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초입에 한 여대생을 필자의 회사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부탁이란 것을 한 적이 없는 선배 한 분이 광고에 큰 관심을 두고 있는 지인의 딸이 있는데 광고계의 선배로서 조언을 해달라고 부탁해 그 당사자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취업에 걱정이 많다고 했는데 당당한 표정의 똘똘해 보이는 친구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며 인사를 했다.
세칭 서울의 최고 대학 중 하나에 다니는 학생이었다. 필자에게는 좀 생소한 국제학부라는 데서 경제학 전공이란다. 어떻게 광고에 관심을 갖고 광고회사로 취업까지 하려고 생각하게 됐느냐고 물었더니 지난 1년간 미국의 오리건 주립대학(University of Oregon)의 교환학생으로 다녀왔다며 얘기를 시작했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대략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이어진 그의 말도 예상한 대로였다.
스포츠 마케팅의 대명사인 오리건 대학과 나이키
미국 서부 중심인 캘리포니아주와 캐나다와 접경지역인 미국 서부 해안의 최북단인 워싱턴주와의 사이에 있는 오리건주는 빼어난 자연 풍광을 자랑한다. 산악과 해안 지역이 함께 있어서 등산과 스키와 같은 산악 스포츠와 서핑, 요트 등의 해양 스포츠도 활발한 지역이다. 미국의 많은 주마다 해당 주를 대표하는 기업들이 있다. 오리건주는 누가 뭐라 해도 나이키의 주다. 나이키의 창업주라고 할 수 있는 두 인물인 빌 바우어만(Bill Bowerman)과 필 나이트(Phil Knight)가 오리건 주립대학의 육상부에서 처음 만났다. 널리 알려진 대로 바우어만은 오리건 주립대학의 육상부 코치였고 필 나이트는 선수였다. 오리건 주립대학의 육상부 선수들이 나이키의 최초 고객이었다. 이후 오리건 주립대학은 나이키의 신제품 개발을 위한 시험장을 제공했고 경영활동에 뒷받침될 학문적인 성과를 일구는 노력을 해왔다. 성공적인 산학협동의 모델을 줄곧 보여줬다.
오리건 주립대학은 나이키와의 관계를 바탕으로 일찍이 스포츠 마케팅 부문을 일구었다. 1990년대 중반 필자가 스포츠 마케팅 프로그램 기획을 위해 공동 연구를 할 해외 기관들을 알아봤는데 학계에서는 오리건 주립대학만이 독립된 학기 프로그램과 학위 과정을 가지고 있었고 자료도 가장 충실했다. 그 전통과 노력이 계속 이어져 오리건 주립대학 전체를 상징하는 대표 과목으로 스포츠 마케팅이 언급된다.
필자를 찾아왔던 여대생 역시 워낙 유명하다보니 스포츠 마케팅 수업을 오리건에 간 첫 학기에 들었고 이후 흥미가 생겨 다음 학기에도 관련 과목을 듣게 되면서 스포츠 마케팅 부문에서 일을 하기로 결심을 했다고 했다. 스포츠 마케팅과 관련해서도 여러 가지 업종이나 전문 분야가 있겠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은 모두 현재 광고회사에서 하고 있어서 구체적으로 취업하고 싶은 회사도 결정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광고회사에 가겠다는 다른 친구들과 비교를 했더니 자신이 해놓은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게 문제였다. 소위 광고회사 취업을 위한 스펙으로 거론되는 광고 관련 회사에서의 인턴, 공모전 수상, 동아리 활동 등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런 스펙들을 갖추기 위해 마지막 한 학기만을 남겨 놓고 있는 상황에서 휴학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필자는 그 친구만큼 광고회사에 들어오고 싶은 뚜렷한 동기를 보지 못했다. 어렸을 때부터 광고를 재밌게 보았고 만들고 싶다고 생각을 했다는 식의 판에 박힌 얘기들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가슴에 와 닿았다. 스포츠 마케팅에 꼭 필요한 영어 실력을 포함한 글로벌 역량도 ‘국제학부’에 ‘교환학생’까지 누구 못지않게 갖추고 있었다.
“자네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어. 그런데 왜 다른 사람들과 똑같아지려고 하지? 아무도 따라오지 못할 블루오션을 만들어 놓고는 왜 모두가 이전투구(泥田鬪狗)를 벌이는 레드오션으로 들어가려고 하고 있어?”
계속 불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하는 그 친구에게 비슷한 얘기를 몇 차례 더 했다. 하도 같은 얘기를 반복해서인지 나중에는 그 친구가 알았다고 애써 미소를 지으며 자신 있는 표정을 지었다. 휴학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다시피 하면서 대화를 끝냈다. 자신감이 생겼다는 말과 함께 인사를 하며 돌아서는 그 친구의 뒷모습은 그렇게 확신에 차보이지는 않았다.
주위 친구들부터 시작해 함께 취업 대열에 나선 친구들까지 모두 일반적인 스펙을 거론하며 겨우 눌러놓았던 불안감을 다시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공포와 비교를 조장하는 시대
마케팅으로 치면 ‘공포’와 ‘비교’를 핵심으로 삼아서 사람들을 유인하는 식이다. ‘인턴 경력이 없으면 절대 안 돼’ ‘친구들은 모두 인턴 했다던데’ 식의 얘기들을 한다. 그러면서 자꾸 출발점에서 반 발짝이라도 앞서 나가려 애를 쓴다. 몇 년 전에 만화가 이원복 선생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봤다. 자녀 교육과 관련한 질문에 이 선생은 자신의 자녀들은 미안하지만 모두 조기유학을 보냈다면서 대충 이렇게 얘기했다.
“한국 학교에서의 경쟁은 어릴 때부터 공정하지 못하다. 100m 경주를 하는데 부모들이 자기 아이들을 조금씩 출발선보다 앞에 놓으려 한다. 처음에는 1~2m 앞에 두었는데 모두가 앞다퉈 그렇게 경쟁을 하다 보니 결국 90m에서 모두 출발해 10m를 두고 싸우게 된다. 얼마나 경쟁이 치열하겠는가? 그렇게 출발선을 무시하고 내 자식은 앞서 세워야 하고 다른 누가 그렇게 하면 내 자식도 불이익을 받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며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지 못한다. 그래서 미련 없이 조기유학을 보냈다.”
조기유학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이원복 선생이 지적한 현상이 대부분의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걸 부인하지 못하겠다. 학교 진학뿐만 아니라 같은 현상이 취업하는 데도 나타난다. 이런 ‘공포’와 ‘비교’ 마케팅이 입시, 취업, 자기계발이란 산업을 거대하게 키우고 있다. 교환학생을 다녀온 친구와 대화를 나눈 오후에 화장품 산업과 관련된 리뷰를 했다. 화장품에서야말로 ‘공포’와 ‘비교’가 산업 자체를 끌고 가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공포를 바탕으로 하는 화장품 세분화
“밤에 세안을 하고 바르는 화장품이 몇 가지나 될까요?” 화장품 광고를 위해 찾아온 친구가 물었다. “세 개 정도 되는 것 같은데.” 사실 그것도 두 개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적은 것 같아서 50% 늘려 얘기한 것이었다. “보통 5개 정도를 바르고요, 요즘 화장에 신경 좀 쓴다는 여자라면 7개를 바릅니다.” 7단계의 세안 후 바르는 화장품이 어떻게 구성되고 각각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이어서 자세하게 설명했다.
부스터’라는 생소하게 들리는 화장품 종류가 있었다. 단어 뜻 그대로 다음 단계를 더욱 원활하게 만드는 기능을 한다. 즉 다음 단계에 바르는 화장품이 잘 흡수되고 효과를 발휘하게 돕는 화장품이란다. ‘비포더스킨’이라고도 한단다. 뜻이 더욱 명확해진다. “그걸 왜 발라야 하지?” 우문(愚問)이었다. 당연한 현답(賢答)이 나왔다. “그걸 바르지 않으면 다음 화장품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것 같거든요.”
시장세분화의 예로 화장품 얘기를 개인적으로 많이 한다. 남성화장품의 경우를 보자. 어느 품목이건 그렇지만 남성화장품이란 용어 자체가 없던 시절이 있었다. 남자가 피부를 위해 바르는 것은 오로지 살이 트지 않도록 바르는 글리세린만이 있던 시절이 그리 오래 전이 아니다. 머리에 바르는 포마드가 있긴 했지만 그것은 화장품이라기보다는 두발용품이었다. 아주 잘 사는 집이나 괜찮은 이발소에나 가면 삼각추 모양의 올드스파이스가 있었다. 굳이 면도를 하지 않아도 삼각추 모양의 애프터쉐이브로 나온 올드스파이스를 이발소에서는 큰 선심 쓰듯이 단골 어른들에게는 발라주거나 직접 쓰도록 선심을 쓰곤 했다.
예전 여성들의 화장품 하면 오로지 ‘박가분’만 있었던 것처럼 남성용 로션이 나오고 그것 하나가 모든 기능을 다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은 짧았고 남성들의 화장품도 세분화되기 시작했다. 로션이 액상 형태의 스킨로션과 젤 형태의 밀크로션 계열로 양분됐다. 이후 면도 후에 바르는 애프터쉐이브 전용과 면도 전에 바르는 로션까지 면도용 거품이나 젤과는 다르게 바르는 제품이 나왔다. 그래야 면도가 잘 된다고 한다.
면도가 피부를 자극하고 빨리 노화시킨다는 공포를 자극하며 나온 상품이 바로 비포쉐이브다. 세안이나 면도처럼 매일같이 하는 특정한 행위가 피부에 주는 부정적인 영향을 극대화하며 세안 후 부스터를 포함한 7가지 화장품을 바르게 하고, 아침마다 면도하러 바쁜 남자들이 비포쉐이브를 바르고 그게 피부에 스며들 때까지 한참을 기다리게 만든다.
특정 시간대 특정 행위를 중심으로 하는 세분화 이외에 부위에 따른 공포심을 자극한 세분화도 있다. 웬만한 사우나에 가면 로션 혹은 크림이 왜 꼭 영어단어로 쓰는지 모르겠으나 바디, 페이스, 핸드로 나뉘어 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시설이니까 세 부분으로만 나누었지만 개인적으로는 특정 부위만을 위한 화장품들을 꽤 많이 쓴다. 눈가의 주름을 없애준다는 크림, 목주름, 팔꿈치, 볼을 팽팽하게 해주는 화장품 등 신체 부분을 대상으로 한 세분화는 앞으로 무궁무진하다. 신체의 어느 한 부분이 당신의 진짜 나이를 알려준다든지 ‘일부가 전체를 지배한다’ 식의 공포화법이 이런 제품에 적용된다.
공포가 마케팅 발전을 이끈다
공포마케팅의 대표는 의약품이다. 언제 갑자기 발병하고 쓰러질지 모른다, 더 악화될 것이라는 공포가 ‘남용하지도 말고, 오용하지도 말자’라는 구호가 무색하게 의약품 판매를 이끈다. 따지고 보면 유행이라는 것도 결국 근저에는 다른 사람에게 뒤처져 보인다는 공포가 깔려 있기에 가능하다.
기술 부문에서의 신제품들도 무의식적으로라도 느끼는 공포심리가 수요를 견인한다. 다른 사람들은 이동하는 차량 안에서도 인터넷에 접속해 정보를 받고 메일을 수신해 일 처리를 하는데 자신은 이 정보시대에 뒤처지고 있다는 두려움이 바로 스마트폰을 사게 만든다.
오리건 주립대학에서 출발한 나이키도 은근히 공포를 자아내는 것으로 시작했다. 나이키를 신지 않으면 다른 선수들에게 뒤처진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유명한 ‘Just do it’이란 슬로건도 ‘다른 사람들은 이미 하고 있다고. 계속 이렇게 미적대고 있을 거야?’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런 공포는 선망이나 질투로 바뀌고 나도 할 수 있다는 행동으로 발전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런 자극이 또한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고 마케팅의 발전을 이끄는 원천이다. 마치 스펙 경쟁이 다른 측면으로 보면 개인과 한국 사회의 발전을 이루어 낸 하나의 요소가 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