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SNS, 모바일 비중이 높아져서 광고가 예전처럼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들었어요. 광고업 전망도 좋지 않다고 그러던데요. 전통적인 광고의 시대는 지나간 것 아닌가요?”
어느 강연 자리에서 한 대학생이 이렇게 질문을 했다.
광고계 내부에서도 한계에 다다른 전통 광고매체 대신에 온라인을 포함한 소위 뉴미디어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한다는 얘기를 하지 않으면 시류에 떨어지는 것처럼 보인지 오래됐다. 그런 상황에 비해 뉴미디어 광고가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도 별로 크지 않다.
4월 초 광고협회에서 <2013 광고회사현황조사>를 발간했다. 거기 나온 10대 광고회사의 매체별 취급액 점유율을 보면 ‘온라인, 모바일, IPTV, DMB, 위성’을 포함한 뉴미디어는 9.1%에 불과하다. 광고협회는 지난 3년간 꾸준히 상승했던 뉴미디어의 점유율이 지난해 갑자기 떨어진 이유로 ‘2012년에 있었던 각종 대형 스포츠 이벤트와 박람회, 대통령 선거 등으로 옥외 및 프로모션의 취급액이 늘어남에 따라 상대적 감소를 보인 것’으로 분석했다. 그런 요인도 있긴 했지만 5% 포인트 이상 빠진 하락폭은 뉴미디어 광고가 가질 수밖에 없는 성장 한계 요소와 기존 매체가 가지고 있는 힘에 기인한다고 본다. 위의 질문을 한 학생에게 대략 인터넷 초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얘기했다.
1998년은 한국 인터넷에 기념비적인 해였다. 그해 한국의 인터넷 보급률이 20%를 넘어선 것이다. 인터넷이 매체로서 대중성을 확보한 해라고 할 수 있다. 그때부터 곧 온라인 광고가 TV를 위시한 전통광고를 넘어설 것이란 예측들이 나왔다. 빌게이츠는 10년 내에 우리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TV를 시청할 것이라고 했다. 광고를 보는 방식, 상업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수용하는 방식도 획기적으로 바뀔 것이라고 했다. 아무리 스마트TV가 나왔어도 우리의 TV 시청방식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광고에서도 여전히 TV는 특히 대형 광고회사의 취급액에서는 굳건히 뉴미디어 수 배 이상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뉴미디어로 분류할 수 있는 매체들이 계속 늘어나면서 비중이 늘기는 하겠지만 상당기간 이런 점유율 비중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왜?
광고매체로서 TV의 비중이 큰 이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별로 언급되지 않는 세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광고는 결국 시간과 공간을 파는 것이다. TV는 아무리 채널이 많이 늘어났다고 하더라도 한계가 있다.
광고를 실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에 제한이 있기 때문에 경쟁이 붙고, 그에 따라서 가격이 매겨진다. 광고에 노출될 사람의 숫자를 떠나서 한정된 공급에 따른 경쟁 때문에 가격이 높게 형성이 된다. 그에 비해 온라인 공간은 거의 무제한으로 광고를 팔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갖고 있다. 일대일 맞춤형 광고가 가능하다는 식의 얘기를 많이 하는데, 이는 그만큼 시간과 공간을 쪼갤 수 있다는 뜻이다. 거의 무한대의 시간과 공간이 온라인에 주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역으로 아무리 효용이 높다고 하더라도 광고료 단가 자체가 상대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전달하는 메시지가 많고, 광고회사의 인력과 경비가 온라인 광고에 많이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그만큼의 돈을 받을 수 없다. 온라인 광고들이 절대 물량으로 TV를 비롯한 다른 매체들보다 많은데도 전체 광고시장에서의 비중이 낮은 데는 이런 경제학적인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둘째로 전체적으로 TV의 시청률은 낮아졌지만, 워낙 많은 새로운 매체가 생기다보니 훨씬 낮은 시청률로도 TV의 존재감은 죽지 않았다. 오히려 고만고만한 다양한 롱테일 형식의 매체들이 나오면서 어젠더(Agenda) 세팅을 하는 매체로서 영향력이 커진 측면도 있다. 인터넷이 낮은 가격으로 누구나 광고를 싣고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지만, 선도 기업으로서 중량감을 보이려면 TV를 찾게 되는 것이다.
셋째로 TV광고 자체도 뉴미디어를 비롯한 새로운 흐름에 맞춰 진화하고 있다. TV 예능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는 류호진 PD는 자신의 프로그램에 광고를 붙이면서 광고인들의 고민과 함께 TV 광고의 변화를 통찰력 있게 끄집어냈다.
“사람들이 점점 광고를 피하다 보니 요즘은 전통적 시엠보다 프로그램 안에 들어오는 간접광고나 유튜브 전용 동영상이 광고업계의 주요 관심사라고 한다. 프로그램을 제작하다 보면 구성내용 속에 자사제품을 노출시키려는 기업들의 요구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도 실감케 된다. 아주 길게 보면, 결국 방송사와 기업 서로의 욕구에 의해 광고는 프로그램처럼 변하고 프로그램은 광고처럼 변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한겨레신문 2013년 3월 29일)
광고의 콘텐츠화, 광고를 머금은 콘텐츠의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짚었다. 사실 이런 변화는 이미 진행되고 있다. 어쩌면 TV는 상업자본과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대중화의 길을 걸었다.
가장 상업업적인 매체
“1948년 미국에서는 코미디언 밀턴 벌리(Milton Berle)가 진행한 <텍사코스타극장(Texaco Star Theater)>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텔레비전이 크게 각광받기 시작했다. 모든 주민이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참고 있다가 한꺼번에 화장실에 가는 바람에 매주 화요일 밤 9시만 되면 디트로이트 저수지의 수위가 급격히 내려갔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큰 인기를 끌었는지 가늠할 만하다.” 프랭크 로즈의 책 <콘텐츠의 미래(The Art of Immersion)>에 나오는 구절이다.
유별나게 인기를 끄는 드라마를 두고 비슷한 류의 농담들을 한국에서도 많이 했다. 1980년대 일요일 아침 드라마 <한 지붕 세 가족>이 한창 인기를 끌 때는 예배시간과 겹치면 신도들이 드라마를 보느라 교회에 나오지 않아서, 부득이하게 예배시간을 조정하는 교회들이 꽤 있었다고 한다. 위의 프로그램 얘기와 비슷하게 동시에 화장실 물을 내려서 물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경우가 나타났다고도 했다. 아파트와 같은 집단주택에서 혹여 그런 현상이 이례적으로 있었을 수도 있겠으나, 디트로이트 저수지 운운은 과장인 것 같다. <텍사코스타극장>의 인기는 그런 농담이 나올 정도로 대단하긴 했단다. 그 프로그램이 초창기 TV방송의 많은 부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먼저 기업들의 적극적인 후원 참여다. 프로그램의 타이틀에 기업 이름이 들어가는 타이틀 스폰서로 참여한 정유회사인 텍사코처럼 많은 기업들이 지금의 PPL보다 적극적으로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했다.
이런 방식은 일본에서도 비슷하게 전개됐다. 프로그램 제목에 기업 이름이 들어가고, 기업의 홍보 메시지가 방송되고, 어떤 경우는 기업 종업원이나 관련자가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방송의 공적기능이 부각되면서 기업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광고주나 PPL을 비롯한 다른 방식의 협찬으로 기업들은 방향을 틀었다. 1990년대 중반에 좀 강한 협찬으로 공중파 방송의 시간대를 협찬 기업의 이름으로 사고, 타이틀로까지 내세우는 야심찬 기획을 해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과장된 반농담도 재미있었지만 <텍사코스타극장>이란 프로그램 제목을 보면서 옛 기억이 새삼스러웠다.
오락 매체로서 TV의 장점을 적극 부각시킨 것이 바로 이 프로그램이었다. 매체가 새로 나오면 어떤 종류의 프로그램, 곧 장르가 어울릴지 조정하는 기간이 필수적이다.
여러 가지 형식을 실험하는 기간을 가지게 된다. 영화의 경우도 원본 소재의 복사에서 연속되는 기록물로 갔다가 이야기가 있는 극 형태로 진화됐다. TV도 뉴스보도, 드라마, 오락, 스포츠 중계 등의 여러 가지 실험을 했는데, 텍사코스타극장을 통해 가장 어울리는 분야로 오락이 등극하게 됐다. 이는 비틀즈의 미국 데뷔 무대로 유명한 전설의 <에드설리번쇼>로 이어졌다.
현재의 <투나잇쇼><SNL><데이비드 레터맨 쇼> 등도 이런 전통의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TV가 가족오락의 제왕으로 떠오르면서 미국의 영화사들은 당황했다. 싸구려 B급 영화로 사람들을 영화관으로 불러 모으며 저녁시간을 책임졌는데, 그 자리를 뺏겨버리게 된 것이다.
영화사들은 두 가지 방향으로 나아갔다. 첫째로 새로운 시대의 총아로 떠오른 TV프로그램 제작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후 채널을 다변화해 제작한 프로그램들을 리사이클 시키면서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법까지 개발했다. 둘째로는 차별화 방책으로 대작 스펙터클 영화를 잇달아 내놓았다. 1950~60년대의 <십계> <벤허> <클레오파트라> 등의 엄청난 대작 영화들은 바로 이런 배경과 의도에서 나온 것들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형식의 오락, 라이프스타일, 생활 리듬의 변화가 나타난다. 기존에 있던 매체와의 새로운 형태의 상호작용 형식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멀리 가면 문자가 출현했을 때는 문자 자체가 권력이었다. 그리스의 신탁(神託)이나 중국의 갑골문(甲骨文)에서 보듯 종교권력과 정치권력을 지탱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긴 시간이 지나 근대 인쇄술이 발명, 전파되면서 기존의 권력을 넘어 지식과 정보의 길이 열렸다. 그 수혜자이자 확산자로서 자본가 계급이 형성되고, 새로운 세력을 구축했다.
TV로 대표되는 20세기의 전파매체는 대상이 전체 국민으로까지 확대됐다. TV 수상기만 있다면 그것을 시청하고 즐기기 위해서는 특별한 자격이나 노력이 필요하지 않았다. 유명한 마샬 맥루한은 TV를 능동적인 매체로 규정했지만, TV 시청은 기본적으로 수동적인 행위다.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그 수동성 속에서 감각적 자극을 통해 몰입을 이끌어내는 게 바로 TV의 장점이다. 상업 메시지를 전달하는 가장 적합하고 효과적인 매체로서 TV가 그 생명력을 이어가는 원동력이 바로 여기에 있다.
벽거울과 같은 TV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TV는 사회를 읽고, 그래서 때로 자신을 발견하는 거울과 같다. 일상 속에서 습관처럼 벽에 걸린 거울을 보고, 거울에 비친 모습과 무관하게 옷매무새를 고치기도 한다. 그러다가 어느 때는 꼼꼼하게 거울 속의 나를 관찰한다. 꼭 특별한 일이 있어서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 일상적으로 켜놓은 가구와 같이 존재하던 TV에 의도치 않게 빠져드는 모습과 흡사하다.
거울이 묘사된 서구 화가들의 그림이 꽤 있다. 숨은그림찾기처럼 언뜻 봐서는 거울인지 모르고, 책상 위의 소품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느 경우는 그림 전체의 모티프로 작용하기도 한다. 보이지 않는 반대편의 광경을 화가들은 거울에 비춘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하려 했다.
인물이 되었건 정물이 되었건 반대편에 서 있는 화가 자신을 그림 속에 집어넣기 위해 거울을 장난처럼 사용한 화가들도 있다. 표출되지 않는 이면을 보려 하고, 투영된 자신의 모습을 보고자 하나, 애써 적극적인 행동으로 옮기고 싶지 않은 인간의 본성이 있는 한 TV의 매체로서의 효용은 지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