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휴대전화만큼 쓰임새가 많은 물건도 없다. 누군가와 전화를 할 때에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많은 기능을 전화기를 통해 해결한다. 얼마 전까지 컴퓨터로만 주고받던 e메일도 휴대전화로 다 처리한다.
예전 같으면 신문을 펼치고 라디오를 틀어야 알 수 있던 세상소식도, 텔레비전 앞에 앉아야만 볼 수 있던 드라마도 휴대전화가 다 해결해준다. 참 간단하고도 살기 편한 세상이다.
그 중에 내가 휴대전화로 자주 확인하는 것이 오늘의 날씨이다. 외출할 때에도, 그냥 집에 있을 때에도 확인한다. 오늘은 기온이 얼마나 떨어지는지, 바깥 날씨가 춥지는 않은지, 눈이나 비가 오지는 않는지 확인하면 지금 당장의 날씨와 기온뿐 아니라 내일과 모레, 길게는 다음 주 날씨까지도 알려준다.
어릴 때는 그날 오후의 날씨나 다음날 날씨를 집안의 어른들이 짐작으로 알려주었다. 내가 어릴 때 할머니는 게를 먹은 다음 안방 문 앞 처마 끝에 게딱지 두 개를 서로 등을 맞대어 매달아놓았다.
“할머니. 그거 왜 매달아놓아요?”하고 물으면 커다란 집게발을 가진 게가 집안으로 들어오는 악귀를 쫓아준다고 했다. 할머니는 손자들 몸에 부럼(부스럼)이 생겨도 실을 가져오라고 해서 양쪽 손끝으로 잡아 부럼 부위를 살살 문지르며 우리 몸에 부럼이 얼른 사라지길 중얼중얼 주문을 외우듯 비손했다. 우리는 학교에서 배운 대로 그런 게 다 미신이라고 했지만 할머니는 집안에 생기는 모든 일들을 우선 비손으로 예방하고, 또 그 일을 해결했다.
기억에 봄과 가을 일 년에 두 번 게딱지를 바꾸어 다는 건 집안으로 들어올지 모를 악귀를 예방하여 쫓자는 뜻이었다. 게가 악귀를 쫓는지는 알 수 없어도 할머니는 방안에 앉아 게딱지가 달그락거리는 소리로 마당을 지나가는 바람의 말을 듣고 그들이 가는 길과 양과 세기를 짐작했다. 할머니만 가지고 있는 재주이자 일기 예측이었다.
때로는 놀랍게도 방안에서 게딱지가 서로 등을 부딪는 소리만 듣고도 어느 바람이 비를 몰고 올 바람인지 가려냈다. 할머니에겐 깊은 바다 속의 게가 허공을 지나가는 바람의 전령사였다. 이따금 마루로 올라와 방안을 기웃거리는 삽살개와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하듯 게딱지를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과도 그가 온 길의 소식을 묻고 행패 없이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을 전하듯 웅얼웅얼 이야기를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20년쯤 지난 다음 그 자리에 아버지가 한옥을 허물고 새로 지은 집은 서까래가 없는 양옥집이었다. 한옥이 양옥으로 바뀌면서 공중으로는 서까래가 없어지고 땅 위로는 툇마루가 없어졌다. 어릴 때는 형제들이 툇마루에 나란히 앉아 놀고, 또 툇마루와 연결된 안방 앞마루에 앉아 우리 머리 위에서 바람에 달그락거리는 게딱지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그곳에서 자란 우리는 어른이 되고, 저마다 가정을 가지게 되고, 또 어린 시절 우리와 같은 아이를 두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 그 집이 예전에는 양옥이 아니라 한옥이었다는 것도 잊고, 안방 앞 처마에 할머니가 게를 먹은 다음 게딱지를 매달아두었다는 것도 까마득히 잊고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고향집에 가니 예전의 할머니보다 훨씬 더 나이가 든 어머니가 게를 먹고 나서 그 게딱지를 마당가 자두나무에 매달아놓은 것을 보았다. 새로 지은 집은 그걸 매달 처마가 없는 양옥집이라 마당가에 있는 나무에 그걸 매달아놓은 것이었다. 그것도 일정한 시기가 있는 듯했다. 대개 씨를 뿌리는 봄과 그것을 추수한 깊은 가을에 게딱지를 바꾸어 달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우리가 자라 어른이 될 때까지 아주 오랫동안 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어머니가 게딱지를 걸어둔 자두나무는 아버지가 어렸을 때 할머니가 다른 집 울밖에 선 과일나무를 부러워하지 말라고 일부러 할머니 친정에서 묘목을 구해 와 심은 아주 오래된 나무였다. 우리는 어려서도 어른이 되어서도 그 나무 얘기를 자주 들었다.
어머니가 마당가의 여러 나무 중 자두나무에 게딱지를 매다는 것도 그것이 할머니가 심은 나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게를 매다는 것은 할머니 때부터 내려온 이 집의 비손 풍습이라고 어머니는 생각했을 것이다. 어머니가 시장에서 게를 사오고, 그걸 먹은 다음 매달아달라고 얘기하면 아버지가 실어 묶어 매달아주었다. 그것이 한 참 여러 해 오래 유지되었다.
그런 할머니의 아들인 아버지도 수년 전 여든네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때에도 게딱지 두 개가 자두나무의 푸른 잎들 사이로 하늘바다를 헤엄치듯 바람에 몸을 맡기고 놀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어머니는 한동안 게딱지를 바꾸어 달지 않았다. 그러다 내가 고향집에 갔다가 주문진 수산시장에 들러 커다란 게 여러 마리를 사와 그걸 어머니와 온가족이 함께 먹었을 때 어머니가 내게 그걸 매달아달라고 했다. 지난해 가을의 일이었다. 내가 게딱지를 매달 때 어머니도 늦가을 해바라기를 하듯 마당가로 나와 게를 걸 나뭇가지를 짚어주었다. 긴 여름 눅진 장마와 무더위를 이기고 가을볕까지 받아내며 하얗게 색이 바랜 채로 먼저 걸려 있던 게딱지는 갑자기 풍이 온 아버지가 병원에 실려가 누워 있을 때 어머니가 매단 것이었다.
아마도 거기엔 바람이 어머니에게 전하는 말보다 어머니가 바람결에 누구에겐가 전하고 싶은 말이 더 많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할머니는 어머니의 말을 들었을 것이다. 나는 어머니가 매달은 자리보다 두 뼘 위의 가지를 잡아당겨 게딱지 두 개를 같은 실에 꿰어 걸었다.
“안쪽 말고 등이 서녘햇빛을 오래 받게 걸어라. 따뜻하게.”
“바람에 흔들리다보면 이쪽으로 갈 때도 있고 저쪽으로 갈 때도 있지요.”
“아니야. 처음에 잘 달아야 해. 보기엔 숨이 없는 것 같아도 바람 그치면 제가 알아서 처음 있던 자리로 돌아간단다.”
어머니는 단지 뚜껑만 남은 게를 산 게처럼 말했다. 이 집 마당은 우리가 지켜온 것이 아니라 그렇게 오랜 세월 할머니와 어머니가 지켜온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