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빠른 변화 대응 역량이 기업 경쟁력으로 부상하고 있는 만큼 SK하이닉스 역시 딥 체인지(Deep Change)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확보해야 할 전환기에 들어섰습니다. 이에 2017년은 기술 중심 회사로서의 입지를 강화하는 동시에 지속적인 성장 기반을 다지는 데 집중하고자 합니다.”
박성욱 SK하이닉스 부회장은 올 신년사에서 지속적인 성장 기반을 강조하며 ‘기술 중심 회사로 선도업체 입지 강화’ ‘고객 중심의 비즈니스 포트폴리오 강화’ ‘체질 개선을 통한 1등 스피릿 강화’ 등을 주문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급변하는 시장에 성공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선제적 투자 등 전략적 의사결정을 통해 지속적인 성장을 도모할 계획이다.
경기도 이천 M14
▶낸드플래시 수요 UP, 새로운 반도체 공장 건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말 충청북도 청주에 새로운 반도체 공장을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2015년 8월 경기도 이천에 최첨단 반도체 공장인 M14 가동을 시작한 지 불과 1년 4개월 만의 결정이다. 그만큼 최근 낸드플래시에 대한 글로벌 시장의 수요가 늘고 있다. 낸드플래시는 전원이 꺼져도 저장된 데이터가 사라지지 않는 비휘발성 메모리 반도체다. 초기에 USB, SD카드 등 스토리지로 사용되다 MP3, 핸드폰 등으로 점차 활용범위를 넓혀왔다. 특히 데이터를 보다 안정적으로 저장하고 빠르게 전송할 수 있도록 컨트롤러를 결합한 낸드솔루션 제품이 출시되며 시장 규모가 커지고 있다. 대표적인 낸드솔루션 제품이 스마트폰 등에 내장돼 사용되는 eMMC(Embedded Multi Media Card)와 PC나 서버 등에서 스토리지 역할을 하는 SSD(Solid State Drive)다.
시장조사기관 IHS테크놀로지에 따르면 2006년 123억 달러 규모이던 낸드플래시 시장은 2016년 362억달러로 2.9배나 확대됐다. 2006년 6억8000만GB(기가바이트)이던 출하량은 2016년 1258억GB 수준으로 무려 183배나 성장했다. 일례로 메모리반도체인 D램은 같은 기간에 매출과 출하량이 각각 1.2배(2006년 339억달러→2016년 403억달러)와 26배(28억GB→746억GB) 성장했다.
최근 빅데이터, IT기기 성능 향상, 통신 네트워크 발달 등 ICT 환경의 고도화로 메모리반도체 수요는 급격히 늘고 있다. IHS테크놀로지는 D램과 낸드플래시의 2020년 출하량을 각각 1740억GB와 5314억GB로 전망하면서 2016년 이후 연평균 성장률을 D램 24%, 낸드플래시는 43%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이처럼 낸드플래시 시장은 3차원(3D) 제품이 SSD 확대, 스마트폰 고용량화 등을 이끌며 D램 대비 높은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이라면 2019년에는 시장 규모가 443억달러에 달하면서 431억달러 규모의 D램 시장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3D 낸드플래시는 미세공정전환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좁은 공간에 더 많은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도록 기존의 평면구조를 위로 쌓는 3차원 방식으로 구현한 제품이다. 이를 통해 낸드플래시는 가격경쟁력을 갖추면서도 집적도를 높이고 있다. PC나 서버에 주요 스토리지 장치로 사용되는 HDD(Hard Disk Drive)의 2015년 GB당 평균 가격은 0.05달러 수준으로 분석됐다. 반면 SDD의 GB당 평균 가격은 0.56달러로 HDD 대비 11.1배나 가격이 비쌌다. 하지만 낸드플래시의 기술 발달로 지난해 가격 격차는 10.3배로 좁아졌고, 3D 낸드가 본격화하는 올해는 7.8배 수준, 2020년에 3배 수준(GB당 SDD의 평균가격 0.09달러, HDD 0.03달러)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처럼 가격경쟁력을 갖춘 낸드플래시로 만든 SDD는 2015년 전체 스토리지 시장(HDD 포함)에서 36%의 비중을 차지했지만, 올해는 46%, 2019년 49%로 확대되며 점차 HDD를 대체하고 있다.
▶메모리반도체 산업의 변화된 투자 패러다임
한때 메모리 산업에서 새로운 반도체 공장을 건설한다는 건 생산량 확대를 통해 공격적 경영에 나선다는 걸 의미했다. 하지만 기술개발의 난이도가 높아지고 투자규모가 확대되며 ‘신규 FAB 건설=공격 경영’이란 등식은 이미 깨졌다.
업계에선 “반도체 기술구현이 어렵지 않던 과거에는 투자를 통해 출하량 증가 폭을 대폭 늘리는 게 가능해 점유율 확대 경쟁을 부추길 수 있었다”고 말한다. 메모리 업계는 치킨게임이 한창이던 2006~2007년에 552억달러의 시설투자를 집행했다. 당시 산업 내 출하량 증가율(Bit Growth)은 D램의 경우 2007년 89%, 2008년 66%, 낸드플래시는 2007년 179%, 2008년 132%에 이르는 등 50~70% 수준이던 미세공정 전환에 따른 생산성 증가 폭을 크게 초과했다.
현재는 늘어나는 메모리 수요에 비해 공급이 과거 대비 제한적이다. 특히 기술구현이 어렵고 생산성 감소를 수반해 적극적인 시설투자 없이 경쟁력 확보가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한 이유로 현재 메모리 업체들은 원가 경쟁력을 갖춘 대용량, 저전력, 빠른 속도 등 고사양 제품을 출시하기 위해 회로 선폭을 좁게 하고 데이터가 저장되는 셀을 위로 쌓는 등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기술구현을 위해 제조공정 수가 늘어나는 등 비효율적인 면도 가중되고 있다. 관련 업계에선 효율 저하를 개선하기 위해 생산에 필요한 장비를 확충하고 있지만 장비가 대형화되면서 한정된 공간에서 웨이퍼 생산량이 감소해 생산량 확대가 어려워졌다. 최근 D램과 낸드플래시의 기술 발전에 따른 생산성 증가폭은 각각 30%와 40% 수준으로 과거 대비 한층 낮아졌다. 이러한 상황에 경쟁력 확보를 위한 메모리 업체들의 대규모 투자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2015~2016년 메모리 업계 투자는 512억달러. 하지만 출하량 증가율은 D램의 경우 2016년 31%와 2017년 20%, 낸드플래시는 2016년 45%와 2017년 44% 수준으로 과거 대비 대폭 낮아졌다. 다시 말해 투자 규모는 치킨게임 당시와 비슷하지만 기술구현의 어려움으로 업계 전체의 출하량 증가폭이 대폭 감소한 것이다.
이처럼 공급 증가는 제한적인 상황이지만 3D 제품이 견인할 중장기 낸드플래시 시장 성장에 대응하기 위해 각 메모리 업체들이 추가 공간 확보 등 생산기반 구축에 나서고 있다. SK하이닉스 역시 청주에 새로운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이미 청주에 2008년 준공한 복층 구조의 낸드플래시 공장 M11과 M12를 보유하고 있는 SK하이닉스는 올해부터 경기도 이천 M14 위층에서 3D 낸드플래시 양산을 시작한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낸드플래시 시장 성장에 시의적절하게 대응하게 위해선 생산기반의 추가적인 확보가 필요하다”며 “반도체 공장 건설에는 통상 2년 이상의 기간이 소요되는 점을 감안해 증설 투자를 결정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 신규 공장은 청주 산업단지 테크노폴리스 내 23만4000㎡ 부지에 들어설 예정이다. 올 8월부터 2019년 6월까지 2조2000억원을 투자해 반도체 공장 건물과 클린룸을 건설할 계획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 2015년 8월 ‘M14 준공식’ 당시 국내에 46조원을 투입해 경기도 이천과 충북 청주에 M14를 포함한 총 3개의 반도체 공장을 구축하는 등 업계 리더십 확보에 나서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한편 SK하이닉스는 중국 우시에 위치한 기존 D램 공장의 경쟁력 유지를 위해 보완 투자를 진행한다. 2006년 준공된 우시공장은 지난 10년간 SK하이닉스 D램 생산의 절반을 담당해 왔다. 올 7월부터 2019년 4월까지 9500억원을 투입해 클린룸 확장을 진행할 예정이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이러한 선제적인 투자를 통해 생산성과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메모리 산업 내 리더십을 지속 확보한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
2006년 준공된 중국 우시 공장
▶최태원 회장의 과감한 결단, 선순환 구조로 전환
업계에선 “지난 2012년 SK하이닉스가 SK그룹에 편입된 이후 선제적 투자가 가능한 환경으로 변모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SK그룹에 인수될 당시 반도체 업계의 투자가 축소되는 등 경영환경이 불투명했지만 SK하이닉스는 시설 투자를 10% 이상 확대하는 등 선제적 투자를 진행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과감한 결단이 밑거름이었다. 기술력 강화를 위해 연구개발비 투자도 지속적으로 확대했다. 그룹 편입 전엔 2011년 8000억원 수준이던 연구개발비는 2015년 1조7000억원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그 결과 2008년 7조원 수준이던 순차입금이 감소하며 2015년에는 현금이 차입금보다 많아지는 순현금 상태로 전환되는 등 성공적인 선순환 궤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