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얗게 바랜 머릿결이 방점을 찍은 듯 허연 콧수염이 인상적이다. 영재교육 분야의 세계적인 구루(Guru)로 인정받고 있는 클라우스 우르반(Klaus K. Urban) 교수는 “알고 있는 것보다 실행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며 “다르게 말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함부르크대학에서 교육학, 언어학, 심리학을 전공하고 1979년부터 하노버대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세계영재학회(The World Council for Gifted and Talented) 회장을 역임했다. 그가 개발한 ‘창의성검사(TCT-DP)’는 우리나라(www.nowmesa.org)를 비롯해 전 세계 32개국에서 활용되고 있다. 이번이 첫 방한인 우르반 교수는 유아기 이후 창의성 개발에 대해 “Never Too Late”를 반복하며 중요성을 역설했다.
“창의성 개발에 시점의 제약은 없습니다. 죽기 전까지 개발해야죠. 물론 조건이 있습니다. 창의적인 풍토가 제공돼야 개발이 가능합니다. 자기만의 생각을 가질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이 중요한데, 예를 들어 어린 시절 남과 다른 말을 했다고 부모님이 나무랐다면 그 생각은 거기서 멈추고 맙니다. 성인이 됐을 때도 마찬가지인데, 조직의 풍토에 따라 창의성이 달라집니다.”
창의성의 첫 번째 덕목은 개방성
우르반 교수는 창의성 교육에 가장 바람직한 환경으로 ‘개방성’을 꼽았다. 무엇보다 언제까지 끝내야 한다는 시간적인 스트레스가 없어야 창의적인 생각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공간과 자료도 충분히 준비돼야겠죠. 그리고 또 하나, 창의성을 발휘하려면 자기 영역에 대한 전문가적인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어느 순간 뚝 떨어지는 게 창의성일 수 있을까요. 경험에 대한 개방성도 필요합니다. 이미 해봤는데, 이건 이런 이유 때문에 안 된다는 생각은 창의성에 걸림돌일 뿐입니다.”
그는 창의성 교육을 논하며 독일의 교육과정을 예로 들었다. 같은 날 시작해 1년 후 어느 과정까지 마쳐야 한다는 식이 아니라 같은 교과서로 공부해도 결과물이 제각각일 수 있도록 내용보다 실행에 중심을 둔다는 것이다.
“영재교육과 창의성 교육이 다르다고 인식하는 분들도 있는데, 전 넓은 의미에서 예술, 사회, 실용적인 분야까지 다양한 영재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범위를 넓히면 영재교육과 창의성교육은 결국 같아요. 물론 지적인 분야만 놓고 보면 전혀 다르죠. 영재가 아니더라도 창의적인 사람은 얼마든지 있거든요.”
박스 밖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창의성 교육을 어떻게 기업에 적용할 수 있을까. 우르반 교수의 논리는 어린 시절 부모님의 가르침과 초·중·고등학교 선생님의 교육, 대학과 사회조직의 시스템에 적용되는 예와 다르지 않았다.
“우선 직장의 풍토가 바뀌어야죠. 가정에서의 환경, 학교에서의 환경, 직장에서의 환경이 창의성을 위한 기본 조건입니다. 일반 대중과 전혀 다른 말을 한다고 해서 야단치고 무시한다면 획일적인 사고만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보편적인 독일기업에서도 창의성을 개발하기란 쉽지 않은데, 그건 보수적인 위계질서 때문입니다. 글로벌 기업일수록 수평적인 사고가 원활하더군요. 기업의 성장이나 생존에 있어 창의성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수동적으로 접근해선 얻을 수 있는 게 없어요. 적극적으로 이끌어 나가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수직적인 관계보다 수평적인 관계가 미래지향적입니다.”
그는 국내 대기업에 대한 조언을 구하자 “삼성의 이름만 아는 교육학자”라며 에둘러 자국 기업을 이야기 했다.
“독일의 폭스바겐이나 BMW를 예로 든다면 직원들로 하여금 현재 생각하고 있는 것과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박스의 안쪽만 보고 있는 게 아니라 바깥쪽은 어떤지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수 있도록 자극하고 지원하는 게 현재 세계적인 톱 기업의 숙명입니다.”
독립적인 사고가 아이 교육의 첫째 조건
세계적인 교육학자로 유명한 우르반 교수는 독일 내에서 시인이자 화가, 음악가로도 이름을 알리고 있다. 스스로 ‘싱어 송 라이터’라고 소개할 만큼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다. 기타, 바이올린, 오르간, 트롬본, 벤조 등의 악기를 연주하며 음악회를 열기도 한다. 그는 “부모님의 개방적인 음악교육이 많은 도움이 됐다”며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키울 때도 의도적인 교육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건 이렇게 해야 한다고 규정하기보다 스스로 사고 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는 것이다.
“미리 정해주는 건 없었어요. 아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사고할 수 있도록 신경 썼죠. 그것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