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가총액 1위 기업 애플은 2021년도에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을까. 애플은 자체 개발한 고성능 반도체 M1칩을 기반으로, 인텔·퀄컴 등 주요 부품사와의 관계를 완벽히 끊고 자립에 나선다. 이 같은 하드웨어 양산과 기존 소프트웨어의 통합을 토대로 글로벌 IT 생태계를 송두리째 흔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더욱이 애플은 5G 스마트폰 아이폰12 시리즈의 대히트에 따라 2021년 스마트폰 30% 생산량 확대 계획도 세웠다. 과연 애플은 이른바 ‘애플 생태계’를 더욱 확장하며 2020년 사상 첫 2조달러(약 2372조원) 시가총액 돌파를 넘어 3조달러 달성의 금자탑도 쌓을 수 있게 될까.
▶M1 반도체칩으로 ‘홀로서기’… 시총 3조 달성할까
2020년 11월 애플은 컴퓨터 CPU(중앙처리장치)인 ‘M1’칩을 자체 개발했다고 밝히면서, M1칩을 탑재한 신형 맥북 에어와 맥북 프로 노트북, 맥미니(소형 데스크톱)를 내놨다. 인텔 CPU를 내장했던 종전 맥북과 비교해서 신형 모델이 ▲속도 2.5배 ▲전력 효율 25% ▲그래픽 성능 3.5배 ▲배터리 사용시간 2배가 개선됐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당장 업계는 이번 ‘탈인텔’을 통해 연간 8조4000억원의 매출을 애플이 더 벌어들일 것으로 보고 있다. 애플의 M1칩은 아이폰12에 탑재됐던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인 ‘A14’칩을 개량해 만들었다. M1칩은 CPU 중 최초로 대만의 TSMC 5나노미터(㎚) 미세공정을 적용했는데, 5㎚ 반도체는 7㎚ 반도체보다 성능은 10% 좋고, 전력 효율은 20% 높다.
애플은 여기에 ‘SoC(시스템 온 칩)’ 제조 방식을 도입해 빠른 속도를 보장했다. CP U·GPU(그래픽 처리장치)·RAM(메모리) 등 각종 반도체를 하나의 기판 위에 모아두는 형태인 ‘SoC’를 통해 데이터는 한군데서 한꺼번에 처리된다. 따라서 속도도 빨라진다. 게다가 M1칩에 최적화된 신형 운영체제 ‘빅서’를 적용해 사용자의 체감속도도 대폭 개선했다.
애플은 왜 지난 14년간 인텔에게 공급받던 CPU칩을 직접 만들기 시작한 걸까. ▲애플이 원하는 성능의 CPU를 인텔이 제대로 제공하지 못했고 ▲애플이 인텔보다 성능이 좋은 ‘고효율 저전력’의 CPU를 만들 수 있을 정도의 기술력을 확보했으며 ▲어떤 일이 있어도 애플의 제품을 구매하는 애플 유저가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먼저 인텔은 애플이 원하는 빠르고 뜨겁지 않은 CPU를 제공하지 못했다. 애플은 2006년부터 컴퓨터의 뇌 역할을 하는 CPU 칩을 인텔에게 공급받아왔는데, 애플이 더 이상 맥북에 인텔의 i5와 i7 프로세서 칩을 탑재하기를 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팀 쿡 애플 CEO는 2020년 6월 세계 개발자 회의(WWDC) 기조연설에서 ‘애플 실리콘’ 계획을 발표했다.
CPU 시장은 현재 인텔과 AMD가 전 세계를 양분하고 있다. 60%가 인텔, 40%가 AMD다. 그동안 애플은 CPU칩 부품을 인텔에 아웃소싱해왔다. 하지만 맥북을 사용하는 고객들은 맥북의 고질적인 문제로 ‘발열’ 문제를 꼽았다. 통상 반도체는 전력소모가 많으면 뜨거워지고, 뜨거워진 반도체를 탑재한 제품은 배터리가 빨리 닳는다. 이 같은 발열에는 인텔의 CPU가 한몫했고, 애플이 더는 고객들에게 발열이 심하고 배터리가 빨리 닳는 컴퓨터를 ‘혁신’이라고 내놓기 싫었다는 얘기다.
둘째로, 애플이 개발한 자체 CPU 성능이 인텔을 따라잡을 정도로 올라섰다. 애플은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영국의 반도체 설계 회사 ‘암(ARM)’의 설계를 바탕으로 한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를 만들어 사용한다. 스마트폰의 두뇌로 모바일용으로 쓰이는 AP칩 전 세계 공급의 90% 이상을 ARM이 장악하고 있다. 애플, 퀄컴 삼성전자, 화웨이 등 대부분의 AP 설계생산 기업이 ARM의 라이선스를 기반으로 설계를 일부 수정해 개발하거나 설계를 그대로 생산하는 형태다. 애플이 ARM 설계 기반으로 만든 자신의 AP를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에 넣다보니 성능이 나쁘지 않다고 여겨졌고, 자체 반도체 개발에 자신감을 얻었다.
M1칩은 애플이 지난 6월 세계 개발자 콘퍼런스(WWDC20)에서 발표한 ‘애플 실리콘’ 계획의 첫 결과물이다. 애플 실리콘은 애플이 제작하는 기계엔 애플이 제작한 반도체를 심는다는 계획이다. 사실 애플은 스스로 만든 CPU를 맥북에 탑재하겠다는 계획을 오랫동안 세워왔다. 프로젝트 이름은 ‘칼라마타 프로젝트’다. 지난 10년 동안 12건의 반도체 관련 기업을 인수했는데, 1999년에 레이서그래픽스와 2008년에 P.A 세미 등 수백 명 수준의 엔지니어를 보유하는 데서 시작한 프로젝트는 현재 칩 사업부에만 수천 명의 엔지니어가 상주할 정도로 확장됐다.
애플의 전기 자동차 렌더링 이미지
셋째로 애플 유저를 기반으로 한 강력한 ‘애플 생태계’도 M1칩 탑재를 가능하게 했던 요인이다. PC 시장을 놓고 보면 애플은 전 세계 PC의 8%를 차지하는 데 그친다. 레노버, HP, 델 다음이 애플이다. 하지만 애플의 고객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맥북을 사고야 마는 확실한 충성고객으로 분류된다.
특히 애플이 직접 맥북용 하드웨어를 만들어내면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완전한 통합을 통한 ‘애플 생태계’ 형성이 가능하게 됐다. 인텔 CPU가 탑재됐던 구형 모델인 맥북과 맥미니에서는 아이폰용으로 만들어진 애플 앱스토어 앱을 다운로드 받아 쓸 수 없었다. 하지만 M1칩이 탑재된 신형 컴퓨터로는 가능하다. 블룸버그는 “진정한 애플 생태계 통합이 완성됐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는 인공지능(AI) 고도화를 통한 데이터 확보를 위해서는 자체 칩 생산이 필수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애플은 이번 M1으로 이전 제품에 비해 최대 9배 빠른 ‘머신러닝’ 연산속도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기계의 뇌 역할을 하는 CPU칩을 장악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결국 데이터를 긁어내고 AI를 돌리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애플의 충성고객들로부터 얻어낸 엑사바이트 수준의 방대한 데이터를 모으고, 정리하고, 추출하는 등 역할은 결국 성능 좋은 칩으로 가능하다는 얘기다.
왼쪽부터 아이폰12 프로맥스, 아이폰12 프로, 아이폰12, 아이폰12 미니
▶인텔 이어 퀄컴서도 독립하나… ‘모뎀칩’ 개발도 관심
애플이 자체 5G 통신칩인 모뎀칩 개발에 나선다는 소식도 시장을 흔들고 있다. 모뎀칩은 무선 환경에서 음성과 데이터를 송·수신하는 데 필요한 핵심 반도체칩이다. 인터넷으로 모든 사물이 연결되는 사물인터넷(IoT)과 자율주행차 시대에는 모뎀칩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애플의 5G 스마트폰인 아이폰12 시리즈에는 퀄컴의 모뎀칩이 탑재됐다. 퀄컴의 전체 매출에서 애플이 차지하는 비중은 11%에 불과하지만, 애플이 M1칩으로 탈인텔을 선언한 것처럼 퀄컴의 기술력을 따라잡는 모뎀칩을 자체 개발하면 통신칩 시장도 재편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류영호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애플이 불가능할 줄 알았던 인텔 독립을 실현한 만큼 모뎀칩에 대한 기대감도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애플은 2017년 퀄컴과의 특허분쟁을 계기로 모뎀 개발을 추진해왔다. 2019년 인텔의 스마트폰용 모뎀칩 사업부를 10억달러에 인수했고, 2200명의 개발 인력과 1만7000개 이상의 지식재산권을 확보하기도 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애플의 5G 모뎀칩 개발은 단기간에 이뤄지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번스타인 리서치 애널리스트는 “애플은 (M1칩과 같은) PC프로세서를 개발하는 데 5~10년이 걸렸다. 모뎀은 더 큰 도전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종합금융사 카나코드 지뉴어티의 마이크 워크리 분석가도 “퀄컴 모뎀칩 기술은 (경쟁사 대비) 몇 년은 앞서 있다. 애플이 퀄컴 모뎀칩을 자체 칩으로 전환하려면 몇 년 이상 혹은 더 오래 걸릴 수 있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도 “5G 모뎀은 전력 소모가 심해 발열, 배터리 사용 시간 등 고려할 부분이 많아 개발까지 많은 기술과 시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애플은 자율주행 시스템용 반도체 개발에도 에너지를 쏟기 시작했다. 대만의 디지타임스는 애플이 대만의 TSMC와 자율주행차용 인공지능(AI) 칩을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디지타임스는 “이번 칩 개발을 통해 다른 완성차 업체에 애플의 생태계를 공급·확대하는 것이 애플의 목표”라고 밝혔다. 애플이 직접 ‘애플카(가칭)’ 등 자율주행차를 출시할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2021년 상반기에는 아이폰12 시리즈 대히트에 힘입어 스마트폰 생산량을 확대한다. 업계에 따르면 애플은 상반기에 아이폰 생산량을 30% 늘릴 예정이다. 하반기를 포함하면 2021년에만 최대 2억3000만 대의 아이폰(아이폰12 시리즈, 아이폰11, 아이폰SE 2세대 등 포함)이 생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아이폰6S가 출시된 2015년에 기록된 최대 생산량 2억3150만 대와 비슷한 수준이다.
2020년 10월 출시한 5세대 스마트폰인 아이폰12는 전 세계적으로 품귀 현상을 빚을 만큼 대흥행을 일으키고 있다.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는 “2020년 애플이 코로나 사태에도 전년보다 2.7% 많은 2억270만 대의 스마트폰을 전 세계에 팔 것”으로 전망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신형 스마트폰에 대한 구매자 의지가 줄어든 상황에서도 전년도보다 많은 스마트폰을 판매하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화웨이가 각각 전년 대비 판매량이 13.6%, 21.9% 감소한 것과 대비된다. 국내 판매량도 압도적이다. 아이폰12 시리즈는 작년에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스마트폰인 삼성전자 ‘갤럭시 S20’ 시리즈의 초기 판매량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출시 한 달 만에 60만 대 이상 판매를 기록했다.
스마트폰 출하량 2위인 화웨이가 미국의 제재로 추락하자 이 틈을 기회로 활용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화웨이가 미·중 테크 전쟁 영향으로 스마트폰 시장에서 부진한 사이 애플을 비롯한 다른 중국 업체들이 시장 점유를 늘리고 있다. 아이폰 생산 증가로 무라타제작소, 소니 등 애플에 부품을 공급하는 일본 기업의 수주도 늘어날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애플 원을 이용하면 애플의 다양한 구독 서비스를 하나의 간편한 요금제로 즐길 수 있다.
▶올 상반기 스마트폰 생산량 30% 확대… 서비스 사업 매출 年 16% 성장
애플은 기본적으로 스마트폰, 아이패드, 맥북 등 하드웨어가 더 많이 팔릴수록 이윤을 남기는 회사다. 하지만 더 이상 이 같은 하드웨어 제품만으로 돈을 버는 회사는 아니다. 실제로 2015년에 아이폰 판매가 전체 매출의 66%를 차지했지만, 2020년 1분기 기준으로는 절반 이하인 49%까지 줄어들었다.
대신에 앱스토어 등 소프트웨어에서 벌어들이는 매출이 2015년 8.5%에서 2020년 22%대까지 올라서며 파죽지세다. 애플뮤직과 애플TV+ 등 서비스는 매년 16%씩 성장하고 있다. 2019년 3분기(7~9월)부터 올 3분기까지의 애플 서비스 사업 매출은 537억6800만달러다. 전년 동기 대비 16.2% 성장했다. 즉 애플의 서비스로부터 돈을 버는 방식을 하나의 모멘텀으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얘기다. 2020년 9월 정식 공개한 통합형 구독 서비스 ‘애플 원(Apple One)’이 대표적인 예다. 애플 원은 그동안 따로따로 구독해야 했던 아이클라우드, 애플뮤직, 애플TV+, 애플 아케이드, 애플 뉴스+, 애플 피트니스+ 등 6대 서비스를 한데 묶어 보다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다. 요금제는 포함되는 서비스에 따라 개인 요금제, 가족 요금제, 프리미어 요금제 등 총 3개로 구분된다. 고객들은 애플 원을 통해 음악, 영화·드라마, 뉴스 등을 한번에 즐길 수 있다.
애플은 구독형 서비스와 기존 아이폰, 애플워치 등 하드웨어 기기들 간 연계성을 강화해 수익을 더 극대화시킨다는 전략이다. 에디 큐 애플 인터넷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 담당 수석부사장은 “애플 원을 통해 한 번의 구독으로 즐겨 사용하는 어떤 기기에서든 최고의 애플 엔터테인먼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독형 서비스를 위시한 빅테크 기업 간 플랫폼 패권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애플뮤직은 스포티파이 ▲애플TV+는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애플아케이드는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엔비디아 등과 경쟁하게 된다. 업계 관계자는 “구독 서비스로 고객들을 이끄는 것의 기본은 아이폰, 아이패드, 맥북, 애플워치, 에어팟 등의 판매량이다. 어떤 하드웨어 하나라도 파는 순간 소비자는 애플 생태계로 편입시킬 수 있다. 아이폰SE를 아이폰SE2로 업그레이드시켜 저렴하게 내놓은 것도, 고성능이지만 사이즈가 작은 아이폰12 미니를 출시한 것도 그와 같은 고객 니즈를 반영해서 애플 생태계로 손잡고 들어가기 위한 일종의 ‘미끼상품’”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