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의 날을 맞아 휴일이던 지난 10월 14일 도쿄 니혼바시와 무로마치 지역은 3일 연휴의 마지막 날을 즐기려는 인파로 북적였다.
특히 전달에 개장한 대형 쇼핑몰 무로마치 테라스엔 호기심에 찾은 사람들까지 더해져 인산인해를 이뤘다.
니혼바시는 도쿄가 사실상의 수도 기능을 하기 시작한 에도시대부터 도쿄의 대표적인 상가였다. 도쿄 교통망의 중심임을 보여주는 도로 원표 역시 이곳에 있을 정도로 핵심적인 쇼핑가였다. 다리(니혼바시)를 중심으로 한 지역이라 다리 이름이 그대로 지역명이 됐다. 무로마치는 다리를 통해 니혼바시 지역과 연결돼 있다. 도쿄역을 중심으로 동쪽에 위치한 니혼바시는 또한 역 서편에 위치한 오테마치와 함께 1970~1980년대 일본경제를 상징하는 곳이었다. 오테마치 대기는 사옥이 중심이며 니혼바시는 남쪽으로 긴자에 이르기까지 쇼핑을 상징하는 곳이었다.
미쓰비시 관련 회사들이 오테마치에 몰려있는 것에 비해 니혼바시엔 미쓰이 관련 기업들이 많은 것도 니혼바시가 대표적인 거리가 된 이유다. 좋은 시절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거품경제의 붕괴 등을 거치며 오테마치나 니혼바시의 위상은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특히나 17세기 에도시대 때부터 자리를 지켜온 노포들이 많았던 니혼바시는 타격이 더 컸다. 시대와 함께 존재감도 약해지다 보니 퇴근 시간 이후가 되면 사람이 없는 휑한 거리가 되는 시간이 길어졌다. 1999년 이 지역에 위치해 있던 도큐백화점 니혼바시점이 폐쇄되면서는 곳곳에서 니혼바시도 이제 한물갔다는 평가도 나왔다.
무로마치 지역을 기반으로 성장해왔던 미쓰이부동산에서 무로마치와 니혼바시 지역 재개발에 나섰다. 어디든 그렇지만 주민 동의를 받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노포가 많다보니 더 어려웠다. 노포의 전통을 자신의 대에서 끊을 수 없다는 일부 주민들의 의지는 결국 설득하지 못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2004년 고레도 니혼바시가 완공된 후 니혼바시 미쓰이 타워(2005년), 고레도 무로마치(2010년), 고레도 무로마치 2·3호관(2014년)에 이어 올해 9월에는 고레도 무로마치 테라스가 문을 열었다. 개발에 동의하지 않는 지역 주민들의 매장은 그대로 남기면서 이를 제외한 지역에 대형 건물을 올렸다. 남아있는 기존 건물들을 고려해 새 건물의 디자인을 바꾸는 등 개발로 인한 마찰을 줄이고 또 기존 상권에 스며들도록 신경을 썼다.
15년간 지속된 니혼바시·무로마치 개발을 마무리하는 것이 9월 문을 연 무로마치 테라스였다. 이미 4개의 대형 쇼핑몰을 세운 데다 미쓰비시 백화점 등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 뭔가 특색 있는 개발이 필요했다.
무로마치 테라스가 내세운 카드는 대만의 대형서점인 ‘청핀셩후어(誠品生活)’다. 일본 첫 매장을 유치하는 식으로 주목도를 높였다. 서점이라고는 하지만 책을 매개로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소품 등을 연계해 판매하는 곳이다. 츠타야 서점 등과 비슷하다. 대만의 느낌을 잘 살리기 위해서 대만 관련 매장을 집중 매치했다. 대만의 대표적인 찻집을 비롯해 생활용품, 식당 체인 등도 유치했다.
청핀셩후어 측에서는 서점을 메인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이를 통해 기대하는 것은 집객효과라고 말한다. 고객을 끌어들이는 수단으로 책을 활용하자는 측면이 더 크다는 것이다. 또 주변 서점과의 연계 강화를 위해 주변 서점에서 인기가 많은 책들의 판매는 최소화하고 다양한 공동 이벤트 등도 추진할 방침이다.
여기엔 책 구매의 상당수가 이미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대세가 바뀐 것도 한몫했다. 소형 서점 입장에선 대형 서점 신규출점이 없다고 영업환경 개선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사업기회를 만들 수 있다면 대형 서점을 활용하자고 판단한 셈이다.
무로마치 테라스가 문을 연 뒤에 지역 유동인구가 대폭 늘면서 주역 상가들에서도 적어도 지금까지는 환영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무로마치 테라스 앞에 위치한 고미술 판매매장인 에비야다. 이곳은 개발에 반대한 탓에 무로마치 테라스 건물 바로 앞에 덩그러니 남아있다. 9대째인 에비야의 사장은 부친이 건물을 세우기 위해 노력한 것을 아는 상황에서 매각에 응할 수는 없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는 알 박기처럼 보일 수 있는 이곳 건물의 매장들도 무로마치 테라스 개장 이후에 손님들의 발길이 늘었다.
맞은편의 재래식 상가에서 신발가게를 운영하는 A씨는 “대형 몰이 생기니 평일에도 사람이 오가면서 활력이 돌아왔다”고 “개발에 반대했지만 혜택은 함께 누리고 있어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니혼바시와 무로마치 개발은 한국과는 차이가 있다.
서울만 보더라도 구도심 재개발은 지방정부의 제한이나 또 반대 여론에 밀려 지연되기 일쑤다. 최근 들어 한국에 새롭게 들어선 대형 쇼핑몰 등은 손에 꼽을 정도다. 매달 어디선가 새로운 건물이 생겼다는 광고가 나오는 도쿄의 생동감을 한국에서 느끼기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구도심 재개발뿐만 아니다. 개별 산업에서 구체적인 규제 등에서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것들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10월부터 시작된 대형 서점의 출점 제한이다. 중소벤처기업부가 10월 3일 ‘서적, 신문 및 잡지류 소매업’을 생계형 적합 업종 1호로 지정하면서 생긴 일이다. 동네서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대형 서점의 출점에 제약을 두겠다는 것이다.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으로 인해 소규모 서점 경영에 미치는 효과를 판단하기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다만 전체적인 책 소비 감소와 함께 독자들의 서적 구매패턴이 온라인으로 이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형 서점의 출점을 막는 것이 최선의 정책인지는 의문이 남는다. 대형 서점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늘어난 고객을 통해 소형 서점의 새로운 활로를 찾는 무로마치 테라스의 방식에 더 눈길이 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