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몸값 높아진 ‘금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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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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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3.31 13:48:00
코로나19 불안감으로 가격 급등
마스크 5부제 시행에도 공급량 부족
전체 마스크 수출 중국이 ‘싹쓸이’
경찰, 숨겨진 마스크 수백만 장 적발
중국 우한에서 시작한 코로나19(COVID-19)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면서 때 아닌 ‘마스크’ 전쟁이 펼쳐지고 있다. 한 장당 몇 백원에 불과했던 미세먼지 방지용 마스크는 수요-공급 원리에 따라 가격이 수십 배 폭등하며 금보다 귀하다는 ‘금스크’로 불리고 있다. 마스크 대란이 장기화되자 정부는 원활한 공급을 위한 ‘마스크 5부제’까지 등장시켰다. 또한 마스크의 해외수출을 전면금지하고 공급량 확충에 나서는 등 마스크 사수에 나선 상태다. 이렇다보니 시장 곳곳에선 매점매석이 빈번히 일어나고 마스크 수백만 장을 쟁여두다 적발된 업체들이 사회적 비판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가 불러온 마스크 혼란을 경제적 관점에서 살펴본다.
지난 8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 130여 개 마스크 제조업체의 하루 평균 생산량은 1000만 장, 일주일에 7000만 장으로 추산된다. 하루 평균 생산량 중 20%인 200만 장은 기업이나 산업 등 민간부문으로 가고, 공적 물량 80% 중 의료기관에 100만 장, 대구·경북 지역에 100만 장이 갈 수 있는 구조다. 나머지 공적물량 600만 장이 약국이나 마트 등 일반 국민들에게 돌아갈 수 있다. 정부의 공언대로 전방위적 지원을 바탕으로 1개월 내 마스크 생산량을 1400만 장으로 늘릴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정부는 1개월 내 하루 5만 장을 생산할 수 있는 마스크 생산설비 75기를 조기에 가동할 수 있도록 지원해 하루 최대 375만 매를 증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대부분의 마스크 제조공장이 3∼4인 규모로 영세해 이러한 증산은 생각보다 더디게 진행될 우려가 크다. 정부는 이에 따라 미래 대비용으로 일반 국민과 의료진용 보건·방역용 마스크를 조달청이나 질병관리본부에 비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총인구는 약 5200만 명이다. 이 중 15세 이상 경제활동인구는 28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취약계층으로 분류할 수 있는 65세 이상은 800만 명, 7세 미만 아동은 263만 명 정도다. 반면 마스크 생산량은 의료기관과 대구 경북지역을 제외하면 일반 국민에게 돌아가는 공적 물량은 1주일에 4200만 장, 민간 물량 전체 1400만 장을 합해도 5600만 장에 불과하다. 하루 800만 명꼴로 공급이 가능한 셈이다. 즉 우리나라 인구 전체를 기준으로 했을 때는 일주일에 1매로 버텨도 모자랄 수 있다는 계산이다. 경제활동인구로 좁혀도 1주일에 2매가 빠듯하다. 공급전량을 7세 미만 아동과 65세 이상 취약계층에 나눠준다 해도 주당 4매에 불과하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의료인들이나 대구·경북에 계신 분들, 취약계층 등에 필수적으로 공급해야 하는 물량을 빼면 일주일 생산량이 5000만 장 남짓으로, 국민 모두에게 일주일에 1장 정도 드릴 수 있는 생산량”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코로나19 사태가 폭발적으로 확산되던 지난달, 품귀현상이 나타나면서 마스크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마스크 생산량의 절반을 공적 물량으로 돌리고, 약국과 농협, 우체국 등에서 팔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급이 모자라 2∼3시간씩 줄 서고 허탕 치는 아우성이 이어지자 마스크 공적 물량을 80%로 확대하면서 1주당 마스크 구매량을 2매로 제한하고, 출생연도 끝자리에 따라 살 수 있는 요일을 한정하는 5부제를 도입했다.
이처럼 마스크 대란이 일어난 배경에는 한발 늦은 정부의 대응이 문제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달 국산 마스크의 중국 수출액은 국내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기 직전인 지난해 12월보다 220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중국산 마스크 수입액은 3분의 1로 줄었다. 중국이 자국민에 필요한 마스크 공급을 위해 한국으로의 마스크 수출을 급격히 줄인 게 마스크 품귀를 빚은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17일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 2월 한 달 동안 중국으로의 마스크 등 기타 제품 수출액은 1억3514만8000달러(한화 1682억5926만원)로 코로나19 창궐 전인 지난해 12월보다 225배 증가했다. 반면 수입액은 급격히 줄었다. 지난달 중국산 마스크 등 기타 제품 수입액은 540만9000달러(한화 67억3420만원)로 작년 12월 대비 35% 수준에 불과했다. 중국산 제품은 지난해 3월부터 올해 1월까지 1300만~1600만달러 규모로 수입이 이뤄졌지만, 지난달 들어 뚝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국산 마스크 수출액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두 달 새 급격히 늘었다. 관세청이 추경호 미래통합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전 세계로 수출하는 국산 마스크의 9.3%만이 중국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지난달 이 비중은 85.9%로 급증했다. 중국이 국산 마스크 수출 물량을 싹쓸이하다시피 한 것이다. 한국이 세계 각국에서 수입해 오는 마스크 물량은 지난달 1153만달러로 전월 대비 960만달러 감소했다. 이는 중국산 마스크 수입이 급격히 줄어든 탓이 컸다.
결국 지난달부터 이어진 국내 ‘마스크 대란’은 한·중 간 비대칭적인 마스크 교역이 주요 원인인 것으로 밝혀진 셈이다. 여기에 국내 유통업자들의 매점매석 행위가 불난 곳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특히 국내 마스크 가격이 1천원 안팎에서 3000~4000원 수준으로 3~4배 급등했는데도, 전체 수입량은 줄어든 것은 중국 등지에서 자국민의 마스크 수요 확보를 우선시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중국은 이미 지난 2월부터 한국으로의 마스크 수출을 줄였지만, 한국은 지난달 25일에 와서야 수출을 금지했다.
정부는 현재 마스크 수입 확대 정책을 발표한 상태다. 기획재정부는 오는 18일부터 수술용·보건용 마스크와 필터용 부직포 MB(Melt Blown) 필터에 붙는 관세를 6월 30일까지 부과하지 않기로 했다. 기존 수술용·보건용 마스크 관세율은 10%, MB 필터 관세율은 8%였다. 정부는 또 브라질·남아프리카공화국 등과 협의해 마스크 수입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새롭게 마스크를 수입하더라도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 절차에만 통상 100일이 걸려 당장 필요한 물량을 수입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이 때문에 관세청은 식약처에 의뢰해 수입 마스크 허가 기간을 최대한 줄이고 통관 절차도 간소화하기로 했다.
정부가 깊숙이 개입하며 마스크 가격 역시 점차 안정세를 보이고 있는 상태다. 11일 통계청의 ‘마스크 가격 동향’ 자료에 따르면 약국·마트·편의점 등 전국 16개 시·도 155개 오프라인 매장에서 판매한 KF94 규격 마스크 평균 가격은 지난달 6일 2419원에서 이달 10일 1871원으로 22.7% 내렸다. 이 가격은 정부가 마스크 수출 규제를 발표 직후인 지난달 27일 2751원으로 가장 높았다가 점차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줄서기 현상은 여전하지만, 약국·우체국·하나로마트 등 공적 판매처에서 1500원대 정부 공급 물량이 풀리면서 가격이 내린 것이다.
반면 온라인 시장에서 판매하는 마스크 가격은 폭등했다. 10일 KF94 기준 평균 가격은 4813원으로 지난달 6일(3153원)보다 52.6% 올랐다. 불과 한 달 전에는 10만원으로 32매의 마스크를 살 수 있었지만, 지금은 21매 정도만 구입할 수 있게 됐다. 꾸준히 오르던 온라인 판매가는 정부가 수출을 규제한 지난달 25일부터 하락하는 분위기였지만 마스크 5부제 이후 다시 반등했다. 100여 종에 달했던 온라인 판매 제품이 30여 종으로 줄어든 데다 바쁜 직장인들이 비싼 가격에도 마스크를 사들이려는 수요가 몰렸기 때문이다.
정부는 약국 등 공적 판매처에서 판매하는 가격을 사실상 1500원으로 고정시켰다. 가격 폭등을 방지하기 위한 일종의 ‘최고가격제’ 규제를 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방역 효과가 떨어지는 마스크 가격이 갑자기 더 비싸게 팔리는 현상도 나타났다.
보건용 마스크 등급기준인 KF(Korea Filter)에 따르면 KF80은 분진포집효율이 80%, KF94는 94%를 뜻한다. KF80 규격은 황사방지용으로 적용하고, 방역용으로는 KF94 이상을 제시했다. 분진포집효율이란 사람들이 공기를 들어 마실 때 작은 먼지를 걸러주는 비율을 말한다. 대부분의 KF94 마스크가 소진되거나 품귀현상을 일으키자 방역 효과가 상대적으로 낮은 KF80 규격 마스크 역시 수요가 급증한 것이다.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코로나19 확산 속도가 가팔라진 지난달 18일 전까지는 KF94 규격 마스크보다 쌌던 KF80 규격 마스크는 19일 이후부터 온라인 시장에서 KF94 규격 마스크값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특히 이달 7일에는 7350원까지 치솟으며 KF94 규격보다 3000원 이상 높게 팔렸다. 약국 등 오프라인 시장에서도 이달 4일부터 시작한 가격 역전 현장이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마스크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자 품질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구입해두자는 불안심리가 작용했다”며 “정부에서 본격적인 공적 공급을 하는 만큼 이러한 현상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해소될 것”이라고 밝혔다.
마스크 매점매석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도 이뤄지고 있다. 경찰청은 이달 4일부터 식품의약품안전처, 관세청 등과 합동으로 전국 공항·항만 등의 대형 물류창고를 점검해 총 279만 장의 마스크를 찾았다. 전국 창고 2079곳에서 발견했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인천공항 물류창고에 마스크 104만 장을 보관한 판매업체 2곳을 적발해 매점매석 혐의를 확인 중이다. 경기남부청은 지난 4일에도 인근 물류단지 창고에서 마스크 367만 장을 발견했다. 전남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역시 평택항 물류창고에 마스크 15만 장을 보관한 1개 업체를 적발했다.
인천 남동경찰서도 지난달 29일 보건용 마스크 2만9000개를 매입한 후 장기간 판매하지 않고 보유한 매점매석 사범 2명을 체포했다. 경찰은 마스크 2만9000개를 중국인 소유자가 인천시교육청 산하 학교에 기부하는 방식으로 출고했다. 이처럼 공권력의 강도 높은 마스크 매점매석 적발로 당분간 해외로 유출되거나 위법적인 마스크 공급량이 조절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경찰은 마스크 수출·판매업자가 해외 수출이 막히자 국내에서 폭리를 얻기 위해 보관하고 있던 것으로 보고 조사에 들어갔다. 경찰 관계자는 “적발된 업자들을 대상으로 위법 사실이 있는지 확인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러한 마스크 품귀현상은 비단 국내만의 문제는 아니다. 최근 그 심각성이 더해가는 미국과 유럽의 경우 마스크뿐만 아니라 생필품까지 사재기 현상이 속출하며 전시를 방불케 하는 위기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는 손 소독제가 60달러(7만5100원)에 팔리고, 심지어 소독제를 한 번 짜주는 대가로 1달러(1253원)를 받아 비난을 받는 상점들이 있다고 AP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한 유통 체인은 체온계를 26달러에 내놓고, 마스크 2개를 40달러(약 5만원)에 팔고 있는 상황이다. 또 한 편의점은 화장지 한 롤에 10달러(1만2530원)에 팔면서 “농담이 아니다”는 안내판을 옆에 배치하기도 한다.
[추동훈 매일경제 프리미엄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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