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은 포도로 만든다. 하지만 같은 포도, 심지어 같은 해의 같은 포도밭에서 나온 포도로 빚은 와인이라 할지라도, 어떤 와인 메이커가 양조를 하느냐에 따라 맛이 크게 달라진다. 같은 재료를 가지고 특별한 요리를 내오는 요리사들의 솜씨를 상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뛰어난 양조가가 만드는 와인을 빗대어, 한 병의 와인은 포도라는 물감으로 양조가가 그리는 그림과 같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양조가는 그저 자연을 반영할 뿐 진정으로 와인을 만드는 것은 대자연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에 따르면, 어떤 위대한 양조가도 테루아르(Terroir), 즉 포도밭이 처한 자연 환경의 한계를 넘어설 수 없다. 수많은 양조가들이 최고급 포도원인 로마네 콩티(Romanee Conti)와 샤토 라피트 로칠드(Ch Lafite Rothschild)를 거쳐 왔으나, 이 두 와인은 수백 년간 변함없이 최고의 와인을 만들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양조가의 임무는 대를 이어 전해오는 비밀의 레시피를 이용하여 매해 바뀌는 자연 환경을 해석하는 것일 뿐이다.
뛰어난 와인을 만드는 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자연인지 아니면 사람인지의 문제는 오랫동안 와인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야기되어 왔다. 와인을 즐기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인간의 노력이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하는 편이 와인을 즐기는 데 훨씬 재미있다. 어려운 자연 환경을 극복한 양조가의 이야기, 참신한 아이디어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영화 한 편을 보는 것처럼 스펙터클하다. 하지만 내가 만난 대부분의 양조가들은 겸손하게도, 와인을 만드는 것은 자신이 아닌 자연이라고 이야기한다. 샤토 라피트 로칠드의 와인 메이커인 샤를 슈발리에는 이에 대해 자신의 경험을 털어 놓았다. 1962년 보르도 1등급 포도원인 샤토 라피트 로칠드는 이웃의 포도원인 샤토 뒤아르 밀롱(Duhart Milon)을 인수하였다. 그리고 매년 샤토 라피트 로칠드를 만드는 똑같은 사람들이 똑같은 장비로 똑같은 노력과 비용을 기울였음에도 와인의 품질이 단 한 번도 샤토 라피트 로칠드를 넘어서지 못했다고 한다.
뛰어난 와인은 자연이 만든다는 생각은 어떤 농부들에게는 겸손의 메시지를 주지만 대부분의 평범한 농부들에게는 게으름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한다. 병충해가 심하게 돌거나 작황이 좋지 않은 해에 적지 않은 농부들이 그해의 농사를 포기하기도 한다. 이렇게 농부들의 보살핌이 전혀 없이 생산된 포도들은 와인 공장에 싸게 팔려서 다른 집에서 만든 또 다른 질 낮은 포도와 섞여 가장 저렴한 와인을 만드는 데에 사용되거나, 그저 증류되어 알코올 만드는 데 사용된다. 프랑스 르와르(Loire) 지역의 쉬농(Chinon) 마을에서 와인을 만들고 있는 베르트랑(Bertrand)은 이렇게 포도가 낭비되는 것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는 와인은 자연이 만든다는 아버지의 믿음에 동의할 수 없었다. 베르트랑의 아버지와 그 이웃 농부들은 날씨가 좋지 않으면 일찌감치 포도밭에 가는 일을 포기하고 염소나 양을 키우는 일에 전념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젊고 패기에 찬 베르트랑은 와인은 양조가가 만드는 것이라고 믿었다. 아버지와 크게 싸우고 가출한 베르트랑은 보르도로 넘어가 와인을 공부하고 칠레에서 경험을 쌓은 후 스페인에 도미나오 아타우타(Dominio Atauta)라는 와이너리를 설립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가족의 포도원인 도멘 팔루스(Pallus)를 돌보고 있다. 베르트랑은 사람의 노력이 더욱 중요하다고 믿는, 많지 않은 양조가 중 하나이다.
하지만 양조가의 노력이 늘 성공만 하는 것은 아니다. 2004년 작고한 부르고뉴의 천재 양조가 드니 모르테(Denis Mortet)는 주브레 샹베르탕 마을의 평범한 포도밭인 라보 상자크(Lavaux St Jacque)에서 다른 포도밭에서 만든 와인들보다 훨씬 뛰어난 와인을 만들어내며, 테루아르를 넘어서는 와인을 만드는 양조가로 명성을 얻었다. 성공에 고무된 드니 모르테는 당시 막 태어난 와인 생산지 마르사내(Marsannay)에 주목하였다. 이곳은 오랫동안 평범한 기본급 와인만 만들던 곳이다. 마르사내에서 최고급 와인을 만들기 위해 많은 투자와 노력을 기울였지만 마침 닥친 홍수, 갑작스런 세무조사 등의 복합적인 이유로 그의 꿈을 이루지 못하였다.
자연과 함께한 전통의 무게를 감안할 때, 유럽 와인들보다는 미국 와인들에게서 더욱 와인 메이커의 숨결이 느껴진다. 만약 어느 갤러리에 그 중에서도 단 하나의 와인만 예술작품으로 소개할 수 있다면, 나는 단연 ‘씨네 쿼 넌 와인(Sine Qua Non)’을 소개할 것이다. 와인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자연의 증거는 바로 빈티지에 있다. 빈티지는 포도가 수확된 해를 의미하며, 대부분의 와인들은 같은 이름의 와인을 매년 다른 빈티지로 소개한다. 가령 로마네 콩티 2001년산, 로마네 콩티 2002년산의 식이다. 이 와인들의 유일한 차이는 해가 다르다는 것인데, 다른 해에 생산된 와인들은 맛이 다르며, 가격도 차이가 난다. 하지만 씨네 쿼 넌에서는 특이하게도 매년 완전히 다른 와인을 만든다. 가령 씨네 쿼 넌의 첫 번째 와인은 퀸 오브 스페이드(Queen of Spade) 1994년산이지만, 이 이름의 와인은 더 이상 생산하지 않는다. 그 다음해에는 비슷한 블렌딩으로 디 아더 핸드(The Other Hand) 1995년산, 이듬해에는 어겐스트 더 월(Against the Wall) 1996년산을 만들었고, 물론 그 이후에 같은 이름의 와인들은 생산되지 않았다. 씨네 쿼 넌에서 생산되는 와인들의 품질도 몹시 뛰어나 세계 시장에서 수요가 공급을 능가할 정도이다. 아직 이름도 모르는 와인을 사기 위해 컬렉터들은 줄을 서서 기다린다. 씨네 쿼 넌 와이너리의 창립자이자 와인 메이커인 만프레드 크랭클(Manfred Krankl)에 따르면 어떠한 선입견도 없이 그저 최고의 와인을 만들기 위해 와인의 이름과 블렌딩의 비율을 매해 바꾼다고 한다. 양조뿐만 아니라 와인 병의 레이블도 직접 그리기 때문에 그의 와인은 만프레드 크랭클이 만들어내는 작가주의 영화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만프레드는 매년 씨네 쿼 넌 와이너리가 만드는 혁신의 동기는 바로 재미와 열정이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
만프레드 크랭클은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호텔학교를 졸업한 뒤, 캐나다와 그리스에서 어려운 시절을 보내다 캘리포니아 출신의 아내를 만나 1980년 로스앤젤레스에 정착하였다. 호텔의 와인 바이어로 경험을 쌓은 후, 2명의 투자자와 함께 베이커리 및 레스토랑 비즈니스에 뛰어들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와이너리를 설립하기 전인 1990년부터 만프레드는 자신의 레스토랑에만 사용할 맞춤형 와인을 주문하기도 하였는데, 여기에 재미를 느껴 1994년에 와이너리를 설립하고 10년이 지난 2003년에는 다른 사업을 모두 정리하고 와인 비즈니스에만 전념하게 되었다. 씨네 쿼 넌에서는 1994년에 1종의 레드 와인, 가장 많은 와인을 만든 2000년에는 화이트 2종을 포함한 8개의 와인을 생산하였으며, 매년 대략 5개 내외의 와인을 생산한다. 2000년까지 모든 포도를 이웃의 농장에서 구매해왔으며 2001년부터는 직접 재배한 포도를 같이 블렌딩하여 만든다.
프랑스 남부에서 주로 재배되는 시라(Syrah)와 그러나슈(Gren ache) 포도를 주로 블렌딩하는 씨네 쿼 넌의 와인들은 매우 진하며, 오늘날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와인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화려한 아로마가 인상적이다.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는 지금까지 22개의 씨네 쿼 넌 와인에 100점 만점의 점수를 주었으며, 100점 만점이 유력한 2017년산 와인 2개를 고려하면 총 24개의 와인이 이 리스트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