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40대 남성 A씨가 층간 소음 문제로 갈등을 빚던 이웃을 찾아가 흉기로 찌르는 일이 발생했다. 세종시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서 A씨는 아래층에 사는 B씨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B씨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중태다. A씨는 경찰에서 평소 층간소음 문제로 자주 다투다 홧김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 술에 취해 아파트 경비원을 무차별 폭행해 사망하게 한 40대 남성에게 최근 법원이 징역 18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최 씨는 지난해 10월 29일 술을 마신 뒤 자신이 거주하던 서대문구의 한 아파트 경비실로 찾아가 근무 중이던 70대 경비원을 마구잡이로 걷어차 사망하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최 씨는 경찰 조사에서 “경비원이 층간소음을 제대로 해결해주지 않아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포털 검색창에 ‘층간소음’을 쳐보면 올해 보도된 비슷한 사건사고만 수십 건에 달한다. 층간소음은 이제 이웃 간 ‘죽음’까지 부를 수 있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됐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층간소음에 대응하기 위한 기발한 ‘복수’ 비법들이 공유된다. 망치로 천장을 세게 두드리는 방법은 기본이다. 청소기를 천장에 매달아 켜 두거나 휴대폰에 시끄러운 음악을 넣어 화장실 환풍구에 대고 트는 방법도 있다. 인터넷 쇼핑몰에는 ‘층간소음 종결자’로 불리는 진동기능이 포함된 이른바 ‘복수 스피커’를 포함해 다양한 관련 상품들이 버젓이 팔리고 있다. 이처럼 상황이 심각해지자 정부 기관도 층간소음 규제를 강화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감사원은 이달 초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이 시공한 22개 아파트 126세대와 민간회사가 시공한 6개 아파트 65세대 등 191세대의 층간소음을 측정해 96%(184세대)가 사전 인정받은 등급보다 실측등급이 낮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국토부는 8개의 층간소음 방지 제품의 인정을 취소하고 나머지 146개 제품도 오는 8월까지 점검을 통해 인정취소 등을 추진한다. 바닥소음 완충재의 품질시험성적서를 발급하는 LH와 건설기술연구원을 점검하고 차단성능을 사후 측정할 방안도 연내 마련키로 했다.
대한민국은 인구의 약 60%가 아파트에 사는 명실상부한 ‘아파트 공화국’이다. 요새 특히 서울 강남에 신축을 분양하는 건설사들은 저마다 스카이브리지 등 각종 특화설계와 화려한 외관, 다양한 커뮤니티 시설,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적용한 아파트 건설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층간소음에서 자유롭고, 이웃과 갈등을 빚을 일 없이 마음 편하게 살 수 있어야 진정한 ‘명품 아파트’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고급 시설이 꽉 들어찬 아파트라 해도 밤마다 층간소음에 시달려야 한다면 결코 삶의 질이 높다고 할 수 없다. 정부도 층간소음을 줄이기 위한 기준을 강화해야 하지만 건설사 스스로도 소비자를 위해 ‘살기 좋은 아파트’를 짓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물론 소비자들 입장에서도 층간소음을 ‘이웃 간의 배려’를 통해 극복해야 하는 측면도 있다. 아무리 튼튼하고 두껍게 지어도 이웃에 대한 배려가 없다면 공동주택에서 각종 소음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배려에 앞서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라면 건축물의 구조나 기술적인 측면도 충분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아파트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최대한 인식하고 공유한 뒤에야 이웃을 이해하는 마음이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 바닥 구조에 대한 이해
층간소음과 관련해선 크게 아파트의 ‘바닥 구조’와 ‘건물 구조’ 두 가지를 이해해야 한다. 먼저 공동주택 바닥 구조는 대체로 이 같은 샌드위치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예로 들면 콘크리트 슬래브(210㎜) 위에 소음을 막기 위한 차음재로서 완충재(20㎜)를 얹고 또 경량 기포콘크리트(40㎜)와 마감 모르타르(40㎜)까지 더하고, 그 위에 다시 마루·장판 같은 바닥마감재를 10㎜ 정도 얹는 구조다. 그래서 총 330㎜ 두께가 기본이다.
지난 2005년 7월 이전에는 공동주택 바닥 두께, 정확히 말하면 콘크리트 슬래브 두께가 120~180㎜만 되면 괜찮았다. 그러다 층간소음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2014년 5월 이후 150~210㎜로 기준이 올라갔다. 두께를 키우면 건축비가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콘크리트도 많이 쓰는 데다, 하중이 무거워져서 이를 견디려면 그만큼 아파트를 더 튼튼히 설계하고 지어야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전용면적 85㎡인 공동주택의 슬래브 두께를 150㎜에서 210㎜로 키우면 공사비가 가구당 140만원이 더 든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슬래브 두께를 규정한 ‘표준바닥구조’와 별개로 바닥 충격음에 대한 ‘인정바닥구조’ 기준도 중요하다. 충격소음을 실제로 측정해 규제하는 제도다.
문제는 한동안 건설사가 바닥 두께 기준(표준바닥구조)이나 충격음(인정바닥구조) 기준 중에 하나만 충족하면 되도록 해왔다는 데 있다. 이는 건설사가 비용상 유리한 쪽을 하나만 선택할 수 있게 만들었고, 층간소음 문제를 더 키운 화근이 됐다는 평가다. 지난 2013년 2월 층간소음으로 인한 살인사건 이후 사회적 지탄을 받자 정부는 2014년 5월 이후 사업계획 승인부터 두께와 충격음을 동시에 충족시키도록 바닥소음 기준을 강화했다.
방배그랑자이
▶바닥만큼 중요한 건물 구조… ‘기둥식’의 강점
바닥 두께나 충격음 자체 크기 못잖게 진동이 어떻게 전해지는지도 중요하다. 그래서 최근에 바닥 구조 못지않게 주목받는 게 바로 아파트 건물 구조의 차이다.
건물의 구조는 크게 기둥이 있느냐, 없느냐로 나뉜다. 기둥 없이 벽이 위층 수평구조(슬래브· Slab)의 무게를 지탱하는 구조가 가장 일반적으로 많이 쓰이는 ‘벽식 구조’다. 반대로 무게를 지탱하는 기둥이 있으면 ‘기둥식 구조’라고 한다. 기둥식 구조는 다시 수평 기둥인 ‘보’가 있으면 ‘라멘(Rahmen)’ 구조, ‘보’가 없이 슬래브와 기둥만으로 이뤄져 있으면 ‘무량판’ 구조로 분류된다.
층간소음은 기본적으로 바닥의 울림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즉 바닥 진동이 벽이나 기둥을 타고 다른 세대로 전해지는 식이다. 바닥을 두껍게 하고 차음재를 써서 울림 자체를 줄이는 게 일차적 방편이다.
그다음으로 바닥의 충격이 전달이 잘 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데 이때 건물 구조가 영향을 미친다. 벽식 구조에서는 바닥 울림이 고스란히 벽을 타고 다른 세대로 전달된다. 쉽게 말해 진동을 일으킨 바닥과의 접점이 모든 벽으로 넓게 이어져 있기 때문에 전달이 잘 된다.
벽식 구조라면 10층의 쿵쿵대는 소리가 7~8층까지는 물론, 거꾸로 위로 11~12층까지 잘 전해진다. 가끔 아래층에서 나는 소리를 위층 소음으로 오해해 이웃 간의 불화가 깊어지는 것도 이러한 벽식 구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반면 기둥식은 바닥의 충격음, 진동이 보와 기둥으로 분산돼 바닥 충격이 기둥을 타고 전달될 가능성이 줄어든다. 슬래브의 진동이 보와 기둥으로 분산되는 라멘 구조의 소음이 가장 적고, 슬래브가 기둥으로만 이어지는 무량판 구조가 그 다음으로 소음이 적다.
아크로 서울 포레스트
국토부에 따르면 기둥식 구조의 층간소음 차단 효과는 벽식 구조보다 1.2배 높다. 2009년 당시 국토해양부 조사에서 기둥식 구조는 벽식 구조에 비해 바닥 두께 기준은 60㎜ 얇은데도 중량 충격음 만족도가 80%로 벽식의 65%보다 높았다.
그렇다면 이렇게 좋은 기둥식을 왜 건설사들은 적용하지 않을까? 국내 신축 아파트 대부분은 ‘벽식 구조’를 택하고 있다. 국토부 통계 역시 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한다. 전국에서 2007년부터 10년간 공급된 500가구 이상 공동주택 중 98.5%(194만 가구)가 벽식 구조를 채택했다. 기둥식 구조는 서울에서 1만9171가구, 경기도에서 3667가구 등 모두 2만9202가구에 불과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돈’이다. 기둥식은 공사비가 더 들어가기 때문에 건설사들이 꺼린다. 기둥식 구조를 고민하다가도 공사비가 올라가면 자연히 분양가가 올라가고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벽식 구조로 방향을 돌리는 것이다.
한국주택협회에 따르면 벽식 구조의 실내 층고는 평균 2.9m, 골조 공사비는 3.3㎡당 66만원이다. 기둥식은 층고가 3.25m로 더 높고 공사비는 3.3㎡당 82만원 선이다. 전용면적 85㎡ 기준으로 공사비가 500만원 정도 더 든다. 이러다보니 자연히 기둥식 아파트는 희귀해 질 수밖에 없다. 2009~2011년 아파트 중 벽식은 85%지만 기둥식 아파트는 2%, 무량판 아파트는 13%에 그쳤다.
단순히 공사비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기둥식으로 지으면 1개층 높이(층고)가 높아 결국 가구 수가 줄어들어 사업성이 저하되기도 한다. 단순히 비교해 기둥식 구조 중 라멘 구조로 20가구를 지을 높이라면 벽식으로는 22가구를 지을 수 있다. 그만큼 기둥식으로 지으면 같은 돈으로 팔 수 있는 상품이 줄어드는 셈이다. 시공이 까다로워 공사기간이 늘어나는 것은 덤이다.
원래 우리나라 아파트가 벽식 일색이었던 것은 아니다. 1980년대까지는 기둥식 아파트가 많았다. 1980년대 후반 분당, 일산, 평촌 등 1기 신도시가 대규모로 들어서면서 빨리 저렴하게 지을 수 있는 벽식 구조가 ‘공식’처럼 굳어져 버렸다.
청량리 해링턴 플레이스
벽식 구조의 단점은 소음만 있는 게 아니다. 벽식 구조는 리모델링이 어려운 구조다. 벽식구조는 벽만 건물을 지탱하고 있어 철거할 수 없지만 기둥식 구조는 기둥이 있기 때문에 벽을 허물고 내부 구조를 바꿔도 된다. 노후한 배관 등 설비 교체 역시 벽식 구조보다 기둥식 구조가 쉽다.
아파트 구조가 기둥식으로 바뀌면 소비자 선택권이 크게 개선될 수 있다. 지금같은 벽식 아파트는 일부 서비스 공간을 제외하면 구조가 동일하다. 전체 구조를 떠받치는 내력벽 위치를 바꿀 수 없는 탓이다. 반면 기둥식 아파트는 가족 수에 따라 방 수를 줄이거나 늘리는 등 자유로운 구조 변경이 가능하다.
건설사가 건물의 뼈대가 되는 골조만 지어서 소비자에게 선택권을 넘기는 방식도 가능하다. 이른바 ‘골조 분양’이다. 소비자가 가변형 벽체를 이용해 방 구조를 정하고 마감재와 인테리어까지 결정할 수 있고 부실시공에 따른 하자 분쟁도 줄일 수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지난 2017년 경기도 성남시 고등지구에서 골조 분양을 시범 도입한다고 발표했다가 “여러 여건상 시행이 어렵다”며 포기한 바 있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기둥식을 택하게 되면 천장고도 높아지고 이에 따른 가구 수 감소도 감수해야 한다”면서 “공사비용 자체도 많이 드는 데다 가구 수도 줄어들어 건설사 입장에서는 층간소음을 줄이자고 이를 택하긴 어려운 현실”이라고 밝혔다.
때문에 정부가 먼저 나서 기둥식 구조 건축에 따른 용적률 추가 등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정부가 층간소음 문제 해결을 위해 강력한 인센티브를 주지 않는 이상 수익성에 따라 움직이는 건설사들이 스스로 아파트 구조를 바꾸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기둥식 구조 적용 나선 단지들
다행히 최근에는 층간소음에 예민한 소비자들을 위해 더 많은 공사비를 감수하고도 기둥식 구조를 적용한 고급 단지도 슬슬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5월 청약을 진행하는 청량리역 한양수자인 192(1152가구), 청량리역 해링턴 플레이스(220가구), 서초구 방배그랑자이(758가구) 등이 기둥식 구조를 적용한다.
특히 방배그랑자이는 일반적으로 기둥식 구조가 많이 사용되는 주상복합 아파트가 아닌데도 층간소음을 방지하기 위해 기둥식 구조를 적용하기로 했다.
분양이 끝나 입주가 예정된 단지 중에는 성수동 아크로 서울포레스트(280가구), 고덕 센트럴 아이파크(1745가구), 세종 트리쉐이드 리젠시(528가구) 등에 기둥식 구조가 적용됐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층간소음에 예민한 소비자는 탑층이나 기둥식 아파트만 찾기도 한다”며 “이웃 간 불화를 일으키는 층간소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기둥식 아파트가 널리 보급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