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면 휠라코리아 신임 사장의 특명이다. 그는 휠라가 국내 론칭한 지 23년 만에 처음 단행한 브랜드 리뉴얼을 진두지휘하면서 낡고 올드한 이미지를 싹 거둬내고 젊고 핫(hot)한 브랜드로 탈바꿈을 주도하고 있다. 달라진 휠라의 모습은 한마디로 ‘스타일리시 퍼포먼스’다. 쉽게 말해, 첨단 유행도 살리고 스포츠의류 본연의 기능성(퍼포먼스)까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브랜드를 선보이겠다는 것. 나이키와 아디다스가 뛰어난 퍼포먼스 제품으로 선두를 달리고 있는 시장에서 휠라는 고감도의 스타일까지 가미한 상품으로 차별화하겠다는 전략이다. 그는 ‘스타일리시 퍼포먼스’라는 브랜드 정체성에 맞도록 로고부터 콘셉트, 상품, 매장 인테리어까지 전부 바꿨다. 이를 위해 전 직장인 삼성물산 패션부문에서 호흡을 맞춰온 정구호 디자이너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 겸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내년 5월경에는 스포츠웨어의 메카로 떠오른 서울 이태원에 ‘휠라’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할 예정이다. 더불어 2020년까지 국내 사업 부문 매출을 8000억원대로 두 배 끌어올려 업계 3위권에 재진입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윤윤수 휠라 회장에게서 러브콜 받아
지난 11월 말 김진면 사장을 만나기 위해 서울 서초동 휠라코리아 사옥을 찾았다. 5층 사장실 회의 탁자에 앉으니 은은한 옥빛의 전통 찻잔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시선을 알아차린 김 사장은 “조선 최고의 거상 임상옥이 평생 정신적 지주로 삼았다는 계영배(戒盈杯)다. 항상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균형을 지키기 위해 곁에 두고 아끼는 물건”이라고 설명했다. 계영배는 ‘넘침을 경계하는 잔’이라는 뜻으로, 잔의 70%를 넘게 채우면 물이 모두 밑으로 흘러내린다. 균형(밸런스)을 중시하는 그의 성향을 가늠케 했다. 김 사장은 2년 전인 2013년 말 삼성물산 패션부문 전무를 마지막으로 30년 패션 인생을 마무리하고 연세대 강단에서 객원교수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었다. 그는 “티칭 이즈 러닝(Teaching is learning)이라는 말이 맞더군요. 30년 패션업 실무 경험을 학생들에게 전달하다보니 제가 배우는 게 더 많았습니다. 두 시간 강의하는 데 30시간을 준비할 정도로 열심히 했더니 5점 만점인 강의 평가에서 4.75점을 받았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에게서 사장직을 제의하는 러브콜이 왔다. 휠라는 인지도가 높은 글로벌 브랜드지만 지난 몇 년간 브랜드가 정체되면서 예전 명성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이어졌고 국내 스포츠웨어 시장에서 점유율과 선호도가 눈에 띄게 낮아진 상태였다. 구원투수 역할을 제대로 못하면 30년 패션 인생에 자칫 오점을 남길 수도 있다. 그는 사장직을 수락한 이유에 대해 “휠라에 매력을 느꼈던 건 두 가지”라면서 “예전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선망했던 글로벌 경영의 달인 윤윤수 회장님과 일해보고 싶다는 것과 100년 넘는 헤리티지를 지닌 글로벌 브랜드를 운영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휠라가 지금은 다소 정체되어 있지만 헤리티지와 아이덴티티가 확고한 브랜드라 반등시킬 여력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고 답했다.
▶4개월간 직원들과 도시락 미팅하며 스킨십
휠라 혁신을 위해 김 사장은 브랜드 리뉴얼과 조직문화 개선, 프로세스 혁신이라는 큰 틀을 구상했다. 우선, 브랜드 리뉴얼은 정구호 부사장에게 전적으로 맡겼다. 그는 “제일 먼저 상품이 있어야 하는데, 정 부사장은 선천적인 재능을 갖춘 데다 미국과 프랑스에 진출해본 경험을 갖고 있어 글로벌 브랜드 휠라의 리뉴얼을 이끄는 데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고 신뢰감을 드러냈다. 정 부사장은 ‘스타일리시 퍼포먼스’라는 휠라의 새로운 브랜드 아이덴티티(BI)를 바탕으로 3개의 기능서 제품군과 ‘휠라 오리지날레’라는 라이프스타일 라인을 별도로 만들어냈다. 유통업계 바이어들과 업계 전문가들의 호평 속에 “역시 정구호”라는 말이 나와 기대에 부응하고 있다. 김 사장은 “정 부사장과는 요즘 말로 케미가 잘 맞는다. 우리는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식당으로 치자면 정 부사장은 주방을 책임지고 나는 홀서빙을 맡고 있는 셈이다. 홀서빙 지배인이 주방장에게 간섭하면 좋은 음식 맛이 나겠는가. 맛은 주방장이 내고 나는 손님들을 오게 해서 별미를 즐기게 하면 된다”고 비유했다. 정 부사장이 브랜드 리뉴얼을 하는 동안 김 사장은 조직문화 개선과 프로세스 혁신을 주도했다. 전 직원의 화합과 목표점 공유를 위해 2배의 성장과 2배의 가치를 달성하자는 ‘Two Be Outstanding’이라는 전사적 비전 선포를 했다. 아울러 직원 간의 소통을 활성화하기 위해 김 사장은 점심시간마다 각 부서 팀원들과 돌아가며 도시락 미팅을 했다. 약 4개월 만에 전 직원과 한 번씩 대면할 수 있었고 이는 소통의 중요한 첫걸음이 되었다고 한다. 김 사장은 “직원들을 만나면서 한마음 한뜻으로 같은 배를 타고 한 방향으로 간다는 동주공제(同舟共濟)를 강조했다”고 전했다. 제품과 조직 문화뿐 아니다. 의류 회사에서 가장 기본이면서도 중요한 품질 관리를 위해 소싱 프로세스의 개혁도 단행했다. 얼마 전, 전 직원이 공유하는 회사 게시판에 누군가가 올린 ‘비구름 뚫고 올라서면 파란 하늘이 보인다’는 문구가 있었다. 휠라가 나아갈 길에 대한 희망을 느끼는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리뉴얼한 휠라 매장
▶2020년까지 국내 매출 8000억 목표
현재 휠라의 매출은 7935억원(2014년 연결기준)이다. 그중 약 4000억원에 달하는 국내 부문 매출을 2020년까지 8000억원대로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다. 일단 아웃도어웨어가 주춤한 가운데 휠라가 속한 애슬레틱 웨어에 레저를 더한 애슬레저 시장이 새롭게 각광받고 있어 시장 상황은 좋은 편이다. 여기에 휠라는 헤리티지와 아이덴티티를 갖춘 글로벌 브랜드라서 좋은 디자인과 장인정신을 더한다면 명품으로 재도약하는 건 시간문제라는 것. 젊은 층 수요가 계속 늘고 있는 휠라골프와 어린이를 위한 기능성웨어 틈새를 공략한 휠라키즈 그리고 캐시카우인 휠라 언더웨어까지 탄탄하게 라인업을 하고 있다. 최근 해외에서 휠라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자회사로 운영 중인 미국 휠라 USA는 2007년 인수 이후 지속적인 매출 상승세를 이어나가고 있다. 효율적인 브랜드 운영을 위해 코올스 등 현지 유통업체와의 계약을 통해 도매 형식으로 영업전략을 전환했는데, 이게 주효했다. 최근에는 유명 편집숍 어반 아웃피터스와 콜라보를 통해 휠라의 헤리티지 라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출시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중국에서는 현지 업체인 안타와 합작투자법인을 설립해 사업을 전개해 나가고 있는데, 매년 두 자릿수 고속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5월에는 홍콩 침사추이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했다. 일본에서도 20대 젊은 층을 중심으로 휠라 브랜드 선호도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