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로벌 금융심장 맨해튼 월가의 최대 화두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의 양적완화 축소 시점이다. 그리고 이에 못지않게 헬리콥터 벤(경기가 좋지 않을 때는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듯 적극적으로 돈을 풀어야 한다는 지론 때문에 붙은 별명)으로 불리는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의 초완화적인 통화정책 방향에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할 차기 연준 의장에 누가 오를지가 뜨거운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벤 버냉키 현 연준 의장 임기는 내년 1월 31일까지로 월가에서는 버냉키 의장 퇴임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지난 6월 17일 “버냉키 의장이 본인이 원했던 것보다 더 길게 연준 의장 역할을 했다”며 사실상 버냉키 의장의 3연임은 없다는 점을 확실히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4년 임기의 차기 연준 의장을 9월께 선임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 경제대통령으로 불릴 정도로 연준 의장은 미국 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지난 2008년 9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공격적인 양적완화 정책을 통해 경제를 지지하는 연준 역할이 커지면서 버냉키 의장이 시장에 미치는 힘은 더욱 강력해졌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시장이 일희일비할 정도다.
이처럼 막중한 역할을 수행해야 할 차기 연준 의장 하마평에 여러 인물이 오르내리고 있다. 자넷 옐런 현 연준 부의장,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 도널드 콘 전 연준 부의장, 흑인으로 연준 부의장을 지냈던 로저 퍼거슨 교직원연금보험(TIAA-CREF) 회장, 버냉키 의장 박사논문을 지도했던 스탠리 피셔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 등이다. 이 중 버냉키 의장과 함께 공격적인 양적완화를 이끌고 있는 자넷 옐런(67) 연준 부의장이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연준 100년 역사상 최초의 여성 연준 의장 자리에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강했다.
그런데 최근 강력한 다크호스가 부상했다. 바로 래리 서머스(59) 전 재무장관이다. 특히 서머스 전 재무장관이 상당한 애착을 가지고 연준 의장직에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사실 서머스 전 재무장관이 연준 의장 하마평에 오르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9년 대통령에 취임한 오바마는 1기 정부를 구성할 때 빌 클린턴 행정부 때 재무장관을 역임했던 서머스를 다시 재무장관으로 중용하지 않고 국가 경제위원회(NEC) 위원장 자리에 앉혔다. 이때 시장은 물론 오바마 행정부 내에서조차 오바마 대통령이 서머스 전 재무장관에게 차기 연준 의장 자리를 약속한 뒤 NEC 위원장으로 영입한 것 아니냐는 소문이 파다했다.
당시 버냉키 연준 의장 임기도 2010년 1월 말에 마무리되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오바마 대통령이 서머스 전 재무장관과 사적인 대화에서 차기 연준 의장자리를 놓고 논의를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결국 버냉키 의장 연임을 결정하면서 서머스 전 재무장관은 연준 의장 자리와 인연을 맺지 못했다.
서머스는 자타가 공인하는 현시대 최고의 경제학자 중 한 명이다. 하버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28세에 종신 교수직에 올랐고 지난 93년에는 40세 이하 경제학자에게 주는 노벨경제학상으로 불리는 존 베이츠 클락 메달을 수상했다. 경제적 이슈를 신속하고 명확하게 분석하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밝혀낸 뒤 해결책을 제시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게 주변의 평이다.
서머스는 지난 2009~2010년 2년간 오마바 1기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백악관을 떠난 뒤에도 여전히 오바마 대통령과 스스럼없이 소통을 할 정도로 오바마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한 명이다. 오바마 대통령과 인연을 맺기 전인 2001~2006년 하버드 대학 총장을 역임했고 지난 1999~2001년 빌 클린턴 행정부 때 재무장관을 지냈다. 이처럼 공직과 학자생활은 물론 2006년부터 3년간 헤지펀드 DE쇼의 대표를 지내면서 금융 현장도 두루 섭렵하는 등 이미 준비된 연준 의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에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 외에 국내외 강연활동을 대폭 늘리는 등 대외행보를 넓히고 있다. 지난 1월에는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참석, 전 세계 파워엘리트들과 네트워킹을 강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기자는 관계, 학계, 금융계에 막강한 네트워크를 가지고 여전히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서머스 전 재무장관을 지난해 1월 시카고에서 열린 전미경제학회 현장에서 만나 스탠딩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달변은 아니지만 예의 느린 말투로 촌철살인과 같은 그의 혜안과 통찰력을 듣기 위해 서머스 전 재무장관이 참여하는 패널 세션과 강연에는 항상 청중들로 가득 차 있던 기억이 난다.
탁월한 능력과 경력을 자랑하지만 서머스 전 재무장관의 약점도 적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까칠하고 독선적인 성격으로 주변 사람들과 충돌이 잦다는 점이다. 고압적이고 너무 잘난 체를 많이 한다는 게 서머스 전 재무장관 비판론자들의 지적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 2008년 9월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서머스는 2009년 오바마 행정부가 대대적인 경기부양책을 마련해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정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일방적인 독주를 하는 바람에 백악관 내 다른 경제자문관들과 연일 충돌을 빚는 등 인간관계는 순탄치 않았다. 당시 서머스 위원장과 백악관 경제 관리들과의 다툼이 언론지면을 장식하는 일이 많았다.
연준은 동료 간 협력과 합의를 중시하는 조직이다. 연준 의장은 19명의 연준 위원 등이 참석하는 통화정책결정기구인 미국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통해 통화정책 방향을 조율하고 전체 합의를 유도하는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서머스 전 재무장관 성격이 직설적이고 과도하게 공격적이기 때문에 그의 뛰어난 능력·경력에도 불구하고 연준 의장직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신중함이 요구되는 연준 의장 자리지만 서머스가 그동안 자주 설화를 빚었다는 점도 약점으로 꼽힌다. 하버드대 총장으로 재임할 때 서머스 전 재무장관은 과학과 공학분야에서 뛰어난 자질을 보이는 여성이 적은 것은 남성과 여성 간 본질적인 차이 때문이라고 발언, 성차별론자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후 학내외에서 당시 서머스 총장의 성차별적 발언에 대한 논란이 거세지면서 결국 그는 2006년 하버드대 총장직에서 물러났다.
지난 91년 세계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로 있을 때는 저개발 국가들이 선진국 공해산업을 넘겨받을 경우 경제적으로 더 나은 상황을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쳐 논란을 빚은 바 있다.
미국 상원의 연준 의장 청문회 통과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점도 오바마 대통령이 서머스를 차기 연준 의장으로 선임하는 데 부담을 줄 수 있다.
많은 진보적 정치인들은 아직도 서머스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클린턴 행정부 때 재무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월가 금융기관들을 위해 과도하게 금융규제 완화에 나서는 바람에 결국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단초를 제공했다고 그를 비판하고 있다.
한편 서머스는 1954년 11월 30일생으로 하버드대 영문학과 교수인 엘리사 뉴와 재혼해 현재 매사추세츠주 브루클린에서 살고 있다.