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A그룹은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로부터 수백억원대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과거 약 3년 동안 동종 업체들과 가격 및 공급량을 조정하는 등 담합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봤던 것이 공정위에 적발됐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A그룹은 막대한 과징금을 문 것은 물론, 깨끗했던 그룹 이미지에도 타격을 입었다.
#2. 공정위는 지난 3월14일 논란이 일었던 ‘리니언시 제도’를 개정했다. 리니언시 제도는 담합에 참가했던 업체가 공정위에 자진 신고할 경우 과징금을 감면·경감해주는 제도로 해외 선진국에서 담합 근절을 위해 시행하던 제도다. 하지만 담합에 나섰던 기업들, 특히 막대한 벌금이 예상됐던 대기업들이 이 제도를 악용하면서 벌금을 면제받자 논란이 일었다. 이에 공정위는 시행령 개정안을 통해 2순위 자진신고자가 1순위 신고자보다 2년 늦게 신고할 경우 과징금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없도록 했다.
재계에 ‘준법경영(Compliance Program)’ 바람이 다시 불고 있다. 올 초부터 공정위가 담합 의심기업에 대해 전방위 조사에 나서면서 감시의 칼날을 세우고 있어서다.
이런 가운데 재계 순위 1위의 삼성그룹이 지난 2월29일 강력한 의지를 담은 ‘담합 근절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주목 받고 있다. 담합행위에 연루된 임직원에 대해서는 최고 ‘해고’까지 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날 서초사옥 수요 사장단협의회에 관련 내용을 브리핑하는 자리에서 삼성그룹은 이인용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장(부사장)을 통해 ‘담합 근절 종합대책’을 공개했다. 이 부사장은 “지난달 25일부터 3주간 미래전략실 준법경영실과 27개 관계사 컴플라이언스 조직 주관으로 각 사의 사업 수행 실태를 점검했다”며 “이 내용을 바탕으로 담합 관련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연루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방향의 대책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사실 삼성그룹은 지난해 이미 그룹 차원에서 준법경영을 진행한 바 있다. 이후 상당한 개선이 있었지만, 여전히 일부 관계사에서 발주처 미팅 등을 통해 경쟁사와 접촉하는 등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사업 수행 과정에서도 담합에 취약한 요소가 일부 남아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삼성그룹은 이에 따라 담합 근절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강화하기로 했다. 우선 정기적 모니터링 및 현장 점검을 강력하게 진행하기로 했다. 특히 실태 점검 과정에서 드러난 고위험 부서에 대해서는 심층적인 점검을 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대한 일환으로 삼성전자에서 이미 시행 중인 ‘임직원 보호프로그램’인 △이메일 필터링 시스템 △경쟁사 접촉 신고제를 전 계열사로 확대하기로 했다.
이메일 필터링 시스템은 임직원이 외부 경쟁사에 이메일을 보낼 때 제목과 내용에 금칙어가 포함되면 발송을 차단하는 것이고, 경쟁사 접촉 신고제는 사업 수행상 불가피하게 경쟁사와 접촉이 필요하면 컴플라이언스팀에 사전승인과 사후보고 절차를 거치는 제도다. 또, 앞으로 담합 연루 임직원은 횡령이나 뇌물수수와 같은 부정행위와 동일한 차원에서 해고 등의 엄정한 징계를 하고, 임원·조직 평가에도 CP(준법) 항목을 포함시키기로 했다.
임직원의 의식 개혁 작업도 더욱 강화할 방침이다. 이 부사장은 “계층과 업무별로 사업 현실을 반영해서 업무 영역을 명확히 제시할 것”이라며 “특히 위험 직군의 임원과 부서장은 주기적인 준법경영 서약서 작성을 통해 조직 전체의 준법에 전력을 기울이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내부적으로는 담합 근절을 위해 새로운 사업 프로세스도 다시 수립할 예정이다. 이 부사장은 “장기적으로 사업 프로세스에 대한 전사적 재점검을 통해 경쟁사 관련 정보 없이도 사업 수행에 지장이 없는 구조를 구축할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경쟁사와의 접촉 필요성이 없어지면서 담합 가능성도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삼성그룹이 이처럼 강력한 대책을 들고 나온 데는 지난 1월 공정위에 적발된 가전제품 가격 담합이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지난 1월12일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백색가전 가격 및 공급량을 담합한 사실을 적발, 총 446억4700만원(삼성전자 258억1400만원, LG전자 188억33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특히 삼성전자가 담합에 나섰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이건희 회장이 진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재계에서는 이번 삼성그룹의 ‘담합 근절 종합 대책’에 강력한 조치가 담긴 것도 이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