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솔그룹이 지주회사 전환을 통해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키로 결정한 뒤 곧바로 외국 기업을 인수하는 등 사업을 확장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그동안 운신을 제약했던 장애물을 단숨에 제거한 만큼 앞으로 빠른 행보가 기대되기 때문이다.
그룹 모기업인 한솔제지는 지난 8월 7일 이사회를 열어 투자회사와 사업회사로 인적분할 후 투자회사를 지주회사(가칭 한솔홀딩스)로 전환하기로 결의했다. 이에 따라 한솔제지는 오는 11월 28일 임시 주주총회에서 분할 안건을 상정하고, 관련 사항들을 결정할 계획이다.
한솔그룹 측은 지주회사 전환이 이뤄지면 현재 ‘한솔로지스틱스→한솔제지→한솔EME→한솔로지스틱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가 ‘지주회사→자회사→손자회사’의 3단계로 단순하고 투명하게 바뀐다고 밝혔다.
분할 후 존속되는 지주회사(한솔홀딩스)는 자회사의 사업 관리와 브랜드·상표권 관리 등을 하는 지주회사 역할과 투자사업을 맡게 된다. 신설 사업회사인 한솔제지는 기존 인쇄용지와 산업용지, 특수지 등 각종 지류 제조를 계속하게 된다.
그룹 측은 한솔제지의 투자회사와 사업회사는 2015년 1월 1일 0.62대 0.38 비율로 나뉘며 2015년 1월 26일 한솔홀딩스(가칭)와 사업회사 한솔제지로 각각 변경상장되거나 재상장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한솔그룹이 이처럼 지주회사 체제를 도입키로 한 것은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를 청산해 지배구조를 단순하게 함으로써 경영을 투명하게 하고 효율을 높이려는 포석에서다.
한 한솔제지 관계자는 “이번 결정으로 선진화된 지배구조를 갖출 뿐 아니라 기업가치가 상승하고 주주가치도 제고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증권가에선 한솔그룹의 이번 결정에 대해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지주회사 전환으로 사업회사의 경우 그동안 제기됐던 자산가치 할인요소 등이 해소될 것”이라며 “기업가치 상승으로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한솔제지를 다시 분석대상에 포함한 김미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지주사 전환은 주가 디스카운트 요인을 해결한다는 데 긍정적”이라며 사업회사 한솔제지는 “연간 1조4000억원 내외의 매출액과 600억~700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네덜란드 텔롤사 M&A 사업 확장
지주회사 출범 선언으로 운신이 편해진 한솔제지는 지난 8월 14일 네덜란드의 감열지 가공 및 유통업체인 텔롤(Telrol)사를 인수해 생산부터 판매에 이르는 이 부문 일관화 체제를 완성했다. 한솔제지는 2012년 충남 장항공장에 대규모 감열지 생산 설비를 갖추며 세계 3위의 감열지 생산업체로 자리를 잡았다. 지난해엔 안정적 판매채널 확보를 위해 유럽 1위 감열지 가공 유통회사인 샤데스(Schades)사를 인수하며 국내 제지업체 중 처음으로 유럽에 진출했다.
여기에 네덜란드 1위의 라벨 가공 및 유통업체인 텔롤사까지 인수하게 됨으로써 한솔은 이 부문에서 확실한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이상훈 한솔제지 대표는 “이번 라벨회사 인수는 감열지 사업부문 강화 및 확대전략에 따른 것으로 향후 감열지 사업이 한솔제지의 핵심사업으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번에 한솔제지 품으로 들어온 텔롤사는 1995년 출범해 현재는 연간 600억원 상당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한솔 측은 “인수가는 400억원 수준으로 한솔제지가 210억원, 한솔아메리카가 150억원, 한솔덴마크가 40억원씩 투자할 계획이지만 최종 금액은 인수 종결 시점에 확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 한솔제지 관계자는 “라벨산업은 감열지 등 종이소재를 화장품 등에 사용되는 고급포장 라벨과 바코드 등에 사용되는 감열라벨, 택배용 라벨 등으로 고객의 요구에 맞게 다양한 컬러로 인쇄하거나 재단해 공급하는 고부가가치산업”이라고 설명했다.
텔롤사는 연간 5500만㎡의 생산시스템을 갖춰 고객들의 대량주문이나 긴급주문에도 즉각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고 있다. 또 테스코나 까르푸 등 유럽 대형 유통업체들을 주요 고객으로 확보해 네덜란드 전체 라벨 시장의 3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한솔그룹은 텔롤사의 안정적 성장을 위해 하다위 현 CEO를 유임키로 했다. 하다위 CEO는 현지 라벨사업 경험이 풍부하고 고객이나 임직원 모두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한편 한솔제지가 국내 제지업계로는 처음으로 지난 7월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내는 등 사회공헌에도 주력해 존경받는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전략도 실행에 옮기고 있다.
“글로벌 선진 제지사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제품 경쟁력만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관계자들과의 소통을 확대해 나가야 할 책임도 가져야 한다”는 게 이상훈 대표의 철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