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LUXMEN·현대경제연구원 공동기획 한국경제 위기 大진단| 경제전문가 설문으로 본 文정부 경제정책… “소득주도성장이 가장 잘못, 잘한 정책 없다”
안재형 기자
입력 : 2019.09.23 16:17:12
수정 : 2019.09.23 16:17:55
▶위기 올 가능성 높다
<매경LUXMEN> 창간 9주년 설문조사에 참여한 국·내외 30명의 경제전문가 중 절반인 15명이 “내년까지 대형위기가 올 수도 있다”고 답했다. “위기는 없다”고 답한 이들도 “중·소형급 위기에 대한 단서를 붙여 경각심을 높였다. 만약 위기가 닥친다면 ‘내년 하반기’(40%)가 유력하다고 전망했다.
국·내외 경제위기의 원인은 ‘미중 무역전쟁’과 ‘경기 침체’ ‘한일 경제전쟁’으로 요약됐다. 올 4분기 세계경제의 최대 위기요인으로 꼽힌 미중 무역전쟁에 대해 구정모 대만CTBC 비즈니스스쿨 교수는 “글로벌 경기와 한중 간 무역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간재 수출국인 한국의 입장에서 무역전쟁에 따른 중국의 경제위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분석이다.
최근 한국을 찾은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도 “미중 무역전쟁이 확전될 경우 중국에 경제위기가 올 수 있으며, 동시에 한국 경제도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양기인 신한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은 “이미 서로에게 부과한 관세 전쟁만으로 세계 생산과 투자가 위축됐다”며 “만약 12월 15일 전 품목으로 관세부과가 확대되면 상대적으로 양호했던 소비경기가 위축되고, 뿐만 아니라 관세에서 기술·금융·안보로 확산되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무역전쟁이 경제적인 관점이 아니라 정치적인 패권전쟁으로 본격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정인교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선거 전략으로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격화시킬 가능성이 있다”며 우려를 전하기도 했다.
올 4분기 국내경제 최대 위기요인으로 ‘경기 침체(수출 및 내수부진)’를 꼽은 전문가는 31%나 됐다. 홍준표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수출과 투자가 이미 침체되고 있는 상황에 고용 개선이 지연되고 소비마저 제 역할을 못한다면 한국의 성장세가 급격히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한일 경제전쟁’(19%)도 위기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됐다. 이성훈 세종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올 4분기에 일본의 무역보복 여파가 현실화되면서 한국 경제에 단기 리스크가 확대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가하면 순위에는 없었지만 반도체 업황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있었다. 조용준 하나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은 “반도체 업황의 부진이 지속된다면 국내 투자와 수출 부진이 이어지며 국내 경제 둔화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지난 8월 27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에서 2020년도 예산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올 경제성장률 2.0% 이하 전망
정부의 경제정책은 낙제점
올 경제성장률에 대해선 30명 중 절반 이상이 2.0%(57%)라고 답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이코노미스트는 “4분기에도 민간소비의 부진한 흐름이 지속될 전망이지만 수출의 기저효과 소멸과 재고소진에 따른 축적 수요로 소폭 반등에 성공할 것”이라며 2.0% 성장률을 전망했다. 양기인 신한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은 “미중 무역전쟁이 현 수준을 유지하거나 완화된다는 가정 하에 2.0%를 전망한다”며 “분쟁 격화로 경제와 금융시장 충격이 확대된다면 2%를 밑돌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평가에선 설문에 참여한 전문가 중 43%가 D학점을 제시했다. F학점도 20%나 돼 낙제점이 절반을 훌쩍 넘어섰다. 반면 A학점은 전무했다. B학점도 6.6%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대외 불확실성이 늘고 있는 가운데 기업 경기에 부담을 주는 노동 및 산업 정책으로 기업 경쟁력이 악화됐다”며 “특히 대기업보다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취약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에게 타격이 집중됐다”고 말했다.
낙제점을 받은 가장 큰 요인으로는 ‘소득주도성장’(30%)과 ‘최저임금인상’(10.6%), ‘주 52시간 근무제’(10.6%) 등의 정책을 꼽았다. 특히 소득주도성장에 대해선 날 선 비판이 이어졌다. 박영렬 연세대 경영대 교수는 “결실 없는 소득주도성장을 고집하고 있다”며 “향후 우리 경제가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구정모 대만 CTBC 비즈니스스쿨 교수는 “과도하게 비싼 기회비용을 치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코노미스트는 “소득주도성장을 위해 가계 및 중소기업 친화적인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정작 기업 경쟁력이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며 “특히 기업들이 비용 효율화 측면에서 해외로 공장 이전 등을 단행해 한국 제조업 기반이 약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최저임금인상에 대해선 “일부 업종의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소득분배 면에서도 효과적이지 않다”는 의견이 있었다.
반면 ‘정부가 잘하고 있는 경제정책’에 대한 질문엔 ‘없다’고 답한 전문가가 26%로 수위를 차지했다. ‘공격적 재정정책’과 ‘공정경쟁 추구’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박남규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소비와 투자는 절벽인데 세금 징수만 늘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윤희도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세계 주요강국이 자국을 우선시하는 경제·외교정책을 강화하며 생존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이에 대한 대비책이 부족하다”고 전했다. 조용준 하나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은 “국내 경기 펀더멘털이 부진해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공조가 필요한 시점에 재정지출 확대는 경기 하단을 지지할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오석태 SG증권 전무는 “과감한 재정 지출 확대가 경제성장률 지지에 큰 공헌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정부가 내세운 513조5000억원의 내년 예산에 대해선 55.5%가 ‘반대’ 의견을 표했다. 박영렬 연세대 경영대 교수는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규제를 혁파하는 작은 정부가 필요한 시점인데, 정부의 재정적 개입으로 우리 경제 주체들이 자생력을 잃을 수 있다”며 “예산 규모가 너무 크다”고 답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제대로 쓴다면 찬성하지만 지금까지 정부의 재정 집행을 보면 장기적인 전망이 없다”며 “생산성 향상이나 지속적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안 교수는 “정책을 경제적 관점보다는 정치적 이념의 관점에서 접근하다보니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고 덧붙였다. 박남규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의 예산집행이 국가경쟁력으로 연결되지 않고 선거용 복지예산 확대로 가고 있다”며 반대의견을 나타냈다. 반면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적극적인 재정정책 추진은 필요하다”며 “다만 향후 지출증가속도를 관리하기 위한 나름의 준칙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홍성국 전 대우증권 사장도 “경제 상황을 보면 정부의 팽창 예산은 필요해 보인다”며 “하지만 단기 경기부양에 집중되는 느낌”이라고 아쉬움을 전했다.
▶新산업 발전에 가장 큰 걸림돌은 ‘정부규제’
설문에 참여한 경제전문가들은 향후 우리나라의 신성장산업으로 ‘ICT·빅데이터’(17.8%), ‘바이오헬스케어’(16%), ‘인공지능’(10.7%), ‘미래차(전기·친환경차)’(8.9%) 분야를 지목했다. 절반 이상의 전문가가 새로운 산업이 한국의 주력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5년 이상’(52%)의 기간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윤희도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고령화로 인해 헬스케어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며 “향후 AI진단, 로봇, 웨어러블 기기가 헬스케어 시장을 견인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4차 산업혁명·5G·바이오헬스·플랫폼 등 신산업 발전에 가장 큰 걸림돌을 묻는 질문엔 57.8%가 ‘정부규제’라고 답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새로운 산업 영역은 무엇이든 기존의 과거 규제 환경에 제약을 받고 있어 이 부분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도 “기본적으로 우리나라만큼 산업에 대한 규제가 많은 나라를 찾아보기 힘들다”며 “정치적(의원의 권력강화, 포퓰리즘), 문화적(책임을 지우는 문화)인 이유로 입법규제가 날로 늘고 있다”고 말했다. 조용준 하나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은 “정책적으로 법령 개정 등을 통한 신규업종 및 사업요건 완화나 융합을 가로막는 규제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설문에 참여해 주신 분 (가나다 순)
구용욱 미래에셋대우 리서치센터장, 구정모 대만 CTBC 비즈니스스쿨 교수,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변준호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박남규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박상용 연세대 경영대 명예교수, 박영렬 연세대 경영대 교수,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손성규 연세대 경영대 교수,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양기인 신한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 오석태 SG증권 전무, 온기운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유기윤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윤희도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이경수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 이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이기석 경희대 경제학과 교수, 이동근 현대경제연구원 원장, 이성훈 세종대 경영대학원 교수, 조용준 하나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 정인교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 홍준표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홍성국 전 대우증권 사장, 황인태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익명 참여자 3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