는 데 현재는 200~300명의 대규모 인력이 투입되지만 AI가 고도화되면 앞으로는 이를 20~30명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차원이 다른 이용자 몰입감도 AI가 게임업계에 가져올 새로운 화두다. AI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휴먼은 상호작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수천, 수만 번의 시나리오에서 다른 반응을 내놓을 수 있다. 업계에서는 가상현실(VR)과 AI가 결합한 게임의 파급력이 게임업계에 새로운 ‘파괴적 혁신’을 불러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온다.
게임업계는 메타버스와 생성형 AI의 접목에도 큰 관심을 두고 있다. 게임은 메타버스 그 자체로 불리기도 하는데, 최근 게임(메타버스)과 AI의 접목이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는 추세다. 로블록스, 포트나이트 등은 글로벌 메타버스 게임(플랫폼)의 대표 격이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이들은 2억~3억 명의 가입자를 확보했다. 힐마 패터슨 CCP게임스 최고경영자(CEO)는 “게임에서 e스포츠가 발생한 것처럼 메타버스도 게임에서 나올 것”이라며 “게임 관련 소셜네트워크에서 소셜네트워크, 디지털 경제, 정서적 리얼리티가 하나로 합쳐질 때 발생하는 어떤 것이 메타버스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시점에 메타버스라는 용어는 더 이상 필요없어진다”라고 강조했다.
매일경제 디지털테크부 황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