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노사가 2022년 임금교섭 잠정 합의안을 마련하면서 현대차 책임(과장급) 1년 차 연봉이 올해 1억원을 넘을 전망이다. 또한 직원 1인당 평균 연봉 역시 올해 1억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공개한 현대차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현대차 임직원 중 다른 기업으로 이직한 숫자가 2018년 데이터 공개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자발적 퇴사자는 총 486명으로 2020년 298명 대비 63%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임금이 높아졌는데, 이직률도 높아졌다. 두 사례는 현재 현대차가 처한 상황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지난해 이직률이 높았고, 올해는 임금교섭에 따라 성과급이 전년 대비 늘어나면서 연봉이 올라갔다. 책임급 연봉 1억원, 직원 평균 연봉 1억원은 물론 많은 금액이다. 하지만 삼성전자, SK, LG화학 등 다른 국내 대기업들의 평균 연봉이 수년 전에 1억원을 넘겼던 만큼 현대차 직원들의 상실감은 컸다.
거센 전동화 패러다임 속에서 현대차는 대외적으로는 친환경차 시장 선점을 위해 치열한 경쟁에 돌입했다. 완성차 기업을 모빌리티 기업으로 전환하기 위한 작업도 한창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내부에서 발생하는 갈등까지 봉합해야 한다는 어려운 과제가 놓였다.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 <사진 연합뉴스>
▶이직률 증가 이유는 낮은 연봉?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 노사의 임금·단체협약 합의에 따라 올해 책임 1년 차 연봉은 세금을 포함해 약 1억980만원, 대리 1년 차 직원 연봉 8100만원, 입사 1년 차 직원 연봉은 7200만원가량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 노사는 지난 7월 12일 기본급 10만8000원 인상과 경영성과급 300%와 550만원, 주식 20주(약 360만원) 등의 협상안에 잠정 합의했다. 직급에 따라 기본급에 차이가 있는 만큼 직원들이 받는 성과급도 다르지만 대리 1년 차 기준으로 약 1900만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임단협 합의안에 대해 현대차 전체 조합원 4만6413명을 대상으로 찬반투표를 진행한 결과, 투표자 3만9125명(투표율 84.3%) 중 2만4225명(61.9%)이 찬성해 가결됐다.
현대차 성과급이 지난해 대비 늘어난 만큼 올해 직원 연봉도 확대될 전망이다. 지난해 현대차 직원들은 기본급 7만5000원 인상과 경영성과급 200%, 일시금 580만원과 주식 5주 등을 받았다. 올해 초 현대차가 전 직원에게 코로나 격려금 400만원을 지급한 것이 더해지면서 책임 1년 차 연봉은 1억원을 넘을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차 직원들은 불만이다. 특히 남양연구소를 중심으로 한 대졸 출신 연구원들의 상당수는 올해 성과급이 높지 않다며 반발하고 있다. 현대차 성과급은 2014년을 정점으로 2020년까지 꾸준히 하락했다가 지난해와 올해 소폭 늘어났다.
현대차 남양연구소 직원들의 불만은 여기서 시작됐다. 2014년 현대차 평균 연봉은 9700만원으로 국내 기업 중 1~2위를 다툴 정도로 높았다. 이후 실적 하락에 따라 성과급이 대폭 축소되면서 지금은 재계 20위권 밖으로 밀려난 상황이다. 이에 책임급 연봉도 그간 1억원을 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사원, 대리급 연봉도 삼성전자나 SK그룹과 같은 대기업 대비 현저히 낮았다. 한 현대차 직원은 “다른 대기업과 비교했을 때 연봉이 점점 줄면서 사기가 많이 떨어진 것이 사실”이라며 “불과 5~6년 전만 해도 업계를 비롯해 국내 최고 기업이었기 때문에 직원들의 상실감이 더 크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모빌리티 기업 전환을 위해 현대차가 소프트웨어(SW) 직군 채용을 확대하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미래 자동차는 ‘탈것’에서 모빌리티라는 개념으로 확장된다. 자동차가 이동수단을 넘어 사람이 머무는 또 하나의 공간으로 변모하는 셈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동차도 스마트폰처럼 변해야 한다.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이 앞다퉈 SW 인재 모시기에 나선 이유다.
현대차도 마찬가지다. 다만 기존 연봉으로는 우수한 인재를 끌어오기가 쉽지 않은 만큼 별도의 임금 테이블을 만들어 구글과 같은 유명 기업의 SW 인력을 높은 연봉을 주고 채용하고 있다. 현대차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방법이었지만 이 과정에서 기존 연구원의 불만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업계에서는 2014년 이후 이어진 연봉 하락과 최근 SW 인력에 대한 투자가 결국에는 이직률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현대차 2022년 지속가능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현대차 국내 임직원의 자발적 이직자는 총 486명으로 2020년 대비 63% 증가했다. 자발적 이직자는 정년퇴직과 해고 등의 사유가 아닌 직원 본인의 자발적 이유로 이직한 경우를 뜻한다. 일반적으로 직장을 옮길 때 이는 자발적 이직자에 해당한다. 현대차는 2018년도부터 자발적 이직률을 공개해왔는데 지난해 자발적 이직자 수가 가장 많았다. 현대차의 자발적 이직자 수는 2018년 298명, 2019년 370명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이직이 가장 활발한 나이대가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인 만큼 현대차도 젊은 직원들의 이직이 높아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 남양연구소.
▶남양연구소 노조 “투표 결과 공개하라”
쌓였던 불만은 올해 임금단체협상(임단협)을 거치면서 수면 위로 드러났다. 특히 기술직 중심의 기성 노조와 연구원 중심의 남양위원회 노조 사이에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가 이어지면서 자칫하다간 노노갈등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연구직 중심의 남양연구소는 올해 임단협에서 성과급에 초점을 맞췄다. 회사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 1분기도 역대 최고급의 성과를 낸 만큼 그에 합당한 성과를 받기를 원했다. 그간 낮아진 연봉,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에는 임금 동결까지 한 만큼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는 현대차 노조 파업 찬반 투표에서 극명하게 나타났다. 현대차 노조는 임단협 과정에서 사측이 합의안을 내놓지 않자 지난 7월 1일 파업 찬반투표를 진행했다. 찬반투표에는 전체 조합원(4만6568명) 중 4만958명(투표율 87.9%)이 참여해 3만3436명(재적 대비 71.8%)이 찬성했다. 그런데 연구직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남양연구소 노조인 남양위원회만 보면 재적 조합원 5866명 중 4577명(투표율 78%)이 투표했고, 이 중 4442명(재적 대비 75.7%)이 찬성한 것으로 집계됐다. 남양연구소 찬성률이 울산·전주·아산공장과 판매위원회 등을 합한 평균 찬성률보다 3.9%포인트 높았다. 투표자 대비 찬성률로 따지면 격차는 더 벌어진다. 남양연구소 찬성률은 97.1%로 전체 평균 81.6%보다 15.5%포인트나 더 높게 나타났다. 올해 처음으로 지역별 개표를 했는데 연구직 조합원들의 파업 찬성률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온 것이다. 임금과 성과급에 가진 불만을 가진 연구직들이 파업에 찬성표를 던졌다고 볼 수밖에 없다.
2019년과 2020년 연간 매출액이 100조원을 연속해서 넘었는데도 임금이 감소하자 지난해에는 적절한 성과급을 바라는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를 중심으로 현대차그룹 사무·연구직 노조가 출범하기도 했다. 올해 남양연구소에서 파업 찬성률이 높은 것은 지난해 현대차 매출액이 117조6106억원으로 전년보다 13.1% 늘어난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것과도 연관된 것으로 분석된다.
현대자동차 노사가 지난 7월 올해 임금협상 타결 조인식을 열고 교섭을 최종 마무리했다. <사진 연합뉴스>
교섭이 이어지고 경영성과급 300%와 550만원, 주식 20주(약 360만원) 등의 잠정합의안이 나왔다. 여기에 국내 전기차 공장 신설과 내년 기술직 채용 등의 안도 포함됐다. 이 합의안을 두고 노조는 찬반투표를 했는데 여기서 또다시 문제가 발생했다. 남양연구소 내에서는 잠정합의안에도 반대하는 의견이 상당히 높았다. 그러자 노조는 지역별 투표 결과를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나아가 이를 공개할 경우 ‘모든 책임은 당사자에게 있다’는 내용이 담긴 지부장 공지가 이어지면서 남양연구소 노조는 반발했다. 결국 남양연구소 노조는 부결 운동을 펼침과 동시에 노조를 향해 “남양연구소 개표 결과 비공개 이유를 공개하라”라고 주장했다. 또 대자보를 통해 “부문별 찬반율 비공개는 미봉책”이라며 “부문 간, 직군 간, 세대 간 갈등은 여전한 채 오히려 노동조합에 대한 불신만 키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연구직 vs 기술직, 끝나지 않은 쟁점
업계는 연구직과 기술직이 지향하는 것이 다르기에 이러한 갈등이 생겼다고 보고 있다. 언급했듯이 대졸 중심의 연구직은 정당한 보상을 원하고 있는데 기술직이 대다수인 노조는 고용 안정에 무게를 두고 있다. 임단협 교섭에서 노조가 국내 전기차 공장 신설과 신규 채용은 물론 임금피크제 폐지 등을 요구했던 이유다.
50대 이상 생산직들의 정년퇴직이 이어지면서 현대차 노조원 수도 최근 3년간 줄어드는 추세를 보였다. 지난해 현대차 노조 가입자는 4만7538명으로 전체 직원의 66.3%를 차지했다. 현대차 노조 가입자 수는 2019년 4만9641명, 2020년 4만8933명이었다. 전체 직원 대비 가입 비율도 2019년 70.7%에 이어 2020년 68.2%로 감소추세에 접어들었다. 업계는 현대차에서 향후 매년 2000여 명 이상의 기술직들이 퇴직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노조 가입 숫자는 2024년 3만여 명, 2028년에는 2만여 명으로 축소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차 남양연구소 노조의 대자보.
이번 임단협 결과 국내 전기차 공장이 신설되면서 기술직은 패러다임 전환 시대에 고용에 대한 불안감이 다소 해소됐다. 정년퇴직과 함께 줄어드는 조합원 숫자는 내년 신규 채용과 함께 선방했다는 평가다. 정년 연장, 임금피크제 폐지 등은 이뤄지지 못했지만 매년 2000명 이상의 기술직이 퇴직을 앞두고 있는 만큼 정년 연장 요구는 앞으로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연구직과 기술직이 바라보는 곳이 서로 다른 상황에서 기술직 중심의 노조가 이끌어내는 임단협 합의안에 연구직은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문제는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을 찾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합의안에는 연구직 별도임금체계를 내년 3월까지 노사가 함께 마련한다는 내용도 담겼는데 이에 대해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정보기술(IT), 소프트웨어(SW) 직군을 위한 별도 직무급제가 도입되면 연구직 간 갈등이 빚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기존 연구소 직원들의 불만이 상당한데, 직군별 임금에 차별을 두는 규정이 노사 합의로 이뤄질 경우 기존 직원들의 상실감은 지금보다 커질 수밖에 없다.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가 발생할 때 나타날 수 있는 여러 문제점이 현대차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문제는 딱히 해결방안이 없다는 점이다. 해고뿐 아니라 취업이 용이한 미국처럼 고용 문화가 유연하지 않을 뿐 아니라 강성 노조가 버티고 있는 만큼 인력 개편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여기에 SW 인력은 필요한데 기존 인력들의 불만, 기술직이 원하는 고용 안정성 확보까지 실타래는 너무 복잡하게 엮여있다. 업계 관계자는 “원론적으로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하는 것 외에 답이 없다”며 “이 파고를 현대차가 어떻게 넘길지 업계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