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과 올 1월 홍콩에서 열린 와인 경매에 참석해 보니 최근 프랑스 부르고뉴산 고급 와인가격의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현재 수집가들 사이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와이너리인 ‘콩트 리제 벨에르(Comte Liger-Belair)’의 라 로마네란 와인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한때 소비자가로 100만원이 조금 넘는 가격에 거래되었으나, 지금은 빈티지에 따라 해외 경매가로도 1000만원 가까이 거래되는 경우도 있다. 수입 와인에 대한 세금이 높고 식품검사가 까다로운 우리나라에는, 오래된 고급 와인이 들어오기도 또 국내에서 소장하고 있는 와인을 해외 경매에 출시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세계 와인 시장에서 주식처럼 변동하는 고급 와인 가격이 우리나라까지 영향을 미치는 데에는 대략 1~2년 정도 시간이 더 걸린다. 그래도 출시일이 상대적으로 빠른 부르고뉴의 와인들은 우리 소비자들도 올 초부터 가격 인상을 실감하게 될 것 같다. 사실 최근 고급 와인의 가격 상승을 부추긴 건 보르도 와인이다. 2005년산 와인부터 급격하게 상승한 보르도 고급 와인 가격은 2010년산에서 그 최고점을 찍고는 아직까지 내려오지 않고 있다. 가령 보르도 5대 샤토 중 하나인 ‘샤토 라피트 로칠드’의 2008년산은 현지 도매가 기준으로 약 200유로가 안 되는 가격에 출시되었으나 지금은 600유로, 현지의 소비자가 기준으로는 약 900유로에 거래되고 있다. 오래 보관할수록 가치가 올라가는 특성 덕분에 보르도 와인은 경매에서도 많이 거래되고 있으며, 2차 시장이라고 불리는 구매자간 거래 시장도 활발해 환금성이 높은 편이다. 특히 최근 급격히 성장한 중국 시장의 경우, 보르도 와인이 실제로 소비되기보다는 투자나 뇌물의 목적으로 구매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보르도 와인 가격의 인상을 투기 현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 중 하나인 코펜하겐의 ‘노마(Noma)’는 보르도 고급 와인을 더 이상 소비하지 않는다고 선언해 큰 화제가 된 적도 있다.
▶가격상승에 따른 소비문화의 변화
와인 가격이 오르면 와인 소비문화에도 많은 변화가 생긴다. 첫째로 부유한 수집가들이 선호하는 최고급 와인은 평범한 애호가들이 맛보기 더욱 어려워진다. 가장 비싼 와인의 대명사로 불리는 ‘로마네 콩티(Romanee Conti)’는 내가 거주하던 생테밀리옹 지역의 와인바에서 잔술로 한잔에 100유로에 팔기도 하였지만, 이제는 한 병에 1000만원을 줘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둘째로는 대체 상품들이 가격인상으로 생긴 공백을 치고 올라오는 경우도 있다. 특히 한정된 예산으로 다양한 와인의 재고를 운영해야 하는 레스토랑의 경우 어쩔 수 없이 보르도 고급 와인의 수를 줄이고 다른 와인들을 찾아야 했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부르고뉴나 론의 고급 와인들로 대체하는 것이었지만, 노마 레스토랑이 선택한 방법은 조금 달랐다. 2012년 노마 레스토랑은 보르도 와인을 더 이상 취급하지 않는 대신에, 당시에는 아직 생소하던 내추럴 와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세 번째로는 새로운 성장의 기회가 생기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마트가 계열사를 통한 현지 직거래와 대량구매로 보르도 고급 와인 가격을 대폭 낮추는 전략을 추진했는데, 이 전략이 주효하여 이마트는 우리나라 소비자들에게 가장 큰 와인 판매처가 되었다.
보르도 그랑크뤼 와인같이 특정한 카테고리 와인 전체의 가격이 오르면 노마 레스토랑처럼 카테고리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레스토랑이나 와인 전문점들은 선별을 통해 몇 개의 아이템에 집중하는 전략을 세운다. 가령 샤토 탈보 같이 인기 있는 와인은 유지하면서, 경쟁력이 없을 것이라 생각되는 와인들은 제외하는 방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등급 수준의 품질을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다는, ‘슈퍼 세컨드’라고 불렸던 와인들, 예를 들면 ‘샤토 레오빌 라스카스’나 ‘샤토 코스 데스투르넬’ 같은 와인들이 소믈리에들의 전략적 선택의 희생양이 된 것으로 보인다. 과거 5대 샤토 와인들의 수준까지 올라간 가격들을 소비자들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샤토 코스 데스투르넬은 장 기욤 프랏(Jean-Guillaume Prat)이 책임자로 있던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매년 우리나라에 찾아와 직접 와인 시음회를 진행할 정도로 인기 있는 와인이었다.
▶포도밭도 중요하지만 기술과 노하우가 앞서야
샤토 코스 데스투르넬은 보르도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생테스테프(Saint-Estephe) 마을을 대표하는 고급 와인으로, 이웃한 포도원인 ‘샤토 몽로즈’와 묘한 경쟁관계를 이루고 있는 포도원이다. 두 포도원은 같은 마을에서 가장 고급 와인을 만든다는 점 외에도, 2000년대에 주인이 바뀌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몽로즈는 2006년 프랑스의 통신 재벌인 부이그 형제에게 인수되었고, 코스 데스투르넬은 2000년 식품업으로 재산을 모은 미셸 허비에가 프랏 가문으로부터 인수되었다. 하지만 인수 후의 움직임은 크게 달랐는데, 몽로즈의 경우 ‘샤토 오브리옹’에서 양조책임자로 일했던 장 베르나 델마스를 영입하였고, 2011년 그가 은퇴하자 다른 1등급 포도원인 ‘샤토 무통 로칠드’의 공동 사장으로 있던 에르베 베를랑을 CEO로 영입하여 1등급 수준의 와인을 만들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반면 샤토 코스 데스투르넬은 외부 사람을 영입하는 대신 이전 소유자 가문의 장 기욤 프랏을 CEO 책임자로 고용하였다. 장 기욤은 2013년 초 LVMH의 임원으로 스카우트되어 보르도를 떠나기 전까지 10년 이상 샤토 코스데스투르넬을 지휘하였다. 얼핏 샤토 몽로즈에서는 혁신적인 변화 그리고 샤토 코스데스투르넬이 과거의 전통적인 방식이 유지될 것으로 생각되지만, 실제로 진행된 전략의 방향은 그 반대였던 것 같다. 나는 매년 샤토 몽로즈를 배럴 테이스팅할 때마다, 스타일은 변함 없으나 와인들이 점점 섬세하고 견고해진다는 느낌을 받았던 반면, 샤토 코스 데스투르넬의 경우, 특히 장 기욤이 떠난 이후부터는 마치 과거의 와인과 다른 와인을 시음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지역의 전문가들은 2009년 새로운 와인 셀러가 완성되고 나서 샤토 코스 데스투르넬의 스타일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얘기하고 있으며, 사람에 따라 그 평가가 갈리는 편이다. 유명한 와인 평론가들 중에 로버트 파커는 이 새로운 코스 데스투르넬의 스타일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는데, 과거 즉 미셸 허비에가 인수하기 전의 10개 빈티지에 대해서는 90점의 평균 점수를 준 반면, 소유주가 바뀐 이후 16개 빈티지의 평균점수에는 95점을 주고 있다. 파커와 가장 경쟁 관계에 있는 잰시스 로빈슨 같은 경우는, 이후와 이전에 대해 아직까지 품질의 차이를 두고 있지는 않다.
나는 약 10여 년 전 저녁 자리에서 장 기욤에게 샤토 몽로즈보다 샤토 코스 투르넬이 비싸게 팔리는 비결에 대해 물었다.
장 기욤에 따르면, 샤토 몽로즈가 어쩌면 더 좋은 포도밭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포도밭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는 기술과 노하우가 샤토 코스 투르넬이 더 앞서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마침 샤토 몽로즈도 5000만유로를 투자한 와이너리 리노베이션을 2013년에 마무리하여, 이제 조금씩 그 투자의 결과들이 와인의 품질로 반영되기 시작할 때이다. 우리나라에도 막 출시되기 시작한 2016년산은, 전체적으로 어려웠으나 좋은 기술을 가진 포도원들에게는 뛰어난 와인을 만들 수 있었던 농부들의 해의 와인으로 스타일과 품질의 변화를 보기에 좋은 와인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