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어딜 가나 ‘통큰’이란 말이 흔하다. 신문·방송에서는 물론 광고전단지, 길거리 등에서도 ‘통큰’이라는 말과 문구를 한 번쯤 보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다. 유행어가 된 듯하다.
‘통큰’이라는 말을 유행시킨 주인공은 롯데마트. 롯데마트는 지난해 ‘통큰치킨’으로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더니 2011년이 시작되자마자 지난 1월6일 100g에 1250원인 ‘통큰LA갈비’를, 1월10일부터는 ‘통큰한우·육우’를판매하며 ‘통큰 시리즈’를 이어갔다. 롯데마트 측은 “통큰이라는 말을 붙인 것은 ‘통큰치킨’이 유일하다”며 “그 이후의 제품은 우리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붙였다”고 말했다.
또 “일주일 단위로 하는 행사를 하는 것은 할인점들의 기본행사”라며 “늘 있어왔던 행사일 뿐이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마트가 ‘통큰 제품’을 출시할 때마다 소비자들은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각종 매체에서도 롯데마트의 ‘통큰 시리즈’와 해당 물품을 구입하기 위해 몰려든 소비자들의 모습을 소개했다. ‘노이즈 마케팅’으로 바라본다면 롯데마트는 크게 성공한 셈이다.
고객 유인 효과… 다양한 업체에서 활용
한편 롯데마트가 출시하는 ‘통큰 제품’은 모두 ‘미끼상품’으로 해석될 수 있다. 즉 대표 상품을 파격적인 조건으로 내세워 고객들을 유인하는 것이다. 지난해 말 롯데마트의 5000원짜리 ‘통큰치킨’이 논란이 됐을 당시 정진석 대통령 정무수석비서관이 지적한 것처럼 ‘구매자를 마트로 끌어들여 다른 물품을 사려 하려는’ 전략 상품인 것이다. 롯데마트 측은 “노이즈마케팅이나 미끼마케팅이나 의도한 바는 전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통큰 시리즈는 노이즈 마케팅 측면에서도 성공했지만, 엄청난 고객 유인 효과를 거둔 최고의 미끼마케팅이었다”라고 평가했다.
‘미끼상품’은 본래 마케팅 분야에서 사용하는 용어다. 전문용어로는 ‘로스리더(loss-leader)’라고 일컬으며 비슷한 용어로는 ‘특매상품’, ‘유인상품’ 등이 있다. 원가보다 싸게 팔거나 시중가보다 저렴한 가격에 파는 상품을 말한다. 이것의 목적은 ‘미끼’라는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더 많은 고객을 유인하는 데 있다. 비록 파격적인 조건을 내건 상품으로는 별 이익을 얻지 못하지만 이를 보고 찾아온 고객이 매장의 다른 물품을 구입하게 함으로써 결국엔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로스리더 마케팅을 맨 처음 사용한 사람은 질레트면도기 창업자인 킹 질레트로 알려져 있다. 질레트는 날을 바꾸어 끼는 면도기를 생산, 판매하면서 면도기의 초기 가격을 매우 저렴하게 책정했다. 대신 면도기를 구입한 소비자들로 하여금 바꾸어 낄 수 있는 면도날을 계속 사게 함으로써 더 많은 수익을 올렸던 것이다.
‘미끼상품’을 이용한 마케팅은 유통업계에서 즐겨 쓰고 있다. 유통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미끼상품 전략은 고객을 끌어들이는 데 가장 쉽고, 신속하며,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고 귀띔했다.
유통업체들은 ‘미끼상품 전략’을 통해 두 가지를 노리고 있다.
첫째, ‘미끼상품’을 내세워 자사에서 판매하는 상품의 가격이 모두 싸다는 인식을 소비자들에게 각인시키는 것이다. 미끼상품의 파격적인 가격을 본 소비자들은 자연스레 해당 유통업체에서 판매하는 상품의 가격이 모두 싸다고 인식하기 십상이다.
둘째, ‘미끼상품’으로 고객을 유인하고 매장을 찾은 고객이 다른 상품까지 사게끔 하려는 것이다. 미끼상품을 보고 매장을 찾은 고객들이 미끼상품에만 눈독을 들이는 것이 아니라 이왕 매장을 찾은 김에 다른 상품까지 산다는 것이다.
롯데마트 측도 이 같은 효과를 부인하지 않았다. “가격적으로 저렴하다는 것을 어필하고 고객 유인 효과를 보기 위한 것은 사실이다”라고 말함으로써 ‘미끼’였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꼴이 된 셈이다.
미끼상품을 보고 매장을 찾았다가 미끼상품은 사지도 못한 채 다른 상품만 사는 고객도 많다. 말 그대로 ‘미끼’에 딱 걸린 셈이다. 롯데마트를 찾은 한 고객은 “통큰제품을 보고 찾았으나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엄두도 못냈다”며 “사려 했던 통큰제품은 사지도 못하고 생각지도 않은 물품만 구입했다”고 토로했다. 롯데마트의 ‘통큰’ 미끼 전략이 제대로 통한 것이다.
아무 상품이나 ‘미끼’로 써서는 곤란하다. 소비자들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대표 브랜드 혹은 상품이어야 효과가 제대로 먹힌다. 소비자들의 수요가 많고 경쟁력이 강한 제품일수록 효과는 증대한다.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들이 ‘신라면’ ‘삼겹살’ ‘치킨’ 등을 미끼상품으로 자주 사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것들은 모두 우리나라의 대표 서민 먹을거리다.
이 가운데 ‘신라면’은 유통업체들의 대표 미끼상품이자 종종 대형마트 간 가격할인 전쟁의 단골 무기가 된다. 신라면은 유통업체들이 오랫동안 가격을 내리기 위해 애썼지만 쉽지 않았던 품목 중 하나다. 유통업체의 입김에 휘둘리지 않을 정도로 자존심 강하기로 소문난 대표 국민브랜드다. 그런 만큼 신라면은 고객 유인 효과를 보는 데 으뜸인 셈이다.
가격할인의 대표 상품으로 신라면을 활용한 바 있는 이마트는 아예 신라면을 증정품의 하나로 만들어 고객을 유인하고 고객들이 매장 안에서 더 많이 소비하게 만들기도 했다. 지난해 말 이마트 은평점은 삼성카드로 10만원 이상 결제 시 5개들이 신라면 한 봉지를 증정품으로 주었다. 이마트에서 삼성카드로 10만원 이상 결제하고 증정품으로 5개들이 신라면 한 봉지를 받은 한 고객은 “당초 구매한 물품이 10만원에 조금 미치지 못했는데, 10만원 이상 구매하면 신라면을 준다는 말을 듣고 굳이 안 사도 될 물건을 하나 더 샀다”며 “이거 받으려고 애써 10만원 넘겼나 라고 생각하니 허무했다”고 말했다. 이마트 은평점 측은 “행사 종류는 수시로 바뀐다”며 “지금은 신라면 행사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끼도 제대로 써야 효과 증대
백화점도 종종 미끼상품을 활용한다. 다만 백화점의 경우, 이따금 상품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로스리더 마케팅을 구사하기도 한다. 박정현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유명 백화점들이 우리나라 젊은 층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유니클로, 자라 등 패스트패션 업체들을 앞다퉈 입점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며 “패스트패션을 찾는 젊은 고객을 유인하려는 전략이 숨어 있다는 면에서 넓은 의미의 미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형 쇼핑몰이나 여행업계 등도 가격을 대폭 할인한 미끼상품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이미지를 개선하고 더 많은 고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쇼핑몰에서는 메인화면에 최근 히트상품을 파격적인 가격으로 올려놓고 소비자들을 유혹한다. 여행사들도 일본, 중국, 동남아 등과 관련된 저렴한 패키지 여행상품을 선보이며 여행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부동산중개업소도 ‘미끼’를 활용하는 대표적인 예다. 시중가보다 훨씬 산 매물 전단지를 붙여놓거나 온라인상에 띄워놓아 고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막상 문의전화를 하면 이들 업종 중 일부에서는 ‘다 팔렸다’, ‘이미 나갔다’라는 답변을 듣기 일쑤다. 이들은 이런 답변 뒤에 ‘다른 괜찮은 상품이 있다’며 고객들을 유혹한다.
휴대전화 단말기나 인터넷 통신 장비를 무료로 주고 설치해주는 대신 수년간 약정계약에다 일정한 요금제를 적용하는 통신업체도 미끼상품을 잘 활용하는 예다. 이들 통신업체들은 비교적 고가의 단말기를 무료로 주면서 고객을 유인한다.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통신장비를 무료로 설치해주면서 고객의 입맛을 북돋는다. 이들은 약정계약 할인도 적용해 얼핏 보면 고객 입장에서는 크게 유리한 조건이라고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고객으로서는 약정계약 기간 중 계약을 해지할 경우 그동안 할인받은 혜택을 모두 보상해야 하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이어갈 수밖에 없다. 약정계약을 모두 채워도 별도로 고지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약정계약이 끝나자마자 이를 인지하고 해당 통신사와 계약을 칼같이 끝내는 고객이 사실상 별로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고객 확보에 성공하는 셈이다. 국내 이동통신업체는 한결같이 이러한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2~3개월 무료서비스를 해준 후 유료 전환을 종용하는 콘텐츠 상품 업체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게임기를 매우 싸게 주는 대신 더 많은 게임 타이틀을 파는 게임업체 등도 미끼상품을 잘 활용하는 사례다. 게임업체들의 이러한 마케팅 전략은 로스리더 전략을 처음 사용한 킹 질레트의 경우와 같은 셈이다.
어감에서 오는 느낌 때문에 미끼상품 전략은 무조건 나쁜 것으로 인식되기 쉽다. 하지만 이 전략이 무조건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다. 상품을 잘 선택하고 알뜰하게 쇼핑하는 현명한 소비자라면 미끼상품은 오히려 평소보다 매우 싼값에 원하는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미끼상품이 소비자들의 원성을 사는 가장 큰 이유는 업체들이 물량을 제대로 확보해 놓지도 않은 상태에서 광고를 앞세우기 때문이다. 대형마트 한 관계자는 “보통 일주일 단위로 하는 특판상품인데 무한정 물량을 확보해 놓는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말했다.
계획구매, 합리적 소비 중요
하지만 판매한 지 얼마 안돼 금방 동이 난다든지, 극히 적은 물량을 판매하면서 마치 충분히 살 수 있는 것처럼 선전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기껏 기다렸던 소비자들은 허탈함과 동시에 유통업체에 배신감을 느낀다. 미끼상품을 툭 던져놓고 다른 상품들을 오히려 비싸게 팔거나 질을 떨어뜨리는 경우도 비난을 받는다. 또 미끼상품을 너무 자주 활용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박정현 책임연구원은 “학습효과가 생겨 이제는 미끼상품에 현혹되지 않는 소비자들이 크게 늘었다”며 “그래도 여전히 계획구매, 합리적인 소비가 중요하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