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장남이 이 대통령이 퇴임 후 거처할 내곡동 소재 사저 신축용 택지를 구입한 것과 관련하여 명의신탁 논란이 한동안 있었다. 정치적인 공방을 떠나 법률적인 결론부터 말하자면 장남이 자기가 직접 빌린 돈으로 자기 명의로 택지를 구입했기 때문에 명의신탁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럼 어떤 경우에 명의신탁이 될까? 쉽게 이야기하자면 자기의 돈으로 사되 타인의 명의로 재산을 취득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A가 부동산을 취득하면서 A 명의가 아닌 B의 명의로 취득하는 것이다. 이 경우에 실질 소유자인 A를 명의신탁자, 이름을 빌려준 B를 명의수탁자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명의신탁이 다른 나라보다 훨씬 많은 것도 사실이다.
왜 이렇게 많은 것일까? 혹자는 일제시대 때 종중(宗中) 재산의 위탁관리 등을 인정하기 위해 시작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만 허용되는 당사자간의 계약관행이라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한 설명이 되긴 어려운 것 같다. 끈끈한 가족주의 문화를 이용하여 합법적으로 재산을 도피할 수 있는 수단으로 한동안 인식되어 오다 보니 만연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럼 현재 이런 명의신탁에 대해 우리나라 법률은 어떻게 규율하고 있을까? 재산의 종류에 따라 상당히 다른 규제를 하고 있고 특히 부동산에 대한 규제가 상당히 복잡하다 보니 법을 좀 아는 사람도 상당히 헷갈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에 대해 상세히 알아보고자 한다.
2자간 명의신탁
부동산의 경우 1995년 부동산 실권리자 명의등기에 관한 법률(편의상 이 글에서는 ‘부동산실명법’이라고 한다) 이 시행되기 전까진 부동산명의신탁이 있다고 해도 처벌하지 않았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5년 부동산실명법이 제정되면서 부동산 명의신탁은 원칙적으로 무효로 하고 명의신탁자에 대해 형사처벌과 과징금도 부과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명의신탁의 유형에 따라서는 부동산거래가 무효가 되지 않고 처벌도 받지 않는 경우도 생긴다. 유형별로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우선 2자간 명의신탁의 경우, 즉 A가 가진 부동산을 B 명의로 등기하는 경우에는 부동산실명법에 따라서 명의신탁계약과 부동산소유권 이전등기는 모두 무효가 된다. 즉 B 명의의 등기에도 불구하고 그 등기는 무효가 되고 A와 B간의 명의신탁약정도 무효가 되어 원래대로 A가 소유권을 가진 것으로 보는 것이다. 좀 더 쉽게 말하면 A와 B간의 부동산거래는 없었던 것으로 처리되는 것이다. 이 경우 명의를 신탁했던 원래 소유자 A는 부동산 실명법에 따라서 형사처벌 (5년 이하의 징역이나 2억원 이하의 벌금)이나 과징금 (최대 부동산 가액의 30%까지) 의 부과대상이 된다. 하지만 만일 명의신탁이 된 상태에서 B가 해당 부동산을 C에게 매각을 했다면 제3자인 C는 거래안전보호를 위하여 유효하게 그 부동산을 취득하게 되지만 B는 남의 부동산을 처분한 것이 되어 횡령죄 처벌을 받게 된다. 등기와 명의신탁 약정이 모두 무효가 되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3자간 명의신탁
만일 A가 C로부터 부동산을 취득하면서 명의를 B 명의로 하기로 한 경우 (소위 3자간 명의신탁 )라면 어떻게 될까? 이 경우에 매도인인 C 는 B가 명의수탁자란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부동산실명법에 따라서 A와 B간의 명의신탁약정은 무효가 되고 B 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도 무효가 된다. 이렇게 명의신탁약정과 부동산등기가 무효가 되면 해당 부동산거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처리되므로 매도인 C가 여전히 소유권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B는 소유권을 취득한 적이 없으므로 명의신탁자 A는 명의수탁자인 B로부터 소유권이전을 받을 방법이 전혀 없게 된다. 물론 이 경우도 명의신탁자인 A는 부동산실명법에 의한 형사처벌과 과징금을 피할 수 없게 되니 주의해야 한다. 소유권을 취득한 적도 없는데 부동산실명법상의 처벌을 받게 되니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부동산 거래질서를 흐렸기 때문에 처벌은 피할 수가 없게 된다.
한편 명의신탁된 상태에서 B가 해당 부동산을 타인에게 팔게 되면 B는 여전히 남의 부동산을 처분한 것이 되니 횡령죄로 처벌을 받게 된다. 그런데 위와 같은 경우 이미 A가 C에게 지급한 부동산매매대금은 어떻게 될까? 물론 A는 C에게 매매대금을 돌려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판례는 ‘계약명의신탁’이라는 거래유형에 대해서는 좀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계약명의신탁이란 A가 C로부터 부동산을 취득하면서 C와의 관계에선 A 자신이 부동산을 취득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B를 계약 당사자, 즉 매수인으로 내세우는 것이다. C와의 관계에서 처음부터 A는 전혀 나타나지 않고 B가 전면에서 매수인인 것처럼 행세한다는 점에서 매도인 C가 처음부터 명의신탁 사실을 알고 있는 위 3자간 명의신탁과 다르다고 볼 수 있고 실제 거래에서도 많이 일어난다. 이런 계약명의신탁의 경우에도 부동산실명법이 적용된다.
하지만 적용된 결과는 앞의 경우들과는 조금 다르다. 예를 들면 위 계약명의신탁에서 매도인 C가 실제 매수인이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B와 매매계약을 하고 소유권 이전등기를 B에게 넘겨 주었다면 명의수탁자인 B는 유효하게 부동산을 취득하게 된다. 매도인인 C가 A와 B간에 명의신탁에 관한 약정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B가 진정한 매수인인 것으로 생각하고 거래를 하였기 때문에 거래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이다.
통상 명의신탁의 경우 명의신탁약정과 소유권이전등기가 무효가 되는 것에 비해 명의수탁자인 B가 소유권을 취득하는 것이므로 상당히 다른 결과가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B가 완전한 소유권을 가지게 되므로 명의신탁자인 A는 나중에 B를 상대로 부동산을 이전해 달라고 요구할 수도 없다. 이러다 보니 B가 부동산을 타인에게 매각하더라도 B는 횡령죄나 배임죄로 처벌되지도 않는다.
이렇게 해서 명의신탁자인 A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이다. 다만 명의신탁자 A는 B에게 매매대금을 주었을 것이므로 이를 부당이득으로 해서 반환을 청구할 수는 있다. 하지만 만일 C가 A와 B간의 계약명의신탁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어떻게 될까? 이 경우에 판례는 명의신탁약정과 매매계약·소유권 이전등기를 모두 무효로 하여 부동산의 소유권은 매도인인 C에게 여전히 귀속된다고 판결하고 있다. 위 제 3자간 명의신탁과 동일한 결과가 된다.
종합해 보면 계약명의신탁의 경우 명의신탁자 A는 어떤 경우에도 B나 C에 대해 자기에게 해당 부동산을 이전해 달라고 요구할 권리가 아예 없게 된다. 또한 A는 부동산실명법에 따른 처벌도 여전히 받게 된다. 이처럼 부동산실명법은 명의신탁자에게 철저하게 불이익을 주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면 모든 부동산 명의신탁이 다 처벌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부동산실명법은 채무를 담보하기 위한 양도 담보 (즉 채무자가 자기 부동산을 담보 목적으로 채권자의 명의로 이전하는 것. 양도담보의 경우 대내적으로는 여전히 채무자가 소유권을 가진다는 점에서 외관이 명의신탁과 유사한 결과를 가져옴), 2인 이상이 한 부동산에 대해 공동으로 구입하면서 동 부동산에 위치와 면적을 각자 특정하여 구분소유하기로 합의했지만 등기부엔 공유로 표시된 경우 (공유등기가 되면 해당 부동산에 공유지분으로 소유권을 가지지만 해당부동산의 일부에 특정하여 소유권을 가지지 못하다 보니 불가피하게 명의신탁과 비슷하게 보여질 수 있음) 부부간의 명의신탁이나 종중 부동산을 종중원 명의로 등기하는 경우 등에는 명의신탁 처벌을 예외로 하고 있다.
따라서 남편 A가 실질 소유자이면서도 부인 B명의로 등기를 했다고 해도 부동산실명법이 적용되지는 않는다. 물론 조세포탈이나 강제집행면탈을 위한 경우 등 불법한 목적이라면 부동산실명법이 적용되게 된다. 아울러 형사처벌은 공소시효가 5년이기 때문에 명의신탁자와 명의수탁자 간에 명의신탁 약정을 한 날로부터 5년내에 명의신탁사실이 발각되지 않으면 형사처벌은 불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명의신탁자와 수탁자간에 분쟁이 생기지 않는 한 5년내에 명의신탁 사실이 발각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형사처벌이 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6공시절 실세 중의 한 사람인 박철언씨의 부인이 동생 명의로 명의신탁된 토지를 최근 소송을 통해 돌려 받았지만 형사처벌을 받지 않은 것은 공소시효가 만료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징금은 시효가 없으므로 명의신탁이 언제 되었든 간에 발각되는 경우 과징금 부과 대상이 된다. 그런데 과징금은 기한 내에 내지 않더라도 가산금이 없다 보니 최근 5년간 발각된 명의신탁부동산 소유주에 대한 과징금 납부 비율이 35%를 넘지 않는다는 씁쓸한 통계도 보고 되고 있다.
주식 등 재산권 명의신탁
부동산명의신탁과 달리 주식 등 재산권의 경우 실명제법이 없기 때문에 명의신탁일반의 법리가 적용된다. 즉 공장재단·광업재단·선박 등 등기를 요하는 재산이나 특허권·상표권·의장권· 저작권·광업권 등 등록을 요하는 재산, 주식이나 사채 등 명의개서를 요하는 재산은 명의신탁이 되더라도 명의신탁약정이 무효가 되거나 등기·등록이 무효가 되진 않는다.
이렇다 보니 실명법이 적용되는 부동산에 비해 명의신탁을 조장할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이전에는 주식의 명의신탁이 비일비재하였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경우 경영권 유지나 방어를 위해 명의신탁을 해 두는 것은 너무나도 흔한 일이었고 현재도 밝혀지지 않은 명의신탁된 주식들이 아주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우리나라 세법은 이런 재산권 명의신탁이 많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명의신탁시점(등기·등록이 필요한 경우에는 등기·등록 시점)에 명의신탁자가 명의수탁자에게 동 재산을 증여한 것으로 의제하여 증여세를 부과하고 있다.
따라서 위 재산권에 대해 명의신탁 사실이 밝혀지면 국세청은 즉시 해당 재산권 가액을 기초로 한 증여세를 부과하고 있다. 증여세는 원칙적으로 증여를 한 자, 즉 이 경우 명의신탁자에게 부과되겠지만 명의신탁자가 내지 못할 경우 증여를 받은 자 즉 명의수탁자가 내도록 되어 있으므로 명의수탁자도 매우 주의하여야 한다.
그러나 보험·예금·아파트 당첨권은 타인명의로 가지고 있어도 증여세를 부과하지는 않는다. 다만 실명에 의하지 않고 거래를 한 금융자산에서 발생하는 이자 및 배당소득의 경우 소득세 원천징수세율을 100분의 90으로 하여 불법으로 인한 금융소득을 대부분 환수하도록 하고 종합소득세 과세표준에도 이를 합산하지 않도록 하여 사실상 명의신탁거래에 대해 불이익을 가하고 있다.
기업의 경우 안정적 경영권을 유지하고 적대적 M&A에 대비하기 위해선 우호지분이 많이 필요하다 보니 명의신탁이 상당히 폭넓게 관행적으로 사용되어온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기 재산을 남의 명의로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떳떳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고 많은 부작용이 생기기도 한다. 실제로 최근 모 저축은행의 경우 대주주 부실책임에 대해서 규명을 하다가 명의신탁된 주식들이 밝혀지면서 대주주가 증여세를 낼 형편이 안되자 명의를 빌려준 사람들에게 엄청난 증여세 폭탄이 부과된 적도 있었다.
■ 윤희웅 변호사는
서울대학 법과대학과 동대학 법학대학원을 졸업. 31회 사법시험에 합격, 연수원 21기 수료. 현재 법무법인 율촌 파트너 변호사로 주된 업무는 M&A·금융·증권 및 국제자본시장이며 금융팀장을 맡고 있다. 롯데제과를 대리하여 세계적인 초콜릿 회사 ‘길리언’을 인수하는 자문업무를 수행하였고 현대자동차를 대리하여 신흥증권 인수, 롯데의 대한화재보험 인수, 현대중공업의 CJ증권 인수 등 굵직한 M&A도 성사시킨 바 있다. 2008년 ALB가 선정한 Asia 100 Hot lawyer 중 1명으로 선정됐다.
[윤희웅 /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hwyoon@yulch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